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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 2015. 3. 29(일)
□ 곳 : 비로암~외송 (칼바위) 산등성(이)~1060m봉우리~영축산~(다시) 1060봉~함박등~죽바우등~금수샘~백운암~비로암~(극락암~반야암~서축암)
□ 참여 : 유재신, 견정, 참솔, 한길(4명)
□ 걷는데 걸린 시간 : 10:22~18:04⇒7시간 42분(쉰 시간 포함)
※ 푹 쉬면서 아주 쉬엄쉬엄 걸었다.
□ 일러두기
이 글에서 쓰는 말[용어]은[는] 다음과 같이 ‘앞말’을 ⇒‘뒷말’로 줄여 씀을 나타냄
○ 「부산일보」 지도⇒‘부산일보’로 줄여 씀[약기(略記)]
○ 푯돌⇒‘푯돌’로 줄여 씀[약기(略記)]
○ 「한국400산행기, 등산길 안내, 김형수, 깊은솔」⇒‘김형수’로 줄여 씀[약기(略記)]
○ 부호는 이렇게 썼다.
△ ( ) : 예) ‘산등성(이)‘은 ‘산등성‘, 또는 ‘산등성이‘로 ( )가 없는 뜻 또는 ( )가 있는 뜻을 아울러 씀[표기], 또는 한글 말 뒤에 한자를 써 넣을 때를 나타냄.
△ [ ] : 예) ‘소나무[참솔, 육송]’는‘소나무’ 또는 ‘참솔‘, ’육송‘으로, ‘곰솔[왕솔나무, 해송]’ 은 ‘곰솔’ 또는 ‘왕솔나무’, ‘해송’으로, 산길[임도]은 ‘산길’ 또는 ‘임도’처럼 같은 뜻을 가진 낱말로, [ ] 바깥에는 쉬운 한글 말, [ ]안은 어려운 한자말을 같이 쓸 때를 나타냄.
△ 「」: 푯말 이름이나 땅 . 업소 이름 따위를 적을 때는「」안에 적어 넣음.
□ 간추린 발자취
○ 2015. 3. 29(일) 10:22 비로암 앞 나섬
○ 11:40 바위 위에 비스듬히 드러누운 소나무
○ 12:20~12:59 점심
○ 13:25-40 ㅜ 외송 (칼바위) 산등성(이) ․ 영축산 ․ 죽바위등 갈림길
○ 13:28(?) 「고 김성국 추모비」, 1060m봉우리(-‘부산일보’)[1055m봉우리(-‘김형수’)]
○ 13:39~13:45 영축산(1081-‘푯돌’ . ‘부산일보’), [1058.9m(-‘김형수’)], 삼각점
○ 13:47 비로암 . 약수터 갈림길
○ 13:54 (다시) 「고 김성국」추모비, 1060m봉우리(-‘부산일보’)[1055m봉우리(-‘김형수’)]
○ 13:54-30 ―| 외송 칼바위 산등성(이) 갈림길
○ 13:59-30~14:09 일행 만남, 머묾
○ 14:22-20 숨은재
○ 14:34-45 함박등(1052m-‘푯돌’. ‘부산일보’, 1051.5m-‘김형수’)
○ 14:46-10 함박재
○ 14:52 ―| 청수 중앙능선 갈림길
○ 15:09~15:24 죽바우등(1064m-‘푯돌’ . ‘부산일보’)[1055m-‘김형수’), 머묾
○ 15:26 ―| 금수샘. 백운암 갈림길
○ 15:38~15:41 전망바위, 머묾
○ 15:57~16:04 금수샘, 머묾
○ 16:25~16:40 백운암
○ 17:06~17:20 비로암 옆 도랑, ※ 땀 씻음, ※ 사실상 산행 - 끝
○ 17:22~17:35 비로암, 머묾
※ 여기부터 차로 이동
○ 17:38~17:48 극락암, 머묾
○ 17:52~18:00 반야암, 머묾
○ 18:04~18:00 서축암, 머묾
□ 줄거리
이번 봄맞이 산행은 전문가인 유재신씨를 초빙하여 그의 제안에 따라 외송 칼바위 산등성(이)~백운암 구간을 걷기로 했다.
