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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새벽 56
검게 흐르는 강.
강 너머 점점이 보이는 불빛.
환한 불을 밝히고 유유히 지나가는 유람선.
더운 일요일 밤을 한강 둔치에서 보내는 여유롭고 다정한 사람들.
더위의 절정인 8월 중순이 지나고 약간은 사그러 든 듯한 열기.
- 덥지요?
- 아니에요. 이렇게 앉아 있으니 간간히 바람도 불고, 좋아요.
- 서현씨.
- 네.
- 제가 불편하십니까.
- ...
- 제 얼굴 한 번만 봐주십시오.
아까 식사 때도 그렇고 내내 저 한 번도 안 보셨습니다.
서현이 고개를 돌려 영민을 바라본다.
착한 눈을 가진 사람. 착한 웃음을 짓는 사람.
서현도 작게 웃음을 만들어본다.
- 지난 몇 주 동안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더군요.
그걸로 하진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과 사는 구분 해야겠기에 지켜보기만 했지요.
서현씨 힘든 거 잘 압니다.
그래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서현씨 쉴 시간을 염치 없이 뺏았습니다.
당신도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군요.
나도 그랬어요. 그래서 말 하였어요.
나는 당신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아요.
몰랐어요. 그토록 아플 줄은 몰랐어요.
나는 이제서야 알았어요. 미안해요.
슬픈 눈. 서현의 눈을 바라보던 영민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연다.
- 기다리겠습니다. 서현씨께 재촉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을 겁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재촉한다고 해서, 강요한다고 해서 열리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당신은 나와 다른 말을 하는군요.
당신은 열리지 않는 마음을 바라보며 곁에 있을 수 있나요?
당신은 그만큼 강한가요?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마음을 바라보며
당신의 마음을 숨겨낼 수 있나요?
- 허대리님은, 마음을 숨길 수 있나요?
거짓 마음으로 저를 대할 수 있나요?
- 서현씨, 잘못 알아들으셨군요.
저는 마음을 숨긴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기다릴 기회를 달라는 말을 했지요.
아아, 나는 그 말을 할 수 없었어요.
기다리기 위해선 마음을 숨겨야 하니까요.
나는 그럴 수가 없어요. 너무 아파서.
브레이크는 고장 났어요. 달리기만 해요.
- 그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 ...
서현은 영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안쓰러움..
그러나 서현은 고개를 젓는다.
- 제 마음엔 허대리님이 들어올 곳이 없네요. 미안해요.
- 저도 지금 들어갈 생각 없습니다. 초대하실 때 가지요.
- ...
- 너무 큰 마음을 내비치면
오히려 한 걸음 더 물러나실 거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억지를 부리면 달아나시겠지요? 후후...
- ...
- 하지만 오늘은 억지 한 번 부려보고 싶군요.
- ...
영민이 서현을 바라본다.
- 서현씨.
서현이 영민의 눈을 마주한다.
-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요.
영민이 대답 없이 강으로 고개를 돌리는 서현을 부드럽게 안는다.
큰 손이 서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 사랑합니다. 저는 서현씨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낼 것입니다. 저에게 기대어 오십시오.
보이는 만큼의 힘과 굳건함을 그대로 믿어주세요.
서현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끼며 영민은 눈을 감는다.
그 배후의 초라함과 아림은 나만 알면 될 듯 싶습니다, 서현씨...
*
옥상 난간에 기대어 하진의 집을 바라본다. 불 꺼진 집.
하진의 집에선 그 날 이후로 기척이 없다.
불이 켜지는 것도, 꺼지는 것도 보질 못했다.
서현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아주 오랜만에 태워보는 담배.
그리운 내음이 은옥의 것인지, 하진의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알고 싶지 않아서, 나는 몰라요, 고개를 저으며 한숨처럼 연기를 내쉰다.
사내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가 나의 고통이길 호소하고
나는 어쩌란 말이냐 어쩌란 말이냐, 그 뿐인 채
그 안에 도사릴 憎을 미리 겁내어하는데.
하진 언니, 언니도 그러했나요. 이렇게 사라져버릴 만큼 아팠나요.
그저 모든 것을 버리고만 싶었나요, 나처럼.
*
유기된 시간이 흐르고 있다.
모든 것을 유기시킨 채 죽은 듯이 살아도,
그렇게 몸과 마음을 버려두어도 시간은 흐른다.
하진은 홈 씨어터의 화면을 표정 없는 얼굴로,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 재밌냐?
선주가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중간 쯤에 서서 하진을 올려다본다.
- 왜 다시 와? 오늘 바쁠 거라더니?
- 펑크 났어. 내려 와, 삼겹살 사왔다. 소주 한 잔 하자. 백세주 사왔다.
- 생각 없어.
- 짜샤, 이 언니가 내려 오라면 내려 와. 안 그럼 쫓아낸다. 집도 절도 없는 놈이 겁마저 없군.
- 내가 왜 집도 절도 없냐. 갈 데 많다.
- 그럼 가라. 안 그래도 귀찮으니까.
- ...
- 치사하냐?
- 어.
- 내려 와.
*
불판 위의 붉은 살이 치글치글 회백색으로 익어가는 것을 보며 술을 털어 넣는다.
싸아하게 목을 타고 흐른다.
- 야, 익은 거 같다, 좀 먹어가면서 마셔.
선주가 술병을 들고 기울이자 하진이 잔을 든다.
- 백세까지 오래오래 살아라, 붕우.
선주가 술을 따르며 말한다. 하진은 피식 웃는다.
- 그렇게 오래 살아서 뭐 하게.
- 못 볼 거, 안 볼 거, 다 보고 죽으라고.
- 악담을 해라. 이미 소시적에 다 봐서 이제 볼 것도 없다.
- 보고 싶은 거, 봐야 되는 거, 다 보고 죽으라고.
- .. 없어.
- 있을텐데.
선주가 턱을 괴고 고기를 뒤집는다.
- 서현이 너 여기 있는 거 모르지?
대답 없이 다시 술을 털어넣는다.
- 너 참 대단한 인간이다, 유하진. 그걸 어떻게 참냐.
- ...
선주가 잔을 들어 원샷 한다.
- 캬아, 빈 속에 마시니 목구멍이 따끔따끔하고
속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어허라, 용가리 되겄네.
선주의 허풍에도 하진은 웃지 않는다.
선주가 고기를 집어 먹으며 하진을 바라본다.
- 하진아.
- 응.
- 나 같으면 서현이 그렇게 안 보낸다.
- .. 됐어, 그만 해.
