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4월 20일(토) 잠언 20:1-15 찬송 290장
1.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2.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
3.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4.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5.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6.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7.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8.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의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
9.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10.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11.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12.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
13.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
14.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개역 개정)
- 지혜로운 의인과 어리석은 악인의 삶을 대조 제시하는
총 375개의 금언들의 연속(20:1-30) -
20장도 375개의 여러 주제를 담고 있는 짧은 경구로 이루어진
솔로몬 잠언이 수록된 10:1-22:16의 일련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생활 태도가 대칭적 구조로
비교 서술되어 지혜로운 자로 하여금 악한 행위를 버리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20장도 크게는 지혜로운 의인과 어리석은 악인의 비교로 일관되나
작게는 실제 생활에서 부딪치는 여러 삶의 모습과 관련되는
다양한 주제들이 계속 반복되어 등장하므로
장 전체를 단락별로 묶어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 부분은 저자, 문장 형식, 사상 등
그 어떤 측면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6-7절)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여기에서 ‘인자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쎄드’는
‘인자함’이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착함’ 혹은 ‘성실함’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6절에서는 ‘인자함’이나 ‘착함’이라는 의미보다는
‘성실함’의 의미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이렇게 볼 때, 6절 상반절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충성을 맹세하며
말의 성찬을 벌이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솔로몬이 내린 결론은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라는 것이다.
즉 말 많은 사람 쳐 놓고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는 말처럼
실제로 자기가 말한 것만큼 실행에 옮기는 사람도 없으며
자기가 자랑한 것의 반이라도 미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솔로몬 당시에는 왕의 신복 하나하나의 중요성이 매우 컸다.
왜냐하면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들은 왕의 생사와 국가의 존폐,
성쇠와도 긴밀한 관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공성전(攻城戰)이 주요 형태였기에
내부에 반역자가 있다는 것은 곧 패전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왕은 믿을 만한 사람, 신뢰할 만한 신하가 필요했으며
그런 이들의 존재 여부는 나라의 강성함과
견고함 여부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렇기에 솔로몬은 왕의 입장에서 사람들을 향해
말로 떠벌리고 과장하는 것보다
하나라도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충고한다.
그것이 왕을 기쁘게 하기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일례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을 예고하셨을 때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주를 위해서 죽을지언정 배신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였고
베드로는 맹세하기까지 하였다.(마26:31-35)
하지만 결과적으로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고,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되는 현장에서 달아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겨우 한 사람 요한만이 멀리서 예수님을 따라갔을 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축복을 경험할 때
입으로 얼마나 많은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하는가!
세상 그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겠다고 수없이 되뇌이며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신실한 자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정작 삶의 현장에 들어서면 이내 그 맹세와 약속은 망각되고 잊혀진다.
그리고 그처럼 약속을 배신하고 심지어 아예 망각하고도
‘마음에는 원이었지만 육신이 약하여 그리했다’고
둘러대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말만 무성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작은 것 하나라도 신실하고 진실하게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참되고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 말한 바를 지키기 위해
손해도 희생도 감수하는 성도다운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 말한 바울의 말씀처럼
말만 앞세우는 천박하고 경박한 자들이 아니라
묵묵히 행하고 실천하는 충성된 성도, 능력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