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어제 아침에 집을 나서 차 안에서 한 방송을 들었습니다. 방송 내내 청취자들에게 살아오면서 가장 추억에 남는 음식들에 관해 묻고 문자를 받아 남녀 진행자가 소개해주었습니다. 아주 귀한 과일로 한개씩 떼어서 팔던 시절에 엄마가 사준 바나나. 소풍가서 김밥과 함께 먹던 삶은 계란과 사이다.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달고나와 뽑기도 들어있고 운동회 마치고 엄마와 먹던 짜장면도 있고 소시지, 핫도그, 햄버거, 크림빵, 아이스께끼, 컵라면, 슬라이스 치즈, 라면땅, 쫀디기, 꿀, 조개 모양 초콜릿 등이 이어져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한 청취자가 어린이들에게 먹이던 종합영양제 원OO를 들추어내서 소개되었습니다. 방송이라 고유명사인 상품이름을 모두 밝히지 못했지만 특정 회사의 조미료 이름 ‘미원’처럼 일반명사처럼 쓰여 밝혀도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원기소’입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지금은 구할 수 없습니다.
원기소는 1960년-1970년에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결핍되기 쉬웠던 영양소를 보충해주는 건강보조식품으로 유명했습니다. 저는 가난했던 시절, 친구네 집에 가서 몇 알 얻어 먹어보아 그 맛을 압니다. 입에 넣고 과자처럼 씹으면 미숫가루와 콩가루 같은 맛이 나고 누릿한 냄새도 납니다.
라디오 방송을 하는 남자 진행자는 원기소를 알고 있고 그 맛도 대충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배가 다른 젊은 여성 진행자는 원기소를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와같이 세대에 따라 추억에 남는 먹을거리가 다릅니다. 저는 초등학생 시절에 밀가루 수제비에 풀어 먹던 미군부대에서 나온 버터맛과 수구레국이 생각났습니다.
저녁에 귀가 하면서도 차 안에서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한 청취자가 진행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랜만에 칼퇴하고 회사 인근에서 산책하고 있는데 직장 상사를 만났습니다. 직장 상사도 산책하러 왔다며 같이 산책하자고 합니다. 이럴 때 저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모처럼 칼퇴했는데…” 일을 떠나서 상사와 엮이는 것이 마뜩찮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라떼는 말입니다. 설 명절 이튿날 직장 동료들이 모여 추렴해서 선물 사 들고 상사 집에 가서 세배하고 잘 차린 점심을 먹고 고스톱도 치고 나와 헤어졌습니다. 상사는 부하 직원들을 반겨 맞아 해외출장 다녀오며 모아 놓은 양주를 선뜻 내놓기도 하고 고스톱 재밌게 치고 가라고 미리 준비한 천원짜리 신권도 부하직원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지금 그러자고 하는 사람은 아마도 몰매를 맞아 최소 중상을 입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사람 사는 맛은 그때가 훨씬 좋았습니다.”
문득 “하나님께서는 내가 살아온 삶에서 무엇을 추억하실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스기야왕의 간구가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이사야서 38:3). 코람데오.
원기소의 원조인 일본제품이 '에비오스'인데, 지금도 남대문 시장 수입상가에서 판매합니다. 제 아내가 얼마 전부터 일부러 챙겨 구입해오는 바람에 매일 먹는 중입니다만, 처음에는 어릴 때 먹던 그 맛과는 약간 다른 것 같았는데, 계속 먹다보니 그때 그맛이 되살아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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