- 왜 그만하냐. 내가 오늘 이 얘기할 작정하고 술 사왔는데.
그동안 내가 네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너 그렇게 안 앓아누웠으면 벌써 팼어.
- ...
- 몸도 나았겠다, 정신도 좀 챙긴 것 같다 싶어서 한 소리 할란다.
선주가 하진의 잔에 술을 따르고 자신의 잔도 채운다.
- 내가 늘 하는 말이 있지. 한 번 살지 두 번 사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도, 인생 짧아.
- .. 하고 싶은 걸 다 할 순 없지.
- 그렇지. 다 할 순 없지. 그러니 그 중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 할 수 없는.. 일이야.
- 내가 보기에 할 수 있는 일인데?
- 난.. 네가 아니다.
- 뭐가 문제라서? 왜, 서현이한테 열 올린다는 그 대학 동창?
웃기지 마. 그건 변명이지. 니가 언제부터 성인군자였다고 남 다 보살피고 살아?
서현이도 그쪽한테 마음 있는 거라면 말이 달라지지만.
그 사람 아픈 건 생각하고 서현이 아픈 건 생각 못 하나?
그쪽한텐 미안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그런 거야.
- 그만 해. 나도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니까.
- 충분히 생각한 게 이것 밖에 안 돼?
넌 지금 도망치고 있는 거야. 왜? 무서우니까.
서현이가 명우처럼 가버릴까봐 무서우니까.
- 알아, 안다고. 그러니까 그만하라고.
- 명우가 떠났을 때 한 쪽 날개를 잃었다고 치자.
서현이가 네 나머지 날개를 꺾기 전에, 네가 먼저 분질러버린 꼴이지.
넌 속으로 그걸 정당화 시켰겠지.
배신의 날은 한 번으로 족하지 않겠니. 나는 정말로 원하지 않거든.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거든. 게다가 친구에게 지켜야할 도리도 있지, 하면서.
병신아. 어, 병신 맞네. 날개 하나도 없는 새가 병신이지 뭐냐.
아무튼 병신아, 날개가 꺾일지 아닐지도 모르면서 왜 먼저 분질러?
할 일이 그렇게 없냐.
- ...
- 겁쟁이는 사랑 못 한다.
넌 지금 너를 너무 사랑하는 게 문제야.
네가 아플 거, 상처 받을 거 다 생각하고
앞으로의 일 같은 거 이리저리 재고, 그게 무슨 사랑이냐.
내가 미진이 사귀면서 불안한 마음 없을 것 같아?
걔도 남자 숱하게 사귄 애야.
나 가요, 그동안 즐거웠어요, 사랑했지만 이것이 인생이예요,
하면서 포로롱 날아가버릴 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나는 그 불안감도 감수하고 사랑한다.
왜, 인생은 한 번 뿐이니까.
미진이가 떠난다면 죽을 것 같이 아프겠지.
어쩌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뭐? 죽으면 되는 거지. 그 때 죽고 싶으면 죽을 거야.
인생 불살라서 멋지게 사랑했다는 걸로도 만족한다만 앞으로의 일은 모르는 거니까 말이지.
- ....
- 이 세상에 너도 나도 둘은 없다.
네 감정에 충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서현이가 네 나머지 날개마저 꺾을지,
아니면 부러진 날개죽지를 고쳐서 더 멋들어진 날개를 달아줄지,
그건 살아보면 아는 것 아니겠냐. 감정에 사기치지 말고 정직하게 살자.
아, 이런... 오늘도 연설 됐네.
이 버릇 좀 고쳐야 되는데, 흥분하면 속사포가 돼서.. 츱..
사랑지상주의자의 연설 끝났다. 고기 다 탔다. 먹어라.
식탁을 내려다보던 하진이 고개를 든다.
- 선주야.
- 어.
타버린 고기를 접시에 옮기던 선주가 하진을 바라본다.
하진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다.
- 나도.. 알거든? 너만 아는 거 아니거든..?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거든..
하진의 볼을 타고 눈물 한 줄기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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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낼 때가 다 되었군요.
내일은 글을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
그들의 새벽 57
하진은 현관에 서서 선주를 지켜보고 있다.
분홍 고무장갑을 끼고 머리는 숟가락을 비녀처럼 꽂아 틀어올리고
신나는 클럽 뮤직을 집 안이 터져나가라 틀어놓고
거기에 보태어 빈 패트병을 마이크처럼 들고 목청 높여 노래를 따라부르며
쇼파 위에서 율동을 하고 있는 선주.
나이는 어디로 먹는 건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 인간.
더군다나 하진을 문 앞에 10분 동안 서 있게 하는 걸 보니
누가 왔는지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인간임에 틀림 없다.
지루하지 않기게, 보고만 있어도 시원하기에 하진은 선주를 계속해서 지켜본다.
- 어, 왔수?
막 바닥으로 뛰어내리다가 하진을 발견하고 심드렁하게 묻는다.
음악에 묻혀 잘 안 들리는 목소리.
하진이 진공 청소기를 훌쩍 넘어 들어 와 오디오를 끈다.
- 정신 사납게 뭐 하는 짓이냐.
- 보면 모르냐, 청소 중이지. 개천절 맞이 대청소.
하늘 열린 날 D-day 하룬데, 하늘에 대한 예의 아니겠냐.
몸도 마음도 집도 동네도 지구도 우주도 깨끗이.
- 어지르는 중인 거 같은데?
- 원래 청소는 하기 전에 어지르는 거야.
구석구석 묵은 먼지들 다 출동 시킨 다음에 싹쓸이 해야지.
이 기회에 가구 배치도 좀 바꿔볼까 하고.
선주가 앉으라는 시늉을 하며 고무장갑을 벗고 숟가락 비녀를 뺀다.
긴머리가 출렁 흘러내린다.
- 2층은 어제 끝냈고 1층은, 1층은, 어우 귀찮아. 몸살 나겄다.
- 하기 전에 그렇게 진 다 빼고 청소는 무슨 힘으로 하냐.
- 무쓴 쏘리. 아임 쏘리? 노노. 가무로 배터리 충전시키는 중이라고.
그건 그렇고, 출장 잘 갔다 왔는가?
- 보시다시피.
- 일은 잘 끝났고?
- 어.
- 어구 착해.
- 음성 남긴 거 들었다. 왜 불렀어?
머리를 마구 비벼대며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만드는
선주의 두 손을 피하며 하진이 묻는다.
- 줄 거 있어서 불렀지.
- 뭐, 먼지와 정신 사나움?
