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스파르탄> 루돌프 마테 감독, 전쟁, 시대극, 미국, 114분, 1962년
올해 영화 <300, 라이즈 오브 언 엠파이어>가 나온다고 한다. 나는 2007년 개봉한 <300>에 기대어 나온 작품이라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2007년 판 <300>은 퍽이나 자극적인 판타지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300>은 <반지의 제왕>의 영향을 받아 지나치게 멋을 부리고 과장하였다. 인물과 사건, 그리고 화면의 단순화는 그것을 마블 코믹스로 인식하게 한 다. 때문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서 사건의 진상에 조금이라도 접근하기를 희망한다면 <300>의 원작인 1962년 판 <300, 스파르탄>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야 한다.
영화란 상업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대중문화의 일부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도 관점의 변화와 에피소드의 각색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지만 연애와 성, 그리고 애국과 변절의 에피소드들이 양념처럼 섞여 있다. 그야말로 맛동산에 붙인 땅콩 같은 것인 셈이다. 하지만 세대를 건너 리메이크되면서 역사물이 판타지물로 변신한 것처럼, 그것을 둘러싼 기술의 변화는 물론 취향의 변화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의도적으로 소설처럼 대중영화에 덧붙은 땅콩(허구)을 제거해 봄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성찰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300, 스파르탄>은 퍽이나 흥미로운 작품이다.
스파르타의 300명 병사가 그리스를 수호하기 위해 좁은 길목에서 수십만의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싸우다 모두 전사한 이야기는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나온다. 이 전투가 높이 평가 받는 이유는 도시국가로 나뉜 그리스 연맹의 단결에 기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도시국가들을 묶는 그리스적 가치는 자유를 누리는 도시국가의 시민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시민은 자유를 소유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를 가진 자들로서 전사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도시국가인 시민의 긍지는 그리스적인 특징을 이룬다. ‘시민의 자유’ 그것이야말로 그리스적 가치인 것이다.
영화도 야만 페르시아의 침략에 맞서 고귀한 자유인이라는 소위 그리스 정신을 수호하기 위한 결집과 희생을 조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자유인과 노예의 전쟁, 시민의 도시국가 연맹과 참주의 전제국가의 전쟁으로 단순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이분법은 2000년도 더 된 지금도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하지만 자유인(시민)과 노예의 이분법은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물론 서양과 동양, 민주주의와 전제주의로 단순히 등식화한 서구 중심의 편향된 오리엔탈리즘에 지나지 않는다. 주체는 결코 타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 영화를 주체가 아닌 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거나 타자적 주체의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 왜냐면 영화처럼 역사 또한 주체의 이데올로기와 미화를 자체의 속성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것이 타자가 희귀한 이유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낳은 아테네를 포함해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철저히 노예제 사회였다. 시민 자체가 노예를 소유하며 여가를 누릴 수 있을 만큼의 부를 소유해야 했으며, 노예와 노예 경제를 확립한 침략과 약탈이야말로 그리스가 소유한 부의 토대였다. 도시국가 시민의 자유란 여가에서 비롯되며 여가는 노예의 노동에 의해 지지되었다. 전쟁은 시민인 주인들의 전쟁이지 노예들의 전쟁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는 스스로 무장할 수 있는 시민의 경제력과 자유가 대단히 소중했다. 시민이야말로 전사였기 때문이다. 시민 자체가 이미 귀족적 자긍심으로 가득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스 문명에서 발달한 교육, 철학, 정치야말로 시민들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영화 <300, 스파르탄>에서도 300명의 스파르탄을 따라 나온 병사들 각자의 노예들을 살펴봐야 한다. 