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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맑은생활 향원사 원문보기 글쓴이: 향원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있는 화엄사는 544년(백제 성왕 22년)에 연기 조사가 창건하였다하며 절의 이름은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글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해회당(海會堂)과 대웅상적광전(大雄常寂光殿)만 세워졌고 그후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되었고 875년(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국사가 또다시 증축하였으나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30년(인조 8년)에 벽암선사가 절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7년만인 인조 14년(1636) 완성 하였다.
사찰내에는 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등 많은 문화재와 20여동의 부속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건물의 배치에 있어서는 일주문을 지나 약 30°로 꺽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金剛力士), 문수(文殊), 보현(普賢)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이문은 금강문과는 서쪽방향으로 벗겨놓는데 독특한 특징이다.
지리산은 말이없고, 칠불도 또한 설함도 없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도 없으니, 무심이랴야 백운과 함께 하리라.
가람배치
화엄사의 가람배치는 화엄법계의 연화장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보통의 사찰은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일직선상으로 되어 있지만 화엄사는 불이문ㆍ금강문ㆍ천왕문이 태극의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보제루ㆍ운고각으로부터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또하나의 태극형상을 이루고 있다. 첫 번째의 태극은 세간법을 비유한 것이며, 두 번째의 태극은 출세간법을 비유한 것이다.
화엄사의 경관은 변화가 있는 가운데 조화를 이룬 훌륭하고 특이한 공간미학을 지니고 있다.
전각 -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 절 들어가는 어귀에 우뚝 서 있는 문으로 기둥을 양쪽에 하나씩만 세워서 지어진 것이며 이문을 들어서면 오직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품에 안기게 되는 것입니다. 조선 인조18년(1640년)에 벽암선사가 중건 했고 고종3년(1866년)주지 지선스님과 도감 회성스님이 연목과 부연보수, 1919년에 진응스님이 도리일부, 부연, 연목보수, 1998년 종걸스님이 보수을 하였다. 글씨는 선조대왕의 네 번째 부인의 네째 아들인 의창군의 글입니다.
전각 - 금강문(金剛門)
인조 10년(1632년) 벽암 각성선사께서 중건했다. 금강은 쇠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이라는 뜻이며 그 무엇도 이를 파괴할 수 없으나 금강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음므로 금강의 마음을 가지면 모든 번뇌도 없어집니다. 왼 쪽에 밀적금강 : 금강의 무기를 가지고 부처님을 경호하는 야차신. 항상 부처님에게 친근하여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이 있으므로 밀적금강이라한다. 오른 쪽에 나라연 금강 : 나라연은 천상의 역사로서 그 힘은 코끼리 백만배나 된다. 나라연과 같은 힘으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문수동자 : 문수보살이 동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보처로 지혜를 맡고 있으며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자를 타고 있다. 보현동자 : 보현보살이 동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우보처로 진리 광대행을 맡고 있으며 행원의 실천을 나타내기 위하여 코끼리를 타고 있다.
전각 - 천왕문(天王門) 조선 인조10년(1632) 벽암각성대사께서 중건했다. 지국천왕는 비파를 들고 있으며 수미산의 동방(동승신주)을 수호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며 나라를 잘 다스리고 지키는 천왕
증장천왕는 칼을 잡고 있으며 수미산의 남방(남섬부주)을 수호하고 항상 사람을 관찰하고 더욱 길고 넓게 중생의 이익을 많게 해주는 천왕
광목천왕는 용을 잡고 있으며 수미산의 서방(서구야니주)을 수호하고 위엄으로 나쁜 것을 물리치고 넓고 큰 눈으로 국토를 바르게 지키고 중생을 이익되게 해주는 천왕
다문천왕는 보천을 들고 있으며 수미산의 북방(북구로주)을 수호하고 재물과 복덕의 부귀를 맡고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고 설법을 많이 들으며 불법을 옹호하는 천왕
전각 - 원통전(圓通殿) 조선 숙종29년(1703) 계파선사께서 중건했다.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님,칠성,독성,산신이 모셔져 있으며 또 법당에 부휴집(浮休集), 염불직지(念佛直指)등 많은 귀중한 목판본이 보관 되어있다. 편액은 정조23년(1799)에 조종현에 의해 쓰어진 것이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은 크고 넓고 자비로운 덕이 있으신 분으로 가장 널리 우러름을 받으시며 극락세계에서 아미타 부처님을 도우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곳에 나타나 형편을 살피시고 모든 이들을 괴로움과 어려움에서 구해 주시는 인자하신 분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고도 합니다.
