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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공동체, 꿈이 있는 교회 / 창세기 28: 10 - 22
우리교회의 금년 지표가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공동체, 생명의 공동체, 꿈의 공동체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모두 금년 우리에게 주신 이러한 지표를 성취하기 위한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은 言, 이 땅에는 전통이 이끌어 가는 교회, 인물이 이끌어 가는 교회, 프로그램이 이끌어 가는 교회, 건물이 끌어가는 교회들이 많이 있지만은 진정 건강한 교회는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건강한 꿈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라는 겁니다. 저희 상내백교회는 이제 새롭게 꿈을 가지고 도약하는 교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꿈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성도들마다 더 큰 꿈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저희 상내백 교회를 바라보는 많은 농촌교회 목회자들과 교회들과 하나님의 교회들이 우리 교회의 건강한 꿈을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찍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dream" 나는 꿈을 꾸노라 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시대 가장 아름답게 쓰임 받는 상내백 교회를 꿈꾸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꿈이 이끌어 가는 교회 "The Vision driven Church" 비전이 이끌어 가는 교회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8장은 야곱이 빈들에서 꿈을 꾼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난 야곱은 욕심 많고 간사한 사람으로 어머니 몸에서 태어날 때부터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그래서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붙잡다. 빼앗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라가면서 형이 몹시도 시장한 틈을 이용해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눈먼 아버지까지 속여서 아버지가 장자 에서에게 주어야 할 축복을 가로채 버리고 맙니다. 몇 번이고 속임을 당한, 에서는 동생을 죽이려고 한을 품고 기회를 엿보게 되었지요. 그래서 야곱은 정든 고향과 따뜻한 부모와 가정을 떠나 도망하는 신세가 되어야 했습니다. 외삼촌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망명길에 올랐던 야곱은 어느 날 밤, 루스 광야에서 모래를 침대 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판을 베개하여 흐르는 눈물을 문질러 닦고 잠을 청하게 됩니다.
남을 속이고 쫓기는 사람이 갖는 불안감, 죄책감, 가정을 떠난 외로움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바로 그런 밤 이였습니다. 돌을 베개하고 자던 그 밤, 그는 참으로 놀라운 꿈을 꾸었습니다. 깊은 밤 온 땅이 환해지는데 사닥다리 하나가 산을 지나고 구름을 뚫어 하늘까지 높이 연결되어 있었고 하늘의 사자들이 미끄러지듯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그 위에서 우렁찬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28:13-15) 야곱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열망하던 그 꿈이 이루어지는 꿈을 꾼 것입니다.
야곱의 기쁨은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하나님이었다라고 하면 이 간사한 사나이 야곱을 처음 만났을 때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네 이놈. 눈 먼 아버지, 못난 형을 속이고 어디로 도망가느냐?" 이렇게 이야기했을 법한데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야곱을 만난 하나님의 제 일성은 축복의 멧세지였습니다. 여기에 심령을 녹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야곱이 매 대신 위로를 얻고 아침에 땅을 박차고 일어났을 때 그의 가슴은 기쁨과 감격으로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나 혼자인줄 알았는데, 여기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구나. 이 길이 고독한 나그네 길 인줄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길이요 여기가 내 집이요 여기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전이로구나. 저주받은 나그네 길인 줄 알았는데 이 길조차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온몸에 힘이 솟아올랐습니다. 돌베개가 황금보다 더 귀하게 보였습니다. 베고 자던 돌멩이를 세워 놓고 기름을 붓고 거기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예배를 올려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곳 루스라 불리던 땅을 하나님의 집 "벧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루스란 말은 분리라는 뜻입니다. "나는 이제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로구나. 내 형제 부모로부터 나는 이제 분리된 존재로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네. 나 혼자 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동행하고 여기 엎드린 이곳이 하나님의 집, 벧엘 이었구나. 그는 감사의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찬370장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주님만 따라가리.