- 서현이 왔다 갔어.
- ... 언제?
- 좀 됐지. 일주일 전?
네 회사에 전화해서 너 지내는 숙소까진 알아봤는데.
전화 할까하다가 뉴욕까지 요금 아까워서 안 했다.
*
손에 들린 종이와 길가의 집들을 번갈아보며 길을 걷던 서현은
몇 걸음 앞의 유난히 눈에 띄는 집을 보고는 확신한 듯 걸음을 재촉한다.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 우체통의 주소를 확인하고 대문으로 향한다.
여러번 벨을 눌러보다가 기척이 없자 매끄러운 나무 계단 위에 걸터 앉는다.
은행 잎이 노랗게 물든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지붕을 얹은 집들.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하얀분홍 코스모스 위를 날아다니는 잠자리들.
서현은 무릎 위에 팔꿈치를 괴어 손으로 왼쪽 뺨을 받치고 고개를 비스듬히 돌린다.
어디선가 핑그르르 날아와 계단 위에 팔랑 착지하는 붉은 단풍 잎.
손을 뻗어 집어들고 두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계단 바닥을 바라본다.
차 한 대 미끄러지듯 지나치다가 후진해서 집 앞에 선다.
- 까꿍!
서현은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본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젬젬 하듯이 주먹을 쥐었다 놓았다 하는 사람.
서현이 환하게 웃으며 일어선다.
- 선주 언니!
- 기다려. 주차해놓고 갈게.
차고에 주차를 하고 선주가 뛰어온다.
- 꼬맹아. 오랜만이다. 안 그래도 연락 하려던 참이었다.
- 정말 연락하려고 했었어요?
- 정말이겠냐.
- 이렇게 문전박대 하기예요? 집 찾는다고 고생 했단 말예요.
핸드폰 잃어버려서 언니 번호도 모르고.
- 어, 그런데 집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 요거요.
서현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들어보이며 웃는다.
선주가 졸업 선물로 준 사진 카드 초대장.
사진 속 노란 해바라기가 햇빛에 반짝반짝 빛난다.
- 하하하. 그거 사용한 사람 네가 처음이다.
고맙다 고마워. 실속은 없지만.
- 언니가 애인 데리고 오면 잘 해준댔는데, 없어서 아쉽네요.
- 괜찮아. 그거 뻥이야. 들어 가자.
선주가 웃으며 문을 열고 서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안으로 안내한다.
- 혼자라도 왔으니 여기 써 있는 대로 얼른 최고의 룸써비스 제공하라구요.
설마 이것도 뻥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 그러엄. 그건 뻥 아니고 개구라야.
- 쳇.
*
2층 테라스에 마련해 놓은 작고 둥근 테이블 앞에 앉아 서현은 주위 풍경을 둘러본다.
- 와, 언니 집 되게 좋다. 특히 여기 테라스 맘에 들어요.
여기 앉아서 동네 풍경 보면 걱정 근심도 사라질 것 같아요. 이쁘다..
- 오히려 여기 앉아 있으면 걱정 근심이 치솟는다.
- 왜요?
- 내가 이 집 사고 빚더미에 앉았잖아.
아버지한테 당신 딸 앞으로 창창하다고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라고 돈 빌려서 내 돈이랑 보태서 샀거든.
근데 이자가 어마어마 하거든.
- 이자가 얼마나 되는데요?
- 일주일에 한 번씩 본가에 가는 거. 가서 흰 머리 뽑아드리는 거.
구두 닦아 드리는 거. 요리 해드리는 거. 등등등.
- 아하하하. 아버지 한 번 뵙고 싶어요.
- 옛날엔 꼬장꼬장해서 원리원칙만 따지고 엄하셨어.
사진 찍는다고 깝치고 다닐 때 트러블 최고조로 달했었지.
나이 드시더니 많이 변하셨다.
지금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고 들릴 때마다
서포터한테 좀 잘 하라고 닥달이시다.
- .. 잘 해드리세요.
서현의 부드러운 웃음에 선주도 웃는다.
- 그래야지.
선주는 서현의 얼굴에서 더욱 깊어진 눈과 표정을 본다.
몇 개월 사이에 앳띈 얼굴 속에서 성숙한 여인의 젖은 마음이 보일 정도로 달라졌다.
- 나 오늘 안 오면 어떡하려고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어?
-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우린 좋은 인연이잖아요.
- 하하. 좋은 인연이라.
- 선주 언니도 그렇고 하진 언니도 제겐 좋은 인연이예요. 소중한 인연.
- 음...
- 언니.
- 응?
- 하진 언니.. 소식 알아요?
- .. 알지. 얼마 전까지 우리 집에서 지냈는데.
- 아.. 그랬구나.. 지금은요?
- 출장 갔어, 미국.
- 아... 그래서 전화가 안 됐구나..
- 하진이 찾으려고 왔어?
- .. 아뇨. 선주 언니한테 작별 인사하러 왔어요.
- 어디 가?
- 네. 프랑스 가요.
저희 회사에서 해외에 1년동안 파견해서 전문가로 키우는
지역전문가제도가 이번에 확대 돼서 사원들한테 기회가 많이 생겼거든요.
혹시나하고 신청 했는데 가게 됐어요. 안 될 줄 알았는데..
- .. 그래? 잘.. 됐네.
- 네..
- 언제 가는데?
- 내일.. 출국해요. 그래서 왔어요. 어젠 대학 때 은사님도 뵙고 왔구요.
고작 1년인데 막상 확정되고 나니까 생각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 그래..
- ...
- 서현아.
- 네?
선주는 알고 있다. 하진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째서 모든 일에 냉철한 하진이 사랑 앞에서만은
벌거벗은 아이처럼 벌거벗은 심장으로 무방비가 되어버리는 것인지.
어머니로 인해 상처가 깊게 패인 심장을 명우가 안아주었다.
명우에게서 하진은 어머니를 보았을 것이다.
명우를 만나고 어머니께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 했던 하진.
그런 명우가 떠났을 때 하진은 어머니를 두 번 잃었다.
잠재된 의식 속에서 다시 어머니를 잃을 것이 두려운 마음,
같은 자리에 세 번의 난도질을 당하고 싶지 않은 본능으로
서현을 거부하였을 것이다.
그녀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치명적인 약점이자 상처였다. 선주가 그러했듯이.
그러나 선주는 하진에게 말하고 싶었다.
겉도는 자극적인 욕설과 비난과 충고를 해버렸지만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명우도 서현도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연인으로부터 자신의 결핍을 보완하려고 한다.
