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득음(得音)의 소리
임병식林秉植 rbs1144@daum.net
내가 한 번씩 찾아가는 식당 중에는 ‘지음(知音)’이라는 상호를 가진 곳이 있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거문고의 귀재인 백아와 그 소리를 잘 알아들은 종자기에서 따온 듯한데, 나는 그 식당에서 상호를 대하면 어김없이 연관어가 떠오른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득음(得音). 판소리를 배우는 수련자들이 목을 단련하기 위해 인간 한계치에 닿도록 절차탁마를 하는 것인데 그 고비를 넘기면 마침내 독창적인 소리를 내게 된다. 한데 나는 이것을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데 어렸을 적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
그것은 내가 태어난 고을이 소리의 고장이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보성에는 걸출한 소리꾼이 있었다. 박유전(1835~1904) 선생과 정응민(1896~1964) 선생으로 박유전 선생은 서편제의 비조로 불리며 구한말 국창으로 크게 활동했다.
한편, 선생의 제자인 정응민 선생은 회천 도강에 살면서 보성소리를 완성하였다. 그 마을은 내가 사는 마을에서 고개 하나만 넘어가면 나오는 곳이었다. 그의 문하생들이 흰 한복을 갖춰 입고 신작로 길을 따라서 그곳으로 향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당시 교통이라는 것이, 기차를 타면 득량역에 내려서 행선지로 가게 되는데, 외지에서 찾아온 제자들은 우리 마을 앞 신작로를 걸어 다녔다.
그러한 연고로 일찍이 득음이라는 말을 얻어들었다. 그 득음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지만 들은 바에 따르면 그 제자들이 수련하는 곳 가까이 있는 폭포수를 찾아가 목을 단련한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목에서 피가 나면 식힌 인분 속에 대나무 통을 묻어 스며든 것을 마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지라 나는 어느 날 벚나무와 후박나무가 터널을 이룬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서다가 나뭇가지 앉아 울고 있는 매미 울음소리를 듣고서 문득 득음을 떠 올렸다. ‘차르르 차르르’ 하고 우는데 소리가 무척 경쾌했다. 녀석은 우는 소리로 보아 참매미 같았다. 한데 그때 녀석이 ‘찍’ 하고 오줌을 내갈겼다.
그렇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에 어디서 매미가 나무에 주둥이 박고 수액을 빨아먹다가 배가 차오르면 소피 가리지 못한 아이처럼 아무 곳에나 배출시킨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면서 특별한 체험이라는 생각에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약간 쇠 되게 들려왔다. 그 우렁찬 소리가 마치 소리꾼의 수련된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자연스레 소리꾼의 득음 과정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사람은 목 안의 성대에서 소리가 나지만 매미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배 아래에 붙은 두 개의 진공 막을 움직여 소리를 낸단다. 소리를 내기 위해 매미는 늘 뱃속을 비워둔단다.
땅속에서 7년 동안 나무뿌리 수액을 빨아먹고 살다가 땅 위에 올라와 탈피하는 기간은 기껏 한 달. 매미는 번데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바로 굼벵이 상태에서 우화등선(羽化登仙)하여 한철 노래를 하다 죽는다.
나는 매미 울음소리를 듣다가 잠시 자신을 돌아보았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수필 쓰는 일. 그 수필 인생도 35년이 넘어서고 있다. 문청 시절까지 합치면 60년이 넘는다. 한데 매미로 치면 얼마나 득음한 것일까. 득음하여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흔히 좋은 수필의 조건을 들어 새로운 소재, 새로운 표현기법, 그리고 감동을 얼마나 담아내느냐를 든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그 조건에 부합한 글을 써온 것일까. 독자가 읽고 나서 공감하며 미소 짓게 하는 글을 쓰기나 한 것인가. 혹여 독자를 배려하기보다는 자기도취에 빠진 나머지 개념 없는 것을 배설하지나 않았던가.
짝을 찾아 지상에서 겨우 한 달을 저토록 울어대는 매미도 목청이 터지라 울림을 주는데 나는 그간 음풍농월이나 허튼 글쓰기를 한 건 아니었을까.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새삼스레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을 해본다. (2024)
첫댓글 말매미 울음소리가 한낮의 무더위에
불을 지피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생각 없이 듣고 있노라면 나름 정취가 있습니다 매미소리와 득음의 설정이 이채롭습니다 매미의 득음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을 때도 매미는 제 스스로 득음한 줄을 모르듯 작가의 득음도 독자가 먼저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노염이 한참인 느즈막에 매미가 울어대는 것을 보고 득음을 생각해 보앗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