그는 멀리는 설악산, 지리산, 가깝게는 영축산, 신불산, 천성산 따위 양산 일대 숨은 바위 산등성(이) 여기저기를 많이 다니고, 또한 꿰뚫고 있어 우리 셋[전문가 포함 넷]이 함께는 이번이 두 번째, 둘[전문가 포함 셋]이 함께는 두어 번 더 기회가 있었다.
삼총사 가운데 맑은별 님은 다른 일정이 있어 빠지고 나를 포함 셋과 전문가 1명으로, 모두 네 사람이 단출한 산행을 하기로 했다.
2015. 3. 29(일) 08:40쯤 지하철 1호선 명륜동역 앞에서 울산으로 가는 13번 좌석 버스(명륜동~울산00)를 타고 나서, 거의 1시간 10분쯤 지나 버스는 통도사 들머리 아래 신평 버스 종점[터미널]에 닿았다.(09:50)
10분쯤 뒤 다른 곳에서 차를 몰고 온 유재신씨를 만나 그의 차를 타고 10분쯤 뒤 비로암 주차장에 닿아(10:12), 길 나설 채비를 하고 사진을 찍은 뒤 비로암 주차장을 나섰다.(10:22)
비로암 주차장을 나서 10분쯤 뒤 누군가 돌에 「↗외솔 정상, ↖은수」에 써놓은 Y 갈림길에 닿아(10:33), 여기서 5분쯤 머문 뒤 오른쪽으로 길을 나서(10:38), 12분쯤 뒤 머물고 나서기를 3번에 30분쯤 소요하면서 아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10:58-30~11:37-30 사이 세 번에 걸쳐 30분쯤 머묾)
쉰 시간을 빼면 돌에「↗외솔 정상, ↖은수」를 써놓은 간이 길 푯말이 있는 Y 갈림길에서 거의 30분쯤 뒤 바위 위에 비스듬히 드러누운 소나무가 있는 곳에 닿았다.(11:40)
모르기는 해도 산꾼들이 이 귀중한 소나무 뿌리 부분을 밟아 껍질이 얇아지고, 더러 벗겨지면서 송진이 흐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이 소나무를 밟지 않도록 주의했으면 좋겠다.
이 소나무를 두고 ‘와송’, ‘외송’, ‘용송’ 따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는 모양인데 정확한 이름에서부터 그런 이름을 갖게 된 연유를 알 길이 없다.
다만, 내 나름으로는 ’외송‘-외롭게 한 그루 서 있다고, ‘아니면 와송(臥松)’-드러누웠다고, 그도 아니면 용송(龍松)‘-(용틀임하는) 용을 닮았다고 붙인 이름인가? 하고 추측할 따름이다.
유재신씨는 여기 올 때마다 소나무가 몸통에서 송진을 내뿜고 있어, 자칫 소나무 목숨이 짧아질까 걱정이 되어 송진을 뿜어내는 상처(?) 부위에 흙을 약 삼아 뿌린다고 했다.
이날도 재신씨는 우리가 쉬고 있을 때 드러누운 소나무 송진이 흘러내리는 상처(:)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흙을 뿌리고 있었다. 마치 사람 살갗에 상처가 나서 연고를 바르거나 분말 약을 뿌리고 있는 것 같아 애틋한 나무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소나무는 바위 위에 뿌리를 굳건히(?) 내렸지만 안타깝게도 몸통 절반 이상이 바위 끝을 벗어나 있어 윗몸이 무거워 약한(?) 뿌리에 의지해서 눈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차게 몰아쳐도 제 한 몸 간수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7분쯤 머문 뒤 이 소나무 있는 곳을 나서(11:47) 5분쯤 뒤 바위+밧줄이 있는 곳에 닿았는데(11:52), 밧줄이 바위에 쓸려 잘못하면 끊어질지도 모르는 상태여서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은 되도록 이 바위 구간 오른쪽 안전한(?) 곳으로 돌아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
아니면 튼튼한 밧줄로 새로 설치하거나...