전각 - 보제루(普濟樓) (지방문화제 49호) 보제루는 부처님의 법문을 들려주어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는 법요의식(法要儀式) 장소입니다. 누각은 정면7칸, 측면4칸의 맞배지붕 누각형식의 건물로 인조때 벽암선사(碧巖禪師)가 중창하시고 순조27년(1827)에 금봉우익선사(錦峰祐益禪師)가 크게 고치고 1974년 12월에 리산 도광선사께서 중수하셨습니다.
전각 - 운고각(雲鼓閣) (지방문화재 제 175호) 운고각은 1918년 금정암에 계시는 세월(世月)비구니께서 중건하시고 1976년 명선(明煽)스님이 중수를 했으며 1998년 종열(宗烈)스님이 기와번와와 단청불사를 했다.
사물은 중생들을 제도하는 네가지 물건이라고 합니다. 법고(法鼓)는 축생(짐승)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치는 것이며 악기로서의 북이 아니라 법요에 쓰는 북이라는 뜻에서 법고라 합니다.
운판(雲版)은 공중을 날아 다니는 중생,허공을 헤매이는 영혼등 허공계 중생들을 제도하기위하여 치는 것으로 청동으로 된 판을 구름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운판이라 합니다.
목어(木魚)는 물속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치는 것으로 나무를 잉어 모양으로 만들어 그 속을 비게 파내어 두두리면 소리가 납니다.
범종(梵鐘)은 육도중생(六道衆生)을 제도하기 위하여 새벽에 28번을 치는 것은 천상 28천(욕계6천,색계18천,무색계4천)이며, 저녘에 33번 치는 것은 28천과 오도(지옥,아귀,축생,인간,아수라)합해서 33이 됩니다. 육도 중생들이 진리의 범종 소리를 듣고 기쁨 마음을 내어 불도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전각 - 범종각(梵鐘閣) 화엄사에 3층누각의 큰 종각이 있었는데 임진란때 왜병이 종을 갖고 가다가 용두리앞 섬진강에 빠쳤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범종각은 1976년 5월1일에 착공하여 11월28일 준공과 더불어 타종식을 거행했습니다. 높이는 248㎝, 직경 145㎝, 무게는 1600관(6000㎏)입니다.
종면에 새겨진 조각형태는 사리탑에 있는 비천상 네분과 4사자상의 모습으로 했으며 글씨체는 장육전 화엄석경의 글이므로 화엄사의 국보, 보물로 이루어진 화엄사식 범종입니다. 종 이름은 화엄사가 지혜의 보살인 문수보살이 머물고 있는 곳이니 지혜를 범어로 반야라고 합니다. 그래서 반야범종(般若梵鐘)이라고 부릅니다.
전각 - 명부전(冥府殿) 인조 8년(1630년) 벽암스님 중건, 1970년 리산 도광선사께서 중수했다. 편액은 정조 23년(1799)에 조종현의 글씨이다. 명부전은 지장보살(地藏菩薩)과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시왕(十王)들을 모셨습니다.
지장보살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남다른 칭찬과 당부를 받고 매일 선정에 들어 모든 이들의 마음과 힘을 살피며 중생들 모두를 괴로움과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위해 죄를 짓고 고통받는 지옥중생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구제한 다음에 부처님이 되겠다고 서원을 세운 대비대원(大悲大願)의 보살님입니다.
시왕(十王)은 저승세계에서 죄의 가볍고 무거움을 판결하는 분으로 진광대왕,초강대왕,송제대왕,오관대왕,염라대왕,변성대왕,태산대왕,평등대왕,도시대왕, 오도전륜대왕입니다.
