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샤머니즘의 여호와 신앙
종교의 발달 과정을 보면 자연 현상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된 애니미즘(animism)과 초자연
적 존재와 접촉할수 주술적인 제사장이 등장하는 샤머니즘(shamanism)과 동물과 식물을 숭
배하는 토테미즘(totemism)이 종교의 시원이라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내용들이다. 기독교의
여호와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자명하다.
앞서 소개했던 바와 같이 야훼의 경우 시나이 반도에 있는 산(山)에서 비롯된 애니미즘(animis
m)에서 기원된 듯하며, 원시 유대교의 형태를 보면 샤머니즘의 전형적인 양상을 파악할수 있
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어떤 형태이든 생물의 피와 고기를 드림으로써 자신의 죄가 사해진다
고 생각했다. 특히 레위기1장, 출애굽기 29장등에서 보면 여호와는 끊임없이 흠 없고 온전한
재물을 제물로 드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동물들을 잡아서 가죽을 벗겨서 각을 뜨고, 콩팥과
내장을 분류해내는 것과 회막에 피를 뿌리는 행위도 기가 막히지만, 짐승을 태운 냄새가 여호
와에게 향기로운 냄새라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케 한다.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위기1장 9절]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단 윗 불 위의 나무 위에
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위기 1장 17절]
"그 수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
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출애굽기 29장 18절]
이 얼마나 고대적인 발상의 낡은 신이란 말인가? 무슨 사랑의 하나님이 끊임 없이 희생제물로
가축의 피를 요구하고, 짐승을 태운 냄새 따위에 향기로움을 느낀단 말인가? 피를 흘리고 희
생제물을 바쳐야 신이 죄를 용서해 준다는 생각이 얼마나 유치한 샤머니즘 시대의 발상인가.
게다가 솔로몬은 여호와에게 14일 동안 제사를 지내면서 제물로 바친가축의 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였는데." [열왕기 상 8장 6
3절]
14만 2천 마리의 가축을 제사에 사용했다면 나라살림이 거덜날 정도가 아닐까?
또한, 성경에는 동물공양뿐만 아니라 인신공양도 등장한다. 안티 기독교인들이 아브라함이 아
들 이삭을 제물로 삼으려고 했던 창세기 구절을 문제 삼으면, 목사들은 단순히 믿음을 시험하
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예언서에 이방인들이 인간을 그모스나
바알 등의 이방신에게 제물로 바쳤고 여호와가 그것에 진노하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면서 말이
다. 그러나 그것은 이방신에게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지, 인신공양 때문에 진노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에게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친 사람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사기 11장에서 입다는 전쟁터로 가기전에 여호와에게 맹세를 한다. 암몬족에게 승리하면 돌
아올 때 자신의 집앞에서 처음 나오는 사람을 여호와에게 번제로 바치겠다고 맹세한 것이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
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사사기 11장 30~31절]
암몬족에게 승리한 입다는 돌아오는 길에 소고를 들고 춤을 추며 집에서 마중을 나온 자신의
외동딸을 만났다. 그녀를 보자, 여호와에게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기에 입다
는 절망감에 옷을 찢으며 괴로워 했다. 입다는 딸에게 처녀로 죽는 것을 애통해 하는것의 2달
의 말미를 주었고, 약속한 날짜가 되자 그는 자신의 딸을 여호와에게 번제로 바친다.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
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
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
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이
르되 가라 하고 두 달 위한하고 보내니 그가 그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두 달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사사기 11장 3
6~39절]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다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엽기적인 일인가?
목사들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관한 설교를 할때 여호와 이삭을 죽일 마음이 없었으며 여호와
는 그렇게 잔인한 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입다의 딸은 어째서 그렇게 죽어야 했는
가? 목사들은 어째서 이 구절에 대해서 쉬쉬하는가?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
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찌니라." [레위기 27장 28~29절]
물건이든, 가축이던, 사람이던 일단 여호와에게 바치고 나면 팔지도 못하고, 가축과 사람의 경
우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한다.
민수기 31장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군대가 노략질한 전리품과 포로를 이스라엘 회
중의 진지로 가져왔다. 민수기 31장 15절에서 모세가 그들을 향해서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
려두었느냐?"라고 꾸짖으며, 처녀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민수기
31장 40절에 따르면 여호와에게 헌납된 사람은 32명이었다고 한다.
