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단양에서 2월 8일 영춘초등학교 동대폐교의 입찰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서울에서 2시간30분을 달려 단양교육청을 찾았다.
교육청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오후 2시30분이다. 오후 3시에 입찰이 있으니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던 셈.
우선 폐교의 입찰을 담당하는 관리과의 이원기 과장과 정봉주 주사를 만났다. 이들에 따르면 오늘 입찰이 올해 첫 폐교 입찰이란다.
첫 입찰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관광자원이 풍부한 단양의 지역적 장점 때문인지 이번 입찰에는 5명이나 신청을 했단다. 폐교를 이용하고자 하는 이는 많지만 대부분의 폐교가 오지에 위치해 있고 임대의 경우 건물의 신축이나 증·개축을 일일이 교육청의 인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유찰되는 사례가 많은 것을 감안할 때 이번 입찰은 이례적으로 사람이 몰린 경우다.
사실 동대폐교의 입찰이 예정돼 있던 같은 날 강원도 홍천에서도 두건의 폐교 임대 입찰이 계획돼 있었다. 그러나 2명 이상 참가 신청을 하지 않음으로써 입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결국 유찰되었다.
동대폐교는 대지 3800평에 교실동 2개, 숙직실, 창고, 재래식 화장실 각 1동과 사택 4동이 갖춰져 있으며 1999년 문을 닫은 이래 5년간 기업체 연수원으로 사용돼 오던 중 임대기간이 만료돼 재입찰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입찰공고에 따르면 동대폐교의 입찰 기준가는 842만8000원이다.
보통 폐교의 임대료가 800만원 수준인지를 묻자 이원기 과장은 최저 금액은 학교마다 다르지만 작은 분교는 보통 300만원 정도고 본교나 본교에서 분교로 전환된 뒤 폐교된 큰 학교는 800만∼1000만원 정도가 최저가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폐교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공유재산 사용계획서를 작성해 교육청에 제출해야 한다. 기존 연수원 운영자를 비롯한 5명의 입찰 참가자들은 연수원·야생화단지·서양화가의 갤러리·체육시설·전통 민속박물관 등의 사업계획을 제출했다.
이원기 과장과 정봉주 주사에게 폐교 입찰에 대한 설명을 듣는 사이 입찰 시간이 10분 전까지 임박했다. 정 주사는 입찰함과 가위를 들고 2층 대강당으로 향한다. 이 과장과 입찰 참가자로 보이는 이들이 그와 동행한다.
입찰 신청을 한 다섯 명 중 세 사람만이 현장을 찾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신청을 한 후 현장을 둘러보고 입찰을 포기했단다. 입찰 5분 전 이 과장이 “모두 오셨으니 조금 일찍 시작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양해를 구하고 일정을 앞당겨 입찰이 시작되었다. 입찰함을 개봉하고 이 과장과 정 주사, 교육청 직원 1명이 입찰 금액이 쓰여진 서류를 검토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 짧은 시간이지만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비친다. 적막을 깨고 이 과장이 입을 연다.
“개찰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제천시 동현동의 김학기님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었음을 알립니다.”
시종일관 긴장된 표정이던 김학기씨(47)가 미소를 지으며 함께 입찰에 참가한 이들에게 악수를 건넨다. 강당에서 관리과로 내려오는 길, 기존 연수원 운영자가 입을 연다. “내가 1500만원을 썼는데도 떨어졌네요”라고 말한다. 낙찰을 받은 김학기씨는 금액을 밝히기 꺼려했지만 함께 참가한 이들은 2000만원 이상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과장과 정 주사, 그리고 김학기씨와 관리과로 내려왔다. 양측은 계약서 작성할 날짜를 다음주로 합의했다. 낙찰자는 10일 이내에 교육청과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며 계약서를 작성하면 계약일로부터 5년 간 폐교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인근인 제천에 거주하고 있는 김학기씨는 “폐교 입찰에 처음 참가해 낙찰을 받게 돼 기쁘다”며 짧게 소감을 전하고 동대폐교를 전통민속품 박물관으로 꾸미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INTERVIEW]낙찰자 김학기씨
“고향 단양서 박물관장으로 여생 보낼 터”
- 동대폐교 입찰에 참가하게 된 계기와 소감. 농협에 근무하다가 5년 전 퇴직하면서 폐교를 활용한 박물관을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제천 인근의 폐교를 알아보던 중 단양교육청 사이트에서 동대폐교의 입찰공고를 보고 참가하게 됐습니다. 고향인 단양에서 생활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 운영계획은. 계약 후 귀농해 폐교에서 생활할 계획입니다. 그 동안 수집해 놓은 악기며 농기구 등 민속품들을 전시해 박물관을 운영하겠다는 큰 계획은 세워두었는데 사실 오늘 제가 낙찰을 받을지 확신이 없어 세부 계획은 낙찰을 받은 후로 미뤘습니다. 이제부터 구체적인 운영계획을 세워야지요.
단양 교육청 이원기 관리과장
“가수 신중현씨, 노동분교 음악캠프장으로”
- 단양지역의 폐교 현황은. 13개의 폐교가 관내에 있으며 이 중 미활용 폐교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인기가 많은 편이라 유찰되는 사례도 드뭅니다. 단양 지역의 폐교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늘면서 2004년에는 단양교육청에서 《문닫은 학교 발자취》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죠.
- 단양지역의 폐교가 인기 있는 이유는. 관광자원이 풍부해 단양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또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2시간30분 거리로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용이하죠.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거주자에게 우선권을 주기도 하지만 단양은 외지인과 지역주민에게 동등한 자격을 줍니다. 이전까지 도색이나 수리는 운영자가 부담해 왔지만 올해부터는 이에 소요된 비용을 임대료에서 공제해 줍니다.
- 지역 내 폐교 운영 사례는. 청소년 수련시설, 체험학습장 등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성분교는 헌책방으로 꾸며졌는데 옛날 학습지와 전과부터 오래된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이곳에서 《중원춘추》라는 책을 구입해 도 교육청에 기증하기도 했죠. 가수 신중현씨는 작년까지 노동분교를 대중음악캠프 장소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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