밧줄 구간을 올라 어느 바위 위에서 7분쯤 머문 뒤 바위를 나서(11:59) 20분쯤 바위 여러 구간을 오른 뒤 서너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꽤 전망이 좋은- 바위 위에 터를 잡아(12:20) 점심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뒤 길을 나서(12:59) 25분쯤 뒤 오봉산~영축산 갈림길인 영남알프스 산등성(이)에 닿아(13:25-40), 여기서 오른쪽 영축산 쪽으로 향해 2분쯤 뒤 「고 김성국 추모비」가 있는 1060m(‘부산일보’)[1055m(‘김형수’)]봉우리에 닿았다.(13:28).
이 봉우리에서 11분쯤 뒤 영축산(1081m-‘푯돌’. ‘부산일보’)에 닿아 사진을 찍고 둘레 구경을 하며 머물렀다. 영축산 높이를 1058.9m(‘김형수’)로 표기한 책도 있다.
1060m봉우리에서 영축산으로 갈 때는 영축산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나 도중에 모두 죽바우등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고, 가면서 사진을 부탁할 사람들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영축산에 올랐을 때 남.여 두 명이 영축산에 올랐다가 막 신불산 쪽으로 내려갈 태세여서 염치 불구하고 다짜고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여 겨우(?) 영축산 푯돌 옆에 서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영축산에서 신불산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일행이 함박등 쪽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아쉬움을 간직한 채 발길을 돌려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영축산을 나서(13:45) 2분쯤 뒤 비로암. 약수터 갈림길에 닿았고(13:47), 여기서 7분쯤 뒤 다시 1060m봉우리에 닿았다.(13:54)
1060m봉우리에서 이내 「외송 칼바위 산등성(이) 갈림길에 닿았고(13:54-30), 여기서 5분쯤 뒤 나를 기다리던 일행을 만나(13:59-30) 9분쯤 머문 뒤 길을 나서(14:09) 13분쯤 뒤 길 푯말(영축능선 4)(↑백운암 1.8km, ↑오룡산 5.5km, ...)이 있는 「숨은재」에 닿았다.(14:22-20)」
「숨은재」에서 12분쯤 뒤 함박등(1052m-‘푯돌’. ‘부산일보’)에 닿았고(14:34-45), 여기서 10분쯤 뒤 길 푯말(영축능선 6)(←백운암 0.7km, ↑채이등 0.3km, ↑오룡산 4.4km, ...)이 있는 함박재에 닿았다.(14:46-10)
함박재에서 5분쯤 뒤 길 푯말(↑청수골, ←죽바우등 0.6km, ←오룡산 4.2km)이 있는 「청수 중앙능선 갈림길」에 닿아(14:52), 여기서 왼쪽으로 향했다.
이 갈림길에서 17분쯤 뒤 죽바우등(1064m-‘푯돌’. ‘부산일보’)에 닿았다.(15:09), 이곳 높이를 1055m(-‘김형수’)로 써놓은 책도 있다.
15분쯤 머문 뒤 죽바우등을 나서(15:24) 2분쯤 뒤 ―|「금수샘. 백운암 갈림길」에 닿아(15:26)」, 왼쪽으로 향했다.
이 갈림길에서 12분쯤 뒤 전망바위에 닿아(15:38), 둘레를 둘러보고 3분쯤 뒤(15:41) 되돌아 내려와 16분쯤 뒤 「금수샘」에 닿았다.(15:57)
커다란 바위 아래 제법 넓은 구멍이 생겨 그 안에 석간수로 추정되는 물이 많이 있었는데, 우리는 몸에 좋을 거라며(?) 모두 물을 마셨다. 물에서 광물성 성분인지-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독특한 냄새가 났다.
7분쯤 머문 뒤 금수샘을 나서(16:04) 20분쯤 뒤 백운암에 닿아(16:25) 암자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15분쯤 뒤 백운암을 나서(16:40) 수백 년 세월을 지냈을 키가 크고 하늘을 향해 죽죽 뻗은, 몸통이 황금빛과 조금 붉은색을 띈 참솔 밭을 지나면서 소나무가 내뿜는-눈에 보이지는 않지만-상큼한 기를 온몸으로 받고, 깊은숨[심호흡]을 쉬면서[하면서] 기분 좋게 걸었다.