찬송이 절로 흘러 나왔습니다. 길바닥에 놓인 돌멩이 하나에서 자기 자신을 본 것이지요. 우리는 모두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쓸모없는 돌멩이처럼 버려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돌멩이 같은 우리를 성전기둥으로 세우시고 성령의 기름을 부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꿈은 교회로 부터 나옵니다. 꿈은 예배를 통해 나옵니다.
돌베개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집이 되고 그토록 얄궂은 사나이 야곱을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었단 말입니까? 돌베개 신앙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잠을 잘 때 온 몸이 땅에 붙을수록 편안하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몸이 땅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머리만은 땅에서 떼어 놓는 베개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왜요? 우리의 머리는 하늘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베개를 잘 베고 자야 합니다. 돈을 베고 자려고 하는 인생은 근심밖에 없습니다. 권력을 베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갈등과 번민 밖에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인 하늘의 백성들의 베개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베고 자야 할 돌멩이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베개가 된다고 성경은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건축자의 버린 돌로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1 : 42, 행 4 : 11 - 12, 엡 2 : 20, 시 118 : 22),
베드로사도는 그는 보배로운 산돌이라고 했으며(벧전 2 : 4), 다니엘은 산에서 뜨인 돌이며, 종말의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릿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단 2 : 34) 야곱의 돌베개 - 그것은 광야에서 여기 저기 굴러다니는 버려진 돌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돌베개를 하고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고 나니 성전의 기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은 야곱처럼 쫓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어딘지 모르게 분주하게 도망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소망도 마음의 평안도 없이 고독한 나그네 길을 걸어가야 할 바로 그 때, 나의 위기가 곧 하나님이 역사할 기회입니다. 나는 절망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게 꿈을 주십니다. 나는 좌절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내 눈을 열어 하늘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꿈을 꿀 때입니다. 여러분, 베개를 잘못 베고 살아오셨던 분들. 베개를 바꾸시길 바랍니다. 땅을 베개 삼고 사는 자는 땅만 보입니다. 그러나 땅의 베개를 내려놓고 하늘 베개 예수 그리스도를 베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꿈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영적 상태가 야곱처럼 침체 속에 빠져 있지는 않으십니까?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의 언약을 받은 것 같았지만 불안과 가책으로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소유하였지만 야곱의 마음은 모든 것을 잃은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을 만나면 내가 죽을 것만 같았지만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로를 가지고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영적 침체 상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고독에 빠져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 계셔서 예기치 못했던 축복을 안고 찾아와 내게 꿈을 나누어 주십니다. 도망가는 고독한 나그네의 길에서 야곱은 실로 엄청난 사건을 꿈으로 보았습니다. 우리의 위기가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꾸면 우리는 반드시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한편 야곱이 은혜를 받고 꿈을 꾸고 있는 이 시간 그의 형 에서는 무엇을 했겠습니까? 그는 분명히 장자의 명분과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아 몰래 달아난 야곱을 생각하며 증오에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를 갈고 있었겠죠. 에서는 주어진 축복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였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하지요. 새로운 꿈을 꾸는 것 귀한 일이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주신 은혜를 헤아리며 소중히 간직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꿈을 소중히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에서! 그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현실주의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축복은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으로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는 오늘 사냥한 짐승을 잡아서 갈비를 뜯고 포도주를 곁들여 불고기를 만들어 먹고 배를 두드리며 잠자리에 들었고 또 잠에서 깨어나면 기계처럼 사냥을 나갔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즐거움이요 인생의 전부라 생각했습니다. 그에겐 꿈이 없었습니다. 이 땅의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세상 모든 조건을 잃어 버렸다 해도 아직도 꿈꿀 수 있는 사람은 아직도 많은 것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 비전이 있는 사람이 젊은이입니다. 꿈과 비전을 잃은 사람은 그가 누구든 늙은이입니다. 우리 모두는 꿈을 가진 젊은이들 인줄 믿습니다.
