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20 목요일
그저께 2월18일 북한산 산행 때 고령산 산행을 약속했다. 고령산은 우리 59가 2004년3월9일 6명이 보광사와 도솔암을 지나 정상을 찍고 능촌교로 하산하여 소령원과 유길원까지 돌아봤다. 그때 같이한 59mt중 두명이 이세상을 떠났다. 꼭 10년만이다.
10시에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 찬회회장과 석창형 나 넷이 모여 버스로 구파발역으로 간다. 그곳에서 333번 마을버스로 보광사앞에 10시46분 도착한다. 일주문에서 석창형과 헤어져 석창형은 보광사를 구경하고 소령원에서 만나기로 한다. 우리는 곧바로 정상을 향해 산길로 접어든다.
여기 일주문에 高嶺山의 표기가 古靈山으로 돼있다. 모든 지도에는 高嶺山인데 왜 그럴까?
보광3교 직전 1981년에 세웠다는 護國大佛앞에서 기념사진을 만든다. 이불상이 보광사를 내려보며 지키고 있는 것같다. 호국대불이 아니라 護寺大佛같다.
수도권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영조대왕이 생모를 지극히 그리워하여 이곳 보광사를 마음에서 모자와 함께하는 사찰로 했다한다. 우리가 구파발에서 보광사로 가는 버스가 보광사 가기 직전 고개를 넘는다 그곳 형상이 됫박 같다하여 됫박고개라 하는데 일명 "더파기고개"라 부른다. 사연인즉 영조대왕이 한양에서 보광사와 소령원을 가려면 필히 이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너무 가파라 더 파 내려라고 엄명하여 파면 또 더 파라하여 더파기고개라 부른단다. 옛날 한양에서 파주로 가는 길은 오직 이길 뿐이었으니 짐작이 간다. 영조가 생모 최씨를 기리는 마음이 어떻했나는 알만하다.
나는 보광사의 창건과 중건에 관한 내용을 발췌하여 실어본다.
高嶺山(古靈山)普光寺
보광사의 創建
보광사는 조계종 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이다.
보광사는 신라시대인 894년(진성여왕 8년) 왕명에 따라 도선국사(道詵國師)가 국가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인 1215년(고종 2년) 원진국사(元眞國師)가 중창을 했으며, 법민대사(法敏大師)가 목조불보살상 5위를 조성하여 대웅보전에 봉안하였다.
1388년(우왕 14년)에는 무학왕사(無學王師)가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622년(광해군 4년)에 설미(雪眉), 덕인(德仁) 두 스님이 법당과 승당을 복원하고 도솔암(道率庵)을 창건하였다.
1634년(인조 12년)에 범종(현 숭정칠년명동종·現 崇禎七年銘銅鐘) 봉안 불사가 이루어졌다.
1667년(헌종 8년) 지간(支干), 석련(石蓮) 두 스님이 대웅보전, 관음전 등을 재건하는 등 절을 중수하였다.
보광사의 再建
1740년(영조 16년)에는 보광사 인근에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 임금을 낳은 숙빈 최씨(淑嬪催氏)의 묘인 소령원(昭寧園)의 능침사찰이 되면서 대웅보전과 광응전(光膺殿)을 중수하고 만세루(萬歲樓)를 창건하였다.
1863년(철종14년)에는 쌍세전(雙世殿), 나한전(羅漢殿), 큰 방, 수구암(守口庵) 등을 새로 짓고, 지장보살과 시왕상, 16나한상 등 각 전각의 탱화 등을 나한전과 쌍세전에 봉안 하였으며,
1898년(광무2년)에 인파(仁坡)스님이 상궁 천씨(尙宮 千氏) 등의 지원을 받아 대웅보전과 만세루를 중수하고 그 후 순빈 엄씨(淳嬪 嚴氏)와 상궁 홍씨(尙宮 洪氏)의 시주로 단청하는 등 절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근대에 들어서는 6·25 한국전쟁 때 별당 등 일부 전각들이 소실되었으나 이 후 복원불사가 이루어졌고,
1957년에 수각(水閣)을, 1973년에 종각(鐘閣)을 세웠다.
1981년에는 거대한 호국대불(護國大佛)을 세우고
1994년에 지장전(地藏殿)과 관음전(觀音殿)을 새로 지었다.
고령산은 정상까지 가파르기로 유명하다. 날씨도 포근하지만 워낙 가파라 11시32분 의자가 놓여있는 쉼터에서 커피 한잔과 사과 한개씩으로 숨을 고른다.
12시 조금지나 高嶺山622m 정상에 선다. 10년전에 아무 표지도 없고 시설도 없었는데 오늘 보니 정자와 정상석 그리고 올라 올 때 밧줄이랑 쉼터의 의자 헬기장등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다만 보광사로 부터 정상과 바로 그부근까지다.
내가 어느 카페에서 아래와 같은 세로로 세워진 정상석을 본적이 있는데 오늘은 없다. 바닥에 기단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 누가 뽑아 버린 것같다. 참 한심스럽다. 2013년2월에 카페에 올린 사진이니 1년 사이에 누군가의 짓이다.
12시24분 보광사(수구암)로 하산하는 첫번째 지점이다. 우리는 이곳을 지나친다.
12시36분 두번째 보광사 하산지점인 360봉 갈림길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바로 직진한다. 이지점까지는 이정표가 잘 세워져 있고 산길도 분명하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독도와 감으로 산길을 찿아야한다. 10년전에 같은 코스라서 어렴풋이 기억을 찿아가며 산행한다.
12시49분 독야청청 홀로 서있는 소나무앞에 선다. 임도와 만나는 안부다.
이곳에서 오판하여 왼편으로 100여m 내려가다가 얼른 깨닫고 다시 고개로 되돌아와 능선으로 직진한다. 찬회회장에게 미안하다. 이곳은 맨땅이 질퍽하다. 신발이 엉망이다.
13:27 하산로 중간 비탈에 수목장도 평장도 안닌 장묘자리가 눈에 띈다. 한겨울 차가운 때 꽃으로 자리를 치장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나는 명복을 빌었다.
13시35분 안부3거리다. 115봉 아래로 소령원 가는 길이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얼른 좌로 돌았다. 10여분 내려가니 영장리 3거리다. 그곳에 석창형이 서있다. 소령원은 문이 잠겨 관람에 실패했단다. 내가 깜박했다. 그곳은 미리 통보를 하면 관계자가 관람을 도와준다는 것을 잊었다. 다행이 안부에서 소령원을 가려면 우회전이 옳았는데 잘못한 것이 다행이다. 10년전에 오른쪽으로 내려서 소령원을 다녀온 것이 머리에서 떠오른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같이한 두분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