외현적인 부족함이나 심리적 욕구를 상대를 통해서 만족하려 한다.
그것은 실로 자연스러운 심리이나 또한 위험하다.
연인은 애인, 친구, 스승, 어머니, 이 모든 존재가 될 수 있으나
이미 무언가를 기대하기 시작할 때 그 모든 존재가 될 수 없다.
기대하지 말고 기대하라. 믿되 믿지 마라. 그저 사랑하고 사랑하라.
그러나 하진이 결정 한 일이다.
더군다나 하진이 깊고 고통스럽게 고민한 이유 중 영민이란 친구도 빼놓을 수 없지 않은가.
더이상 자신이 나서는 것은 월권이다.
더이상 말로 하진의 결심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말로써 알게 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선주는 하진을 지켜보기로 마음 먹는다.
평생을 두고 함께 할 친구이기에 무조건적인 믿음을 주기로 한다.
선주는 서현에게 하진의 마음을 얘기하려던 것을 접고 다른 말을 꺼낸다.
- 너 떠난다니까 하는 말은 아니고, 한서현, 넌 멋진 여자다.
꼬맹이도 아니고 버릇 없지도 않아. 이 말이 꼭 하고 싶었다.
서현이 혀를 쏙 내밀며 웃는다.
- 전 떠나니까 하는 말인데요, 선주 언닌, 유치하지도 치사하지도 않아요.
- 하하하하. 젠장. 잘 갔다와라, 꼬맹아. 건강하게 말이다.
*
- 서현이 파견 근무 간다더라. 나한테 인사하러 왔더라고.
1년 동안 프랑스에 있을 거라던데.
선주가 흘깃 하진의 표정을 가늠한다.
하진의 굳게 다문 입술과 진중한 눈매가 오늘따라 서글프다.
- 그래..
- 서현이 꽤 능력 있나보다. 그거 몇 명 안 뽑는 걸텐데.
- 당차고.. 똑똑한 애야.
- 사랑스럽기도 하고 말이지, 안 그래?
- 후... 나한테 줄 거 있다더니?
- 아, 그래. 잠시만.
선주가 2층으로 올라가고 하진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씁쓸하게 웃는다.
언젠가 빠리의 에펠탑 전망대에 올랐을 때
그곳에 국가별 직선거리가 기재되어 있었다.
프랑스까지 약 1,3000km.
인천에서 빠리까지 비행거리 8967km.
비행시간 11시간 55분.
넌 그곳에 있구나...
- 이거.
금세 1층으로 내려온 선주가 작은 봉투를 불쑥 내민다.
- 뭔데?
- 글쎄, 서현이가 너 만나면 전해주라던데.
하진이 천천히 손을 내밀어 봉투를 쥔다.
봉투를 열어 안에 든 것을 꺼낸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조각 하나.
하진의 손 끝이 떨린다.
졸업 선물로 주었던 퍼즐 지구본의 조각들 중 하나.
France 라는 국가명이 새겨져 있는,
수도인 빠리가 작은 큐빅으로 빛나고 있는 조각.
하진은 퍼즐 조각을 은색 바 위에 올린다.
선주가 후훗, 녀석.. 중얼거리며 무심히 조각을 뒤집어본다.
- 어, 뭐라고 써놨는데?
움직이지 않는 하진 대신 선주가 조각 뒷면에 작게 쓰여진 글씨를 읽는다.
- 씨큐, 씨큐, 씨큐 콜링. 여기는 S.H. 들리는가?
씨큐, 씨큐, 씨큐 콜링. 응답하지 않아도 좋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선주가 하진의 손을 들어 손바닥 위에 조각을 올린다.
떨리는 손에서 하진의 감정이 물결처럼 쏟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다른 손으로 하진의 펼쳐진 손가락을 힘주어 접어 주먹쥐어준다.
- 아까 암실 청소하다가 필름 한 통 발견했는데 그 중 한 장 현상했다.
전에 서현이 졸업 사진 한 장씩만 현상해서 서현이한테만 줬잖냐.
이거, 너랑 서현이랑 같이 찍은 사진.
선주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어 하진의 눈 앞에 정면으로 내민다.
맑고 푸르던 2월 어느 날.
서현의 학사모를 쓰고 선주의 오버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던 날.
하진의 팔에 팔짱을 끼고 빛나는 웃음을 가득 담고 있는 서현.
하진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며 솟구치는 눈물을 참지 못한다.
소리내어 울면서 소리내어 웃는다.
- 어흐흐흑, 선주야, 어흐흑, 하하, 선주야, 하하하, 어흐흐흑,
아직 안 늦었.. 흐흑.. 겠지? 나.. 흐흐흑.. 안.. 으흐흑.. 늦었겠지?
- 그럼, 임마.
하진은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간다.
- 어이, 운전 조심 해! 전처럼 울다가 엄한 벽에 들이박지 말고!
하진의 뒷모습을 보며 선주가 휘익- 경쾌하게 휘파람을 분다.
- 역시, 자극적인 게 좋아, 난.
씨익 웃으며 돌아서서 다시 오디오를 켜고 고무장갑을 척척 낀다.
집이 무너질 듯한 음악 소리와 함께 터져나오는 선주의 외침.
- 브라보오! 사랑의 위대한 승리다!
그들의 새벽 58
영민은 서재 책상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깍지 낀 두 손을 풀고 책상 서랍을 열어 편지 봉투를 꺼낸다.
서현이 프랑스에서 보내온 편지. 다시 한 번 더 읽어본다.
[ 가을 바람이 살며시 스며드는 창가에 앉아
플라시도 도밍고의 '그대를 세 번 사랑합니다'를 들으며 이 편지를 씁니다.
저는 요즈음 늘 같은 시간에 늘 같은 레스토랑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이 레스토랑의 주인이 샤갈을 참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곳곳에 샤갈의 그림을 모사한 작품들이 걸려 있습니다.
레스토랑의 이름도 그의 작품에서 따온 듯 'Le Bouquet Ardent' 입니다.
우리 말로 불타오르는 부케, 정열의 부케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을까요?
저 역시 샤갈의 그림들을 무척 좋아하는 탓에 이곳의 단골이 되고 말았답니다.
저는 때로는 점심 대신 차를 마시며 빠리도 서울도 아닌 이곳에서
열 곳 없는 열쇠가 달린 에펠탑을 쥐었다 놓았다 하기도 한답니다.
음.. 이곳엔 사실 샤갈 미술관이 있어요. 그리고 마티스 미술관도 있구요.