여호와에게 바친 포로들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입다의 딸처럼 제물로 삼아 살해한 것이 아닐
까? 위에서 언급한 레위기에서 여호와에게 아주 바친 사람들은 반드시 죽여 버려야 한다고 규
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사실상 신들을 달래기 위해 짐승고기와 사람고기를 바치는 고대의 야만적인 믿음으로 거의 세
계 어디서나 행해졌다. 초기 인류문명의 부족국가 시절에 섬기던 신들은 먹는 것을 좋아했는
데, 그들을 먹이는 것이 샤먼(shaman)들의 중요한 임무이기도 했다. 그 무렵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음식이 신도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신에게 도움을 얻기위해 신이 원하는
것을 바쳤다.
바빌론의 길가메시(Gilgamesh)신화에는 대 홍수에서 신과 인간이 함께 굶주리게 되었다. 마
찬가지로 노아가 번제(燔祭)로 드린 짐승과 새들의 달콤한 향기를 맡고 여호와는 다시는 홍수
를 내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개역한글판에는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라고 애매하게 번역했으나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은 다음과 같다.
"야훼께서 그 향긋한 냄새를 맡으시고 속으로 다짐하셨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한 마음을 품
게 마련,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전처럼 모든 짐승을 없애버리지
않으리라'." [창세기 8장 21절 / 공동번역판]
이처럼 신들의 진노를 피하고 복을 받기 위해 고대의 샤먼들은 굶주린 신들을 먹여야 했다.
고기는 귀중한 음식 이었기에, 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일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세계적으
로 동물의 도살과 종교의례는 종교 발전의 단계와 긴밀히 맞물려 있었다. 동물공양과 더불어
인신공양도 널리 행해졌는데, 인신공양은 인류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제일 먼저 사라졌으며,
동물공양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사라졌다.
짜라투스트라(조라아스터)가 동물공양 제사를 강렬히 비난할 무렵에 이러한 종교의식들은 서
서히 힘을 잃어 갔으나,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예수가 태어날 그 무렵까지도 그들의 신 여호
와를 향해 샤머니즘적인 동물제사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샤머니즘적인 신들은 대부분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경을 보면
여호와는 진노 뿐만 아니라 인간과 같이 후회와 한탄과 뉘우침까지 하는 것을 볼수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러하리니 이는 내
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느니라." [창세기 6장 5~7절]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아니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
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사무엘상 15장 35절]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내림을 뉘우치
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사무엘하 24장 16절]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사사기 10장 16절]
어째서 전지전능한 신이 지난일을 후회하고 근심하고 뉘우치며 한탄한단 말인가?
구약속에서의 여호와의 모습은 분노와 질투, 오해와 사랑등 인간적인 신격을 가지고 있다.
자연적 재난이 이들 신격에 반영된 경우가 많아서 특히 분노와 변덕, 질투가 이들 신격의 주된
성격 묘사로 나타난다. 분노와 질투와 자비의 적절한 안배가 이들 샤머니즘 신들이 경배 받는
주 요인이다. 따라서 신앙인들은 신의 자비를 구하고 분노를 가라 앉히기 위해 열심히 신앙 행
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여호와의 신의 인격화는 신의 명칭에 따라 다르다.
야훼라고 기록 되어진 신의 성격은 인격적인데 반하여, 엘로힘이라고 기록된 신의 성격은 그
러한 인격이 없다. 자료비평법에 따르면 구약은 4개의 전승층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뒷부분의 12장에서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이집트 땅에서 유대인들을 풀어주지 않는 파라오에 대응한 여호와의 행동은 샤머니즘의 전형
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가 애굽땅을 칠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
가 피를 볼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
장 13절]
어린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그 피를 집안 곳곳에 바르면 죽음이 비켜간다는 구절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발견할수 있는 동지날에 붉은 팥죽을 먹거나,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대
문에 붉은 고추를 매달아서 악귀를 물리친다는 전형적인 샤머니즘의 성격과 같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 너희가 그들에게
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
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출애굽기 25장 1~7절]
신전을 건축한다는 명목으로 필요한 돈과 재물의 목록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는 여호와의 요구
조건은 정말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오늘날로 따지자면 신이라는 작자가 교주에게 예배당을 새
로 건축해야하니 시멘트, 벽돌, 최신 펜티엄 컴퓨터, 벤츠 승용차, 마이크, 에어컨.....등등의
물건을 헌납 하라고 명령 하는것과 무엇이 다를까?