물론 전쟁은 노예들이 아니라 주인들의 몫이었지만 노예야말로 주인들의 싸움을 지탱하는 토대였다는 점은 자주 망각된다. 타자의 망각처럼. 그러므로 ‘300’은 단지 영웅적 이상화를 위해 선택된 한정숫자인 셈이다. 그것은 오직 시민 전위부대인 스파르탄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영화 <300, 스파르탄>에는 비록 대사는 한 마디도 없지만 그들 전사들 주위에 노예들이 보인다. 때로는 그들이 창을 던지고 전투에 참가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등 애매한 모습도 나타난다. 하지만 <300>엔 노예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내부의 타자는 보이지 않고 오직 외부의 적대적 타자만이 등장할 뿐이다. <300, 스파르탄>은 현대의 관점에서 그리스의 내부모순인 노예문제를 인식할 단서를 담고 있는 반면, <300>은 전혀 없다. 오직 미국의 서부영화처럼 백인문명과 비백인 야만문명을 과장되게 대립시킬 뿐이다. <300>엔 특히 페르시아 왕이 흑인이고, 동성애적 이미지가 넘치고, 닌자와 몽고족까지 등장할 뿐만 아니라, <반지의 제왕> 류의 각종 괴물들까지 등장하는 등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편협하고 과장되게 야만을 묘사하고 있다. <300, 스파르탄>이 페르시아 왕을 여색에 빠지고 판단이 둔감한 왕으로 묘사한 것은 오히려 미덕으로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300명의 스파르탄을 제외하곤 여성과 노예, 외국인 등 모두가 타자일 뿐이다. 역사 든 영화든 주체를 미화하고 타자를 폄하는 일은 쉼 없이 반복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300>은 오락물로서 그 편견을 극에 달할 정도로 밀고 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대중영화는 거의 인식과 통찰 대신 선전과 오락에 기여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영화에서도 초점을 맞추고 있는 스파르타의 전술 ‘밀집대형’은 보병이 밀집해 대형을 짜고 창과 방패로 방어하며 공격하는 전법이다. 그야말로 개개 병사가 벽돌처럼 견고해야 하기 때문에 상관에 대한 절대복종은 물론 상호에 대한 신뢰와 협력도 절대적이다. 체력적인 단련과 기술, 그리고 고도의 정신력과 일체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전법이다. 그럼으로써 부대 자체가 하나의 탱크처럼 견고한 전쟁기계가 되는 것이다. 전쟁기계야말로 스파르타의 체제가 꽃피워낸 군사적 결정인 셈이다. 묘하게 300의 밀집대형을 보며 이순신의 학익진과 명량해전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학익진과 밀집대형은 지휘관의 명령과 복종, 그리고 단순성이 돋보인다. 학인진이 감싸고 집중한다면 밀집대형은 뭉쳐서 방어하고 뚫는다. 대조적이지만 기계적 아름다움이 있다. 하지만 명량해전은 백의종군한 이순신이 간신히 수습한 12척의 배와 남도를 돌며 수집한 군량과 병사 1000~2000명으로 10만 명의 병사가 탄 200척의 왜군을 물리치며 전쟁 자체의 형세를 180도 바꾼 엄청난 싸움이었다. 두 전투 모두 지형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전쟁의 흐름의 결정적인 영향을 준 전투였다. 아마도 개인의 영웅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순신이라는 독특한 인물이야말로 경이로운 예외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300, 스파르탄>이나 <300> 정도의 영화도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 시놉시스 =
BC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황제가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쳐들어온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서둘러 연합군을 조직했고, 용맹한 스파르타의 병사들이 그 선봉에 서게 된다. 당시는 스파르타의 종교의식 기간이었기 때문에,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는 고작 300명의 친위대만을 이끌고 출전해야 했다. 천혜의 방어지인 테르모필레에서 그리스 연합군은 이틀 동안 기적적인 연승을 거듭했으나, 배반자 에피알테스가 비밀 통로를 페르시아 진영에 알려주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패배를 직감한 레오니다스 왕은 다른 그리스 연합군에는 퇴각명령을 내리지만, 자신과 300명의 병사들은 테스피아이 병사 700명과 함께 끝까지 전장을 사수하기로 한다. 구름 같은 대군을 맞아 맹렬히 저항하던 300명의 스파르타인은 결국 전원 죽음을 맞이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고대 전쟁사에 관심 있는 이라면 테르모필레 전투이야기는 어디선가 한 번 정도는 접해봤을 것이다. 이 유명한 전투를 소재로 한 <300 스파르탄>(1962)은 정작 개봉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이후 숱한 TV 방영을 통해 컬트영화가 된 매우 독특한 케이스에 속한다 (김재윤님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