도착한 다음날 바로 달려가서 그들의 명작품을 보는 영광을 누렸답니다.
자, 이제 제가 머무르는 곳이 어디인지 아시겠죠?
어제 본 방명록엔 반가운 한국인의 필체가 보여 유심히 읽어보았습니다.
그 혹은 그녀는 이렇게 적어두었더군요.
'이 맘 때면 바닷가의 모나코 왕궁쪽이 보이는 이 레스토랑에서
플라시도 도밍고 'Yo Sin Ti(그대 없이)'의 감미롭고도 슬픈 음악을 들으며
1825년 코냑산 백포도주를 한 모금 입 안에 머금고
혀 끝으로 맛을 굴리면서 삶을 음미 할 지어다.'
그 혹은 그녀와 저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다른 음악을 마음에 담아 듣는군요.
하지만 두 문장을 이으면 '그대 없이 그대를 세 번 사랑합니다' 라는 그럴 듯한 문장이 완성되니
그 얼굴 모를 손님과 저는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약간은 억지스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니 문득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한 평생 한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 그 만남은 세 번이면 족하다고 합니다.
처음 만나서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보고
두 번째 만나선 그 사람을 알게 되고
세 번째 만났을 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보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 세 번의 만남을 모두 끌어 안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에서의 몇 일은 제게 무척 고맙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지금 저는 파견 근무 이주일을 남겨두고 특별 휴가를 마음껏 즐기고 있어요.
처음엔 프랑스의 명소 곳곳을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바다가 보고 싶어서
빠리에서 바로 다시 야간열차를 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 남 프랑스의 리비에라(Riviera)해안에 도착하자마자 탄성을 질렀어요.
저는 지금 리비에라 해안의 일부인 니스 해변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어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서
빠리로 돌아가기 전까진 계속 머무를 예정이랍니다.
열 일곱 무렵,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친구와 즐겨 하던 놀이가 있었어요.
사회과 부도의 세계 상세 지도를 펼쳐 놓고 한 명은 부도의 가장 뒷면에서 지명을 골라 읽으면
한 명은 열심히 그 지명을 찾아내어 손가락으로 짚어내는 것이었죠.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못 찾아내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었어요.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을 업고 복도를 한 바퀴 걸어야 했는데
그 친구가 저보다 체격이 큰데다가 한서현의 승부욕도 만만치 않기에
기를 쓰고 빨리 찾아내려고 했었어요.
그 때 처음 알게 된 세계 각국의 이름과 도시들은 저와 그 친구에게 하나의 꿈이었어요.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보았을 조금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과 야망.
다른 문화와 생김새를 가지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격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삶의 모습들.
사랑하고, 아파하고,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고, 아끼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기본적인 인간애.
그 시절 세계지도를 펼치고 늘 꿈꾸는 눈으로 바라보았던 곳이 이곳 지중해랍니다.
공상으로 그려보던 지중해의 이미지는 에머랄드빛 바다로 시작되어요.
그 바다를 끼고 서 있는 하얗게 칠해진 집들.
오래된 엽서처럼 정답고 아스라한 풍경들.
웃음이 넉넉한 사람들. 느긋하게 생을 관조하는 노인.
그리고 빛나는 태양 아래 구리빛 피부의 체격이 다소 큰 젊은 어머니.
하얗게 펄럭이는 기저귀들 사이로 아기를 업고 빨래를 너는 건강한 여인.
여기까지 읽고 웃고 계시죠? 알고 있다구요. 공상이라고 했잖아요.
피서철이 아니라 해변이 한산한 줄 알았더니 한여름에도 이렇게 인적이 드물다고 합니다.
그토록 유명한 니스 해변에 어째서 피서철에도 사람이 없는 걸까 생각했었는데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해변이 끝 없이 길고 해변의 폭이 넓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게다가 유럽사람들의 휴가 성향이 북새통 같은 장소를 피해
대부분 한적한 곳을 찾아 유유자적하며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산들바람 같은 지중해의 바람이 불어오는 이곳의 해변은
모래가 아니라 아기 주먹만한, 보드라운 자갈밭이예요.
이제는 점심 후 맨 발로 해변 산책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어요.
'니코스카잔차키스'가 '희랍인 조르바'에서 예찬하던 그 지중해를 온몸으로 체험하곤 합니다.
며칠 후면 이 일상도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테니 이 아름다운 풍경을
더욱 아끼고 아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는 중입니다.
제게 주어진 이 근사한 휴가가 대리님의 선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저의 특별 휴가가 끝나기 전에 한 번 들리시겠다고 하셨죠?
제가 먼저 이 니스해변을 차지한 우쭐함으로 정성껏 안내해드릴게요.
기대 되는군요. 저는 자랑쟁이니까요.
곧 뵙게 될 것을 생각하니 작은 미소 한 모금 묻어납니다.
이 편지에 지중해의 태양과 바람과 내음을 함께 실어 초대합니다.
가을의 정취가 흠뻑 묻어나는 해변에서 한서현 드림 ]
편지를 끝까지 천천히 읽어내리고 다시 접어 봉투에 넣는다.
서현의 편지를 읽으며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함께 남은 휴가를 보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정중한 글 속에서 묻어나는 슬픔.
영민은 오늘 밤 프랑스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내일 오후쯤이면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서현이 더욱 그리워진다.
거실 한 켠에 놓여 있는 간단하게 짐을 챙긴 슈트케이스를 바라본다.
서현씨, 곧 갑니다. 서현씨 계시는 그 아름다운 곳으로.
*
초인종이 울린다.
시간이 아직 멀었음에도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영민은
인터폰 화면으로 누구인지 확인한다. 하진의 얼굴.
스치는 좋지 않은 예감. 인터폰을 끄고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연다.
- 여어, 하진. 어쩐 일이냐.
커피 먹고 싶어서 왔...
영민은 하진의 얼굴이 눈물로 온통 젖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하진이 영민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걸어들어온다.
쿵-
현관 타일 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는 하진.
- 유하진..?
- 영민아.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
- 왜 이래..? 일어 나라. 일어나서..
- 거짓..을 말했다..허흐흐흑..
서현일.. 서현일.. 사랑.. 흐윽.. 흐으윽.. 하고..흐흑.. 있다.
오..래.. 흐흑.. 전..부터..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것처럼 어찔한 느낌.
- 나.. 지..금 서현일.. 흐허허헉.. 만나..야 한다...
서현이..흐흐흐흑.. 서현이.. 어흐흐흑.. 찾아..다오.
프랑스.. 프랑스.. 어디에.. 너는.. 서현이.. 허으으흐흑..