에서! 그는 신령한 꿈이 없는 현대인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일만하고 돈을 벌어 집 사고 좋은 반찬에 밥 먹는게 고작 꿈이요. 밤이면 T.V.나 보다가 또 잠들고 먹고 잠자고 일하고 - 이것이 인생의 전부입니까? 이 땅에 당신이 태어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꿈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이웃을 유익하게 하는 꿈이 있습니까? 에서를 보십시요. 그는 축복을 동생에게 다 빼앗긴 후 아버지를 찾아가 찌꺼기 축복이라도 좋으니 남은 것이 있으면 달라고 아버지를 졸랐으나 아버지 이삭은 냉혹하게 거절하며 말합니다. 성경을 좀 혹독하게 해석하면 이런 뜻입니다. "자기에게 준 것도 지키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식! 큰 것을 소홀히 하는 미련한 자식! 이상도 꿈도 없이 오늘 만으로 만족하는 게으른 자식! 때가 지난 후에 후회하고 땅을 치는 쓸모없는 자식! 복수심을 이기지 못하는 졸장부 같은 자식! 너에게 나눠줄 축복이 뭐가 있겠느냐? 넌 이제부터 네 주먹이나 믿고 살아라! 거친 땅 황무지나 파먹고 살아라! 너는 평생 네 동생 야곱을 섬기며 살게 될 것이다!" 에서는 그때에야 대성통곡을 하며 아버지의 침상을 물러나옵니다. 여러분. 때를 잃지 마십시오. 은혜주실 때 우리 은혜 받아야 합니다. 회개에도 때가 있습니다. 충성에도 때가 있습니다. 천하만사에 다 때가 있습니다. 주님 전에 나아와 꿈을 꾸십시오. 지금이야 말로 꿈을 꿔야 할 때입니다.
야곱은 돌베개를 베고 자는 잠을 통하여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가슴 설레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다 꿈을 품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잠언 29장 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는 말씀이 있는데 KJV에서는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Where there is no Vison, the people Perish"「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달걀은 품어주지 않으면 절대로 병아리가 되지를 못합니다. 오늘 꿈을 품지 않은 사람에게 내일의 성공은 없습니다. 우리는 한 인간의 위대성을 꿈의 크기로 재어 볼 수가 있습니다. 꿈이 작은 사람은 작은 사람입니다. 꿈이 큰 사람은 큰 사람입니다. 땅의 세계만 꿈꾸는 사람은 속물입니다. 영원과 종말과 하나님 나라를 꿈꿀 수 있는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마지막 날에 성령을 받게 되면 어린이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비전과 환상을 갖게 될 것이고 늙은이도 꿈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주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가 탁월한 사람이 아니라 그들은 다 한 결 같이 다른 사람이 생각지도 못했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개인과 가정 그리고 공동체나 교회나 민족을 축복하시려고 하실 때에 먼저 꿈을 주십니다. 영롱하고 찬란한 꿈을 가슴에 심어주시고 그 꿈을 가슴에 안고, 기도 할 때 그 꿈을 통하여 꿈과 비전을 이루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꿈을 파는 곳입니다. 교회 강단은 꿈을 나눠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신학자인 루돌프 보랜이라고 하는 사람은 ‘설교는 환상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꿈을 꿀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설교시간마다 꿈을 나누어 가시길 바랍니다. 이 성전에 올 때마다 절망 중에 찾아왔다가 희망의 꿈을 안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실패하여 주님 앞에 찾아왔다가 성공하는 꿈을 안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병든 사람은 건강한 꿈을 꾸시길바랍니다. 가정이 구원받는 꿈을 꾸시고 아들이 없는 사람은 사무엘 같은 아들을 낳는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나라와 민족이 번영하는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필요한대로 마음껏 꿈을 사가지고 가는 제단이 바로 이 제단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월트 디즈니라고 하는 젊은이는 가난한 만화가였습니다. 집도 없이 예배당에서 기도하다 지하실에 내려가 만화를 그리곤 했습니다. 쥐새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득실거리는 쥐들과 함께 잠을 자는데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쥐를 저주하던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쥐들과 함께 친구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쥐를 소재로 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그는 돈 한 푼 가지지 못한 무일푼으로 오렌지 카운티의 벌판에 꿈의 동산을 세우기로 작정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꿈 하나로 그는 디즈니랜드를 세웠습니다. 꿈은 우리 인생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끌어 줍니다. 꿈은 무한한 창의력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여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기 보십시오. 