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동의 동명을 가져오게 한 복사골은 지금도 도화제1동 경사진 곳에 마을 이름을 남겨 전하는데, 여기에는 또 다음과 같은 전설이 함께 남아 다시금 그 옛날 이곳의 도화풍경의 신비경을 상상하게 된다.
아득한 옛날 옛적, 이곳 복사골에는 마음씨 착한 김성(金姓)의 노인이 아름다운 무남독녀 도화낭자(挑花娘子)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도화낭자의 아리따운 모습과 마음씨는 천궁(天宮)에까지 알려지게 되어 옥황상제의 며느리로 하늘에 올라가게 되었다.
김노인은 딸이 천궁으로 출가하는 것이 기쁘기는 하지만 외딸을 영영 이별하게 되니 서운한 마음이 이를 데 없었다. 김노인은 그 선관이 주고 간 씨를 집 근처에 심고 얼마 후에 복사나무가 자라 꽃이 피는 것을 즐겁게 구경하며 지냈다. 그리고 김노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복사나무는 번성하고 마을 사람들 또한 김노인과 도화낭자를 생각하며 복사나무를 많이 심어 일대가 모두 복사꽃밭을 이루기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이적(神異的)인 전설, 선경을 방불케 하는 도화풍경(挑花風景)과 함께 이 복사골을 중심으로 한 일대를 도화동으로 부르게 된 것은 퍽 오랜 옛날부터의 일로 고종조 초기에 편찬된 육전조례(六典條例)에 의하면 서부 용산방(龍山坊)에 도화동(挑花洞)의 내계(內契), 외계(外契)가 갈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구역이 넓기 때문에 동을 내동·외동으로 함은 물론 계도 내동계·외동계로 갈라 편성하였던 것이다.
: 내가 살던 동네가 이런 아름다운 전설이 있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도화동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뭐 그냥 복숭아 나무좀 심었었나; 이런 것이었는데
찼아보니 이렇게 멋진 이야기가 있다니 약간은 감동이었다.
나는 도화제1동 뒤쪽에 있는 2동에 사는데 도화1동에 있는 언덕을 다시한번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