서현이.. 흐허허헉... 어딨..는지.. 알지..? 부디.. 알려다오.
해야.. 할.. 말..이.. 너무.. 많다..
미치도록, 미치도록, 어허흐허헉.. 미치.. 흐흐흑..도록..어흐흑..보고.. 싶다..
서현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크게 터지는 하진의 울음.
영민은 치솟는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하진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자신의 턱 밑까지 올려붙이며 시선을 내리꽂는다.
- 이제.. 와서?
분노로 가득 찬 낮은 목소리.
- 서현씨를 그렇게 아프게 해놓고! 이제 와서! 이제서야!
나를 기만하고 가지고 놀았군, 유.하.진.
하- 꼴 좋더냐? 너만 보는 서현씨 보면서 안달하는 내가 우습더냐!
-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 어흐흑..
나의.. 어리석음을.. 사과한다.
네가.. 흐윽.. 어떤.. 욕..을..흐흑.. 해도.. 좋다..
그.. 러..니.. 허흐흑...
- 서현씨 이제 겨우 너 잊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 시작한다.
가라. 나는 모른다. 서현씨 어딨는지 나도 모르니까 가라!
영민이 멱살을 놓자 하진이 비틀거리며 선다.
- 가라고!
고요한 시간이 흐른다.
영민은 하진의 흔들리는 어깨를 매서운 눈으로 내려본다.
하진은 마음을 추스린다.
붉게 충혈된 눈물 가득한 눈으로 영민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 그래.. 미안하다.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이것 밖에 안 돼서.. 미안하다. 네게.. 부끄럽다.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켜 내는 것이.. 힘들구나..
우리는.. 참 빌어먹을 인연이다.. 안 그러냐. 후훗..
영민이 고개를 돌린다.
찰칵,
탁-
현관 앞에 홀로 선 영민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
뒷짐을 지고 한참을 밖을 보던 영민은 서현에게로 국제전화를 건다.
이 순간 서현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할 것 같다.
오랫동안 벨이 울리고서야 서현의 목소리가 들린다.
- Allo?
- 서현씨.
- 아.. 허대리님.
- 예. 접니다. 숙소에 계셨군요. 해변을 산책하고 계실 줄 알았는데.
- 오늘 아침까지 밖에 있었어요. 약간 피곤해서 오늘은 책 읽으며 쉬었어요.
- 그랬군요. 잘 지내시지요?
- .. 네.
- 여긴 저녁 7시 5분 이군요. 거긴 오후 3시쯤 되었겠군요.
- 네.
- 식사하러 안 가십니까. 'Le Bouquet Ardent'에 말입니다.
- 후훗.. 네, 오늘은 안 가려구요.
- 후... 그렇군요.
- 어디 아프세요? 목소리가 많이 안 좋은 거 같은데.
- 아닙니다, 서현씨. 그냥 조금 속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서현씨, 녹두죽 만들어 주셔야 겠는데요.
- 녹두죽이요?
- 속상할 때 말해달라고 하셨잖습니까. 녹두죽은 속상할 때 먹는 약이라고.
- 아.. 후훗, 잊고 있었네요. 해변에서 녹두죽 먹는 것도 나쁘진 않네요.
- 하하, 해변에서 녹두죽이라, 사실 좀 우습군요.
- 후훗..
- 서현씨, 저 내일 거기 시간으로 오후 늦게 도착할 겁니다.
오늘 밤 10시 비행기로 출발합니다.
- 네, 마중 나갈까요?
- 아니오. 서현씨가 자주 가신다는 그 레스토랑으로 가겠습니다.
그 근처에서 산책하실 때쯤 도착하겠군요.
- 그래도 멀리서 오시는 건데 마중 나가야죠.
- 아닙니다.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 ... 네. 그럼..
- 그럼, 나중에 뵙지요.
- 네.
전화를 끊은 영민은 얼굴을 감싸쥐며 의자에 걸터앉는다.
미안하다, 하진아.
하지만 나도 서현씨를 포기할 수가 없다.
그들의 새벽 59
서현은 작은 에펠탑 모양의 키홀더를 들어 차례차례 열쇠를 뺀다.
이제는 모두 필요 없어진 열쇠들.
열어야 할 문을 잃어버린 열쇠들은 하나씩 탁자 위에 놓인다.
한결 가벼워진 에펠탑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엉뚱한 곳에서 에펠탑을 들어올리는구나, 중얼거리며 비죽 웃는다.
오늘도 어김 없이 같은 시간에 흐르는 노래. 그대를 세 번 사랑합니다.
익숙해진 노래이기에 간간히 따라 부르면서 창 밖을 바라본다.
서현의 눈이 흐려진다.
고개를 한껏 젖히고 눈물이 나오지 않음을 확인하고 다시 얼굴을 내린다.
괜찮아 침착하게 살아.
손을 깨끗이 씻고, 얼굴도 깨끗이 씻고, 적당한 양의 식사를 하고.
그리고 좋은 자세로 앉아서 창 밖을 바라보는 거지.
걸을 때는 허리를 곧게 펴고 걷고,
눈이 흐려질 때라도 미간을 찌푸리지 않고.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잘 돌아가고
나도 멀쩡히 사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이상한 생각이 들기 전에 얼른 자버리고
아침엔 후다닥 뛰어나가는 거지.
그치? 없어지지는 않지만 좀 조용해질 거야.
조용하게 바라봐. 너를, 너를 둘러싼 우주를.
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해변으로 향한다.
늘처럼 신발을 벗고 해변을 거닌다.
모래가 아니라 작은 자갈이지만 익숙해져서 매끈매끈하게 발에 닿는 느낌이 좋다.
오늘 따라 햇살은 다사롭고 바람은 더욱 포근하다.
예순 즈음 되어보이는 노인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반바지와 간단한 셔츠 차림에 옆구리에는 돗자리를 끼고 있다.
차림으로 보니 관광객은 아닌 듯 하고 이곳에 사는 사람인 듯 하다.
그는 해변 한 가운데 자리를 펴고 앉는다.
양반다리를 하고 눈을 감고 해바라기를 시작한다.
서현이 그의 앞을 지나간다.
- Bonjour, Madmoiselle!
걸걸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노인이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싱긋 웃고 있다.
기분이 좋아지는 웃음. 서현도 밝게 웃으며 인사한다.
- Bonjour, Monsier!
서현은 손에 들고 있던 챙이 넓은 하얀 모자를
머리 위에 얹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신이 주신 선물.