야곱에게 꿈을 준 돌베개는 하늘 문을 열었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난 후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곳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늘의 문, 구원의 문, 축복의 문은 모두 돌베개 즉 교회 안에서 예수를 통하여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꿈을 주는 곳입니다. 이 세상 모든 교회는 큰 꿈을 주는 교회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교회는 하늘 꿈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교회는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꿈을 한 가득씩 안겨다 주는 소망의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늘 문을 닫고 여는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성전에 와서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 문을 여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실패했어도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께 오십시요. 용서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사죄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하늘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세상의 죄를 짓고 주님 앞에 찾아왔다 할지라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나는 안 돼. 내 남편은 안 돼. 내 가족은 안 돼.' 좌절하거나 실망하지를 마십시오. 언제나 용서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예수여 날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 이시간도 여러분을 구원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 지금 기도의 문이 닫히신 분이 계십니까? 이곳에 와서 응답받는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 사업의 문이 닫히고 직장의 문이 닫히셨습니까? 여기서 축복받는 꿈을 꾸십시오.
․ 행복의 문이 닫힐 때 슬퍼하거나 울지 말고 이곳을 찾아오십시오.
․ 앞길이 캄캄하고 암담할 때 절망하지 말고 찾아와 꿈을 사가지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 한나는 슬픔을 안고 돌베개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자식을 얻었습니다. 태의 문이 활짝 열려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 히스기야는 죽음을 선고 받고 돌베개를 안고 기도하다가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 이사야는 절망 중 돌베개를 찾았을 때 숯불이 나타났고 역사를 이끌어 가는 사명을 받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예배하는 이 시간! 바로 당신의 머리에 사닥다리가 있고 돌베개가 놓여지게 될 것입니다. 이곳은 하늘 문을 여는 꿈꾸는 곳입니다.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왜 돌베개의 꿈을 기대하지 않습니까? 왜 꿈을 갖지 않습니까? 우리 상내백 교회는 행복한 신앙생활을 꿈꾸는 교회입니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를 만나 꿈을 꾸는 그 시간 끝이 납니다. 찬송은 성도를 영광스럽게 하는 꿈입니다. 기도는 닫힌 하늘 문을 여는 꿈입니다. 말씀은 성경의 말씀과 약속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꿈입니다. 헌금은 금생과 내생에 복을 받는 씨앗입니다. 축도는 나를 세상의 승리자로 파송하는 꿈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꿈을 꾸고 돌베개를 세워 성전삼고 예배한 후 새로운 꿈을 꿉니다. "이제는 버림받은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는 승리자가 된다. 나는 부모, 형제, 고향으로부터 버림받은 인생이 아니라 성공하고 돌아오기 위해 지금 떠나갈 뿐이다." 창세기 28장의 꿈 사건이후 29장부터는 야곱이 꾼 꿈을 이루어 가는 정복자의 삶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언제나 역사는 꿈꾸는 자의 몫입니다. 미래는 꿈꾸는 사람들의 손에 맡겨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연약한 농촌교회에 큰 꿈을 안겨주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늘 꿈을 알려주는 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인류의 꿈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꿈이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상내백 교회는 꿈의 공동체, 꿈이 있는 교회, 여러분들과 더불어서 미래의 꿈을 함께 펼쳐나가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살리는 꿈의 공동체, 꿈이 있는 사랑의 교회를 세워 갈 수 있게 하시고 소망도 마음의 평안도 없이 고독한 나그네 길을 걸어가던 야곱에게 하늘 문을 열어 주셨듯이 저희들의 기도가 응답되게 하시고 꿈의 공동체, 꿈이 있는 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