<빙혼>신에게 저런 예물이 필요할까?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신이기에 인간 즉 자기들의 생각을 신이 말하는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라는 것은 일부 사람들이 민중들에게 저런 예물을 바치게 만들어 놓고 자기들은
한평생을 놀고 먹으려는 짓이라는 것을 우매한 민중들은 죽을 때까지 모르고 죽어갈 뿐이다.
구질구질하게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열거해 놓고 내놓으라는 신, 이것이 과연 전지전능한 하
나님의 모습일까? 아니면 샤머니즘의 신격일까?
이런 야만적인 여호와의 신격은 구약의 후반부, 특히 이사야서 이후에나 조금씩 개선되기 시
작한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바빌론 유수 당시에 유대인들에게 유입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
라고 볼수 있다. 사실상 오늘날의 신학계에서도 유대교가 제대로 정립된 시기가 이사야서 이
후로 본다. 이사야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뒷부분의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글에서 언급하겠지만, 조로아스터교에서 천사개념, 사후세계,
메시아 사상 등이 유대인들에게 유입 되었다. 바빌론 유수때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아 유
대인의 민족신 여호와는 구약의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점차 보편적인 신으로 변모해 간다. 그
러나 여호와 신앙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었다.
여호와의 배타성과 동물 제사 행위는 구약이 끝나고 로마에 정복 당할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결국 낡아빠진 여호와가 폐위되고 새로운 신이 등장하는것은 너무도 당연한 처사라고 볼수 있
겠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여호와 신앙의 모습을 한 번 되돌아 보자. 덩치가 커진 주요 종교로 성
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샤머니즘적인 신에서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
개신교가 카톨릭에서 독립하면서 주장했던 만인제사장설(萬人祭司長說)은 쓰레기 통속으로
던져진지 오래다. 한국의 개신교는 제사장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성전중심의 제의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성령의 이름을 빌어 주술사들이 목사라고 스스로를 칭하며 미
신행위를 하고 있다.
인문지식이 체계화 되기 전의 과거인들은 모든 현상들은 주술에 의해 지배받는 다고 생각해
왔다. 작은 악마나 신들이 모든 자연 현상과 인간 세상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 왔던것이
다. 그리고 신들에게 인간을 제물로 바치다가 그런 관습은 차츰 동물공양으로 바뀌어 갔다.
그후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킴에 따라 종교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
교 만은 그 발전을 외면하고 있는듯 하다. 아직도 기독교가 구약의 신에서 해방되지 못하는것
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 여호와는 유일신이 아니었다
구약에 나타나 있는 여호와는 분명히 자기가 유일한 신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출애굽기 12장 12절]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심이라." [역대하 2장5절]
이방신들을 인정하는 참으로 흥미있는 구절이다.
또한 '개역한글판'에서는 잘못 번역되어 나오지 않지만 '공동번역판'과 '표준새번역판'의 욥기
38장 36절에는 "누가 따오기에게 지혜를 주었느냐?"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따오기가 무슨 지혜가 있겠는가? 이글에 등장하는 따오기는 이집트의 토트신(Toth)을 말하는
것이다. 이집트의 지혜의 신인 토트신은 현생에 따오기로 나타나며, "따오기가 한번에 물고기
를 정확하게 잡아먹듯이 토트신은 틀리심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어쩔수 없이 개신교인이 가장 많이 읽는 '개역한글판'을 사용했지만, '개역
한글판'은 너무많은 조작과 잘못된 번역으로 뒤범벅 되어 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출애굽기 15장 11절]
마찬가지로 이 구절에서도 여호와는 유일신이 아니라 여러 민족신들 중의 하나인 '유대민족의
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출애굽기의 구절은 BC 13~12세기경으로
추산되는 전형적인 가나안 종교시를 흉내낸것이다.
"오, 바알이시여, 당신과 같은 자 누구니이까? 신 중에 당신과 같은 자 누구니이까?" [W.F. Al
bright / Yahweh and the Gods of Canaan / P.12]
구약의 여호와는 자기 하나만 섬겨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지, 나홀로 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것
을 말하지 않는다. 게다가 구약에서는 야훼와 엘로힘이라는 두가지 단어의 혼용으로 인해서
생기는 기록상의 미묘한 문제가 있다. 이제부터 여호와(야훼)가 이방인들의 신인, 엘(El, Elohi
m)과 만나서 융합되어버린 사실을 통해, 유대교의 신이 어떻게 유일신 사상으로 변해 갔는지
에 대해서 분석해 보기로 하자. 편의상 이번 단락에서는 '여호와'라는 명칭 대신 '야훼'라고 지
칭하겠다.
