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공원 9경중 제6경 나홀로나무
큰잎이끼
한성백제박물관 전시중인백제 은동향로
일본은가야를 통하여 제철 기술을 받아 들였으나, 본격적인 제철 기술은 임성태자가 전해 주었다.
오우치가는 이 제철 기술로 막강한 부와 권력을 누렸으며 1400년대에는 천황을 능가 하던 권력자 막부쇼군을 누르고 최고의 세력 가문으로 성장 하였다.
오우치가에서는 63번이나 조선의 조정에 이 오우치가의 조상인 임성태자에 대한 기록을 알려줄것을 요청 하였으나 조정에서는 한번도 이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하였다. 어디에도 임성태자에 대한 기록은 없었기 때문이다.
임성태자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26대 성왕의 셋째 아들로 오우치가 족보에 기록 되어 있다.
2020년4월15일 오우치 가문이 크게 번성해 있는 야마구치에 사는 재력가인 오우치기미오 부부가 백제 문화제를 주관하고 있는 공주시에 3,000만엥의 큰돈을 기부 하고 공주 송산리14호 성왕릉을 참배하고 묘소 주변의 흙을 한줌 얻어 가서 일본 임성태자 어머니 곧 성왕의 부인 묘소에 뿌리며 고혼을 달래 주었다.
오우치기미오씨에 따르면 일본이 19세기에 공적문서및 개인 소장 문서나 족보등에 한국이 일본의 조상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서적은 모두 불 태웠는데 다행이 오우치가의 족보 일부는 남아 있었단다.
임성태자는 성왕의 세째 아들인데 우리의 기록에는 성왕은 아들이 둘로 나온다. 딸에 대한 얘기도 없었는데 최근에 발견된 부도에 성왕의 딸 존재가 밝혀지기도 했다.
성왕의 맏아들 위덕왕이 74세로 죽기 1년전인 597년에 임성태자가 일본으로 떠난것으로 보아 후궁의 태생이 아닌가 생각된다.
임성태자는 거북이 등을 타고 일본에 왔다는데 도착한 곳의 지명이 구마모토(熊本)이다.
환단고기에서는 배달족은 기마민족인 환족과 웅족의 결합이라 하였고 그정통성은 신시 배달족과 고조선 북삼한으로해서 남삼한으로 연결되며 일본으로 뻗어 갔다고 한다.
고구려와 한성 백제 때까지는 곰에 대한 지명등이 적다
웅진 백제로 넘어 오면서 곰에 대한 지명이 많이 나온다. 금강도 곰강이며 곰나루 웅진, 일본의 시치구마라든지 구마모토등 구마는 곧 곰의 삼한어이다.
임성태자는 구마모토에 큰규모의 철 생산 시설을 만들었고 곧 백제에 있던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살았다는 것이다.
일본말과 한국말은 30%정도 같다고 한다.
일본말은 가야 백제 부여의 언어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하면서 우리 땅에서는 고대 백제어가 많이 사라졌지만 일본에는 많이 존재하고 있다.
부여말의 마을을 뜻하는 골(고을), 산간마을 흘(屹) 홀, 등의 마을이라는 말은 아직도 살아있고 일본어로도 후루(마을)이다.
부여어의 물은 미추인데 일본말의 물은 미즈 이다.
부여 우태의 아들로 서소노가 주몽에게 데리고 재가했던 온조의 형 비류가 서소노를 모시고 고구려를 떠나 정착한 곳이 미추홀(수촌)이다.그옆동네는 매소홀이고 포천의 소흘도 무관 한 것 같지는 않다
인본인들의 성씨는 대부분 두자이다 대체로 높은 지역의 성을 쓰는 사람들이 신분이 높다
예를 들면 산 꼭대기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지역의성씨들의 지처가 낮아진다.
백제인도 대부분 성씨가 두자였다
왕족인 부여.외척인 사택.해구.백가등
일본에는 백제인을 시조로 하고 있는 성씨가 매우 많다.
내가 1995~6년 공주에 근무하면서 갑사 스님에게 틈틈히 대금연주를 지도 해준적이 있었다
그때 자주들렸던 고분군이 있던 곳이 공주군 의당면 수촌리인데 이곳의 옛 지명도 미치홀이다.
그 외에도 우리 나라 옛지명에는 OO울 이라는 지명이 상당히 많다
홀ㅡ울 ㅡ후르 부여말의 마을이다
ㅡㅡ다음에 계속ㅡㅡ
2022년9월22일(목) 지 덕 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