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나무들] ‘하얀 개나리’로도 불리는 우리나라의 대표 희귀종
[2009. 4. 14]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도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나무 이야기입니다. 봄을 맞이해 새 잎을 돋아낸 모습입니다. 잎만 가지고는 어떤 나무인지 아직 모르시겠지요? 공연히 궁금증을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 잎이 예뻐서 먼저 잎부터 보여드립니다. 봄이면 노란 색, 빨간 색, 하얀 색으로 피어난 꽃들도 보기 좋지만, 그만큼 좋은 게 바로 새로 돋아나는 잎사귀입니다.
봄볕 받고 보솜하게 솟아나는 새 잎은 세상 모든 생명의 고귀한 탄생을 알리는 표징입니다. 새로 또다시 한해살이를 시작하려 작은 생명체가 한껏 켜올리는 기지개라고 해도 될 겁니다. 미선나무(Abeliophyllum distichum)입니다. 하얀 개나리라고도 부르는 나무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개나리의 꽃과 똑같이 생겼지만, 색깔은 영 딴판입니다. 노란 개나리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대표적 특산식물이고, 멸종 위기 식물이기도 합니다. 개나리와 같은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이지만, 미선나무속에 딱 하나의 종류만 존재하는 희귀종입니다. 민간에서는 개나리의 꽃처럼 꽃잎이 네 개로 갈라져 피어나고, 꽃의 크기도 비슷해 그냥 ‘하얀 개나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높은 키로 자라지 않고, 잘 자라봐야 1미터 남짓 정도 자라는 데에 그치니, 그 역시 개나리를 닮았지요.
흰 색의 꽃을 피우는 게 미선나무의 기본종인데, 흔치 않게 분홍 색이나 상아 색의 꽃을 피우는 미선나무도 있어서 분홍미선, 상아미선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합니다. 또 꽃받침이 연한 녹색을 띠는 미선나무는 푸른미선이라 부르고, 열매의 끝이 둥글게 맺히는 것을 둥근미선이라고 부릅니다.
미선(美扇)이라는 이름, 예쁘지 않은가요? 여기의 선(扇)은 부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나무의 열매가 예쁜 부채를 닮은 모습으로 맺힌다는 데에 착안해 붙인 이름입니다. 위의 사진이 바로 미선나무의 열매입니다. 옛날 우리의 전통 부채 가운데에는 이런 모양으로 생긴 것들이 적잖이 있었습니다.
미선나무의 열매는 가로 세로 크기가 대략 2.5센티미터 쯤 됩니다. 꽃보다 훨씬 크게 달리는 거죠. 봄에 꽃이 필 때까지 열매가 매달려 있어서 지금처럼 한번에 꽃과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미선나무의 꽃은 부지런해야 볼 수 있다고 기억됩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나무의 꽃은 개화 기간이 참 짧지 싶어요. 아니면 제가 게을렀거나요.
우리 수목원에서도 멸종위기식물인 미선나무를 잘 보전하고 있습니다만, 미선나무를 이야기할 때마다 눈에 선한 것은 충청북도 괴산군의 미선나무 군락지입니다. 올해로 제가 나무를 찾아다닌 게 십년을 넘겼습니다만, 그 동안 미선나무 군락지에서 미선나무가 꽃을 활짝 피운 걸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나무들의 군락지보다는 독립 노거수 위주로 답사를 하다보니 그랬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미선나무 꽃을 보려고 괴산의 군락지를 찾아간 것도 여러 차례였으나, 번번이 허탕이었지요.
올에도 괴산의 미선나무 꽃은 보지 못하게 됐네요. 이미 꽃을 떨구었을 겁니다. 노거수가 많기로 유명한 충북 괴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선나무 자생지가 세 곳이나 있습니다. 송덕리, 추점리, 율지리가 그곳입니다. 괴산 외에도 전북 부안과 충북 영동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군락지가 있습니다. 또 지금은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됐지만, 충북 진천에도 미선나무 자생지가 있었습니다. 미선나무를 처음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것도 바로 이곳 진천의 초평면 용정리였습니다.
미선나무를 처음으로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사람은 1919년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씨입니다. 나카이 씨는 동북아 식물 분류학에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지요. 특히 우리나라 식물학계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큽니다. 우리 토종 식물의 학명들에 붙은 명명자 가운데에 나카이 씨의 이름을 찾아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요.
천리포수목원의 미선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만, 올 봄 나무의 건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가지마다 한가득 매달렸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꽃들이 듬성듬성 매달리는 데에 그쳤네요. 올에는 미선나무 옆으로 지나는 길에 사랑 한가득 담은 눈길이라도 직수굿이 보내야 할 모양입니다. 잘 자라 달라는 사람의 마음, 나무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내년 이맘 때에는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서기를 기원해봅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