전각 - 영전(靈殿) 조선 인조10년(1632)때 벽암선사가 중건 하고, 헌종 2년(1836)에 보수했다. 본래 영전은 응향각(凝香閣)의 중노전(中爐殿)으로 대웅전, 나한전의 소임을 맡은 스님이 거주했던 전각 이었는데 영전으로 바뀌면서 연기조사, 자장율사, 원효성사, 의상조사, 도선국사등 화엄사의 역대조사, 선사, 대사 분들의 영정(影幀)을 모셨던 전각이다. 그런데 아깝게도 영정이 1976년에 도난 당했으며, 현재는 보물인 화엄석경을 보관하고 있다.
전각 - 나한전(羅漢殿) 인조10년(1632)벽암선사께서 중건하였는데 정조조(正租朝)에 화재로 소실된후 정조19년(1795)에 담인(曇仁)선사가 중건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16분의 아라한(阿羅漢)을 모신곳이며 응진전이라고도 합니다. 번뇌의 적을 죽여 영원히 깨달음에 들어가서 어리석은 세계에 태어남을 받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진리를 베풀어 바르게 이끌어 주시니 사람들에게 존경얻어 공양을 받을만한 자격을 갖춘 훌륭한 분입니다.
당우 - 덕장전(德藏殿) 인조10년(1632) 벽암선사께서 중수하고 1998년 10월에 종열스님이 보수 하였다. 본전(本殿)은 불교학(佛敎學)을 배우는 전문 강원이였는데 6.25동란 당시 종무소가 소실된 후 종무소로 사용하다가 보수후 처사님들이 거주하고 있다.
덕(德)은 바른 도를 행하므로 하여 얻은 공덕이 있어 잃지 않은 것이며, 또는 내가 얻은 것을 다른 이에게 미치게 하는 것이 도(道)이다. 이러한 진리를 몸소 수행하고 실천하며 사는 전당(殿堂)이다.
전각 - 삼전(三殿) 인조10년(1632) 벽암선사께서 중수하고, 헌종 2년(1836)에도 보수, 1970년 리산 도광선사께서 보수, 1996년 12월에 종열스님이 헤체후 신축중창 하였다. 편액은 조선 말엽 창암(蒼岩) 이삼만(李三晩)의 글씨이다. 삼전은 동노전(東爐殿)으로 원통전, 명부전 소임을 맡은 스님이 거주했던 전각이었는데,현재는 주지 스님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당우 - 적묵당(寂?堂) 인조10년(1632) 벽암선사께서 중수하고 ,정조 22년(1798)에 행원(幸元)스님이 중수했으며, 1978년 명선(明煽)스님이 보수 하였다. 본당(本堂)은 화엄사승가대학 학인(學人)스님들이 부처님의 경전교리을 배우고 실천하며 수행하는 장소요. 또 대중스님들이 모두 모여 공양(供養)을 하며 대중공사?회의도 하는 대중방(大衆房)이다.
적멸(寂滅)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여신 곳. 화엄경을 설한 장소를 적멸도량이라 함으로 화엄사의 적묵당은 번뇌를 쉬고 고요적적한 세계로 이끌어 주는 승당(僧堂)이다.
당우 - 청풍당(淸風堂) 1987년 6월10일에 원응종원(圓應宗源)스님이 중창하였다. 백옥같이 아름답고 고결하며 청정한 마음의 향풍(香風)을 갖고 불보살님과 사중(寺中)을 위하여 시봉하며 수행정진하는 보사(補寺)님들이 거주하는 당우이다.
당우 - 연화당(蓮華堂) 1994년 4월에 평전(平典)스님이 중창하였다. 본당은 1층은 종무소이며, 2층은 신도회법회,학생회법회, 수련회등을 한다. 연화(蓮華)의 꽃의 모습과 향기가 사랑스럽고 진흙 가운데 나서 청정한 꽃을 피우듯, 중생들이 불법을 듣고 수행정진하여 부처님의 진리의 향음에 젖어 광명의 빛인 연화장세계에 상주하는 것이다. 2002년 4월 13일 전기누전을 인하여 소실되었다.