백운암을 나서(16:40) 25분쯤 뒤 산행을 시작하였던 비로암 옆 도랑에 닿아(17:06) 땀을 씻고 사실상 산행을 마쳤다.
비로암을 둘러보고 나서 이 일대 지리를 꿰뚫고 있는 유재신씨가 차를 몰아 극락암, 반야암, 서축암을 차례로 둘러보고 나서 「신평 버스 종점[터미널]」옆 제법 유명하다는 「이00순두부」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식사 대금은 참솔 님이 계산하였다.
이곳저곳 숨은 곳을 안내한 유재신 님 고생 많이 했고, 우리는 덕분에 영축산 숨은 비경을 구경할 수 있었어 고맙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동참해 준 견정 님, 저녁을 산 참솔께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봄이 왔다고 했지만 진달래도 아직 피지 않았고 산에는 지난 가을에 잎을 떨군 나무들이 아직 새순을 피우지 않은 채로 우리를 맞이했다.
산에서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봄꽃은 다섯 암자를 둘러보면서 목련, 산수유 꽃, 홍매화, 동백꽃 따위를 보면서 눈요기를 대신했다.
산은 둘러보는 때와 철마다 느낌이 다르고, 또 누구와 같이 가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되새겼다.
세 분 덕분에 즐거운 하루였고, 언제 기회를 봐서 또 다른 숨은 비경을 구경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늘어뜨린[펼친] 발자취
※ 제 블로그 참조
△ 다음(daum) 블로그에서 한뫼 푸른솔
△ 또는 http://blog.daum.net/angol-jong
비로암 앞에서 산행 나서기 전에...
비로암
비로암
여기서 오른쪽 앞쪽으로 간다
현호색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산행 길잡이
바쁠 것도 없으니 충분히 쉬어 가자...
돌길을 올라간다
송진이 배어 나와 소나무 수명이 짧아질까봐
분말 약을 바르듯 흙을 바르고 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약(?)을 바른다고 했다
뒤로 죽바우등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소나무 이름이야 무엇이라 부르든지
소나무 기를 받아볼까...
약 바르는 일이 끝났나 봐...
소나무 기를 받으려면 왕창 받자...
유재신 님이 흙으로 된 가루약을 듬뿍 발라놓은 모양
땅도 깊지 않은 바위 위에서 뿌리를 박고
무거운 몸통을 지탱해야 하는 고달픔도 거뜬히 이겨내고...
바위 구간 이제 슬슬 몸을 풀어볼까?...
당겨본 돼지바위(왼쪽 끝), 죽바우등(가운데 뾰족한 바위)
당겨 본 오봉산
이 밧줄이 바위에 쓸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였다
오른쪽으로 안전(?)하게 돌아가는 길이 있다
험한 곳을 기어이 오른다...
직벽 바위 중간에 터를 잡고, 둘레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구경을 하고...
염주만 하나 들면 참선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일 듯한 곳
겁도 없는 전사(?)...
험한 바위 사이에 둥지를 튼 비둘기 자매(?)...
영축산도 구경하고...
죽바우등도 보고....
두 팔로 바위를 벌려 놓았네...
건너다 보이는 영축산
삼형제바위
올려다 본 영축산 꼭대기에 사람들이 보인다
거너다 보이는 함박등, 채이등, 죽바위등(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드디어 영축산~오봉산 산등성(이)에 닿고...
1060m봉우리
건너다 보이는 단조평원과 신불산
영축산이 코 앞이다
영축산 삼각점
단조평원과 신불산
영축산에서 건너다 보는 함박등, 죽바우등, 오봉산(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자봉, 재약봉(미세 먼지 때문에 희미하다)
죽바우등이 뚜렷하다
영축산
신불산
신불산(왼쪽), 영축산(오른쪽)
뒤로 영축산이 보이고...
