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축만재(虎逐萬災)」 상과 「총탄 구멍난 태극기」
대전 보문산 ‘호축만재(虎逐萬災)’ 상을 아시나요?
- 금강일보 김상균 칼럼 <6.25단상>을 읽고
과거 나의 수필 <현충일 일기> 한 대목 떠올리다
- 대전시민 여러분, 보문산 산책 길에 <보훈공원>도 꼭 한 번 들러 보시길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필자의 말 :
오늘(2021.06.25) 아침, 충청권 일간지 금강일보에서 의미 있는 글을 읽었다. 김상균 전 대전예술의전당 관장이 쓴 <6.25 단상> 제목의 칼럼이다. 이 글에서 나의 눈에 유난히 크게 들어온 대목은 대전 보문산에 있는 ‘대전보훈공원’ 전시관의 <총탄 구멍 난 태극기 이야기>이다.
“(보문산 뒤편 동구 사정동에 있는 대전보훈공원은) 선화동에 있던 영렬 탑을 이전하고 2007년 완공,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봉안해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좁지만 전시관도 있다. 일언반구 없이 대전시에 기증한 아버지의 일부 물품들이 그곳에 전시돼 있다. 훈장 증서와 계급장, 휘장, 인식표 등과 개인적으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태극기가 전시돼 있다. 군복 안에 두르고 전장에 참여했고 아버지 가슴 속으로 파고들며 생긴 총탄 구멍이 선명하다.”
▲ 대전보훈공원 전시관에서 필자가 찍어온 '구멍난 태극기'(2009년, 윤승원 찍음)
■ 관련 칼럼 :
[금강, 문화를 말하다] 6·25 단상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ggilbo.com)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문득 과거 내가 쓴 ‘보문산 공원의 호축만재(虎逐萬災)’상이 떠올랐다. 해당 글을 다시 찾아보니, 김상균 전 관장이 글에서 언급한 ‘총탄 구멍 태극기’ 사진도 들어있다.
보문산 산책길에 <대전보훈공원> 전시관에 들러 내가 찍어온 사진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국립 대전현충원은 찾아도 <대전보훈공원>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 과거 내가 그곳을 찾아 방명록에 쓴 글귀를 다시 읽는다 .(인터넷 카페 글 '윤승원의 현충일 일기'에서)
『이 시대 우리가 행복을 누리고 사는 것은
나라를 목숨 바쳐 지켜주신 님들의 애국정신과
호국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2009.6.6. 윤승원 』
▲ 필자가 방명록에 남긴 글(2009.06.06. 현충일)
【2009년, 필자가 현직 경찰관 시절에 쓴 졸고 수필】
보문산(寶文山)에서 만나는 '호축만재(虎逐萬災)' 상
- 현직 경찰관의 '현충일 일기'
글, 사진 / 윤승원
"주말인데 집에 다녀갈 수 있니? 이제 제대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고생이 많구나!"
"못 가요. 부대에서 보내려고요. 모두가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라서요."
2009년 6월 6일 현충일 아침, 강원도 북단 전차부대에서 장교로 복무하고 있는 큰 아들과 나눈 대화다.
▲ 2007년 임관 당시 아들(육군 소위 윤준섭)
북한의 잇따른 핵 위협 등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사회 안정을 바라는 현직 경찰관인 아버지나, 국토방위를 책임진 현역 장교아들이나 의경 제대한 예비역 둘째 아들이나 나라와 사회안정을 걱정하는 마음은 똑 같다.
모처럼의 휴일, 대전 보문산에 올랐다.
집에서 30분도 안 되는 거리다. 이렇게 공기 맑고 산림이 울창한 아름다운 산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 받은 시민만이 누리는 행복이란 생각이 든다.
산의 초입 공중화장실에서 뜻밖에 지팡이 짚은 두 노인을 만났다.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할아버지가 닫혀 있는 '장애인 전용 화장실' 문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남녀 구분이 있는 화장실인가? 그냥 들어가도 되는 화장실인가?"
마침 볼 일을 마치고 나오던 내가 할아버지께 말씀 드렸다.
"안에는 좌변기가 있고, 세면대도 있네요. 할머니는 여기 좌변기에 앉으세요."
문을 열고 할머니를 먼저 앉혀 드리고, 할아버지는 잠시 후에 볼 일을 보도록 일러 드렸다. 문이 닫히는 버튼을 실수 없이 짚도록 다시 한 번 일러 드렸다.
사실, 노인이니까 이런 도움이 필요하지, 젊은 장애인이라면 굳이 재차 알려 드릴 필요도 없이 사용이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첨단 시설이었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에는 '열림'과 '닫힘'이라는 자동문 스위치가 있었고, 시각 장애인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점자'도 박혀 있었다.
어쩌다 단 한 사람의 장애인이 찾는 시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편리한 첨단 화장실을 공원에 설치해 준 대전시 당국이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둘 다 앞을 못 보시는 어르신 부부가 이렇게 현충일에 보문산 산행에 나선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어서, 나는 이런 저런 상상을 해 보았다. 그러나 나의 상상과는 달리 노인들은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공기가 얼마나 상큼하고 시원하고 좋은가요. 여기 오기를 잘 했지요?"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 드리자 할아버지가 대꾸했다.