아무리 유럽의 날씨가 흐리고 어두워도 이곳 니스는
맑은 날씨가 며칠이고 계속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
수많은 예술가들과 문필가들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을 붙들어둔
망통, 앙티브, 생폴드방스, 에즈와 같은 아름다운 마을이 있는 곳 니스.
푸른 바다에 흐르는 오후의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멀리 3열, 4열로 줄지어 늘어선 요트들이 한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서현은 걸어가며 흑인 남자 아이와 백인 여자 아이가 서로에게 손을 흔드는 것을 바라본다.
- Ciao! (안녕)
- Au revoir! (또 보자)
서로 반대편으로 달려가다가 다시 돌아본다.
여자아이가 두 손을 나팔처럼 만들고 다시 외친다.
- A demain! (내일 만나)
남자아이는 여자아이가 달려가는 모습을
그 자리에서 지켜보며 계속해서 손을 흔든다.
서현은 미소지으며 한참을 걷는다.
문득 손목 시계를 본다. 오후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영민이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도착했는지도 모른다. 왔던 길을 돌아간다.
아까 보았던 노인은 그 자리에 몇 시간 째 앉아 있다.
- Salut, Mon bébé! (안녕 나의 아가)
Salut는 친한 사이에 쓰는 인사인데다 나의 아가라고 불리운 것에
어리둥절해진 서현은 당황한 웃음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싱긋 웃는다.
- C'est la vie.. (그것이 인생이지)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하는 괴짜 노인.
서현은 어쩌면 정신이 나간 사람일지도 모를 그에게 생긋 웃으며 말한다.
- Salut, Mon papa! (안녕 아빠)
웃음을 머금고 노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서현의 발이 얼어붙는다.
손에 들린 샌들이 투툭, 바닥으로 떨어진다.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
오후의 기울어가는 햇살에 반짝이는 짧은 머리카락,
지중해의 바람에 나부끼는 푸른 셔츠 자락,
나무처럼 곧고 정직하게 서 있는 사람.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사람.
아아, 그립고 그리웠던 사람. 사랑하는 사람.
하진이 두 팔을 벌린다.
서현의 떨리는 입술 사이로 나즉히, 아주 작은 한숨처럼 새어나오는 말.
- Mon amour.. (나의 사랑)
서현은 달리기 시작한다.
바람에 날린 모자가 부드럽게 노인의 무릎 위로 떨어져내린다.
솟아오르는 눈물. 터질 것만 같은 심장. 웃음이 번지는 얼굴.
서현의 하얀 치맛자락이 나부끼며 펄럭이고
서현은 꽃잎 처럼 하늘거리며 날아갈 듯 날아갈 듯 날아가 안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은 서로의 입술을 찾고
팔은 서로를 바스러질 듯 끌어 안는다.
지중해의 바람은 기적처럼 달콤하고
노을에 금빛으로 빛나는 바다는 잔잔한 물결로 일렁이고
니스 어느 마을의 동네 청년들이 휘파람을 불며 야유하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거리의 악사들의 연주가 두 사람의 젖은 얼굴로 스며들고...
눈물의, 아픔의, 기쁨의, 웃음의 키스.
격정의 키스. 환희의 키스.
두 사람의 키스는 악사들이 다섯곡의 연주를 마칠 무렵에야 끝난다.
하진은 불어오는 바람에 눈물이 날아가도록 버려두고 서현을 바라보며 말한다.
- 길 잃은 여행객을 모시러 왔습니다.
처음 본 낯선 운전사를 믿어주어서 고맙습니다.
너무 늦지 않았다면 응답 해도 되겠습니까?
서현은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것을 버려두고 하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 유하진, 한서현을 사랑합니다.
퍽-
서현의 작지만 매운 주먹이 하진의 명치에 정확하게 꽂히자
하진은 윽, 소리내며 허리를 굽히고 두 무릎에 손을 얹는다.
하진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서현이 말한다.
- 지각생은 선생님 벌 좀 받아야 돼요.
*
- 유하진 학생, 불만 있나요?
- .. 아니.
- 어허, 학생이 선생님한테 반말해도 되나요?
존칭 쓰라고 말 했잖아요? 못 들었어요?
- 잠시 딴 생각 좀 했습니다.
- 무슨 생각했죠?
- 오늘은 학교 놀이를 하는군,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시끄러워요. 복창하세요.
지각생 유하진은 한서현 선생님이 내린 벌을
기꺼이 황송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을 맹세합니다.
- 지각생 유하진은 한서현 선생님이 내린 벌을
기꺼이 황송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을 맹세합니다.
- 좋았어요. 자, 일단은 명찰을 달아줄게요.
서현이 하진의 흉부에 손가락으로 'ㅈ'자를 그린다.
- 지각생을 나타내는 'ㅈ'. 주홍글씨 놀이까지 곁들이겠어요.
이 낙인은 유하진 학생의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이며
동시에 한서현 선생의 즐거움이 될 거예요. 호호.
- ...
- 오늘은 일단 한 가지 벌칙을 내리겠어요.
자아, 유하진 학생, 한서현 선생을 업도록 해요.
- 기꺼이. 황송한 마음으로.
하진이 서현을 휙 들쳐업자 서현이 꺄아, 소리를 지르며 웃는다.
하진도 웃으며 해변을 걷기 시작한다.
서현이 하진의 목을 끌어안으며 속삭인다.
- 사실은 아까 달려오느라 발바닥이 너무 아팠거든요, 언니.
서현은 Tres veces te amo를 흥얼거리며 박자에 맞춰 다리를 흔들흔들거린다.
웃으며 서현의 목소리를 듣던 하진은 서현의 오른쪽 발이 배를 치자 신음소리를 흘린다.
- 아직 아파요, 언니? 내 주먹이 그렇게 세요?
- 응.
하진은 잔잔히 미소지으며 머나먼 수평선을 바라본다.
영민아, 고맙다..
*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던 영민은 기사에게 잠시 멈춰달라고 부탁한다.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건다.
- 나다. 어디냐. 지금 갈테니 기다려라.
핸드폰을 접으며 크게 숨을 내쉰다.
- 기사님, 차 좀 돌려주십시오.
영민의 얼굴은 더할나위 없이 평온하다.
*
집으로 가던 하진은 도로가에 차를 대고 인도로 나와 영민을 기다린다.
월요일이 되면 서현의 회사로 서현의 행방을 수소문할 작정이었다.
