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0nemo 韓 - 당시 시골 농촌 사람들은 일본어 못읽었습니다. (11/30 02:50)
e959e5e5 韓 - Comming SOON!!! Nuclear-bOMb!!!!!! 한국이 일본을 지켜줄께. 하하하. 한국은 일본에 '국민 징용령'을 내릴것이야. 협조하는 일본인만 사랑해. 하하하하하. (11/30 02:51)
50 日 - cap0nemo>조선 총독부의 지도 아래 조선 전 국토의 학교에서 일본어와 조선어를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11/30 02:53)
cap0nemo 韓 - 조선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사람이 아니 일본에서도 당시에 다닐 수 있었던 사람은 유한 계층에 한정될 겁니다. 나머지는 야학에서 간신히 한글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심훈의 상록수를 보십시오. (11/30 02:55)
rere 日 - 일본어 계약서를 읽을 수 있는 것은 도화 없다면, 노동자를 속인 것은, 조선어를 할 수 있는 조선인의 알선 업자지요.일본에는, 당시의 조선인 불법 도항에 관한 신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제1차 대전 후의 불황하에서 일이 없어도, 도래자가 많아서 단속에 고생한 기사가 있습니다. (11/30 03:02)
e959e5e5 韓 - 50> 한국이 일본에 파견에 총독부를 세울께. 너희들에게 한국어, 영어, 일본어를 가르쳐준다. 영광스럽지? Nuclear-bOMb!!!!!! (11/30 03:02)
e959e5e5 韓 - 전에는 어렴풋이 느꼈지만, 너희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몽키의 역사 날조는 확실해졌다. 후후. 몽키들이란... 옛다, 바나나. (11/30 03:03)
1 日 - 해 봐라 정! (11/30 03:03)
cap0nemo 韓 - 그렇습니다. 하수인은 조선의 알선업자지요. 하지만 위의 일본인업주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당시 일본은 산업화 초기였기 때문에 값싼 노동력이 대량 필요했고 인도라는 거대한 노동력을 가진 영국과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인도 노동력 보다 싸고 훨씬 고되게 부릴 노동자가 필요했을 것입니.. (11/30 03:04)
1910 日 - 초등학교령(1886)으로 교육은 의무화되고 있어요. (11/30 03:09)
cap0nemo 韓 - 그러니까요 학교를 갈 시간에 애들은 농사를 지었다는 겁니다. 학교를 보낼 유휴 노동력을 가진 집은 당시 조선에 얼마 되지도 않았고 총독부는 조선인의 교육에는 관심이 없었고 고등 교육은 오히려 탄압했어요. 일본어를 읽을 줄 알아도 법률용어를 읽을 줄 모른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11/30 03:14)
1 日 - 당시의 노동 환경은 평등하게 열악했다.조선인만 심한 눈에 있던 것은 아니다.일본인의 여공도 곧바로 죽어 있었다. (11/30 03:16)
rere 日 - cap0nemo <제1차 대전 후의 불황하에서 일이 없어도, 도래자가 많아서 단속에 고생한 기사가 있습니다.그리고, 하수인은 조선의 알선 업자라도, 그것을 일본에 의한 강제 연행이라고 합니까?확실히 당시는 큰 기업에서도, 노동조건은 열악했습니다.일본인 노동자도 같은 조건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11/30 03:17)
cap0nemo 韓 - 맞습니다. 일본의 여공도 죽었습니다. 근데 아세요? 한국인의 노동임금은 일본인의 15%에 불과햇다는거? 조선인은 사법부의 제대로된 보호도 받지못했습니다. 일본인은 최소한의 보호는 받았습니다. (11/30 03:18)
1 日 - 일본은 조선인을 일본인과 같이 교육했다.오사카 대학에서 경성 대학 쪽이 역사는 낡다.출설목을 말한데 조선인! (11/30 03:18)
cap0nemo 韓 - 저 이제 자러 갑니다. 좋은 토론이었습니다만 서로를 전혀 설득시키지 못하는 무의미한 토론이었던 거 같네요. 조금이라도 서로간에 이건 제가 모르는 거였는데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자세는 있었으면 합니다. (11/30 03:20)
rere 日 - 일본에서도 조부의 시대는, 학교를 쉬어 농업을 돕는 사람은 많았다고 말합니다.60년대는, 15세부터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본인도 많았다.현재의 가치관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11/30 03:20)
cap0nemo 韓 - 처음에는 일본어를 모두 읽을 수 있었다는 논리로 가더니 계속 논리가 안되니까 이제는 다같이 열악했다라는 논리를 펴시는데 다 좋습니다. 근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자기들과 똑같이 여기지 않았고 거기서 오는 차별이 분명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11/30 03:21)
1 日 - 그러나, 당시의 국가예산의 2할을 반도의 근대화에 사용해 주었으니까.조금은 괴로운 일도 해라.10분 보호해 주어 다만.배은망덕. (11/30 03:21)
cap0nemo 韓 - rere님 위의 제글을 읽고 답변해주십시오. 저는 일본에도 학교 다니는 사람은 유한 계층에 한정된 거라고 분명 말씀 드렸습니다. (11/30 03:21)
1 日 - 조선인은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서 다루어졌습니다.한반도에는, 대일본 대일본제국 헌법은 시행되지 않았지만, 형법은 사고되고 있습니다.즉, 조선인은 형사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고 있었다. (11/30 03:22)
