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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뜰의 영적 경험
성소를 연구하면 깨닫게 되는 매우 중요하고 놀라운 진리가 있다. 이것은 성소 연구를 통하지 않으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을 뵙기 위하여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셨다. 완전한 구원이란 죄인이 다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서 죽지 않고 영원히 같이 살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소제도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 앞에 나아가기 위해, 즉 지성소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 위해 죄를 어떻게 용서 받으며, 나아가서는 어떻게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수 있는지,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여기서 잠깐 성소 뜰에서의 영적 경험을 살펴보고 지나가자.
1) 성소 뜰의 영적 경험과 상태
성소 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봉사와 사역은 우리가 만드시 경험해야 할 중요한 영적 경험을 시사하고 있다. 성소 뜰에서 어떤 봉사가 이루어지는가? 번제단에서 희생제물을 드리고 죄를 속함 받는 일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죄인이 고백한 죄가 담긴 피를, 제사장이 성소 안으로 가져가 성소 앞 휘장에 7번 뿌리므로, 그 죄가 성소 안으로 옮겨진다. 그러면 그 죄가 언제 완전히 정결함과 도말을 받는가? 일년에 한번 있는 대속죄일에 모든 죄의 정결함과 도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성소제도를 보면, 속죄는 십자가에서 시작된 것이지 다 완성된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서 중보사업을 이루고 계시는 일은 십자가에 못지 않게 중요하며, 또한 속죄 사업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서 구원이 끝났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소제도에서 십자가는 성소 뜰의 번제단을 의미하며, 아직 성소와 지성소의 경험이 남았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성소 뜰의 경험은 우리의 어떤 영적 경험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 희생제물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죄를 가져가신다. 그리고 그분의 순결한 의를 대신 입혀주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의인으로 간주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칭해 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 입혀주시는 의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 용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경험이 바로 성소뜰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 가 아니다. 성소뜰에서 죄를 속함 받은 사람은 드디어 믿음으로 제사장을 따라 성소 안으로 들어가,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을 사는 과정, 곧 성화의 과정을 시작 하게 되는 것이다. 거룩한 순종의 생애는 주님의 보혈로 구속함을 입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매일 죽노라고 하지 않았는가?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한번 구원을 받았다고 그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보혈에는 그 구원과 거듭남이 계속 유지 되도록 지켜주는 능력과 힘이 있다. 그 은혜 가운데서 자아를 주님께 순복하고 매일 죽는 경험을 하며, 마귀와 세상과 죄를 승리하며 사는 생활이 거룩한 성도의 삶, 곧 거듭남이 유지되는 삶인 것이다. 이것을 성화라고 부른다. 이 문제는 성소에서 더 다루기로 한다.
여기서 성소 뜰의 또 다른 기구와 영적 의미를 공부하고 가도록 하자. 성소 뜰에는 번제단 외에 무엇이 있었는가? 물두멍이 있었다.
2) 물두멍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성전 봉사를 시작할 때와 끝 마칠 때, 희생제사를 드린 후에, 특히 성소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을 씻도록 되어 있던 물 담는 기구였다. 이것은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빛나는 놋거울로 만들어졌다(출 30:18). 물두멍은 불결을 보여주는 거울임과 동시에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세숫통이었다. 거울이 불완전을 보여주는 것처럼, 영적으로 물두멍은 성품과 마음을 비추어 주는 자유의 율법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또 어떤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물두멍은 거울을 보고 죄를 느낀 자가 물로 상징되는 성령과 말씀의 역사로 자신을 깨끗하게 씻는 경험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보혈로 한번 구속 받은 후,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즉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매일 씻고 거듭나야 한다. 그러므로 번제단을 거쳐 성소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물두멍에서 알고 있는 모든 죄로부터 마음을 온전하게 씻는 은혜를 체험해야 한다.
또한 물두멍에서 씻는 것은 침례, 중생을 뜻한다. 이 경험이 칭의의 경험이고 매일의 삶 속에서 체험해야 하는 경험이다. 독자 여러분에게 십자가 번제단의 경험과 물두멍의 정결의 역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성소 안으로 들어가다
성소 안으로 들어가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소 뜰에 들어가 그곳에 담긴 의미와 영적 경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는 휘장을 열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보자. 성소의 첫째 칸이라고 불리는 이 성소 안에서 우리는 놀라운 의미들을 발견할 것이다.
1) 성소에 담긴 메세지
성소 뜰에서 죄를 깨끗하게 씻고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은 이제는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거듭나고 깨끗하게 된 양심을 계속적으로 성결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구원이란 한번 받았다고 영원히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인데, 그 때에 우리 마음 속에는 특별한 변화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매일 지켜 나가야 하고, 매일 주 안에서 거듭나므로 구원의 경험을 유지해야 한다. 이 경험을 성경은 “나는 포도 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수 없음이라”(요 15:5)고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한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 받은 것” 아니라, 우리가 그 받은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와 힘을 힘입어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우리의 의지를 주님께 항상 바쳐야 한다. 우리의 행함과 노력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를 쳐서 복종하고 의지를 굴복시키는 노력이 없이 아무도 구원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이 성소 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소를 통과하여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 종결지어진다는 사실을 성소 제도를 통해 배우게 된다. 우리는 거룩하게 사는 성화의 경험을 성소를 통해 배우게 된다. 성화란 곧 칭의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성소가 성화의 경험을 가르쳐주는가? 함께 연구 해보자.
2) 성소안의 기구들
이제는 성소 안으로 들어가보자.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세 가지 기구가 우리 눈에 들어온다. 금 촛대, 떡상, 분향단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가지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구원을 유지시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놀라운 계시이다.
1. 성소 안의 기구들은 왜 순금으로 만들어졌을까?
