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우리가 머물고있는 있는 지역은 광활하게 펼쳐진 둔덕지대로 몇 개의 펜션과 몇 채의 집이 있을 뿐 작게 형성된 이 곳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큰 길에서 2키로 이상 들어와야 합니다. 외진 곳이지만 집에서는 성산일출봉과 근처 바다가 보이기도 합니다. 거리는 있지만 지대가 높기 때문입니다.
오늘 천둥 번개 돌풍을 동반한 비가 올꺼라는 예보가 있어 간만에 집에 있는데, 태균이의 외출재촉이 오후가 될수록 심해져서 동네산책에 나섰습니다. 바람이 좀 불기는 하지만 온기가득한 초가을날 전형의 대기입니다. 수산한못을 중심으로 꽤 넓은 지대가 온통 억새밭이었는데 요즘 어떤 목적인지 억새밭들이 다 잘려지고 정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억새밭이 정리되지 않은 구역은 아직 가을정취를 우리에게 펼쳐져 보이고, 싹 밀린 들판은 넓디넓어서 늘 뛰어다니는 완이에게는 최적의 운동장이 되었습니다.
요즘 숨겨진 산책명소로 수산한못이 소개되는 바람에 여름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긴 했지만 요즘은 뜸합니다.
저도 동네탐방하다 알게된 사실이지만 수산한못 근처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거대한 수산동굴이 있습니다. 그 길이가 2km가 넘는 거대한 지하동굴이지만 전혀 개방이 되지 않은 작게 입구만 뚫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동굴은 완전 출입금지라서 높은 철망이 둘러져 있습니다.
짐작이긴 하지만 요즘 온통 억새밭이던 이 지역에 집중적으로 길이 정리되는 방향이 수산동굴 쪽이라 이 쪽을 개발하려고 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장차 만들어질 제주 제2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장기적 개발차원의 답사일 수도 있습니다. 사정이야 어떻든 참으로 고즈넉하고 조용한 동네입니다.
아이들 데리고 동네산책을 하면서 세 녀석들은 각자의 시각에서 자연을 즐깁니다. 마음껏 뛰어다니며 에너지를 푸는 완이, 완이를 계속 추적하며 완이단속과 저따라다니는 시선과 걸음을 멈추지 않는 준이, 그리고 우리의 동선을 계속 파악하고 사진찍기 연습 한창인 태균.
저는 가을꽃들을 찾아봅니다. 확실히 가을에는 여름의 정열을 보여주는 붉은 색과 겨울로 가는 차거운 파란색이 결합된 보라색이 대세입니다. 계절을 결정짓는 조도의 양과 각도는 이렇게 자연의 색깔도 지배합니다. 가을의 상징 구절초부터 이제는 거의 시들어버린 여뀌들, 이 지역에서의 자연복원을 시도하고 있는 멸종 위기식물 전주물꼬리풀 등등 보라색꽃들이 억새 아래 여기저기 조용히 제 빛을 내고 있습니다.
쇠비름풀도 대규모로 펼쳐져 군집상태에서 일시에 꽃을 피우니 그것도 장관입니다. 흔하디흔한 이런 잡초들에게 절정의 때는 다 있는 법입니다. 생명질기다고 투덜대며 뽑아제끼던 잡초에게 새삼 경의를 표합니다.
보라색의 대세 속에 나름 자신의 색깔을 고수하며 마지막으로 안간 힘을 쓰고 있는 다양한 식물들의 향연... 역시 야생의 현장은 내버려 두어야 그 아름다움이 더 합니다.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놓쳤던 풍경들, 지난 여름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수국들이 그 빛깔은 비록 퇴색되었지만 형태는 그대로 미이라화해서 길가 지키고 있는 광경! 수국 특유의 풍성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위로 마음껏 쳐놓은 거미줄도 너무나 생생합니다. 넘쳐나는 먹이들을 다 처리도 못할 것 같습니다.
2시간 가까운 동네산책길. 사람 한번 마주칠 일도 없으니 이렇게 한적하고 고즈넉한 풍경감상은 역시 저의 전공입니다. 이런 동네를 택해 살겠다고 마음먹은 것 자체가 한적하고 고즈넉한 자연 속 삶추구의 실현일 것입니다. 매일 지나칠 때마다 수산한못을 찍어보곤 있는데 사진솜씨는 별로라도 수산한못의 정치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입니다.
워낙 넓은 지역이라 집근처 한쪽만 걸었는데도 6천보를 훌쩍 넘겼네요. 밖에 못 가는 날에는 더 자주 다녀야겠습니다. 해가 많이 짧아져서 아쉬움이 큽니다.
첫댓글 누워서 대표님의 글과 사진으로 눈 호강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