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는 꽤 지반이 약한걸... 발을 디딜 때마다 흙덩이가 부서져 내리는 걸 보며 난 생각했다. 하지만 산의 규모로 본다면 이런 지반으로는... 어쩐지 예전의 감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래... 이곳에는 굴이 있을지도 몰라... 넓게 뚫려있는 동굴...
"가우리, 서두르자... 해가 지면 이렇게 울창한 곳에서는 좋은건 아니잖아..."
하지만... 동굴이 있다고 해도... 그 입구를 찾지 못하면 허사인데... 아무튼 최근들어선 이쪽 일도 익숙해져서 입구정도는 금방 찾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감이 틀린 것일까... 입구나 그런 것은 전혀 나오지 않았고, 가끔 나오는 상자등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리나! 이쪽에 뭔가 있어!"
생각지도 못한 수확... 가우리 녀석이 뭔가를 찾아낸 것은 저녁때가 다 되서였다... 내가 뛰어갔을때, 가우리의 앞에는 작은 석판이 쓰러져 있었다. 이건... 이정표? 아니... 이정표라고 보기엔 말이 너무나도 많아. 흙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석판에 글이 새겨져 있다는 걸 난 알아차리고는, 손에서 가벼운 바람을 일으켰다.
"봄 디 윈드!"
"스으으윽!"
마법의 강약 조절... 상당히 힘을 축소시켜 일으킨 바람은 흙만을 걷어내었다. 성공한 걸 보면 나도 아직은 실력이 녹슬지 않은 모양인걸... 석판에는 고대의 문자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더러는 부서진 곳이 있어서 말이 연결이 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읽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스... 와라... 이즈... 로우카... 이건?"
이... 이건 설마... 집중해서 글을 읽어가던 나에겐 한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언니가 해주었던... 고대 북쪽의 왕국 이야기... 그리고 이 언어는, 법성어... 그렇다면 이 자리는 분명히...
[리나 너 전설속의 스와라 왕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거니?]
[그게 뭔데?]
내가 좀 어렸을 때의 일이다... 내가 어린애일 적에는 언니는 어디론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난 그것이 쉬피드 나이트인 언니의 일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만, 내가 어렸을 때의 언니는 나에겐 아주 다정했었다...
[스와라 왕국의 이야기라는 건, 다른 사람한테 함부로 해서는 안돼... 우리가 태어나기 한참 전... 아주 오랜 옛날의 이야기지만 마족들이 연관되어 있거든...]
그당시 언니의 이야기도 나에게는 하나의 즐거움 이었다. 집에만 있는 나에게 언니는 언제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마족 이야기... 마왕 이야기... 마법에 관한 지식... 어쩌면 언니는 나에게 후에 마법을 가르쳐 줄 생각으로 내가 당황하지 않게 지식을 쌓아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겠지만... 여하튼 내가 들은 언니의 이야기들은 대단한 것들 뿐이었다.
[아주 예전, 신족과 마족이 사이가 좋지 않을때가 있었어... 그중 신족에서 있던 천룡왕의 부하들이 마족의 공격을 받게 되었지... 동남부의 산맥을 넘어 중요한 열쇠를 운반중에 공격을 당한거야.]
열쇠? 천룡왕의 부하들... 그렇다면 그들을 공격한 마족들은 상당히 고위의 마족들 이었다는 소리가 된다...
[그들은 열심히 싸웠지만 마족들은 그들보다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우세에 있었어... 결국 모두 전멸할 그때... 한 사람이 몰래 그 열쇠를 가지고 도망친거야... 그 사람은 다친 몸으로 힘들게 걸어 근처에 있던 스와라 왕국으로 향했어.]
[으응...]
[당시 인간은 중립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인간의 힘은 무척이나 약했어. 지금같이 마족에 대항해 싸울 기운도 없었기 때문에 약한 도시나 마을들은 마족의 지배를 받고는 있었지...]
그때 이야기하던 언니의 얼굴에는 뭔지 알 수 없는 강한 의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언니는 계속 이야기를 해 나갔다.
[하지만, 스와라 왕국은 그때 인간들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었지...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왕국이었을 거야... 이유는 그 왕국을 다스리는 왕의 딸, 공주에 있었어...]
공주... 어릴적의 나에게 공주는 우상의 대상 중 하나였다. 우선 집에 돈이 있는데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자랐던 나로선 더더욱...
[스와라 왕국의 공주는 강한 마력을 지닌 마도사였다고 해... 어느 정도로 강했냐면 마족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다고 해... 소환술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았고... 아무튼 공주는 천룡왕의 부하에게서 열쇠를 건네받았어. 그리고 그는 죽었지...]
[응... 그런데...]
