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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귀여운 아기 뽑기 기계
김식우(2025.5.6.)
‘오늘 입주민의 단합과 생활편의를 위해 야시장이 개최되오니......’
어제부터 관리사무소 안내방송이 몇 차례나 이어지고 이내 고요한 거실의 적막은 깨진다.
“아빠! 아빠!! 야시장 구경가요!! 네? 네?? 친구들도 다 간다고 했단 말이야!!”
초등학교 5학년 딸과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딸이 난리다.
‘오호라~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피할 길이 없었다. 며칠 전 아내의 ‘아이구~ 장해라~ 우리 남편. 대학을 다시 가셨어요~ 아주 그냥 대전시민대학 장학생 되시겠어요~~’ 하던 약간의 빈정거림(?)과 경고성 발언이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중인 나는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지자체의 시민 강좌를 수강하고 있고 그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요리, 빨래, 청소, 아이들 돌봄 중 주어진 어느 임무에서인가 분명 아내의 눈에 거슬리는 게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말은 부드러웠으나 아내의 엄중경고임이 분명했다.
나는 ‘아~~정말 귀찮네.. 왜 이런 걸 해가지고..상술도 이런 상술이 없구만...’하면서도 주섬주섬 츄리닝을 챙겨 입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가자!’는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신나서 ‘에~이~~에이~~’소리를 치며 기뻐했다. 그런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아빠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방금 전의 귀찮음은 온데간데 없어졌지만, 이내 ‘「위생상태이며....온갖 몸에 좋지 않은 솜사탕, (설탕을 그냥 퍼먹는 것과 다름없는)뽑기 등등」이 머릿속에 하나 둘 떠오르며 가득 채운다. ’귀찮음‘이 ’요걸 어떻게 제지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지상에 차가 없는 단지 컨셉으로 지었다는 우리 아파트는 단지 내 길이 넓고 꽤 길다. 그 곳을 가득채운 먹거리와 미니바이킹, 4D 영화관람차, 솜사탕 기계, 반짝반짝 빛나는 오색전구 장식등은 이미 아이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아파트 공동현관을 나서자마자 양손에 다정하게 잡은 딸들의 손은 로켓발사순간처럼 순식간에 강력하게 뿌리쳐졌다.
나는 이미 눈 밖으로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 나사며 야시장을 구경한다. 야외테이블에서 친한 이웃끼리 둘러 앉아 막걸리에 파전을 먹는 모습도, 미니 놀이기구를 타며 꺄악 꺄악 비명을 지르는 어린이들의 모습도 정겹기만 하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신혼부부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꼬맹이들을 어떻게 찾나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는데 사람들이 장벽처럼 둘러 싼 곳에 막혀 버린다.
‘뭐길래... 저리 사람이 많나’싶어 이리저리 틈을 비집고 들여다본다.
‘추억의 금붕어 잡기 체험, 10분에 5천원, 「잡은 물고기는 2마리까지 가져가도 됩니다.」’라는 문구와 우리 막내딸만한 아이와 오빠로 보이는 아이가 손바닥만한 잠자리채로 금붕어를 건져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보인다. 그 아이들이 금붕어를 잡을 듯 말 듯하자 주변의 어른이며 아이며 안타깝다는 듯 탄식을 내뱉는다. 그 옆으로 주인으로 보이는 자가 ‘잘할 수 있어! 잘 잡아봐! 이걸 물에 넣고 휙휙 막 휘둘러! 그럼 무조건 한 마리 잡는다!!’고 말한다. 이 어린이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구경꾼들에게 꼭 보여줘서 게임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상술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물에 걸렸다 빠져나와 지느러미며 아가미가 찢겨 물위에 둥둥 뜬 금붕어들을 수면을 훑어 건져내어 물도 없는 빨간색 플라스틱 용기로 툭툭 던져 넣는다. 이미 그곳에는 빳빳하게 경직되어 있는 금붕어 시체들이 가득하고 그 위에 던져진 금붕어는 숨이 막히는지 펄떡이다가 이내 가만히 누운 채 뻐끔거린다.
“아빠! 아빠!!” 그 광경을 보고 수많은 감정과 생각이 내안을 뒤섞고 있어 하지 못했는데 딸들이 나를 먼저 본 것이다. 그 때였다. 나를 깨운 건 우리 딸들이었다. 체험을 하는 아이들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 아이들을 응원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여러 생각에 잠겨 미처 우리 딸들을 발견했다.
“나도 저거 할래!! 저거 잡아서 집에서 키울래! 응?? 응???”
막내딸이 난리다. 우리 집에는 어항도 없으니 안 된다고 달래고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 손을 잡아끌었다.
“아!! 그럼!! 나도 잡고 다시 놔주면 되잖아! 왜 재 네들은 되는데..나는 안 되는데....왜~~아아앙~~.”
둘째는 아빠 눈치를 보며 말이 없고 막내는 눈물을 글썽이다가 이내 악을 쓰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막내를 번쩍 안아 그 곳을 빠져 나온다. 아빠 품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뒤로 활처럼 젖히고 발버둥을 치며 악을 쓰는 녀석을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한 사람들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나와 솜사탕 자판기 기계 앞에서 아이를 내려놓았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 잔뜩 화가 난 표정에 원망이 섞인 눈빛을 섞어 아빠를 째려본다.
