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파 신앙(Reformed Faith)이란?
1. 개혁파란?
개혁파라는 용어는 약 5세기를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역사적 용어이다. 그 시기란 성경의 권위로 기독교를 되돌려 놓는 시도에서 종교개혁에서 교회가 겪었던 시기를 말한다. 종교개혁의 열망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화시키는데 있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교회를 되돌려 놓는 것을 의미한다. 마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 그리고 존 칼빈에 의해 주도된 종교개혁시 교회들은 중세 로마교회의 모순들에서 떨어져 나왔고 프로테스탄티즘으로 알려진 오늘의 모습을 시작했다. 개혁주의(Reformism)이라고 하지 않고 개혁파(Reformed)라 부르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개혁은 항상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형용사로 사용한다. 그래서 한국표기에도 '개혁주의'라는 말보다는 '개혁파'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권한다.
2. 종교개혁자들은 무엇을 가르쳤나?
마틴 루터는 오직 믿음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교회에 확신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모든 가르침과 교리들은 성경에만 기초되어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칼빈의 작품에서처럼 이러한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주권자이심을 성경에서 분명하게 가르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게으른 시청자가 아니고 “졸지 않”으시는 분이시고(시 121:3) 활동적으로 모든 사람의 일과 자연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심을 가르쳤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다고(행 17:28) 가르쳤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주권적으로 다스리며 모든 사건들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끄신다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기 때문이다(엡 1:11).
3. 주권적 하나님의 의미?
모든 것의 창조주는 지상의 사람들과 연관을 가진 일을 행하실 권리가 있으시다.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런 권리를 가지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의롭게 행하시고, 그의 원리들은 성경에 명백하게 나타나 있음을 믿었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단 4:35). 그의 주권은 특별히 선택자의 구원에서 실현되었다. 존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을 누구보다도 강조하였고 그의 작품은 가끔 “칼빈주의 5대 강령”이라 불려진다. 속칭 “TULIP”이라고도 한다.
4. TULIP은 무엇인가?
초기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성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변호해야만 했다. 구원은 부분적으로는 사람들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끼고 성경의 권위 아래 이러한 교만을 놓는다고 느꼈다. 교회 지도자들은 피조물에 관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올바른 위치를 놓기 위해 다음과 같은 원리를 제창했다:
1) 전적 타락(total depravity)-타락하고 죄의 상태의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아담의 타락한 후손에 관하여 하나님은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았다고 평했다(창 6:5; 8:21). 사람의 생각에 전생애를 통해 행할 수 있는 모든 “선한 것”이라 하더라도 주님 보시기에는 “더러운 옷”(사 64:6)과 같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윗왕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5)고 고백했다. 자연인은 병이 들었거나 아픈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점에서 “너의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대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1-3).
2) 무조건 선택(Unconditional Election)-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엡 1:4). 이 의미는 구원 받을 사람들은 주권적 주님에 의해 구원 받도록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자비를 베풀 자에게 자비를 베푸나니”(롬 9:15).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엡 2:9) 하기 위해 하나님은 선택을 조건적으로 행하시지 않으셨다.
3) 제한적 구속(Limited Atonement)-그리스도의 구속은 자신의 백성들을 위함이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 그는 자신에게 오지 않는 자들을 위해 보혈을 흘리지 않으셨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셨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요 17:9).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은 반드시 그에게로 온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9).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요 6:37). 하나님은 선택자들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보내신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겔 36:26).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9).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구원은 공로도 아니고 신자가 구입한 참 양들의 선택도 아니다. 이는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5. 도전
루터, 츠빙글리, 칼빈, 그리고 그 외의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쳤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이시지만 어떤 이들을 포기하시기로 선택하셔서 사람의 제한은 제한적이 아님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도전을 받았다. 이러한 도전은 제임스 알미니우스(James Arminius)의 신앙에서 나왔다. 그는 네덜란드 신학교수로서 그를 따르는 자들을 알미니안(Arminians)이라 부른다. 그들은 개혁파 신학의 가르침을 부인한다. 특별히 사람의 개인적 가치를 존중한다. 그들은 사람이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단지 죄로 병들었다고 한다.
사람은 무조건적 은혜로 인해 구원받았음을 칼빈주의는 고수한다. 이에 반해 알미니안들은 사람이 조건적으로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친다. 그 조건은 각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신앙을 발전시켜야만 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러야만 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사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단지 새로운 삶과 신앙을 신자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성령이심을 가르쳤다. 도전자들은 사람이 적어도 하나님의 은혜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가치를 가진다고 가르쳤다.
6. 개혁파 신앙의 중요성.
종교개혁자들은 4세기 전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을 높였다. 이러한 중요성은 만군의 주님을 알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 의해 초기부터 지금까지 유유히 흘러오고 있다. 개혁파 교회들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믿는다(잠 9:10).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공유하고 가르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건전한 교리, 즉 하나님을 깊이 알기를 소원하는 신자들이 따르는 교리들을 배워야 한다.
개혁파 신앙은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많은 현대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부활과 같은 기본 진리들에 의심을 품는다.
어떤 이는 “당신이 무엇을 믿더라도 상관하지 않는 것은 믿는다는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오”라고 말할 수 있다. 교리를 믿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도행전에서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을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되어있다(행 17;11).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고 따르는 가운데 올바른 구원의 진리를 배우고 익히고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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