어떻게든 서현을 찾아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전에 하진은 영민에게 사과해야 했기에,
이미 저버린 도리였지만, 친구의 연이 이것으로 끝이라고 해도
힘을 다 해 마지막 도리를 지켜야 했기에 그를 찾아 간 것이었다.
하진은 영민이 자신을 보자고 한 이유를 감지하지 못하고 초조하게 그를 기다린다.
출장에서 돌아 와 곧장 선주와 영민을 만난 탓에 지독하게 피곤하다.
택시 한 대가 하진 앞에 스르륵 멈추고 영민이 내린다.
하진과 영민의 눈빛이 묘하게 스친다.
- 여자라고 봐주는 거 없다. 니가 언제 여자였냐.
퍽-
영민의 주먹이 하진의 복부를 강타한다.
하진이 비틀거리며 가로수에 등을 부딪치고 노란 은행잎이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 서현씨 울게 한 죄.
하진이 가로수에서 등을 떼며 영민을 바라본다.
다시 영민의 훅이 날아온다.
퍽-
- 거짓말 한 죄.
영민이 휘청거리는 하진의 멱살을 잡고 똑바로 세운다.
영민의 주먹질은 계속 된다.
퍽-
- 빌어먹을 인연이라고 함부로 지껄인 죄.
퍽-
- 내 앞에서 눈물 콧물 짜면서 더러운 꼴 보여서 첫사랑의 환상을 깬 죄.
퍽-
- 결국은 서현씨 차지할 인간이 너라는 것을 알게한 죄.
퍽-
- 결국 그렇게 될 거 나도 한 번 멋져보이고 싶어서 돌아오게 한 죄.
퍽-
- 녹두죽 너 혼자 쳐먹은 죄.
퍽-
- 이건 보너스다.
영민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바닥에 나가떨어져버린 하진을 내려다본다.
- 꼴 좋다.
영민이 하진의 차 문을 열고 작은 손가방을 꺼내어
허억허억 가쁜 숨을 내쉬며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하진에게 던진다.
하진은 의아함이 뒤섞인 고통스런 표정으로 영민을 올려다본다.
영민이 주머니에서 비행기 티켓을 꺼내 하진의 손에 쥐어준다.
- 너 행복하라고 주는 거 아니다. 서현씨 행복하라고 주는 거라고.
느긋하게 돌아서서 대기하고 있던 택시로 걸어간다.
- 기사님, 트렁크 좀 열어주십쇼.
트렁크에서 수트케이스를 꺼내어 인도 위에 올려둔 영민은 다시 하진에게 걸어 와 손을 내민다.
하진이 영민의 손을 잡고 일어난다.
- 출장 많아서 여권 들고 다닌다고 했지?
- ....
- 10시발 비행기다. 하하, 이거 꼭 욕 같군.
아무튼. 잘못하면 늦는다. 타라.
- .. 고맙다, 영민아.
- 또 맞고 싶은가보군. 잔말 말고 타라. 듣기 싫으니까.
영민이 하진을 차 안으로 밀어넣는다.
- 빠리 리용역에서 논스톱 TGV로 니스까지 6시간 30분 걸린다.
니스 해변가에 있는 'Le Bouquet Ardent' 레스토랑 찾아서 그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면 된다.
잡아라. 이번에 제대로 안 하고 오면 한국 땅 살아서 못 밟을 줄 알아라.
기사님, 이 친구 공항까지 태워다 주십시오.
탕-
하진이 말을 하기도 전에 영민은 차 문을 닫아버린다.
닫힌 창을 사이에 두고 하진과 영민의 눈이 마주친다.
영민아. 미안하다. 고맙다.
하진아. 잘못은 반복하고 싶지 않다. 우린 이제 스무살이 아니잖냐.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던 영민은 가볍게 수트케이스를 든다.
- 유하진, 네 차는 부디 불법주차 딱지 맞길 바란다.
힘 좀 썼더니 배 고프군. 어이, 택시! 성북동 갑시다.
*
하진은 여전히 서현을 업고 해변을 거닐고 있다.
해가 지고 멋지게 불을 밝힌 니스의 풍경은 낮과 다르다.
가을 낮의 니스 해변이 멋들어지게 그린 오묘한 색감의 그림이라면
가을 밤의 니스 해변은 은밀한 축제처럼 황홀하다.
아름답다.
나의 등에 팔딱이는 심장의 온기를 전하는 너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너처럼 아름답게 살아 있는 곳이다.
질주한다. 너를 향해 뻗은 길. 거칠 것 없는 자유의지로.
- 언니, 그만 내려줘요. 언제까지 업고 있을 거예요?
- 내일까지. 해 뜰 때까지.
- 싫어요.
- 왜?
- 언니랑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단 말이예요.
서현이 하진의 목에 포옥 얼굴을 묻으며 말한다.
- 뭘 하고 싶은데?
- 음, 뽀뽀도 하고 싶고, 손 잡고 걷고도 싶고, 안고 춤도 추고 싶고..
서현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부비적 거리며 키득 웃는다.
하진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서현이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하진의 얼굴을 바라본다.
- 평생.. 우리 같이 있어요.
- 응..
짧고 부드러운 입맞춤.
하늘이 열린 날.
인디고의 바다 위로 하얀 유성우 한 줄기 떨어져내린다.
페가수스자리 아래에서 춤추던 밤의 요정들이 소리죽여 웃는다. 쉬잇-
- The End
첫댓글 5번은 읽은거같은데..볼떄마다 새로운것같아요 ㅎㅎ 정말 잘 읽었습니다^^
작년에 모 사이트에서 여러 님들로부터 낡은 수첩님의 글을 추천받고 읽은 후로 1년만에 다시 읽었는데 감동이 여전하네요.. 앞으로도 건필하세요~~
여태 많이 읽엇지만 이게 젤로 재밋는거 같애요~ 이런작품 마니 써주세요~
감동인걸요^^
몇번을 찾아 읽게 되는,.,.,.,.,.
재밌었어요^^수고하셨습니다.
멋지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읽고 나서 행복하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하진이라는 사람 참 멋있네요... 사랑하게 되버릴것 같은 사람?ㅋ
이런재밌는소설읽고나면 주인공 얼굴이 궁금해져요.. 하진씨~~
여전히 다시 오랜만에읽어도 감동이네요 참.. 낡은수첩님 참 대단하세요
와~너무 재미있어서 하루꼬박 몰입해서 읽었어요..
낡은 수첩님은 어디계신걸까요?
하루만에 다 읽었습니다 ㅇ ㅏ 이 몰입감이란....감사합니다
단숨에 읽게 만드는 엄청난 글이었어요.
계속 써 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