우선 구약에서 신(神)을 지칭하는 단어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야훼이고, 또 하나는 엘로힘이다. 개역한글판 성경에서도 '엘로힘'으로 표기된 부분을
'하나님'으로, '야훼'로 표기된 부분은 '여호와'로 표기해서 쉽게 구분할 수가 있다.
명칭은 다르지만, 둘다 똑같은 신이 아니냐며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그 두가지 명칭의 신은 성
경속에서도 서로 엇갈리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즉, 야훼로 기록된 신은 분노와 한탄, 뉘우침같
은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는데, 엘로힘이라고 기록된 신은 그런 인간적인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는 극단적으로 창세기의 1장과 2장의 차이로도 나타난다. 창세기가 두 번이나 기
록 되었음은 물론이고, 1장과 2장의 창조순서도 엇갈린다. 이것은 자료비평방법으로 히브리
원문을 보면 1장에는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2장에는 야훼로 기록되어있다.
우선 말해두자면 바알, 엘, 엘렐, 엘로힘,이러한 명칭들은 실은 동의어이다.
물론 세부적인 신의 성격은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그 이름들은 모두 가나안인과 페니키
아인들, 히타이트인들과 유대인들에게 모두 위대한 신을 지칭하는 동일한 단어였다.
그리고, 야훼를 숭배하던 유대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가나안 지방의 신(神) 엘, 바알, 아
도니스 와 탐무즈등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엘의 경우는 유대민족의 신 야훼
와 혼합,융화 되었다.
그것은 유대인이 실상은 다수신의 존재를 인정 했기 때문이었으며, 바빌론 유수 이전에는 유
대인의 야훼는 모든 민족의 신이 아니었다. 히브리 12 지파가 모두 야훼를 신봉 했던 것도 아
니었다. (12지파도 점성술의 12궁도에서 비롯된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가나안의 신 엘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엘은 모든 신들과 인류의 아버지로 모든 피조
물의 창조자이며, 황소로 상징 되기도 했다. 렐산에 살며 술을 많이 마셨으며, 젊은 시절 두 자
매를 유혹하여 아내로 삼아 자손을 보았고, 사막에 피난처를 장만 하여 온 식구가 그 곳에서 8
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바알은 엘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엘의 성격은 오늘날의 기독교의 신(神)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야훼를 섬겼던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의 '엘'과 만나면서, 그 '엘' 종교가 놀랍게도 '야훼' 종교와 별 투쟁 없
이 만났음을 창세기 14장 19~22절에서 암시하고 있다.
창세기 14장에는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사웨 골짜기에 도달했을때, 엘을 섬기는 제사
장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다. (고대에는 제정일
치 시대 였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었더라." [창세기 14장 18절]
위 구절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히브리 원문은 '엘 엘룐'(El Elyon: 엘의 존칭)
이다. 이 구절에서 가나안 사람 멜기세덱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언급 되어
있다. 이어지는 22절에서 아브라함은 소돔왕에게 '야훼'의 이름으로 맹세를 한다.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
어 맹세하노니."[창세기 14장 22절]
이것은 엘과 여호와가 확실히 구분되는 구절로, 엘이 유대민족에게 융합되었음을 암시하는 구
절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신명기 32장 8~9절]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원문은 '엘룐'(Elyon: 엘의 존칭)이다.
이 구절에서 본문은 분명 엘을 가리켜 모든사람들에게 땅과 영토의 경계를 정해 주시는 최고
의 신으로 부르고 있다. 이어지는 다음구절에서의 야훼는 여기서 단지 이스라엘을 그의 몫으
로 배당 받았을 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엘의 신격이 야훼보다 상석에 있다고 볼수 있다.
다신론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다음 구절을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데 서시며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하시되 " [시편 82장 1절]
개역한글판의 시편 82장을 그냥 읽는다면 "자기가 자기를 심판했다"는 모순된 내용으로 다가
올수 밖에 없다. 공동번역판에서는 윗구절을 "하느님께서 신들을 모으시고 그 가운데 서시어
재판하신다"라고 번역했다.
