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에게
오늘은 삼국시대의
불교문화예술의 양상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불교가 유입된 시기는
부족 연맹체의 초기국가의 형태에서
정복국가의 개념인 고대국가로 넘어가면서
절대왕권이 확립되고
중앙집권 체제가 강화되는 시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불교가 새로운 사조(思潮)로서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최초로 유입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이었으며,
백제는 침류왕 1년(서기 384)년에 유입되어
두 나라가 똑같이
서기 392년에 불교를 국교로 인정하였습니다.
5부족(五方) 연맹국가였던 고구려와 백제는
강력한 중국과 인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역문제에 적응하기 위하여
신라보다 먼저 고대국가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두 나라는
급속한 영토의 확장(hardware)을 채워 줄 software,
즉 문화의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으며
불교의 국교화가 그 대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고구려 18대 고국양왕(故國壤王) 9년(391년)에
왕이 백성들에게
“불법을 숭신하여 복을 구하라(崇信佛法求法)”는
영을 내린 기록으로 보아
불교문화의 국가화와 불법을
복되게 잘 살게하는 행복증진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인
고구려인들의 불교관을 엿 볼 수 있습니다.
백제도 고구려와 같이
백제 17대 아신왕(阿莘王) 1년(392년)에
왕이 “불법을 믿어서 복을 구하라”는 영을 내린 것으로 보아
불교문화의 국가화와
불법을 복되게 잘 살게하는
행복증진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인 백제인들의
불교관을 엿 볼 수 있습니다.
백제는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법으로 살생을 금하는 등 계율주의적(戒律主義的) 경향을 보였는데
그것은 불교의 생활화를
거국적으로 실천하게 하려 했던
불교생활화 운동의 일면을 볼 수 있으며,
526년에 교리 연구차 승려들이 인도에 까지 왕래를 하는 등
경전 연구가 활발하였고
26대 성왕(聖王) 30년(552)에는
불교를 日本에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일본에 불교를 전한 처음인데,
이로부터 일본은 미개성을 탈피하고
불교문화를 수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라는 각 부족별로 천손의식(天孫意識)이 있었으나
신라가 고구려의 팽창 정책에 위협을 받으면서
고대국가로 발전해갔습니다.
신라는 기득권을 포기한
각 부족을 아우를 무엇인가가 필요하였는데
그것이 곧 불교였던 것입니다.
초기에는 불교를 받아드리려는 왕실의 노력에
부족 세력의 반발이 있었으나
법흥왕 14년(서기 527년) 흥륜사 건축이 시작되면서
이차돈의 죽음과 함께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었고
진흥왕 5년(서기 544년)에
흥륜사 완공과 함께 불교가 비로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결국 불교는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귀족 국가의 사상 체계로서 받아드려졌으며
차차 호국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고구려나 백제가 왕법에 비하여 불법의 독립성이 유지된 반면
신라는 왕법과 불법을 일체시하였습니다.
삼국시대의 불교는
고등종교이자 철학으로서
영역내의 잡다한 여러 부족의 신화(神話)와
무격신앙(巫覡信仰)들을 포용하면서
보다 한 단계의 고양된 종교와 철학체계로
이들을 규합시켜 나가
불교를 왕권을 강화하는 국가 정치의 이데올로기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불교는
국가적인 발전단계에서 야기되는
인간사회의 갈등이나 모순을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깨닫게 함으로써,
부족적인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초부족적인 국가정신의 확립에 기여하여
새로운 고대왕국의 정신적 기반을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또한 시․공간적인 관념을 심어주고
내세적인 고등적인 철학을 갖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이 급속히 발전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내일은 통일신라시대의
불교문화예술의 양상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