cap0nemo 韓 - 당시 국가 예산의 2할이요? 반도인은 당시 내지인 인구의 60%에 달했는데요? (11/30 03:22)
cap0nemo 韓 - 형사 뿐만 아니라 민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재판관은 모두 일본인이었고 한국인은 사무관이 최고의 관직이었습니다. (11/30 03:23)
1 日 - 당시는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궁핍하게 보낼 수 있었던 나라였습니다.선진 열강이 한패가 되고 있던 일본이 미개의 조선인과 같은 것이 없습니다.노예가 되지 않았던 것 뿐 감사해 주세요. (11/30 03:24)
cap0nemo 韓 -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시나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악랄하게 식민지를 수탈한 나라가 일본이엇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우리 나라가 가장 궁핍했다는 얘기도 어이가 없지만 조선의 궁핍은 적어도 일본이 처들어온 1592년의 문록의 난 이후였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11/30 03:26)
1 日 - 지금의 한국의 발전도 일본의 원조가 모두입니다.감사해 자세요. (11/30 03:27)
1 日 - cap0nemo씨, 당시의 대한제국은 세계 최빈국이에요. (11/30 03:28)
kobura 日 - 식민지 정책을 다른 열강과 비교하는 것에는 찬동 할 수 없습니다.여러분은 악랄이라고 합니다만, 적어도 일본은 조선인을 인간으로서 다루고 있습니다.물론 예외도 있고, 현재의 가치관으로부터는 떨어진 것도 있습니다만. (11/30 03:30)
1 日 - 당시의 일본인은 바보같다.반도를 근대화 해 주어 이만큼 원망해지니까.대만인은 역사를 알고 있어 우호적이다.조선인은 몰살로 해 두어야 했다. (11/30 03:30)
1 日 - 세계에서 제일 악랄하게 식민지를 수탈 한 나라?바보인가? (11/30 03:31)
cap0nemo 韓 - 관념론과 현실론은 다르죠. 관념적으로 같은 동양인으로 봤다라고 자긍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한 사람 입장은 그게 아니거든요. (11/30 03:33)
cap0nemo 韓 - 가장 악랄하게 수탈한 거 맞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가장 식민지가 적은 열강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고 독일처럼 공업이 발달한 나라도 아니었기 때문이죠. (11/30 03:33)
kobura 日 - 1>일본을 위해서(때문에)도 근대화는 필요했습니까들 , 있던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감사를 요구하는 필요하다니 없고.감사받는 까닭도 없다고 생각해요. (11/30 03:33)
cap0nemo 韓 -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는 것은 감사가 아니라 사과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1님이나 이곳의 많은 일본인으로 보이시는 분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지 못한 거 같습니다. (11/30 03:36)
kobura 日 - cap0nemo>독일과 같이 공업이 발달한 나라가 아니다고 하는 것으로 수탈과의 인과관계를 나타냈으면 좋네요.관념적으로 악랄한가들 현실은 문제는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까? (11/30 03:37)
kobura 日 - cap0nemo>나는 감사도 필요하지 않고 사죄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자위를 위한 당연한 행위입니다. (11/30 03:39)
cap0nemo 韓 - 관념적으로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적어도 유럽인들이 인도인을 보는 것보다는 인간 취급을 한 거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 평등에서 50보 100보 차이 아닙니까? 결국은 둘다 인간의 존엄성과 불평등 문제는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11/30 03:40)
filmfirm 韓 - 1>헌법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데, 형법의 적용을 받는 것이 권리이다? 법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얼마나 부조리한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기본적 인권은 없지만 형벌의 대상은 된다는 말일 뿐이다. 이것이 일제치하 조선인의 처지를 분명히 말해 준다. (11/30 03:40)
filmfirm 韓 - 너희 일본 우익들. 계속 이런 식으로 해봤자 손해는 너희한테 가게 되어 있다. 역사가 심판할 거야. (11/30 03:42)
cap0nemo 韓 - 태국은 외국을 침공하지 않고도 자위했습니다. 시바료타로씨 말대로라면 전국의 수백만의 무사들이 있는 일본은 충분히 서구열강들로 부터 자신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11/30 03:42)
filmfirm 韓 - kobura>너의 논리는 곧 힘의 논리다. 그렇다면 원자폭탄을 맞았다고 피해자라고 말하지 말아라. (11/30 03:43)