당우 - 영산전 1874년 구례 현감인 방효함이 건립한 건물이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 억불(抑佛)하던 권력층의 일부 양반들이 불교를 후원하기 시작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 건물은 지방 수령이 적극적으로 불사를 벌였던 좋은 예가 된다. 원래 영산전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법화경을 설법하는 모습, 이른바 영산회상(靈山會相)을 제현한 예불용 전각이다.
그러나 화엄사 영산전은 현재 선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내부 칸막이벽들이 변형되었고, 정면에 툇마루가 추가되는 등 변화가 심하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 지붕 집이다.
* 영산전은 전각이라 해야 마땅하나 선방으로 변형하여 (사사로이)쓰고 있기 때문에 당우라고 표현한 것이다.
당우 - 견성당(見性堂) 서기 1937년에 중건 하였으며 1970년 리산 도광선사께서 중수하셨다. 견성당인 탑전(塔殿)은 부처님 사리탑에 예배하는 전당(殿堂)인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서, 사리탑을 보며 탑에 담긴 사상인 즉 수행자는 불성을 밝히기 위해서 번뇌를 끊고 지혜를 얻어 삼계의 대도사인 부처님 되기를 원하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모습의 탑을 예배하면 연화장세계로 인도(引導)하는 당우(堂宇)이다.
당우 - 원융요(圓融寮) 1987년 6월10일에 원응종원(圓應宗源)스님이 중창하였다. 본 당우는 1층은 공양간 및 식당, 목욕탕이 있고 2층은 원주실외 객실로 사용하고 있다. 걸리고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우러짐이 없이 가득하고 만족하여 완전히 일체가 되어서 서로 융합하므로 방해됨이 없는 것을 원융이라 한다. 이와같이 모든 사람들이 차별없이 함께 지내는 요사(寮舍)이다.
당우 - 만월당(滿月堂) 1986년 6월10일에 원응종원(圓應宗源)스님이 중창하였다. 보름달의 만월(滿月)이 이곳을 모자람이 없이 원만히 밝고 환하게 비추니 만월 빛으로 인하여 만월당 대중 스님들이 만월지상(滿月之相 : 아름다운 부처님의 모습을 말함)인 모습으로 지내는 전당이다.
국보
4사자3층석탑 (국보 제35호)
4사자3층석탑은 화엄사의 창건주인 연기조사와 어머니의 전설을 담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14년(645)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불사리 73과를 모셔와 연기조사의 공덕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탑으로 불사리 공양탑이라고 한다.
각황전 (국보 제67호)
본래 이 자리에는 2층 4면 7칸의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을 의상조사께서 조성 하였으나 정유재란때 소실되었다.
계파 성능선사(桂波 性能禪師)께서 장육전 중건 불사의 대발원의 백일기도로 문수보살의 선몽으로 공양주 스님이 화주승으로 선택되고, 시주자는 화엄사에서 잔심부름을 해주고 누룽지 따위를 얻어가는 거지노파로 자신의 가난함을 한탄하고 불보살의 원력으로 왕궁에 태어나기를 서원하고 소(沼)에 몸을 던지고 공주로 환생했는데 한쪽 손을 쥔채로 태어났으며 5년후 공양주 스님을 만나 손이 펴지니 손바닥에 장육전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하여 각황전은 숙종25년∼28년(1699∼1703)에 중건 되었으며 정면 7칸,측면 5칸의 2층 팔작지붕으로, 그 건축 수법이 웅장하니 어느 것도 비교할바가 못되는 법당이다. 법당안에는 3불 4보살인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보현보살,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다보여래, 지적보살이 모셔져 있으며, 부처님을 깨달은 왕(성인중에 성인)이라는 뜻과 숙종 임금에게 불교 사상을 일깨워 주었다는 뜻으로 각황전이라고 한다. 편액은 1703년에 형조참판 이진휴(李震休)가 썼다.
