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 곧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지상의 사명을 함께 할 열 두 제자를 뽑으시는 장면을 전합니다. 자신과 함께 할 자신의 최측근, 예수님의 죽음의 순간, 아니 예수님이 돌아가신 그 후에 이 지상의 교회를 세울 주춧돌이 될 제자들을 뽑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하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예수님이 뽑으시는 열 두 제자의 모습을 전하는 오늘 마태오 복음의 말씀 안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례적으로 열 두 제자의 자세한 이력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모습, 곧 예수님으로부터 불리움을 받았을 당시의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사실 제자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리 내세울 것 없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기를 낚는 어부들이 그 제자들이었으며, 세상으로부터 소외받던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종국에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사람 역시 예수님의 제자로 불리움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의 가장 근접의 거리에서 그분과 언제나 함께 하며 하느님 나라를 위한 구원사업에 협조할 예수님의 제자이자 사도들이, 소위 잘나가고 유명 집안의 재력 있는, 세상으로부터 칭송받고 섬김 받는 사람들이 아닌, 세상으로부터 소외받고 버림받는 사람들, 세상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을 제자로 불러주신 주님을 팔아넘기기까지 하는 염치없는 죄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로 불리움 받았다는 사실은 아주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의 제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예수님이 당신의 사명 가운데 언제나 함께 하시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임을 드러내주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어 소위 가난한 사람들,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박해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함께 있는 이들, 하루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하며 자신과 함께 하느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함께 할 이들을 뽑으실 때, 당신이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 곧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자신과 언제나 늘 함께 하는 이들이 바로 사랑의 사목의 주된 관심대상이자 최우선 대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워 우리 곁으로 오신 구세주 메시아가 당신과 가장 가까이 함께 할 사람들로서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과 은총의 선물이 어떠한 것인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나의 곁에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을 외면한 채,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내 곁에 나의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 형제가 외로움에 몸서리 치고 있을 때, 그가 고통과 시련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그렇게 아파하는 그를 외면하고 우리 입술로 사랑을 선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랑은 진실이 아닌 가식과 위선 허위와 허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자신을 가장 사랑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제일 먼저 당신의 사랑으로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이 같은 의미에서 오늘 독서의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진정 바라시는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복음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거짓된 마음으로 가득한 이들, 그래서 하느님이 아닌 다른 세상의 것들로 마음을 채우고 그것으로 부유한 듯 착각하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을 예언자는 호되게 질책하며 그들이 진정 이루어야 할 삶의 모습을 다음의 말로 표현합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호세 10,12)
좋은 땅에 씨앗을 뿌리듯 정의를 씨 뿌리고 그 정의라는 씨앗으로부터 신의라는 열매를 맺는 삶. 그것이 묵혀둔 땅을 갈아엎어 주님을 찾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호세아 예언자의 말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바라시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비유적으로 잘 나타내줍니다. 이를 마르코 복음의 말씀을 인용한 오늘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오늘 복음환호송의 이 말씀처럼 예수님이 선포하는 복음의 말씀은 상처와 고통으로 아파하는 우리들을 모든 상처가 깨끗이 나아지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회개할 때, 다시 말해 내 주위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나의 사랑과 관심을 쏟아 그들과 사랑을 나눌 때, 그 때에 비로소 우리 안에서 하느님이 이루시는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부족하지만 그 작은 사랑의 실천으로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려 노력한다면 우리는 빛을 받고 그 빛으로 우리 얼굴에 더 이상 부끄러움은 없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보잘 것 없는 죄인들을 당신의 제자로 불러 주시고 그들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일을 이루신 예수님께로 나아간다면 우리 역시 그 분으로부터 빛을 받아 우리 얼굴에 더 이상 부끄러움이 없는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사랑의 기적을 여러분의 삶 안에서 체험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 34(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