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사도행전 1장 10-12절『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그런데, 마태복음 28장 16-20절『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에탁사토) 산(오로스)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에서 승천에 대한 표현은 없지만, 마지막 분부(세례와 증거)를 하신 것으로 보아 승천하신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예수님은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는데, 이 또한 사도행전 1장의 감람원에서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하셨다. 사도행전 1장 5절『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누가복음 24장 51-53절『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베다니라는 말이 등장한다.
마태복음 28장에서는 감람원이라는 산이 아니라 벳세다를 의미하는 갈릴리 지역의 산을 가리킨다. 그러나 누가복음 24장은 베다니, 사도행전 1장은 감람원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을 지칭하는 말에, 마태복음에서는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이라 했으며, 그곳은 벳세다이다. 누가복음에는 베다니, 사도행전에서는 감람원 이렇게 다르게 표현되었다. 특히 사도행전은 1장 11절에서『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라고 말씀을 하신 후에 감람원(산)이라는 말이 등장하므로 예수님의 승천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8장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표현은 없지만, 승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베다니와 감람산이라는 다소 차이는 있지만 감람산 줄기의 베다니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표현이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감람산의 베다니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승천은 어떤 장소를 나타내기 위함 보다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 그리고 그곳에 재림하시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승천은 어떤 장소에서 올라갔다가 다시 그곳으로 내려온다는 그런 개념이 아닌 것이다. 승천이라는 말은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하늘은 하늘 나라(천국)의 준말이다. 이 하늘 나라인 하늘은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우편이 되고, 제자나 성도에게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가, 성령의 능력으로 제자들의 심령 속의 새성전에 재림하여 들어온다는 것이다.
첫째, 감람원은 감람산이라고도 한다.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 후에, 감람산 설교로 알려진 것으로 마지막 때에 대해서 가르치시며, 감람원의 다른 이름인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곳이며, 예수님이 붙잡히신 곳이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 선 육적 모습과 영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분명히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모든 세상 교회 공동체 신도들의 육적, 영적 상태를 나타내시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때는 대부분 신도들은 복음이라는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육적으로는 율법주의에 머물고 있으며, 영적으로는 복음을 믿는 이중적인 모습을 나타냄을 말하고 있다.
둘째, 갈릴리 산지 벳세다는 아셀,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 지파가 땅을 분배받았는데, 이들은 힘이 약해서 가나안 족속을 내쫒지 못하고 그들과 공존하면 살았다. 정통성을 주장하는 유다지파 사람들은 갈릴리 지역 사람들을 없신여기기도 했다. 예수님은 벳세다와 고라신을 저주하셨다. 마태복음 11장 21-22절『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그러나 예수님이 벳세다에서 맹인을 고치는 이적을 베푸셨다.(마가복음 8장 22-26절) 맹인은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맹인이라는 말이다. 특히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맹인임을 말한다. 예수님이 이곳으로부터 하늘로 승천하신 것은 율법에 대해서 죽고(십자가의 죽음), 율법으로부터 벗어남(부활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맹인들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영적 눈이 밝아져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벳세다 지역에서 예수님의 승천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마태복음 28장 16-20절이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제자(성도)들에게 너희들도 나처럼 세상에 대해서 죽고 하늘로 올라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의 심령 속으로 들어와 임재하시고, 제자들은 그 성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에베소서 2장 8절『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예수님이 성도의 거처를 마련했으므로 하늘로 데려가시는 것이다.
셋째,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2km정도 떨어진 감람산 남동쪽에 있는 곳이다. 베다니는 감람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 마을 이름인 것이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셨으며, 문둥병 환자 시몬을 고쳐주신 곳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종려주일 직전에 베다니에 머무셨으며, 문둥병자였던 시몬의 집에서 마리아가 예수님께 한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었다. 베다니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그런 곳이다.
넷째,『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개역개정은 헬라어 성경과 차이가 있다. 이 말을 헬라어로 보면 ὁ Ἰησοῦς ὁ ἀναλημφθεὶς ἀφ’ ὑμῶν εἰς τὸν οὐρανὸν οὕτως ἐλεύσεται ὃν τρόπον ἐθεάσασθε αὐτὸν πορευόμενον εἰς τὸν οὐρανόν. 이것을 다시 번역하면『너희로 부터 벗어나 하늘 안으로 들어가신 이 예수는 하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너희가 본 그 방법대로 올 것이라』제자들이 본 것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려지는 것을 보았지만, 그 하늘은 영적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그 방법대로 라고 하면, 영적 하나님 나라는 제자들의 심령 속의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승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의 심령 속의 성전으로 들어오신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승천과 관련하여 나타난 지역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 그리고 하늘 나라로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가, 제자들의 심령 속으로 재림하여 들어오는 과정을 나타내 주시는 것이다. 제자들 뿐만 아니라 성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과정으로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