괘불탱화 (국보 제301호) 높이는 13m, 폭은 8m인 괘불은 마(麻) 바탕에 채색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로서 효종 4년(1653) 5월에 지영ㆍ탄계ㆍ도우스님 등이 조성하였다.
거대한 규모이면서 짜임새있는 구도, 균형잡힌 형태, 치밀한 선등이 17세기 중엽의 뛰어난 불화임을 알게 한다. 전체적 화면구성은 석가모니불과 문수?보현 보살을 중심으로한 삼존형식으로 10대 제자와 사천왕이 호위하고 있다. 이 불화는 밝고 화사한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영산회상의 진리로 가득한 환희의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 괘불은 국가에 천재지변이 생겼을 때나 기우제(祈雨 祭), 영산재(靈山齋), 예수재(豫修齋),수 륙재(水陸齋)같은 것을 행하기 위해 신도들이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할 때 모시는 신앙의 대상물이다. 티베트는 괘불을 당카라고 부르며 석가탄신일,성도일,열반일에 큰 축제을 열고 이 때 당카를 내어 모시고 소원을 빌거나 예배를 드린다. 연중 행사로 내어 모시는 것을 ‘거불(巨佛) 햇볕쬐기’ 라고 하며, 부처님이 현세에 나타나서 고통을 덜어 주는 날이라고 믿고 있다.
석등 (국보 제12호) 신라 문무왕17년(677)에 의상조사께서 조성한 것으로이 탑의 높이는 6.36m이며 우리나라 최대의 석등이다. 꽃잎 형태는 우담바라화로 이 꽃은 3천년만에 한 번 핀다고 하여 부처님 오심이 지극히 드문 일이라 비유 한다. 꽃의 8잎은 8정도(正見,正念,正精進,正命,正業,正語,正思惟,正定), 4개의 火窓은 사성제(苦集滅道)와 부처님의 광명, 북의 모습은 진리의 소리이니, 즉 팔정도로 수행하여 사성제의 진리의 이치를 밝히고 광명을 놓으시며 진리의 소리를 중생들에게 들려 주시어 마음의 등불(自燈明 法燈明)의 세계를 밝혀 주시는 부처님의 참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석등이다.
보물 4사자감로탑 (보물 제300호) 4사자 감로탑은 신라 문무왕17년(677)에 조성한 것이며 4사자의 표정은 인간의 감정인 희노애락(기쁨,성냄,슬픔,즐거움)을 표현한 것으로 사람들의 수많은 번뇌를 뜻하며, 사자의 표현은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법문을 사자후(獅子吼) 또는 감로법(甘露法),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석탑은 사람들의 수많은 번뇌를 부처님의 청정한 지혜를 얻게 하여 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나 연화장세계로 이끌어 주는 감미로운 탑이라 할 수 있다.
대웅전 (보물 제299호)
대웅전은 인조8년(1630)에 벽암(碧巖)스님과 문도에 의하여 중건 되었으며 화엄사에서 가장 오래된 법당이며 크기는 전면19.5m, 측면12m로서 정면 5칸 ,측면3칸이며 부처님 머리위에 못과 풀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만들어진 우아하고 형태가 일품인 천개(天蓋)가 조각 되어있다.
법당에는 깨달음의 세계(진리)를 몸으로 삼기 때문에 모양과 빛깔이 따로 없고 오고 가는 곳도 없이 진리 그대로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淸淨法身 毘盧遮那佛)과 열심히 수행하신 공덕으로 복과 덕이 가득하여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는 원만보신 노사나불(圓滿報身 盧舍那佛)과 모든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신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 釋迦牟尼佛)로 목불(木佛)인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후불 탱화는 영조 33년(1757)에 만들어 졌고 대웅전 편액은 인조 14년(1636년)에 의창군(義昌君)이 쓴 글씨이다.