첫번째 '하나님'은 엘로힘(Elohim)이고, 두번째 하나님은 '엘'(El)이다. 즉, 유대신(야훼)가 가
나안신(엘)의 법정에 재판장으로 출석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이어지는 시편 82장에서부터 엘로힘이 엘을 상대로 재판 한다. 그 엘로힘은 당연히 유대신 야
훼이다. 엘에 대한 심문이 계속되자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엘로힘)이여 일어나소서..."라고
외친다. 여호와가 신들의 모임에 나가서 다른신을 심문 했다! 유일신 사상을 고수하는 현재 기
독교 교리에 완전히 어긋나는 대목이다.
이제,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이 천사와 싸워 승리한 일화를 살펴보자.
야곱은 천사와 싸워 승리한후, 이스라엘(Israel :신을 이긴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충한 자들에게 무시무시한 징벌을 내리는 야훼가, 어떻게 '신을 이긴
자'라는 매우 불충스러운 이름으로 개명하게 만들겠는가?
이것은 가나안의 신 엘과 유대인의 신 야훼가 싸워, 야훼 신앙이 승리하였다는 암시이기도 하
며,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가나안의 엘신앙과 동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후에 엘이라는 이름은 인명과 지명에 무척이나 많이 쓰이게 된다. 예를 들어, 엘리야(Elijah)
의 이름은 '엘은 여호와이다'라고 음역되며(야는 여호와의 축약형이다), 야곱이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가는 길에 신의 역사를 꿈에 본 후 '벧엘'(Bethel :신의 집)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일
화등이 있다.
여호와의 경우, 유대교에서는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도 못하게 했는데, 엘의 경우는 인명이
나 지명, 심지어 '신을 이긴자'라는 이름으로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러한 융합은 유대
인들의 후손들이 그들 민족을 지칭할때 '이스라야(훼)'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을 사
용했다는 것을 보면, 가나안 만신전(patheon)의 최고신인 엘과 잘융합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
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이 가나안족의 엘 종교와의 일치운동이 없이는 불가능
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야훼 종교는 가나안 토착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종교 사이의 동화,
일치 운동으로 토착화가 진행 되었다고 볼수 있다.
구약의 초반부에서 신(神)명칭의 혼재는 모세오경에 대한 4문서설(J,E,D,P 자료)로 분석을 하
면 명확히 파악된다. 즉, 오경은 4개의 전승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러 전승이 하나로 합쳐
져 오늘날의 경전으로 형성된 것이다. 4문서설은 뒤에서 언급하겠다.
알트(A. Alt)의 연구에 의하면, 가나안 정착과정에서 여러 부족의 족장들이 섬기는 신들이 엘
별칭(El epithets)을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구약의 초반부에서 유대신은 일반명사(一般名辭)로써의 신의 이름인 엘(El)과 설명구가 결합
하여 이뤄진 'XXX엘'이라는 모습으로 잠시 비춰진다. 예컨데, 종족동맹(種族同盟)간의 엘 별
칭(El epithets)인, 엘샤다이(Elshadai :창세기 17장 1절28장 3절, 35장 11절,43장 14절,48장
3절, 출애굽기 6장 3절, 에스겔서 11장 5절), 엘엘룐(El Elyon : 창세기 14장 18절~24절), 엘
올람(El Olam : 창세기 21장 33절), 엘로이(El Roi: 창세기 16장 13절), 엘벧엘(El Bethel: 창
세기 31장 13절, 35장 7절) 등은 산, 강, 나무, 돌등의 일정한 땅과 결부되는 '토지신'(土地神)
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 다른 엘 별칭은 '이름없는 신들'(Nameless Gods)이 가나안 정착과정에서 족장이나 조상들
의 이름으로 잠시 동안 등장했다.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창세기 28장 13절31장 42,53절),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삭을 돌보시던 두려운 하나님'(창세기 31장 42.53절), '야
곱의 하나님'(창세기 49장 24절)등의 호칭에 족장 종교의 특징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신의 이름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족장들의 신은 족장의 이름과 결부시켜서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엘이 특정한 장소와 결부되어 있는 것과 같이 이들의 신은 족장
개인에 결부되어 있다.
