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세미나 문집 >
깊은 여운을 남긴 작품
임병식 rbs1144@daum.net
일찍이 중국 문학을 접한 바는 없고 전에 잠시 임어당의 짧은 산문을 몇 편 읽은 후 등단하고서 주자청의 작품을 읽었다. 그 작품이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1990년대 등단 초기인데 이 작품을 읽고서 글을 이렇게 정밀하게 역동성 있게 쓰는 분이 있다는 점에 대해 놀랐다.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부자가 그리 정분이 돈독하지 못하고 불화를 많이 겪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작품에서는 부자가 서로 교감하는 눈길과 마음으로부터 위하는 살가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외투를 벗어준 아버지와 그것을 받아 깔고 앉은 아들.
차가 잠시 정차한 어간에 불현듯 아들을 위해 귤을 사러 달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의 사선을 통해져 그대로 따뜻하게 전해진다. 뚱뚱한 몸에 부실한 걸음으로 반대편 철로를 몇 개나 지나 걸어가는 모습을 통하여 아들은 가슴 찡한 감동이 전해진다. 마침내 아들은 북경으로 떠나고 플렛폼(platform)에 혼자 남은 아버지는 멀어져가는 아들을 망연히 바라본다. 그 정황이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나는 이 대목에서 또 다른 작품, 김수봉의 ‘그날의 기적 소리’를 떠올린다. 두 작품이 기차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이외 표현의 핍진성과 정밀함이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때는 초가을 나주 일로나 그 어름에 사는 중학생(광주서중)은 집을 다니러 와서 자취방에서 일주일 치 먹을 것을 챙겨간다. 이때 아버지는 쌀자루를 짊어지고 앞에서 뛰고 그 뒤를 아들은 바짝 달라붙어 달린다. 아들의 한 손에는 책가방이 들리고, 다른 손에는 새끼줄로 동여맨 김치단지가 들렸다.
기차는 기적을 길게 울리며 산모퉁이를 돌아온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차를 타려고 달려가는 두 마음은 뛰는 다리보다 더 급하다. 기적소리의 가름만으로도 기차가 먼저 아버지와 아들을 앞질러 정거장에 닿을 것 같다. 한껏 뛰어야 한다. 등에서는 땀이 비 오듯 솟는다. 그런데 가을 햇볕은 어찌나 따가운지, 달라붙은 땀과 함께 뒤 목에 엉겨 붙어 끈적거린다. 숨 가쁘게 뛰어서 겨우 정차한 차에 오른다.
작품 속에서는 다급한 주자청의 마음이 그대로 읽힌다. 아버지가 행여나 넘어지지 않을까 초조하게 지켜보는 마음.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어서 돌아와야 한다는 조바심이 주자청의 표현에서도 그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이때만큼은 두 부자의 보편적인 사랑이 오롯이 그려진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인생 전반을 통하여 어찌 화합하지 못하고 불화를 겼었을까. 그것은 알 수 없으나 여기서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30년 넘게 수필을 써오면서 문학성의 획득은 어디서 갈리는가를 많이 느끼고 있다. 특히 수필문학의 경우는 작가의 진솔성 이외에 서정의 자연스러움, 정밀한 표현력에서 갈린다고 본다. 그에서 김수봉의 ‘그날의 기적 소리’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하며, 주자청의 ‘아버지의 뒷모습’ 또한 수필을 쓰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깊은 여운을 남긴 작품이 아닌가 한다. (2024
현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첫댓글 작가의 진솔성과 자연스러운 서정 그리고 정밀한 표현력이 수필의 품격을 결정짓는 핵심이군요 이는 선생님의 오랜 연륜과 경험에서 정제된 수필쓰기의 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미나 문집에 실을 글을 청탁하여 부랴부랴 짧은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좋은 수필의 요체는 이런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024. 5. 대만 심포지엄 자료집에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