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의사들의 <의료사고>, 교회 목회자들의 <목회사고>(1)]/안순우
<의료사고>가 대중매체에 종종 보도된다.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을 찾아갔지만 의사 또는 의료기관의 부주의, 무능력으로 오히려 사고를 당한 것이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이처럼 인간의 영혼과 내면을 다루는 <교회의 목회현장>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 목회자가 고의는 아니지만 <경험의 부족, 부주의, 무능력 등>으로 돌보는 영혼들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공동체에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의료사고>에 빗대어서 <목회사고>라고 부르고 싶다.
오늘은 예전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재미있는 노트>를 하나 발견했다. 2006년부터 간헐적으로 기록한 노트인데....나의 목회사역 가운데 <목회사고 모음집>이다. 그 가운데 <2011년에 기록한 부끄러운 목회사고>를 하나를 나누고자 한다.
2010년 청년교구를 담당하고 있을 때였다. 500명이 넘는 30대 이상의 청년들인데 그 가운데 40세가 넘는 지체도 80여명이나 되었다. 20대 청년들과는 또다른 매우 복잡하고 예민한 영혼들이 많았다. 어느 주일, 교회 등록한 새가족들을 가르치는 <성장반 강의시간>이었다. 90분간 진행되는 이 시간에 먼저 그날 처음 참석하는 새가족들이 인사를 한다. 30여명 참여자 가운데 매주 5-6명이 자기 소개를 한다.
그날도 지체들이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는데...어느 자매님의 자기소개와 인사가 내 마음에 거슬렸다. 표정도 진지하지 못하고, 냉소적으로 실실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자매님! 진지하게 좀 해주시길 바랍니다"
강의를 모두 마치고 빈 세미나실에서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출입문이 활짝 열리면서 큰소리로 "목사님! 그럴수가 있어요? 제가 얼마나 어렵게...어렵게 결심해서 교회에 왔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모욕을 주실 수 있어요?"
바로 강의 시간에 그 자매였다. 울고 있었다. 자매님은 울면서 문을 "쿵" 닫고 나가버렸다. 나는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듣기만 했다.
그 순간 "앗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체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이 상식적이지 않는 것에는 필시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그 자매님은 다시는 교회에서 볼 수가 없었다. 매주일 성장반을 시작할 때마다...새로운 지체들을 소개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 자매님은 어느 교회로 갔을까?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후로 1년의 시간이 지났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외부에 심방을 마치고 교회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그 자매님이 테이블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사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 반가운 것이고, 또 자매님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니 불안했다.
서로의 눈길이 마주치면서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매님이 나를 보자마자 펑펑 울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났는데...바로 어저깨에 당한 일처럼......나는 당황스럽지만 자매님에게 '자초지종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자매님은 울면서 1년전 자신이 교회를 찾은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면세계가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다. 주님을 의지하고 싶어서 어렵게 교회를 다시 찾은 것이다. 그래서 자기소개 시간에 표정이나 시선처리나 인삿말도 자연스럽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어면서 <내가 얼마나 무심한 목회자인지....성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책망하고, 가르치기에 익숙한 목자인지!> 내 자신을 깊이 돌아보았다. 그날, 교회마당 단풍나무 아래에서 자매님도 울고 나도 울고 두사람이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사과를 했다.
"자매님! 그렇게 많은 어려움 가운데 저희 교회로 오셨는데.... 제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상처를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무심한 이 목회자를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날 나는 <사랑없고, 부주의함>으로인한 목회사고에 대해서 그 자매의 용서를 받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는 그 자매님과는 교회에서 반갑게 인사를 할수 있는 아름다운 지체의 관계가 되었다. 어떤 때는 몰래 사무실에 쿠키나 선물을 가져와서 건네주고 갔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영혼들을 목양하는 목회자로써 부끄러운 경험이었지만 1)먼저 주님 앞에서 영혼을 섬기기에 내 자신의 무능력과 부주의함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과 2)두번째로는 부주의한 목회사고로 인해서 상처와 고통을 받은 지체들에게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목회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함께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