이렇게 가나안에 정착한 부족간에 엘 별칭(El epithets)을 공유함으로써 서서히 야훼신앙이 정
립되어 가기 시작했다. [A. Alt / Essays on Old Testament History and Religion / Oxford: B
asil Blackwell, 1966]
창세기에 기록된 아브라함 전승(창세기 12~25장)은 헤브론, 이삭 전승(25~26장)은 브엘세바
, 야곱 전승(25~26장)은 벧엘, 세겜, 드단과 연결되어 있다. 즉 이 주요 무대가 중부 팔레타인
의 일정한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다. 고고학적 발굴 조사에 의하면 이들 지명이 중기 청동기 시
대의 중부 팔레타인의 대표적인 도시들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각각의 족장들의 전
승이 가나안의 특정장소와 연결되어 생성, 형성, 전개된 것을 말해주며, 각 족장의 전승은 원
래 독립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 전승의 재료는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오는 시대를 거쳐서 만들어지고 편찬 되어 현재의
문서가 된 것이다. 즉, 유대인의 야훼신앙은, 애니미즘(Animism)과 다신론(Polytheism)의 초
창기 상태에서, 단일신론(Henotheism)으로 변했고, 마지막에 가서 야훼 유일신론(Mono Yah
wism)으로 진화(進化) 했다고 볼수 있다. 이러한 점은 구약학계에서 연구하는 가나안 정복설
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간 아피루(유대 민족의 시조)들이 산악지대를 점거하면서 가나안 민중들
과 종족동맹(種族同盟)을 형성했다는 연구로도 잘 알수 있다. 이런 시대 상황은 초기 유대인들
에게 종교혼합적인 현상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가나안에서 흡수된 엘이라는 명칭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정확히 따지면,구약속에서 엘이라는 단어는 신(神)이라는 일반적인 명사로 사용되어졌다.
바알과 같은 이방신을 가르켜 엘로힘이라고 하거나, 사무엘의 영혼을 가르켜 엘로힘이라고 사
용하기도 했다. 엘로힘은 그 사용범위가 광범위 했고, 정확하게 따지자면 '엘로힘=야훼'가 아
니라 '엘로힘>야훼' 인것이다.
예를 들어 신명기 5장7절의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라는 구절에는 엘
로힘이라는 단어가 씌여졌다. 즉, 원문에는 "너는 내 앞에 다른 엘로힘을 두지 마라."라고 기록
되어 있다. 여기서 엘로힘은 신들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쓰였음을 알수 있다.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시편 95장 3절]
원문을 보면, "야훼는 크신 엘이시며, 엘로힘중에서 가장 큰 왕임을 선언하노라."라고 기록하
고 있다. 여기서도 엘은 신을 지칭하는 단어로, 엘로힘은 신들이라는 성격으로 씌여졌다.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열왕
기상 18장 21절]
원문은, "만약 야훼가 엘로힘이면 그의 뒤로 가고, 만일 바알이 엘로힘이면, 바알뒤로 가라"라
고 기록하고 있다. 역시 엘로힘이 신이라는 일반적인 명사로 사용 되었다.
위의 예에서 알수 있듯이 엘과 엘로힘은 신과 신들이라는 단어로 흔히 사용되어지고 있다.
즉, 엘은 처음에는 가나안인들의 그들신의 고유명사 였지만, 유대민족에게 흡수되면서 신이라
는 단어로 일반명사화 하게 된 것이다.
엘이 일반적인 신이라는 명칭으로 쓰였다면, 어째서 복수적인 엘로힘이 자주 쓰였는가?
유대인의 신은 자기의 이름은 '야훼'라고 말했을뿐, 그들의 신 '야훼'는 단수형으로 취급된다.
반면에 엘로힘은 '복수형'인데, 이것은 복수로 기록 되어진 것은 존엄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가
장 일반적이다.(혹시, 이것이 삼위일체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는데, 9
장에서 설명하겠다)
'엘로힘=야훼'라면, 어째서 '야훼'라는 명칭에는 장엄복수가 사용되지 않았을까?
또 하나의 의문은 장엄복수를 사용할 일부 부분엔 그것 대신 '우리'라는 단어가 들어가있는 점
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
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장 2
6~27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
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3장 22절]
창세기 에서 신은 '우리중 하나'(One of Us), '우리의 형상'(Our Image)','우리의 모양'(Our Lik
eness)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따라서 장엄복수설의 방식으로 씌여졌다면 이미 엘로힘으로 표
기가 되었으므로, '우리'라는 단어는 '나'로 바뀌어져야 한다.
