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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는 인간의 삶이 시작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죄된 삶이 시작되었는데 그 원인은 미혹 또는 유혹이라는 마수에 끌리면서 시작됩니다. 죄된 세상 또는 죄악이 만연된 세상은 이런 바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죄는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일 뿐 아니라 상대를 유혹하는 것이다. 또한 유혹받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마냥 끌려다는 상황도 죄된 상태를 벗어자니 못하고 죄가운데 사로 잡히는 상태이며, 이를 잠시잠깐 죄된 상태에 빠지거나 반복적으로 행사하다가 종내에는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죄된 상황 가운데 그대로 묻혀사는 삶을 우리는 죄악에 빠진자 또는 미혹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자들이 죄된 상황을 인식조차 하지 아니하고 마냥 빠져버린 사람을 하나님은 참고 또 참고 계십니다. 신명기 32장 35절 말씀은 이런 상태에 놓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분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신32:35).
로마서 12:19-21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는 단순히 도덕적인 행동이 아니며, 상대방의 궁핍함을 채워줌으로써 그들의 마음에 감동과 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는 표현은 관용과 사랑의 행위를 통해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 죄악의 상태
요한 사도는 말씀하시기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요일2:16)라고 하시면서 이는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렘4:14). 이 모든 생각들은 메신저처럼 왔다 가며, 그것으로 죄를 실행하게 됩니다. 그러한 생각들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정들을 자극합니다.
인간의 내재적 죄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도 그랬습니다. 하와가 뱀의 유혹에 미혹되어 먼저 꾐에 빠지고 아담과 함께 공동정범의 길을 갑니다. 만일 아담이 내재적으로 죄악을 물리칠 수 있는 상태였다면 하와를 냉엄하게 꾸짓고 미혹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하지만 이런저런 핑게를 먼저 대고 그 죄악된 상태의 결과를 은근슬쩍 즐기는 것입니다. 당연히 내 안에 악마가 손짓하는 것이지요 - 놀렐루야 노멘
2. 죄의 심각성
죄는 항상 이성에 죄의 심각성을 경감시키고 경시하게 한다. “그것은 작은 실수일 뿐이다”라고 스스로 달래기도 하고 그땐 어쩔수 없었거든? 하고 또 염치없는 자기만족을 위한 핑게를 댑니다. 이미 뱀의 간교함을 답습한 인간은 그 정도의 핑게와 담대함과 의젓함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에 대한 정상적인 자기 합리화를 성공시키고 다음에 나타날 황금빛 열매에 희희낙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죄는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다.”(잠23:32)라고 솔로몬왕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죄 안에 사는 자들은 사도가 말씀하시길, “연락하는”(야5:5)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약 5:5) |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
3. 죄의 삯은 사망이다
사도바울은 말씀하시되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정욕으로 너 자신을 허비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그 정욕은 죄가 당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통하여 불어 넣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육체의 욕심을 채우지 말라”(갈5:16). 인간들이 죄의 권세 아래 살 때, 그들은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엡2:3)을 행하게 됩니다. 죄는 영혼을 꾈 때, 죄를 무언가 아름답고 만족을 주는 것으로 색칠함으로써 영혼을 유인하는 상상력을 설득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는 사실을 우리 만나인들은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문화명령이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복을 주실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복을 주십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뱀을 포함하여 다시 말하여 ')을 다스려야 합니다.
죄는 다스리는 자의 몫입니다. 죄에 굴복하느냐 또는 다스리는 것(지배 또는 정복)입니다.
결론: 시험을 이기는 힘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은 믿는 자들의 힘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신다”(벧후2:9).
그러나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고 성찰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자 우리 신앙인들의 참 소망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며”(마6:13).
우리 주님은 시험의 힘을 아시기에, 그것을 말씀하셨고, 그분은 얼마나 우리가 그것에 공격받기 쉬운 줄을 아신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2:18).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얇게 흙이 씌워진 돌짝밭에 뿌려진 씨를 다음과 같이 비유하신다.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눅8:13). 말씀의 가르침은 시험받는 우리을 감동시킴니다. 그들은 믿는다. 그들은 고백을 한다. 그들은 몇몇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눅8:13). 한번 시험을 받으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가버립니다. 오늘날 목회자님들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을 어물쩡하게 인도하십니다. 시험당하시는 성도님들에게 오직 성령님이 임하시고 기도 중에 믿는 믿음이 구원하신다는 말씀을 우리 만나인들을 기억하고 은혜받으실 줄 믿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4) 아멘.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 만나인에게 주신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