여기엔 깊은 영적 의미가 숨어있다. 금을 만들려면 금속을 불로 연단하고 망치로 쳐서 만들도록 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망치이다(렘 23:29). 또한 금은 믿음을 상징한다. 진리의 말씀 때문에 오는 시련들을 통과하며 다져진 믿음, 불순물이 없는 순전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생애를 상징하기 위해 순금으로 만들도록 지시하신 것이다(벧전1:7, 갈 5:6 참조).
2. 금촛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금촛대는 일곱 가지를 가진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은 완전한 빛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 하셨다 (요 8:12). 빛이 우리 마음에 들어 오면 모든 오류와 잘못된 것들이 나가게 되어 있다. 금촛대의 빛을 내기 위해 감람유를 사용하였는데, 감람유는 성령을 상징하였다. 흥미롭게도 “겟세마네”의 뜻은 “기름짜는 곳”이란 뜻이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가신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의 앞길을 진리의 빛으로 비춰주신다.
성소 안에는 창문이 없어서 외부의 빛이 들어올 수 없었다. 우리 영혼에도 참 빛되신 예수님의 진리 이외에는 어떤 외부의 빛도 들어 오지 않게 해야 한다. 또한 우리 영혼은 진리의 말씀으로 정결함을 받는다(벧전 1:22).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는 것을 말하며, 빛을 좇아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금촛대가 꺼지지 않고 늘 빛을 비춰주었듯이, 우리는 계속적인 말씀의 공급을 받으며, 성령의 임재하심을 충만히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요한 계시록 1장을 보면 예수님이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는 장면이 나온다. 성소의 촛대를 매일 깨끗이 닦고 심지를 손보고 감람유를 채우는 일은 대제사장의 책임이었다. 그러므로 이 모습은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인데, 우리 영혼의 신앙의 불이 꺼지지는 않았는지 항상 관심을 가지고 돌보시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 심지가 너무 올라와 교만으로 까맣게 그을르지않는지, 거듭남 잃지는 않았는지, 진리를 거절하는 생활을 살지는 않는지 늘 살피고 성령의 은혜와 힘을 주시는 예수님은 얼마나 고마우신 분인가! 우리는 매일 진리의 말씀을 먹고 그 빛 가운데 살아야 한다. 이것만이 성화의 유일한 방법이며, 구원을 유지시키는 길이다.
3. 떡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소 안에 있던 떡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했다. 떡을 진설병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대면의 떡” 혹은 “임재의 떡”으로 불렸다. 이것은 “떡을 통하여 하나님을 뵙는다”는 의미였다. 진설병은 산 떡, 곧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요 6:35).
진설병상은 금으로 된 이중 턱과 두개의 금테로 둘려있었다. 이것은 왕관의 테두리와 같이 권위와 능력이 있음을 상징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와 약동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주의 말씀은 우리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화의 경험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방법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힘과 성령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던 기적의 양식 만나는 이 땅에 내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 진리되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만나가 밤에 내렸던 것처럼 이 세상이 죄와 오류로 캄캄할 때에 주님께서 오셨다. 만나는 또한 이른 아침에 나가서 구하지 않으면 스러져 없어졌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른 아침에 만나를 구하여 그날을 위한 영적 양식을 먹어야 한다. 복잡한 하루를 시작하고 나서 잡다한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고 나면 하늘의 만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만나는 내일을 위해 쌓아둘 수가 없었다. 만나는 그날을 위한 하루의 양식이었으며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 만나를 먹으면 우리는 소생할 수 있고 모든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먹는 일에 게을리 하는 사람은 영생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매일 만나를 먹는 경험을 하고 있는가? 거룩한 말씀을 매일 연구하자! 말씀이 가는 길에 빛이 되고 아울러 여행자에게 힘을 주는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4. 분향단의 의미는 무엇일까?
분향단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시는 중보의 기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인간성을 상징하는 아카시아 나무에다가 정금을 씌워서 만든 분향단은 법궤나 떡상보다 그 높이가 더 높게 만들어졌다. 이것은 예수님의 중보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구원에 있어서 주님의 중보 기도는 없어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분향단의 향이 성소 안에 자욱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의 쉐키나 광채로부터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 죄인들의 진지하고 겸손한 기도들이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갈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 기도에 당신의 완전한 순종의 생애와 의를 공로로 섞으신다. 우리들의 기도는 이 향으로 말미암아 향기로워진다. 이것은 또한 거룩한 성도의 생애를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도의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한가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성소 뜰에서 희생 양을 가지고 속죄제와 번제를 드린 후에야 성소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처럼, 진정한 개심의 경험과 죄를 씻고 버리는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머리로 동의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의로 옷 입혀지거나 중보의 기도를 받을 수 없다. 즉 진정한 성소 뜰의 경험, 거듭남을 통해 성소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는 주님께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의 죄가 진정으로 뉘우쳐지고 포기되어 양에게로 전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를 위하여 아버지 앞에서 중보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다 성소의 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유일한 구원의 청사진인 성소 제도의 가르침대로 구원의 경험을 따라가는 자들에게만 중보의 향이 그들의 죄를 가리워 줄 것이다. 분향단의 향은 아무나 그 향의 재료로 흉내내어 만들 수 없도록 되어 있었는데 (출 30:34~38), 이유는 성소의 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죄 없는 생애, 즉 그의 거룩한 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성소 안의 세가지 기구들은 우리가 거룩한 생애를 살기 위해 필요한 방법들을 가르쳐주고 있다. 하늘을 향하여 여행하는 나그네의 길을 비추어 주는 진리의 빛과, 여행하는 나그네에게 힘과 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생명의 떡 하나님의 말씀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공급받기 위한 기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성화의 길을 넉넉히 갈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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