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한흠 목사님 산상수훈 강해설교 27 "더 나은 의를 구하는 사람들" >
ㅇ 설교날짜 : 2001.06.03
ㅇ 설 교 자 : 옥한흠 목사
ㅇ 설교제목 : 더 나은 의를 구하는 사람들
ㅇ 본문말씀 : 7:1-6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 꼭! 이것만은 기억하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비판의식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 아니다.
형제의 약점이나 허물을 들추어서
험담하거나 공격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리새인의 의를 버려라.
그들이 내세우는 의는
다른 사람은 죽이고 자기가 사는 의이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의,
곧 형제를 비판하지 않는 의,
나를 죽이고 형제를 높이는 의가 필요하다.
기억하라.
비판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판하기를 즐기는 사람은,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거나
남의 티가 들보처럼 크게 보이는
비정상적인 안구를 지닌 환자이거나
자신의 들보를 숨기기 위해
남의 티를 드러내는 외식주의자일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형제를 비판하려는 근성에서 벗어나라.
혀에서 나오는 몇 마디 말 때문에
오늘도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다.
ㅇ 다락방 교재 26과 :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 마음의 문을 열며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비판이란 형제의 약점이나 허물을 들추어서 험담하거나 공격하는 언어의 폭력을 말한다. 자신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재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다. 물론 비판에는 건전한 비판도 있다. 이 말씀은 그러한 건전한 비판까지 금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주님의 말씀은 교회 안에서 형제끼리 서로 약점과 허물을 용남하지 못해 말로 상처주지 말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비판하지 말라는 말의 바른 의미이다. 본문에 비추어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살피는 시간이 되도록 하자.
Chapter_2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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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성직자?
교회사를 들여다 보면 성직자 계급이 생기면서 그들이 특권의식을 가지고 교회의 사역을 독점하기 시작하던 때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자리잡기 이전인 3세기부터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유명한 교부 터틀리안(160-220)은 이런 점을 문제 삼고 나온 최초의 교회 지도자였던 것 같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평신도는 성직자가 아닌가?...직분은 특별히 부름 받아 성별 되었다는 점에서 일반 신도들과 다르다. 그러나 성직자가 없는 곳에서 예배를 주관하고 세례를 베풀게 된다면 당신이 성직자가 되지 않겠는가? 평신도만 있는 곳에서도 교회는 존재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당신 스스로 성직자가 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는 성직자들의 독재에 반대하여 '만인사제직' 을 주장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중세종교개혁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신분은 같으나 직분은 다르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터틀리안 의 '평신도는 성직자' 다 라는 식의 직설적인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평신도를 열심히 깨워 놓아도 그들은 여전히 교역자의 손에서 돌봄을 받아야 할 영적인 자녀들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성직자들이 봉사하고 있는 거룩한 영적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해야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며칠 전 나는 10년이 넘게 사랑의교회에서 순장 일을 충성스럽게 하고 있는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일급장애를 가진 아들을 25년 동안 가슴에 품고 사랑을 쏟으며 돌보고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들이 순원들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부인이 섬기고 있는 다락방에는 십 여명의 순원 가운데 우울증 환자가 3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수년 동안 그들을 품고 영적 씨름을 하였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순장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은 말하지 안 해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그는 놀라운 간증을 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 둘은 다 나았고 한 사람만 아직 고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믿음이 별로 없는 순원이 임신 9개월이 되었는데 병원에서 진단을 해 보니 태아의 다리 하나가 기형이라는 것이다. 의사는 그래도 아이를 낳을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를 부모가 빨리 결정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너무 당황한 산모는 제일 먼저 순장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울며 야단을 첬다. 순장은 모든 순원들과 교회 중보기도팀에게 연락해서 특별 기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자기도 따로 시간을 정해 놓고 아기를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한다. "목사님, 그런 상황이 되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쏟으며 기도하셨다는 말씀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놀랍게도 얼마 후 태어난 아이는 정상이었다. 의사는 기적이라고 했다. 그 아이는 지금 잘 자라고 있다고 한다.