[들어봐. 열쇠를 얻은 공주는 그것을 어딘가에 봉인했다고 해... 그리고 그것을 표시하는 석판을 두었고, 자신의 왕국의 모든 병사를 일으켜 마족을 칠 준비를 한거야...]
열쇠를 얻은 스와라 왕국은 왕국 전체의 마법사들을 동원, 결계를 친 후에 열쇠를 숨기고 그것을 표시하는 석판을 설치... 후에 마족을 공격하기 위한 병사를 일으켰다는 소리다... 이 덕분에 그때까지 중립에 있었던 인간은 신족의 편에 선 것이나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리고... 마족들은...
[마족들은 이것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역시 모든 군사들을 동원해 스와라 왕국으로 진격해 나갔어. 중간에 있던 다른 왕국이나 도시들도 열심히 저항하며 싸웠지만 마족들이 대규모로 일으킨 군대를 막기에는 속수무책 이었지... 그리고 스와라 왕국의 바로 앞인 성곽에 도착했을때, 그들을 막기 위해서 공주가 나와 있었어...]
당시 최강의 힘을 가지고 있던 공주... 아름답고 강했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와 마족들의 대치...
[아무리 혼자였어도 마족들은 쉽게 공격할 수 없었지... 그때... 두마리의 용과 함께 그가 나온거야... 마룡왕... 가브.]
마룡왕 가브... 스와라 왕국의 희망인 공주 앞에 마룡왕 가브가 나타난 것이다... 잔혹하며... 강대하고...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 마족의 왕...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었어... 강한 그의 힘 앞에도 굴하지 않은 공주는 오히려 인간의 몸으로 마룡왕 가브를 수세에 몰아넣을 정도로 강한 힘을 보여줬었지... 무서운 그녀의 마력에 마족들은 하나 둘 죽어가기 시작했어... 하지만... 마족의 후속병력이 도착한 거야... 본 병력이...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고 있던 총 지휘관은...]
명왕... 헬마스터... 바위의 마수 위에 여유있는 모습으로 앉아있던 그는, 싸우는 공주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가브를 수세에 몰아넣은 공주는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해 명왕을 공격했다... 하지만...
[명왕에게 그녀는 역부족 이었어... 첫 공격을 여유롭게 막은 명왕과 공주는 무섭게 싸웠으나 공주는 많은 힘을 소비한 상태에서 어차피 상대가 될 수 없었지... 결국 힘이 다한 공주는 쓰러져 죽어버리지만, 그녀는 마지막에 분명히 말했다고 해...]
마지막... 말...
["여기서... 이렇게 쓰러지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태어난다면... 반드시 세상을... 지킬... 거... 야..." 하고 말야... 그리고 공주를 쓰러뜨린 마족은 다시 여세를 몰아 성곽을 무너뜨리고 스와라 왕국으로 진격했어. 공주를 잃은 스와라의 군대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 열심히 싸웠지. 도망치는 자는 한사람도 없었어...]
싸움은 마족과 인간 양쪽 모두에게 큰 피해를 가져왔다고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족에겐 별다른 피해가 없었을지도... 아무튼 그렇게 스와라 왕국은 지도에서 사라졌고, 스와라 왕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마족과 싸우다가 죽었다고 한다... 과거의 이야기를 끝낸 난 가우리를 바라보았다... 윽!
"야! 자고 있으면 어떡해!!"
"음? 아... 깜박 졸아버렸네..."
으이구 가우리 저녀석... 하여튼 이런 이야기를 가우리한테 해준다는 자체가 무리였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난 한숨을 내쉬며 석판을 바라보았다. 그래... 틀림없어... 이곳은 스와라 왕국...
"한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 그 열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북쪽 어딘가에 마왕이 있다는 거야... 북의 마왕 샤브라니구드가..."
난 석판을 뒤집어 보았다. 갈라진 틈으로 뭔가 보이는 것 같았다. 언니의 말로는 그 이후로 신족들과 마족들이 다투어 공주가 숨긴 열쇠를 찾기 위해서 석판을 찾으러 왔다지만 아무도 석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을 가우리가 찾은걸 보면, 어쩌면 공주는 인간만이 볼 수 있는 결계를 쳤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난 석판을 다시 손으로 쓸어내리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갈라진 틈... 아무래도 뭔가 기관... 이 아닐까..."
"조심해 리나."
가우리가 내심 걱정되는지 말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이런 고대의 왕국이 기관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무사히 작동할까? 난 손가락을 틈 사이로 집어넣어 보았다. 뭔가... 매끄러운 것이 닿는 순간... 석판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비이이잉..."
"우... 우왓!"
석판에서 나오는 빛은 분명히 한쪽 땅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빛은 곧 사라졌다... 저 땅밑에... 무언가가? 난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