"참 좋네. 그려. 공기가 참 시원하고 상쾌하네."
나는 이 두 어르신의 모습이 참으로 정겹고 보기 좋아 가던 길을 멈추고 한 동안 넋을 잃고 바라다보았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비록 아름다운 자연의 산천초목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도란도란 말씀 나누시며 한 발 한 발 걸어가시는 어르신의 모습이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었다.
앞을 못 보시는 두 어르신도 저렇게 산을 즐기는데, 내가 오늘 여기 찾아 온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고, '보배 보(寶)'자가 들어간 '보문산(寶文山)'이란 이름 그대로 축복 받은 시민만이 누리는 '보배로운 휴식처'란 생각이 들었다.
보문산 사정공원에서 동물원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삼거리 길이 나온다. 여기서 우측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대전보훈공원>이 나온다. 보문산에 이런 '추모 공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현충일인데도 찾아 오는 시민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였다. 시 당국에서 많은 예산들 들여 이렇게 뜻 깊은 추모공원을 조성해 놓았다는 사실을 아직 많은 시민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2008년 11월 6일 보훈공원 개원)
유족들은 대부분 인근 유성에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았을 것이다. 건물에 걸린 현수막과 길가에 내걸린 현수막이 '호국보훈의 달'임을 말해 준다.
공원에 들어서면 누구나 옷깃을 여미게 된다. 우선 <영렬탑>을 둘러보았다. 이 영렬탑은 국토를 지켰던 전쟁의 상징인 총을 형상화한 것으로 전체 높이는 30미터, 상부 5미터는 조국애로 불타올라 하늘로 사라져간 불꽃을 상징하고 기단 6미터, 주탑 25미터는 6.25 전쟁을 표현한 것으로 '호국영령들의 승천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다가 산화한 선배 경찰의 생전의 모습도 조형물을 통해 생생하게 느껴졌다.
<위패 봉안소>는 보훈공원의 가장 높은 곳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조국수호를 위한 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드리는 곳이다.
찾아오는 이는 많지 않아도 현충일에 기관, 단체장의 조화가 쓸쓸함을 달래 주었다.
대전시장도 방명록에 추모 글을 남겼다.
"보훈, 미래를 위한 우리의 도리입니다."(2009.6.6 대전광역시장)
유가족도 '자랑스런 아버님의 뜻'을 기리는 애틋한 추모의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자랑스런 아버님, 고 고옥봉 아버님 사랑합니다.(2009.6.6 아들 종석이)
보는 이의 눈에도 그 자손들까지 더불어 자랑스럽다.
'보훈'(報勳 : '공훈에 보답하다'라는 뜻으로 나라를 위해 공을 세웠거나 희생한 분들을 예우하고 그분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에 보답하는 것을 말함)이란 그런 뜻 아닌가.
방명록을 넘겨보았더니 추모 글을 남긴 분들이 몇 분 되지 않았다.
이 날 오후 3시 현재, 2권의 방명록에는 불과 10여명 남짓 사인을 했다. 현충일인데도 여기 찾아오신 분들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어, 필자도 졸필이지만 방명록에 추모의 글을 남기고 싶었다.
"이 시대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 삶을 누리고 사는 것은
나라를 목숨 바쳐 지켜주신 님들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호국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고맙습니다."(윤승원)
전시관도 마련해 놓았다. 6.25 전쟁의 생생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참혹했던 전쟁의 모습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공원을 찾아 도시락을 먹는 가족도 있었다. 이곳에 무슨 연관이라도 있느냐고 물으니까, "그냥 공기 좋고 경치 좋아 찾아왔어요" 했다.
공원내에는 약수도 있고, 배드민턴 코트장도 있어 온 가족들이 휴일에 소풍을 즐겨도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국가 안보교육의 산 교육장이 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고.
'보훈공원'을 둘러 보고나서 다시 보문산 사정공원에 이르니, <만해 한용운 시비 - 꿈이라면>이 여느 때와 다르게 읽힌다.
『사랑의 속박이 꿈이라면 / 출세의 해탈도 꿈입니다 / 웃음과 눈물이 꿈이라면 / 무심(無心)의 광명도 꿈입니다 / "일체만법(一切萬法)이 꿈이라면 / 사랑의 꿈에서 불멸을 열겠습니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이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얼까? 혹여 호국영령들이 남기고 간 '불멸의 혼'은 아닐까?
깊 섶에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 꽃의 순박한 아름다움>을모르고 어찌 지금껏 무심히 지나쳤는가 싶어 스스로 놀라고 만다.
나라를 지키다가 가신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뜻도 지금까지 '깊 섶 개망초 꽃 스치듯' 무심코 지나쳐 오진 않았는지 새삼 돌아 보게 된다.