동5층석탑 (보물 제132호) 신라말기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道詵國師)께서 조성한 것으로 신라, 백제의 양식이 혼합된 탑이다.부처님의 모든 법이 거짓과 꾸밈이 없고 순수하여 진실 그대로 참된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곧 부처님 도량은 참된 장소요.
세계요. 법계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탑이다. 증명탑,다보탑,다보분좌탑이라고도 한다. 오층은 삼계(욕계,색계,무색계),보살계,불계를 표현하고, 장식과 꾸밈이 없음은 청정한 마음을 표현하며, 단층기단은 일승법을 뜻하니 이 탑의 사상은 부처님과 보살님과 사람들의 성품은 둥글고 원만하여 차별이 없고 꾸밈이 없으며 평등한 마음의 세계가 곧 화엄세계요, 연화장세계라는 것을 증명하는 탑이다.
서5층석탑(보물 제133호) 신라말기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께서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조성한 것으로 화엄사의 대가람의 배가 백두산의 혈맥의 웅대한 힘과 섬진강의 태극의 힘에 출렁되니, 부처님 사리를 두탑에 봉안하여 요동함을 막음과 동시에 가람의 원만한 기운이 감돌도록 하였다.
기단 아래 조각형태는 12지신으로 개개인의 사람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은 수호신이고 위 부분의 조각형태는 팔금강(八金剛)과 사천왕(四天王)으로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의 제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신이며 이 탑을 일명 옹호탑(擁護塔)이라고도 부른다. 2층 기단은 상대의 차별을 없애고 절대 차별이 없는 이치인 불이법(不二法)을 표현한 것이다. 1995년 8월에 보수중 이 탑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22과를 비롯, 16종 72점의 성보 유물이 나왔다.
화엄사대웅전삼신불탱(보물 제1363호)
중앙의 비로자나불탱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노사나불탱, 오른쪽에는 석가모니불탱을 각 한 폭씩 그려 봉안한 것으로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도는 화면 중앙 상단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인 문수·보현보살과 8대보살, 4위의 타방불과 6위의 제불, 사자와 코끼리 탈을 쓴 성중(호계대신(護戒大神), 복덕대신(福德大神))들이 에워싸듯 배치되어 대칭을 이루고 있다.
키 모양 광배에 결가부좌한 채 앉아 지권인을 짓고 있는 본존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며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감이 있다.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큼직하고 길다란 귀를 갖추었으며, 다자색 법의의 깃을 따라 연두빛과 분홍빛깔의 보상화문이 장식되어 다소나마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화엄석경 (보물 제1040호) 장육전은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조사가 2층4면7칸의 사방벽에 화엄경(華嚴經)을 돌에 새기고 법당안에 장육황금입불상(丈六黃金立佛像)을 모셨으며,
법당을 짓게 된 연유는 의상스님께서 당나라에서 화엄경을 통달하시고 귀국하여 원효스님과 법담을 나누니 신라국에 없는 화엄경에 대하여 능통하여 사연을 물어본즉, 백제성왕 22년에 구차례(구례)라는 곳에 인도스님이신 연기조사께서 지리산 화엄사를 창건하여 천축적 화엄경을 설법하여 화엄의 꽃이 피워 있었다는 말씀을 듣고서, 화엄사에 와보니 부처님 성지에 온 느낌을 받고, 백두산 혈맥자리 아래에 부처님 나라에서 온 연기존자께서 화엄경을 설한 땅이며 화엄불국세계 화엄사가 화엄의 근본도량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장육전 법당을 세우게 되었다.
임진왜란때 건물이 파괴 되어 지금은 조각만 남아 화엄석경으로만 불리우고 있다.
※ 글씨는 신라 명필 김생체 이다.
성보유물과 문화재
계파선사 홍가사(弘袈娑) 효종이 왕자시절에 각황전을 창건했던 계파선사에게 바쳤던 가사.
교지(敎旨) 남한산성을 축성한 벽암선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국왕이 의발을 하사한다는 교지.
