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서 배속된 3가지 자성은 가假이기도 하고 실實이기도 하니, 이치에 맞게 알아야 한다.
3해탈문과 상섭문
a. 물음
3가지 해탈문이 작용하는 경계와 이 3가지 자성은 서로 포함됨이 어떠한가?
바로 상섭을 밝힘
((이치의 실제로는 모두에 통한다.
말하자면 의타기 위에 변계소집이 없는 것을 반연해서 곧 원성실을 나타낸다. 원성실이 공을 통해 나타남은, 곧 공의 경계가 된다. 모두 이것에 대해서 원하여 구함(願求)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무원의 경계가 된다. 변계소집의 진여를 반연하여 원구함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공과 같이, 이 3가지를 반연하여 무상으로 삼기 때문에, 무상의 경계가 된다.))p838
3자성, 변계소집 의타기성 원성실성
3해탈, 공해탈 무원해탈 무상해탈
3무생인, 본성무생인 자연무생인 번뇌괴로움惑苦무생인
3자성이 본질적으로 함께 섞여서 있습니다. 심의식에서 8식은 심, 7식은 의, 6식은 식 입니다. 이것을 합쳐서 유식이 되며 진여의 원성실 입니다. 7식이 我로 의타기의 연기법 입니다. 자연발생성이 없기에, 소취 능취의 2취가 있어 체성이 존재하는 유루법 입니다. 여기서 8식의 心은, 자성은 능취의 심이고 8식은 소취의 상분 입니다. 따라서 자성과 8식이 분리되는 상황입니다. 즉 8식이 현상계인 3계이며 사바세계 입니다. 사바는 마음의 종자가 쌓인 경계이기에 주체인 我와 능취는 없습니다. 즉 5온이 8식으로 이것은 변계소집 입니다. 분리되는 자성의 마음을 我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5온이 8식 종자이기에 이것은 물질입니다. 따라서 현상계는 변계소집 입니다. 물질은 빈공으로 假이면서 실질은 眞으로 진여입니다. 빈공은 물질이 소멸되어진 空입니다. 그래서 假입니다. 원성실의 진여는 의타기의 유위법과 변계소집의 빈공을 떠나는 경계이기에 진실한 뜻입니다.
,,변계소집이 없는 것을 반연해서 곧 원성실을 나타낸다.,,에서
변계는 2취가 없기에 빈공 생공의 상태는 그곳에 한정된 공의 뜻입니다. 원성실은 이것을 포함하는 진여의 공입니다. 여기서 반연의 의미는 포섭 상섭의 의미입니다.
,,원하여 구함을 일의키지 않는 무원의 경계는,,는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의타기의 욕구 욕망이 없음을 뜻하고 있습니다. 즉 의타기의 무원해탈 입니다. 즉 연기에서의 해탈입니다. 그리고 변계의 공으로부터 해탈이 공해탈입니다.
무상해탈은 변계의 공을 벗어나며, 의타기의 유루의 연기의 상에서 벗어나는, 지혜의 해탈상을 뜻하고 있습니다. 즉 의타기와 원성실은 전혀 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변계는 전혀 상이 없는 경계입니다. 진여는 이것들을 모두 상섭하고 있습니다.
((양상에 따른다면 각각 하나이나, 공空 무원無願 무상無相의 순서와 같이 알아야 한다.
증성한 개별적 양상에 따라 설한다면, 대론74권 현양성교론6권에서 설하기를, 처음의 자성에 의하기 때문에 공해탈문을 세우고, 제2의 자성에 의하기 때문에 무원해탈문을 세우며, 원성실에 의하기 때문에 무상해탈문을 세운다고 한다.))
,양상에 따른다면 각각 하나이다는, 것은
변계와 의타그리고 원성실은 서로 다르게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즉 변계와 의타는 현상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의타는 물질 자체이고 변계는 텅빈공 입니다. 그래서 물질의 인연이 끝나면 사라지는 빈공입니다. 이것이 시간과 공간입니다. 그러나 원성실의 진여에 상속 상섭되어서, 이 모두는 한순간 한찰라에 그 속에 들어있는 경계입니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현상계를 실제적으로 생각하면, 8식의 종자가 증장되어서 12연기의 생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실의 진실은 진여이라서 진여자성의 한찰라 이지만, 세간과 출세간이 동시이기에 번뇌의 생각은 물질을 만들고 있습니다. 무상정득정각이 진여입니다. 이것은 후득지의 바라밀 수행을 성취하여야 합니다.
3가지 무생인無生忍을 밝힘
((이것을 반연하여 다시 3가지 무생인을 일으키니, 첫째는 본성本性의 무생인이고, 둘째는 자연自然의 무생인이며, 셋째는 번뇌와 괴로움(惑苦)의 무생인이다. 순서대로 이 3가지는 그것들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인忍이라고 하는 것은 지혜智이다.증득하여 인가함(證印)을 인이라고 이름한다. 이 3가지 자성을 반연하여 3가지 인忍을 일으키는 것이다. 변계소집은 본래부터 체가 무생이다. 의타의 연기는, 자연히 생겨남이 없는 것(無自然生)이다. 원성실을 증득할 때에 번뇌와 괴로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를 3가지 무생인의 다름이라고 이름한다.))
본성무생인은 변계와 원성실을 아우러는 공 자체에서 생겨나는 것이 없습니다. 즉 진여에는 번뇌가 없음입니다.
자연무생인은 의타기와 원성실에서는 자연적인 발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의타기는 연기이라서 자연발생은 아닙니다. 원성실은 의타기의 유루법을 벗어나서 있는 무자연성 입니다. 여기서 무생인은 지혜에 해당하는 경계이기에 한 눈, 한순간의 지혜의 법인이라는 뜻입니다. 즉 5온이 지혜이라서 상 자체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의타와 원성실은 상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혹고의 무생인은 3해탈의 無相解脫에서 원성실의 진여의 경계입니다. 번뇌와 고통은 사물에 대한 생각입니다. 변계의 없는 것을 있다고 하고, 관계의 연기적 있음을, 자연적 본래 있음으로 집착 생각하여서 그 욕망으로 번뇌와 고통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진여의 무상해탈은 相이 없기에 지혜이기에 세속의 소유와 욕망은 없습니다. 相이 없기에 번뇌와 괴로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惑苦무생인 입니다.
佛法은 공부해도 돌아서면 백지 처럼 처음 접하는 느낌입니다. 지혜로 접근하기에 출세간과 세간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즉 세간을 출세간으로 전환함에 있습니다. 이것이 번뇌장과 소지장 입니다. 2가지 장애 중 번뇌장 자체가 소지장 입니다. 번뇌를 제거해도 그 습기의 소지장은 수면 깊이 숨어 있습니다. 현실에서 뛰어난 지도자라도 양심적으로는 천박한 미개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전생의 뛰어난 수행자라도 미혹한 습기에 굴복하여서 손가락질에서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진실한 진리인 부처님법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적은 수행의 공덕으로는 來生을 보장받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으로 다음 생에 유리한 위치에 있으면, 손가락질과 수갑에 철창 신세 그리고 3악도에 떨어질 가능성이 능후합니다. 人身難得 佛法難逢이 처절한 진실로 새겨야 살길 입니다.
극락세계가 죄업중생에게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서, 임중시에 아미타불의 접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최초불이시며 붓다님의 붓다이신 석가여래부처님을 칭명하며 금강경 독송으로 보살인가를 받고, 결국에는 붓다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세존님의 고유 권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