함박등에서 뒤돌아 본 영축산
함박등에서 뒤돌아 본 신불산
함박등에서 바라본 사자봉. 재약봉
신불산을 배경으로
신불산을 배경으로(함박등에서)
함박등에서 바라본 죽바우등
영축산을 배경으로(함박등에서)
뒤로 영축산이 보인다
영축산을 배경으로
뒤돌아 본 영축산
함박재
청수 중앙능선 갈림길
여기서 죽바우등, 오봉산 쯘 왼쪽으로 꺾어 간다
죽바우등 쪽으로 가면서 뒤돌아 본 신불산, 영축산
'쥐바위'라는데, 멧돼지같이 보인다
당겨 본 쥐바위
전망바위에서
금수샘
백운암
백운암
백운암
백운암
백운암
백운암
백운암
백운암
백운암
백운암 산신각
백운암
백운암
백운암
백운암
비로암
비로암
비로암
비로암
비로암
비로암 산정약수
비로암
비로암
비로암
비로암
비로암
비로암
비로암
극락암
극락암
극락암
극락암
극락암
극락암
극락암
극락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반야암
서축암
서축암
서축암
서축암
서축암
서축암
탑 뒤로 영축산이 보인다
서축암
□ 그밖에
1. 날씨 . 일기
○ 오르막에서는 땀도 조금 흘렸던 봄 날씨,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 미세 먼지가 제법 끼여 영축산에서 천황산, 재약산 따위가 잘 보이지 않았다.
2. 길 여건
○ 외송 칼바위 산등성(이) 길은 75~80도쯤 되는 가파른 길도 있었다.
○ 바윗길
3. 지형
○ 바위가 많았다.
4. 이번 구간 짐승 따위
○ 이름 모를 새(-‘비비비삐...‘하고 노래하는 새)
5. 이번 구간 식물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와 풀 가운데 내가 이름을 아는 것만 늘어놓았다.
가. 나무 갈래
※ 이 구간에 많이 있었던 나무 : 신갈나무, 진달래 - 밭을 이루고 있었다, 소나무[참솔, 육송]
○ 녹나뭇과 갈래 : 새앙나무[아구사리, 생강나무], 비목나무
○ 느릅나무 갈래 : 느티나무
○ 다랫과 갈래 : 다래나무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 두릅나뭇과 갈래 : 두릅나무
○ 물푸레나뭇과 갈래 : 쇠물푸레나무[쇠물푸레]
○ 볏과 갈래 : 조릿대
○ 소나뭇과 갈래 : 소나무[참솔, 육송], 잣나무, 전나무
○ 자작나뭇과 갈래 : 서어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진달래
○ 차나뭇과 갈래 : 노각나무[금수목(錦繡木)](?)
○ 참나뭇과 갈래 : 신갈나무, 굴참나무
○ 측백나뭇과 갈래 : 편백
○ 콩과 갈래 : 싸리[싸리나무, 산싸리, 소형(小荊,)]
나. 풀 갈래
※ 이 구간에 많이 있었던 풀 :
○ 부처손과 갈래 : 부처손
○ 장미과 갈래 : 쇠스랑개비[양지꽃]
○ 현호색 갈래 : 현호색
6. 식사
○ 이00순두부(신평 버스 종점 옆) - 참솔 님 제공
첫댓글 봄산, 5암자순례 멋진 봄나들이였습니다
졿은 사람들이 있어서 더욱 맛난 봄산행이었습니다
오래 즐산하세요
긴장을 자아내는 바위, 어려운 여건을 견디며 언제 보아도 범상치 않은 기풍을 풍기는 소나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시원스럽게 죽죽 뻗은 소나무 숲, 거기에 아름다운 사람들과 같이 한 산행 즐거웠습니다.
비록 진달래 따위가 충분히 피지 않아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쇠스랑개비[양지꽃], 현호색 따위 긴 겨울을 이겨내고 움을 틔우고 새싹을 내밀고, 멋진 꽃을 피우고,
곧 샛노란 잎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식물들이 내뿜는, 무르익는 봄 기운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덤으로 고즈넉한 절 구경까지 했으니 행복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좋은 곳을 기획해서 고맙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