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원의 노래 해와 달처럼 높이 걸렸는데
초왕의 누각과 정자 산언덕에 공허하구나.
이백의 이 시는 굴원의 원통함과 비책심리를
단숨에 시공을 초월하여 정상에 올려놓는다.
시간의 압력은 샤리쥔이 일생에 걸쳐 이룩한
평전이며 영웅전이며 산문시이다.
여기서는 굴원 조조 도자 이백 사마천 이사 이릉
상앙 하완순이 조명되어 있는데 이들을 뭉뚱그려 쓸만한 재주도 없고 그것은 작가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 생각하여 한 꼭지, 굴원에 대하여 쓰고
나머지는 시간을 내어 한 꼭지씩 기록해두고자 한다.
굴원이다. 시성이 두보, 시선이 이백이라면
굴원은 시신이 되었다 민중은 그를 숭배하지 않고
다른 신과 구별하여 단오절이라는 명절로 그를
그 억울한 사람을 기념한다. 민중이
누군가에게 감정을 쏟은 것은 선전과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춘추전국시기 문학은 기생하는 형태로 존재했다.
굴원의 등장은 남방 비옥한 들판에 신선한 피를
품고 화하문명 복판에 쐐기를 박아 넣었다.
중국 최초로 홀로 노래하는 시혼의 통곡의
등장이었다 굴원이 초나라 회왕에게 첫 번째로
쫓겨난 뒤 이소가 지어졌다.
굴원은 회왕이 태자 때부터
학문을 가리켰으며 좌도와 삼려대부를 역임한
그였지만 실의 한 다음 갈 곳이 없었다.
군왕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군왕에의 충성은
깨어날 수 없는 무서운 꿈이었고 사랑의 극단은 원망이었다. 굴원은 비첩처럼 왕에게 애걸복걸
했지만 무릎을 꿇진않았다. 절망 속의 희망이었다.
천문은 만년의 작품이다. 굴원의 '하늘'은 무너졌다
이 작품에는 172개의 질문이 나오는데 질문이
바로 답이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듯이
굴원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하늘'이 무너졌다고
선포한 것이다. 니체는 미쳤고 굴원은 회사를
노래한 후 멱라강에 몸을 던졌다. 어부사는 자신을
위해 불러준 절명가였던 것이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을 씻을 수 있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수 있지."말을 남긴
어부는 말을 나누지 않고 그대로 떠났고 비쩍
마르고 초췌한 굴원은 물고기 뱃속에 자신을 묻는다.
전국시대에 이르러는 아침에 진나라를 섬겼다가 저녁에는 초나라를 섬기더더라도 인품을
평가하는데 아무 영향이 없던 때이다.
사인들을 전례 없는 활동공간을 갖게 되었다
'세 차례나 나라를 망하게 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탄식했으나 아침에는 진나라를 저녁에는 초나라를 섬기며 모두 충신으로 추앙받으며 재주를 부리며
재앙을 피해 천수를 다 누린 안지추도 있는데 말이다. 왜 굴원은 끝까지 비첩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애국감정이 희박했던 시절에도 굴원은 자신과
나라의 운명을 단단히 묶어놓았던 것이다.
그는 개인의 운명과 조국의 운명을 자발적으로
한데 묶었다. 아침에 진나라를 섬기고 저녁에
초나라를 섬길 수 있었다면 인간세상에
굴원이라는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두보는 노래했다.
문장은 현달을 미워하고 도깨비는 지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응당 원통한 혼령과 말하며
시를 던져 멱라강에 주리라!
두보는 상상 속에서 이백과 굴원을 불러내어
이백은 시를 지어 멱라강에 던짐으로써 굴원의
혼령과 서로 아끼고 동정했을 것이다.
굴원이 노래한 초사의 모든 글자에는 초나라를
사랑한 그의 피눈물이 스며있다. 그는 그 때문에
'그때 자리'에서 초월하여 중국적이고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비첩 심리와 자존심의 길항을 들고 생존과
역사의 벌판에서 알몸을 드러내며 샤리쥔이 왔다
그의 책에 붙들려 있다가, 눈앞에 서있는 역사
속의 인물들과 만나 통곡하거나 책을 덮고
거리를 배회하거나 할 것이다
그들의 생멸과 배신, 흥망성쇠는 바로
오늘의 세상이고, 미래의 세상이고, 그들은
미래의 사람이 될 것이니까.
<신연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