이것은 복수형의 의미가 정말로 복수의 신을 의미하는 것을 가르치는것이 아닌가? 또,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창세기 35장 7절]
위의 창세기 구절을 보면, "....ha-elohim(신이) niglu (모습을 나타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ha)는 정관사이며, '니그루'(niglu)에서 u는 영어의 s처럼 복수형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말 에서는 "나타났다"라는 동사의 복수형을 표현하기가 애매모호 하지만, 신은 자기
자신을 엘로힘, 즉 복수형으로 표현하고 복수형으로 나타났다.
유대인들은 가나안의 신 엘을 흡수했지만 이것은 다신교 사상이었다. 다신교 사상 이었으므로
여러 엘이 나타날 수 있고, 엘로힘을 사용할때는 복수를 사용하기도 하고, 막연한 신들이라는
단어로 바뀌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야훼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장엄복
수로 착각된 엘로힘의 사용은 그냥 일반적인 신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창세기의 '우리'라는 단어와, 신의 복수형인 '엘로힘'이 자주 사용된 이유는 유대인들의 유일신
사상이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하여 주는 것이다.
출애굽 당시 네겝지역에 잠시 정착한 유대인들은 미디안족 외에도 모압족, 에돔족, 아모리족
과 계속해서 접촉 했으며, 모세가 자리를 비운사이 금송아지(아피스신상으로 추측된다)숭배의
모습까지 보였다. 그후로도 이방신숭배가 끊이질 않았다.
열왕기상 12장 28절에서 여로보암왕은 두 개의 황금송아지를 만들고는 유대인들에게 건네며,
"이스라엘아, 여기 너희들의 신들이 있다. 바로 너희들을 이집트에서 나오게한 신들이니라."라
고 말하기도 했다.
열왕기하 18장 4절에는 히스기야 왕이 아세라 목상과 모세의 놋뱀을 부순다. 출애굽때 모세가
잠시 신통력을 발휘 했다는 놋뱀이 히스기야왕 시대에까지 숭배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역대기
에 있는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신전에 장식한 두 개의 황금 지품천사의 모자이크는 이방종교의
영향 이었으며, 열왕기상 11장 6~7절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에 따르면, 솔로몬이 예루살렘 신
전을 만들면서 예루살렘 동쪽언덕에 모암족의 그모스신과 암몬족의 몰록신을 위한 신전을 세
우게 했다는점은 유대인들의 다신교주의를 확인 시켜준다. 물론, 이점에 대해서 기독교 신자
들은 솔로몬이 이방인 왕비들을 맞으면서 타락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할것이다.
그러나 구약속에서의 여호와는 끊임없이 현실에 나타나서 가혹한 벌을 주는 신으로 이미지화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여호와로부터 아무런 벌을 받지 않고, 부귀영화를 누리면
서 태평성대를 이루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는 어째서 솔로몬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던
것일까?
해답은 아주 간단하다. 성경은 유일신을 기초로 한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속에서 복수적인 형
태로 표기된 기독교의 신은 신들중의 신일 따름이었고, 신들중의 하나인 유대인의 민족신 야
훼를 섬기는 것일 따름일 것이다.
앞서 소개한대로 성경에서는 '신들중의 신'이라는 표현은 생각외로 많이 발견된다.
물론, 신명기 6장 4절 같은곳을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는 말이 나온다. 이 구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원문은 '엘로힘'이고, '하나'의 원
문은 '에하드'(E had)이다. 히브리어 '에하드'란 복수단일을 뜻하는 말이다. 예를들어 연필 12
자루 묶음을 한타스라고 부르고, 마늘 100개를 1접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바빌론 유수때 4개의 전승이 하나로 합쳐져 오늘날의 성경의 모습을 갖춰 가게 된다.
그렇게 성경은 4개의 전승이 억지로 합쳐 지면서, 창세기1장과 2장의 모순같은 치명적인 모순
까지 낳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다신교의 관습은 이사야서에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유일신 사상이 이사야서 이후에나 정립되었음을 정설로 삼고 있다.
이때는 바빌론 유수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이다. 유일 신 신앙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
통치 때, 제 2 의 이사야에 의해 소개 되었다. (이사야서는 제3의 이사야 까지 분류된다. 이사
야서의 저자는 여러명이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에야 유대의 신은, 부족신 엘샤다이(El-Shaddai : 산신령)에서 벗어나 전
지 전능의 유일 신이 되었다. 페르시아 왕들은 그들의 유일신 신앙을 강요 했고 유대의 신앙,
역사, 법과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사적 유물로도 이것은 충분히 증명된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상황은 예루살렘에 야
훼의 성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나안적의 신들을 숭배한 것으로 나타난다. 고고학
적으로 바빌론 유수 이후에도 이방신들을 숭배했던 가나안신들의 유물들이 계속해서 발견된
다.