나라를 지켜주신 그 분들은 문득 '호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문산 사정공원 높은 계단 중턱에 떡 버티고 있는, 이 포효하는 '호축만재(虎逐萬災)' 상을 만나니, 그 분들이 마치 저 세상에서도 이 나라의 '재앙을 몰아내는 호랑이'로 우뚝 존재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2009. 6. 6. 윤승원 記
첫댓글 ※ 페이스북 / 금강일보 편집국 오피니언 담당자와의 대화
◆ 댓글 / 윤승원(필자) 2021.06.25. 11:10
금강일보 편집국 차철호 기자님,
저의 이 글을 김상균 전 관장님께도 전해 주시고,
오늘 김 관장님의 칼럼도 의미 있게 잘 읽었다고 전해 주세요.
▲ 답 댓글 / 차철호(금강일보 편집부) 2021.06.25. 11:20
윤승원 선생님, 알겠습니다. 윤 선생님 글도 잘 읽었습니다.
보문산 호축만재 상, 저도 몰랐습니다.
시간 닿으면 한번 찾고 싶습니다.
@윤승원 ▲ 댓글 / 윤승원(필자)
아, 차 기자님이 바로 읽으셨군요. 역시 빠르십니다. 고맙습니다.
요 근래 보문산에 가보진 않았는데, ‘호축만재’ 상이 여전히 건재한지 모르겠네요.
윤선생의 생생한 이 기술은 올사모에서 드린 '역사의 창조자 1호' 증서에 딱 맞는 것입니다.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늘 힘과 용기를 주시는 따뜻한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
마침 오늘이 6.25라서 과거와 오늘, 의미를 짚어 봤습니다.
내년 6.25에도 이 글은 또 추억하게 되겠지요.
좋은 글을 경건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전은 청주와 이웃하고 있는 대도시이고 한국의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을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국립대학교를 비롯한 수많은 교육기관과 연구기관과 정부기관이 있고 중부지역의 대표적인 문화도시이다.
또한 질녀가 살고 있고 중형님이 국가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정년을 맞이하고 나서도 머물러 사시던 곳이며
나의 차녀가 과학연구단지에서 근무하였고, 사위가 대전출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전에 관하여 너무도 아는 것이 없다. 다만 보문산이 있다는 것은 풍문으로 알고 있을 따름이다.
나는 백발늙은이가 되도록 대전현충원에도 참배하지 못한 처지이고 보문산 보훈공원도 방문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오늘 우연하게도 윤승원수필가의 글을 통하여 보문산보훈공원을 알게 된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호국영령 앞에 참배도 못하고 보훈의 달을 보내고 나니 너무나 죄송스럽기만 하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의 대열로 올라 선 대한민국은 수 많은 호국 영령의 희생으로 건설되었음을 생각할 때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된다. 다시 한번 엄숙히 고개를 숙인다...... 성남에서 청계산
존경하는 지교헌 교수님의 귀한 댓글 옥고를 이제야 보았습니다.
참으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지 교수님 가족 중에서도 대전에 인연을 맺고 사시는 분이 여러 분 계시는군요.
보문산은 산책하기 참으로 좋은 공원입니다.
졸고에 소개한 것은 너무 단편적이고 극히 일부분입니다.
호국영령들의 영혼이 보문산에도 모셔져 있기에 늘 경건한 마음으로 둘러봅니다.
자상하면서도 따뜻한 댓글 옥고 감사합니다.
대전은 늘 친근감이 감도는 도시입니다. 1950년대에는 유성시장에 지약국이 있었고
거기에는 충주지씨족보교정소가 있어서 1주일간 잡무를 돕기도 하고
또한 국제학술회의에 가서 참관하기도 하였습니다.
차녀는 과학연구단지에 임시로 근무하다가 미국에서 3년간 연구하고 귀국하여 화학회사의 연구소에 근속 중이고
중형님은 대전에서 청주로 환고향하여 말년을 지내시다가 수년 전에 타계하셔서 청주의 국가유공자묘역에 계십니다.
현재는 질녀만이 대전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건강관계로 청주도 가기가 힘들 정도이고 보니 대전도 마음으로만 생각할 뿐입니다.
대전은 청주와 인접하고 호서지방의 중심지인 동시에 한국의 중심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중요한 도시이고
살기좋은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청주에 있을 때는 산악반학생들과 더불어 유성을 거쳐 계룡산을 자주 가게 되었고 계룡산은 속리산과 함께 나의
가장 친근한 산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 지교헌
지 교수님은 대전지역과는 인연이 남다르시군요.
1950년대 유성시장 지약국과 족보교정소에 대한 추억이며,
따님의 대덕연구단지 근무 등등 대전지역에 깊은 인연을 쌓으셨으니
저의 졸고에 대해서도 따뜻한 눈길을 주시지요.
계룡산 아름다운 추억까지 되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건강 관계로 청주도 가시기 힘들다는 말씀에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그래도 훌륭한 가르침을 주시는 옥고를 올려 주시니
늘 감동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