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連理枝) 생각
임병식 rbs1144@daum.net
비익조(比翼鳥)를 생각하면 천생연분이 떠오른다. 비익조는 암수가 각각 눈과 날개가 하나밖에 없어 짝을 이뤄야만 나는 새이다. 그만큼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고 붙어 있어야만 사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라 할까. 천생연분이 무엇인가. 그야말로 하늘에서 정해준 부부. 그 대표적인 것이 비익조이다.
이 비익조는 현존하는 새는 아니다. 지극한 부부사이를 관념화 시킨 상징적인 새인 것이다. 하면 옛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상징조작을 해놓은 것일까. 그것은 생각건대 아마도 살아가며 절실함이 요구될 때 함께 가지 않으면 아니 되는 인생사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것을 상상하는 가운데 ‘ 특별한 상징조작’을 통하여 그러한 마음으로 살라고 예시로서 보여준 표현방법이 아닐까 한다.
연장선에 있는 것이 ‘연리지(連理枝)’이다. 이것은 비익조처럼 상상의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것으로서 더러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두 개체가 나무가 엉켜 붙어서 한 몸뚱이를 이룬 것이다. 가지가 엉키기도 하고 뿌리가 서로 붙어서 하나의 나무처럼 보보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어느 계기로 두 나무가 맞닿아 있다가 차츰 커지면서 껍질이나 뿌리가 붙어버린 것이다. 이런 연리지는 동종의 나무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이종의 나무가 붙어버린 것도 있다.
이런 연리지 나무를 보면 자연스레 ‘전생의 인연’으로 현실에서 보여주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보고 있노라면 진한 운명 같은 것이 느껴진다.
나는 살면서 연리지를 더러 본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완벽하게 결합이 되어 있기 보다는 접촉면에 껍질이 부풀어 오르면서 봉합된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 지리산 자락으로 바람을 쐬려 나섰다가 만난 것은 한몸뚱이 같은 완전체로 보였다.
오늘 아침이었다. 보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나 심란해 있던 참인데 조카가 제의를 해왔다.
안정을 취하지 못하는 내가 보기에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재의를 받고 길을 나서기 전에 나는 아내 장례식 때 장지까지 동행해준 지인 생각이 나서 함께가자고 제안했다. 그가 흔쾌히 수락을 했다.
우리는 구례에서 민물참게 탕을 먹고 나서 가까이 있는 박경리 선생의 소설‘토지’의 무대인 최 참판 댁과 화개장터, 그리고 조카를 비롯한 극소수만 안다는 어떤 곳으로 향하였다.
그곳은 연리지 나무가 있는 곳. 찾아가니 만나러 간 나무는 비교적 도로에서 가까운 하동 흥룡 마을 안쪽에 있었다. 금방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비교적 알려진 나무가 아니었다.
그런데는 관광객이 찾아오면 마을이 소란스러울까 봐서 그런 것 같았다. 그것은 표지판이 없는 것으로도 짐작이 되었다. 찾아가니 나무는 우선 아마 어마하였다. 참나무와 소나무가 한데 붙어 있는데 크기도 크려니와 우선 수령이 3백년도 족히 넘어 보이는 나무였다.
이런 나무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니. 무엇보다도 이종의 나무가 서로 붙어있는 것이 경이로웠다. 나무 옆에 서서 사진부터 찍었다. 그런 다음에 찬찬히 살펴보았다. 놀라워서 눈길이 거두어 지지 않았다.
그것을 보자니 보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 생각이 났다. ‘저렇게 가까이서 생을 같이 해왔는데...’ 왈칵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한 몸뚱이처럼 살면서 나는 얼마나 아픔을 이해하고 돌봐 주었던 것일까.
부족한 것만 많이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한편 생각하면 연리지처럼 의지는 되어 주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은 스쳤다. 말은 잘 할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눈빛으로 그것을 감지하며 산 생활이었다.
나는 아내가 전신을 쓰지 못하는 뇌졸중 상태에서 22년을 간병하며 단 한 번도 짜증을 내본 적이 없다. 대변을 외부 요양보호사에게 맡기지 않고 온전히 혼자서 처리하면서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환자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 그런 병이 찾아오게 된 되는 직장생활상 나의 책임도 있었던 것이다. 워낙에 불규칙한 생활을 하다보니 한밤중에도 깨어나야 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아내는 아파있으면서도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 그래서 대소변 처리는 나더러 하게 하여 자신의 치부를 최대한 감추었다. 나는 뜻을 헤아려서 바람대로 궂은일을 묵묵히 했다.
나는 그런 요구를 남편에 대한 신뢰로 받아들였다. 남의 손으로 하여금 인상 찌푸려지는 일을 맡기지 않겠다는 자존심. 그것을 지켜주었다. 그런 것이 알려져 나중에는 시장으로부터 상장을 받기도 했다. 나는 궂은일을 온전히 내가 맡아 한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부터 요양원에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함께 살면서 자식 낳고 보내온 세월이 있는데,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이 또한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연리지 나무를 보니 각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내와 연리지로 살았다면 이 나무도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날의 외출은 조카의 배려로 마련된 것인데 잘 나섰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연리지가 인상적인데 아내의 그림자를 느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해졌지만 얻은 것도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노거수 연리지처럼 아내와의 사이는 또 하나의 연지리였다는 깨달음이다. (2023)
첫댓글 «최참판댁»을 비롯 하동군 관광지 즐겁게 잘 구경했습니다. 특히 흥룡마을에서 본 소나무와 참나무의 連理枝는 歎聲이 났습니다. 300여년 이상 되는 두 나무가 가장 밑바탕부터 함께 딱붙어 하늘을 향해 껴 안고 있는 모습은 기가 막혔습니다.
순발력있는 임선생님의 名文, 가슴으로 새기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제의 나들이는 즐겁고 상쾌한 하루였습니다. 참게탕도 별미였지만 박경리선생의 '토지'무대인 최참판댁, 화계장터, 흑룡마을의 연리지, 수석경매장의 생중계 광경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흑룡마을의 연리지를 보니 느끼는 점이 많았습니다.
선생님, 사모님을 보내드렸다는 사실을 이 글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그만큼 선생님의 사랑도 받으셨으니까요.
부부는 연리지지요. 희로애락이 모여 함께 늙어가고 앞서거니뒤서거니 이승 하직하는 것이겠지요.
삼가 사모님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하늘에서 편히 쉴것으로 생각합니다.
소나무와 참나무는 유사한 종이 아닌데도 그렇게 연리지가 되었다니 자연의 안배를 추측하기 어렵네요 옷자락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의 억겁 인연이라지요
남남이 만나 부부로 해로하는 인연은 아마도 하늘이 맺어준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딸의 수발을 거부하고 오직 며느리에게만 치부를 맡기며 병수발을 받다가 돌아가신 마을 어른이 기억납니다 지인들과의 뜻 깊은 나들이를 통해 선생님께서 조금은 심기일전하신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어제는 모처럼 머리를 식히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연리지를 보고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글을 써봤습니다.
2024 푸른솔문학 여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