원래 가나안의 신들은 농사와 관련된 풍요의 여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아세라'(Asher
a), '아쉬토렛'(Ashtoreth), '아낫트'(Anat) 등의 풍요와 생산을 상징하는 가나안적인 여신들뿐
만 아니라, 멀리 페니키아의 한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e) 출신의 '타닛
트'(Taanit) 여신의 신상까지 고대 이스라엘에서 숭배 되었다.
이스라엘의 고대 도시들을 발굴하자, 일반 사람들의 주거지 집터에서 흙으로 빛어 만든 신상
들이 자주 발견 되고 있다. 당시 청동 등의 금속이 매우 비싼것이었기 때문에, 민간 신앙 차원
에서 개인이 손에 지닐 수 있는 부적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작은 크기의 신상(神像)들이 대
량으로 발굴 되었다. 일종의 가신(家神)으로 여겨지는 이 조각들은 당시에 누구든지 소유할 수
있는 소장품으로 추정된다. 아쉬토렛 여신상들은 머리 부분을 틀을 이용해 대량으로 생산하였
고 몸통에 끼워 넣었다. 어떤 신상들은 빚을 때 머리를 새모양으로 단순화시키기도 하였다. 타
닛트 여신은 가슴에 독특한 상징의 리본을 달고 있으며 오른손은 숭배자들을 반기는 듯이 위
로 펼쳐 둘고 왼손은 풍요를 상징하는 두 가슴 사이에 가져간 모습을 보여준다. 아낫트 여신상
은 대부분 막대기에 끼워 약간 높은 곳에 세워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한가지로,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가 유대인의 유일신 사상을 정립시켰다는것이 정설이
지만, 이집트 종교의 영향도 무시할수 없다. 모세는 거의 허구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모세오경
은 바빌론 유수 이후에나 등장하기는 했지만, 출애굽이 정말로 존재했다면 이집트의 제19대
왕조 무렵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보다 대략 1세기전의 제18대왕조의 이집트에서는 아
케나톤(Akhenaten : BC 1337~1354년 통치)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원래 아몬호텝
(Amenhotep)이었으나, "그는 아톤의 마음에 든다"라는 뜻의 아케나톤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아케나톤(Akhenaten)은 다신교였던 당시의 이집트에서 모든 신들을 폐지하고 유일신 아톤만
을 숭배하도록 신학적 혁명을 감행했는데, 이것이 세계 역사상 최초의 유일신론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톤(Aten)이라는 명사는 태양만을 지칭할 뿐이며, 그것은 태양신 라의 발산물이다.
그의 통치하에서 이집트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여 국력이 약화되었다.
결국 그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조카인 투탄크 아몬(투탕카멘, 또는 투탄카몬)
이 옥좌에 앉았는데 역시 젊은 나이에 돌연사 하게 된다. 아케나톤의 제자인 아이가 뒤를 이어
서 잠시 이집트를 통치하게 되었다. 결국 유일신론자들이 정권을 잡았던 18대 왕조는 국가의
지원금이 끊겨버린 사제계급들의 격렬한 반항에 의해 몰락 되었고,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 호
렙헵에의해 19대 왕조가 들어서게 된다.
세계역사상 최초로 등장했던 유일신론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게 되지만, 이러한 유일신론이 야
훼 유일신 사상을 체계화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는 설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주목
할 점은, 유일 태양신 아톤 숭배를 전파하기 위해 아케나톤왕이 직접 지었다는 '아톤 찬나
가'는 창조주 야훼를 찬미하는 구약성경의 시편 104장과 놀랄만틈 닮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유일신으로의 신의 통일은 항상 지상에서의 권력의 통일과 일치된다.
부족국가시대에는 유일신은 있을 수 없다. 유일신의 출현은 제국(Empire)의 성립 이후의 사건
이다. 유대민족에게도 바빌론의 유수 이후에나 일신론(一神論)이 굳어진다.
중국에서도 진시왕 때에 와야 '상제' 등의 통일된 신의 개념이 생겼다는 점을 상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