남편은 순원 몇 명이 지방과 외국으로 이사를 가고 지금은 3명만 남은 다락방을 인도하고 있는데 그는 무역업을 하는 사람이라 주초에 외국으로 나갔다가 목요일 아니면 금요일에 들어 오는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 몹시 바쁘고 피곤한 몸이다. 그럼에도 토요일 다락방을 빠지지 않고 인도하고 있는데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순원들이 겨울 방학이 너무 길다고 불평한다면서 웃음 짓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워 보였는지 모른다.
나는 이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직자가 따로 있나? 주님 보시기에는 저런 사람이 진짜 성직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언제 우울증 환자들을 품고 수년 동안 씨름 한 일이 있는가? 내가 언제 태아의 장애를 고쳐 달라고 피를 토하듯이 매달려 본 일이 있는가? 내가 언제 매주 마다 외국을 드나 드는 바쁜 몸으로 몇 명 안 되는 영혼들을 위해 헌신해 본 일이 있는가? 그것도 자기 돈 써 가면서? 나는 어디 가서 설교를 한번 해도 수고비?를 받는 사람 아닌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령께서 나와 같은 성직자를 더 좋아 하실까 아니면 저렇게 충성하는 평신도를 더 좋아 하실까? 만일 우리가 다 같이 심판대 앞에 선다면 주님께서 누구 손을 먼저 들어 주실까? 솔직히 나는 두렵다. 내가 목사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 두렵다.
200602_디사이플칼럼_옥한흠목사.
첫댓글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비판이란 형제의 약점이나 허물을 들추어서 험담하거나 공격하는 언어의 폭력을 말합니다. 자신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재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를 것입니다. 물론 비판에는 건전한 비판도 있습니다. 이 말씀은 비판의식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교회가 잘못되면 바로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전한 비판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교회가 조금이라도 부패하고 세속화되어 간다면 이래서는 안 된다는 비판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통회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비판을 금하셨다 해도 책망까지 금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잘못할 때면 어김없이 책망합니다. 교회에서도 우리의 잘못을 놓고 책망합니다. 잘못되는 것을 보고도 책망하지 않는 교회는 이미 생명이 떠난 교회입니다. 많은 성도가 악과 결탁하여 잘못된 길로 빠져들어 가고 그 영혼이 파괴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그 교회는 이미 하나님의 권위를 잃어버린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주님의 말씀은 교회안에서 형제끼리 서로의 약점과 허물을 용납하지 못해 말로 상처주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비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 본문에서 -
아멘!
카푸치노님 감사합니다. 옥목사님도 산상수훈 강해하시면서 그 말씀의 무게감과 부담감 등의 이유로 처음에 피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신걸로 기억합니다. 저도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지만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 높은 표준에 이르도록 더욱 성령님 의지하여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하나님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 갖고 인내하며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아멘!
최근 미국신문에 나온 기사를 보면서 느꼈던 내용이 10분이하 4-5분에 나오는군요. 감사합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남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거나, 종교장사를 하는 분들일 가능성이 높더군요
진정한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남의 잘못을 쉽게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실수하는 것을 덮어주거나
사랑으로 고쳐주려고 하게 됩니다.
단...산상수훈 전체에서 위선(=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각종 퍼포먼스)은 가차 없이 비판하라고 하시더군요
절대로 그렇게 그들처럼 위선적으로 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면서, 그런 길은 좁은 길이라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 좁은길을 주님과 함께 기쁘게 걸어가는 우리들의 삶이되기를 소원합니다. :-)
성령께서 나와 같은 성직자를 더 좋아 하실까 아니면 저렇게 충성하는 평신도를 더 좋아 하실까? - 이런 솔직한 글이 얼마나 우리를 감동시키는지 목사님의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진실은 진실되게 전해짐을 느낍니다 항상 솔직하고 진실하신 목사님의 말씀이 그립습니다 목사님의 이러하신 성품으로 마지막순간 자신보다도 남은사람들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어린자녀를 사단에 맡기고가는 듯
그 안타까웟을 심정을....
순장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함께 계실땐 그 소중함과 가치를 잘 몰랐는데 떠나고 나시기 너무나 큰 은혜였음을 알게됩니다.
옥목사님은 평신도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셨지요 늘 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시고 ~~우리가 지금의 고통중에 저들을 비판하며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 괴롭지만 눈과 귀가 어두워져있는 있는 저들이 이제는 불쌍하기만합니다
제마음에 온유함을 주옵소서
기도하며 주님께 맡기길 간구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