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에 이런 말이 있다 -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대개 이것을 "눈,귀,코..가 없다"고 해석한다
깨달으면 눈도 없어지고 코도 없어진다는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무슨 뜻일까?
'안이비설신의'를 육근이라 하고, 육경과 더불어 12처라고 하는데
반야심경의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을 12처로 이해하면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12처와 혼동되어 사용되는 말이 있는데, 12입처가 그것이다.
12입처가 육근과 육경이라면 "육근과 육경이다" 그러지 왜 '십이입처'라고 하셨겠는가?
육근 육경이라는 말이 있는데 왜 굳이 입처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부처님이 심심해서 이런 말도 쓰고 저런 말도 사용하셨을까?
그런데 우파니샤드에 이런 말도 있다
"브라만이 머무는 네 가지 장소가 있다."
- '브라만이 머무는 장소'라는 뜻으로 아야따나라는 말을 사용
- '입처'는 들어가서(入) 머물고 있는 장소(處) 무엇이? 브라만이.
브라만이 있다면 어디에 있어야 할 거 아닌가?
"브라만(아트만)이 볼 때는 눈에 머물고, 들을 때는 귀에 머물고.
숨쉴 때는 호흡에 머물고, 생각할 때는 마음에 머물러 있다"
브라만교 "내 안에 들어있는 브라만(아트만)이 보고 듣고.."
12입처는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이지
단순히 육근과 육경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들뿐 아니라 지금 우리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내 몸속에 자아가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죽고난 후에 이 자아가 어디로 갈 것인가 걱정한다
태어나기 전에 이 자아는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 한다 - 윤회
그리고 눈이 보는 거 같은가? 눈을 통해서 마음이 보는 거 같다.
볼 때는 마음이 눈 속에, 들을 때는 귀 속에 들어있는 거 같다
우리도 무엇을 보고나서 "눈이 봤다"고 안 하고 "내가 보았다"고 해
부처님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통찰해서 깨달은 것이다 - 연기
그래서 반야심경의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을
<1> 12처로 이해하면 --> "눈귀코..가 없고, 색성향..도 없다"
<2> 12입처로 이해하면 --> "보고 듣고 냄새맡는 자아가 없고.. 실체도 없다" (無我의 도리를 설명)
그러므로 반야심경이 공(空)사상을 설명하는 경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더라도
12처보다는 12입처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맞다고 생각한다
※참고(1) 부처님 말씀 "몸이 있고, 몸 안에 내가 있다는 생각은 무명에서 연기한 것이다"
※참고(2) 한문 무아(無我)에서 我(아)자는 그냥 '나'가 아니라 '아뜨만'이라는 뜻.
※참고(3) 입처: 산스크리트어 아야따나(ayatana 入,入處,處)
불교에서는 '12입처'라고 한다 (내입처+외입처)
내입처: 보고 듣고 냄새맡고.. 생각하는 자신
외입처: 보이고 들리고 냄새맡아지고.. 생각되어지는 바깥세상
내가 보든 안 보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깥에 보이는 무엇, 실체가 있다
내가 보는 색깔 속에는 그 색깔을 내는 '놈'이 들어있는 것,
(컵 - 내 눈에 보이는 저 모양 속에 '컵'이라는 게 들어있는 것)
첫댓글 공부했습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