막내딸을 달래기 위해 2천원이라도 아까웠을 솜사탕을 5천원에 산다. 버튼을 누르자 온갖 반짝거리는 불빛과 음악에 맞춰 기계가 돌아가며 형형색색 솜사탕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보여진다. 아이도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한참을 지켜보다가 이내 진정을 찾은 듯 보였다.
“승혜야! 오늘은 자기 전에 동화책 읽기 말고 아빠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게~”
그렇게 야시장 나들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막내 침대 옆에 앉아 생각내는대로 막 지어낸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통영 벽방산에는 거인 가족이 살고 있었어요. 거인아빠와 엄마는 언니와 동생에게 산에서만 놀라고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언니와 동생은 나무 틈새에서 숨박꼭질을 하고 놀다가 저 멀리 사람들이 타고 온 차를 보게 되었지요. 정말 신기했지요. 어떤 동물이 바닥을 기어가는 돌 같은 거에 쏙 들어가고 그게 막 움직이니까요. 자매는 큰 바위 사이 뛰어넘기 놀이, 나무에서 숨박꼭질 하기 놀이만 하다가 귀엽게 생긴 움직이는 돌을 처음 발견하고 신났지요.
거인이니까 우리가 타는 큰 차도 장난감 미니카처럼 보였겠지. 그렇게 자매는 움직이는 돌을 따라 사람들이 사는 마을까지 내려왔어요. 신기함에 마을 여기저기를 막 돌아다녔어요. 사람들은 거인의 등장에 막 비명을 지르고 여기저기로 뛰어 도망 다녔어요. 거인 자매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지도 모른 채 신기함에 인간마을을 쿵쿵 뛰어다니며 신나했어요.
그러다가 벽방병설유치원 건물을 봤지요. 땅바닥에 엎드려 조그만 건물을 쑤욱~ 뽑아서 들어 올렸어요. 그리고 안을 보니 승혜와 친구들이 막 울고 있었어요. 거인자매는 인간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개미같이 조그만 동물들이 그저 신기했어요. 자신들처럼 이 아기들에게도 엄마 아빠가 있다는 걸 몰랐지요. 그저 신기함에 엄지와 검지사이로 잡은 건물을 막 흔들어보고 안을 쳐다보고 그랬지요.
어떤 아이는 거인이 건물을 흔들 때 건물 밖으로 떨어져 죽고 어떤 아이는 교실안 책장이 쓰러지면서 깔려 죽었지요..자매는 신이 나서 유치원을 들고 다시 산으로 갔어요. 그리고 동생거인은 큰 나무를 뽑아 언니와 함께 뽑기 놀이를 하자고 했어요. 승혜와 친구들은 엄마 아빠를 부르며 울부짖었지만 거인은 몰랐어요. 큰 나무가 창문을 뚫고 들어와서 이리저리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어떤 친구는 팔이 잘리고 또 어떤 친구는 거대한 나뭇가지에 찔려 뽑혀 나갔지요.....’
유튜브다 뭐다 요즘 유치원생들은 미디어를 빨리 접한다. 예전에 내 할머니가 들려주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는 이야기에는 콧방귀를 뀐다. 그래서 다소 끔찍하지만 상세한 묘사와 함께 이야기를 지어냈다. 내 전략이 적중했는지 막내딸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그리고 마지막 말 ‘승혜야! 동물도 이와 같아. 같이 사는 엄마, 아빠... 가족이 있고 인간처럼 말은 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다치면 고통을 느끼듯이 그들도 마찬가지야. 친구들 중에 강아지 키우는 친구들 있지? 우리 사람들과 말은 통하지 않지만 주인의 생각을 알고 따르잖아. 식물, 동물..모든 생명은 소중하단다. 우리 인간도 그저 이 지구에 사는 동물 중에 하나야’ 라는 말에 고개를 얼른 끄덕인다. 나는 똑똑한 우리 딸이 말을 알아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해하며 머리와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넨다.
잠이 든 막내딸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거실로 나와 테이블에 앉으니 다시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팔-이 전쟁),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뺏기 위해 혹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참혹한 살육전쟁(우-러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 권력을 지키고자 혹은 뺏기 위해 총칼로 위협하는 시대(미얀마)에 우리는 살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어둠이 깔린 거리는 달빛 하나 없이 잔잔한 파도만 일렁이는 밤바다 같다.
문득 10여 년 전 시리아 내전을 피해 탈출하려다가 배가 뒤집혀서 해변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시신으로 발견된 4살 아이, 쿠르디가 생각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어쩌면 거인의 아기 뽑기 기계 장난감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거인은 실제 하지 않으나 우리가 만들어낸 ‘옳은 것’에 대한 확신과 ‘나’,‘우리’라는 생각, 그게 바로 거인이 아닌가 한다.
첫댓글 일상에서 낚아올린 소재르 삶의 사유를 비단옷처럼 아름답게 입혀 놓았네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하여 주제 중심으로 에피소드가 호응되면 좋을듯합니다.)
유병덕 수필가님 카페에 방문하셔서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김영훈 카페가 활성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