녹색유리 사리병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사리병(높이 5㎝, 구경 1.1㎝, 길이 2.3㎝)으로 목이 짧고 몸이 큰 모양으로 녹색의 뚜껑이 있다. 이 사리병속에 좁쌀만한 크기의 투명한 22과의 사리가 봉안돼 있었다.
다라니경 필사본과 탑인이 찍힌 종이 발견당시 흙먼지에 덮혀있는 지류뭉치였는데, 긴급보존처리 결과 다라니경 필사본과 탑인이 찍힌 두루마리의 백지묵서경으로서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국보급 문화재로 밝혀졌다.
각황전 목조 칠존불상 화엄사의 각황전에는 3구의 불상과 4구의 보살상 등 모두 칠존불상이 봉인되어 있다. 불상은 중앙의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미타여래좌상, 오른쪽에 다보여래좌상을 배치하였고, 다시 석가여래상은 오른쪽에 문수보살과 왼쪽에 보현보살입상을 협시보살로 배치하였으며 불단의 맨 끝 오른쪽에는 직적보살을,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을 배치하였다.
당간지주(幢竿支柱) 높이 2.9미터 이 당간지주는 화엄사 앞뜰에 있는 보제루의 오른쪽에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일반적인 당간지주와는 달리 지주의 끝부분이 앞뒤로 둥글게 깎여 있다. 뿐만 아니라 옆면 모서리의 모를 죽이는 방식이 중간부까지만 나타나고 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대웅전 목조 삼신불좌상 화엄사의 대웅전 안에는 목조 삼신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주존불은 비로자나불이며, 협시불상은 왼쪽의 노사나불과 오른쪽의 석가여래불로 이루어졌는데, 이와 같은 세 불상의 집합체를 삼신불이라 부른다.
동자상(童子像) 화엄사 금강문의 인왕상 뒤편에 있는 2구의 동자상은 문수동자와 보현동자이다. 왼쪽의 보현동자상은 흰 코끼리 등에 걸터앉아 있으며, 하얀 얼굴에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청색의 천의 자락을 걸쳤고, 가슴에는 붉은 띠를 둘렀으며, 양손은 손바닥을 내보이고 있다.
사천왕상(四天王像) 사천왕은 부처님이 계신 불국토를 위해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는 천왕으로 사악하고 못된 들이 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람 수호를 위해 절 입구에 봉안된 수호신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사천왕상은 험상궂은 얼굴로 악령을 물리치는 표정과 몸짓을 하고 있는데, 화엄사의 경우 천왕문의 오른쪽에 동방지국천왕과 남방증장천왕을 배치하였고, 왼쪽에는 북방다문천왕과 서방광목천왕을 배치하였다.
원통전 목조 관음보살좌상 원통전은 관음보살을 주존으로 모시는 전각이다. 관음보살은 대승불교의 으뜸가는 보살로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화엄사의 원통전은 대웅전의 왼쪽에 있으며, 목조 관음 보살좌상은 유리 감실 안에 봉안되어 있다.
이 관음보살좌상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얼굴의 형태는 사각형을 이루었으며, 이목구비의 표현이 가늘고 작은 편이다. 이마에는 백호가 표현되었고, 목에는 '삼도(三道)'라고 하는 세 겹 주름이 져 있으며, 가슴 위에는 영락(瓔珞)을 장식하였다. 윗옷은 양어깨를 덮은 형태로 가슴 밑의 속옷 자락은 띠로 묶여 있고, 연꽃무늬로 장식되었는데 꽃잎이 바깥으로 벌어진 형태가 각황전 불상과 비슷하다. 하체를 덮는 옷자락은 양무릎을 감싸고 올라와 양다리의 가운데로 모아졌다.
이 보살좌상의 조성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대략 조선 후기로 추정되고 있다.
인왕상(仁王像) 호화엄사의 금강문 내부의 양쪽에 서 있는 인왕상은 금강역사라고도 하며 가람의 출입문을 지켜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 예부터 인왕상은 험상궂은 인상으로 악한 것들에게 겁을 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주로 머리는 질끈 동여매고 윗옷을 벗어 제쳐 상체의 힘있는 근육을 과시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찾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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