cap0nemo 韓 - 국화와 칼을 보셨는지요?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한 것은 자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시아의 국가들에게 자기에 맞는 위치를 찾아주기 위해서 라는 목표 때문이었습니다. 왜곡이 심하시군요. 여기서 자기에 맞는 위치라는 것은 역시 일본의 기준이죠. (11/30 03:43)
filmfirm 韓 - cap0nemo>인도인에 대한 영국인의 지배보다 잔학하고 가혹했던 것이 일본이었다. 일본의 무단통치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며 3.1운동과 같은 평화시위에 무차별 살상을 가한 것은 이미 남경대학살의 예고였다고 보인다. (11/30 03:45)
filmfirm 韓 -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무식함과 오만함이 임진왜란을 불렀고,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그 전철을 밟았다. 이제 일본 우익들의 차례인가? (11/30 03:46)
kobura 日 - cap0nemo>확실히 평등하지는 않았습니다.나도 차별을 미워합니다만, 당시 식민지에 있어서의 권리등의 평등은 있을 수 있지 않았습니다.일본은 당시의 국제 관례에 비해 한국인을 동국민으로서 취급했다고 생각합니다. (11/30 03:46)
cap0nemo 韓 - 영국은 인도에 자치의회의 설치를 허락했습니다. 인도의 간디는 영국의 변호사였습니다. 일본은 한국에 의회는 커녕 면서기가 최고의 관직이었습니다. 관념론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이것이 동국민 취급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11/30 03:48)
kobura 日 - cap0nemo>(답례)답장이 빠르네요.자신에 해당되는 위치라고 하는 것이 잘 번역 되어 있지 않은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11/30 03:49)
cap0nemo 韓 - 국화와 칼을 보면 그렇게 나와 있네요. 동양 각국에 자신에 걸맞는 제 위치를 찾아주는 것이다. 천황의 담화문이라고 합니다. (11/30 03:50)
kobura 日 - cap0nemo>나는 특히 영국과 비교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이조 왕가는 황족으로서 일본의 귀족이 되었습니다.인도의 마하라쟈가 영국 왕가에 참가했습니까?인도와 조선에서는 식민지에서 만난 길이나 전시와 평시를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30 03:53)
cap0nemo 韓 - 이조 왕가가 일본의 귀족이 된 것과 한국민의 지위향상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이왕가는 일본에 항복한 댓가를 지불받은 것 뿐이고 고통은 조선 민중들이 가진 것이었죠. (11/30 03:54)
nex777 韓 - 그것도 정책의 하나입니다..50보 100보 (11/30 03:58)
kobura 日 - cap0nemo>신해 문제없지만 나는 국화와 칼을 읽지 않기 때문에, (답례)답장을 할 수 없습니다.아마 위치가 잘 번역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11/30 03:59)
138 日 - 박춘금 1891.4.17~1973.3.31.경상남도(한국) 출신. 1932년 중의원 선거에 첫당선(토쿄부 4구 선출).조선인으로 처음 일본의 국회의원이 된다.1937년재당선. 참고 자료 (11/30 03:59)
bols 日 - >cap0nemo씨 filmfirm와 같이 무지한 한국인이 있는 한 통치 시대의 정당한 평가는 한국인에게는 무리이겠지요. (11/30 03:59)
cap0nemo 韓 - 박춘금........유명한 친일파입니다. 그가 조선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우습습니다. 그는 이미 일본인입니다. (11/30 04:01)
138 日 - 한국민의 지위 향상의 자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11/30 04:01)
kobura 日 - cap0nemo>왕가에게로의 대응이 한국민에게로의 대응을 대표한다고도 생각되지 않습니까?확실히 천황과 같지 않지만 그만한 대우였습니다.조선의 민중이 고통을 받지 않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11/30 04:02)
cap0nemo 韓 - 자야겠군요 벌써 4시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레포트가 많아서요. 혹시 일본의 선거제도와 지역주의에 대해 잘 나온 논문 있으시면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cap0nemo@hanmail.net 일본어는 번역해서 보겠습니다. 부탁합니다. (11/30 04:02)
kobura 日 - cap0nemo>친일파라면 조선 출신에서도 국회 의원에게도 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까? (11/30 04:03)
bols 日 - 인도에서의 영국의 지배는 가혹했다.벤갈의 산업은 철저하게 착취되고 평원에는 백골이 루들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세포이의 반란(인도 용병의 반란)의 진압은 신산을 다했다.포로는 대포의 포구에 묶이고 사격되었다.면직물 직공은 손가락을 절단 되었다. (11/30 04:05)
kobura 日 - cap0nemo>수고 하셨습니다.나도 자신의 논문이 있으므로 잡니다.좋은 논의를 고마워요. (11/30 04:05)
nex777 韓 - kobura 당신은 초기의 일제강점기를 말하고 있네요..이시기는 합방의 정당성을 지지받기 위한 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