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진쑥뜸
곱상한 여인이 솥을 이고 이불을 등에 지고 예닐곱살 난 아들이 개다리소반을 지고
손에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를 들고 화산골로 이사 왔다.
신 서방네 아래채에 세 들어 살면서 주로 동네 노인네들에게 쑥뜸을 떠주고 몇푼씩 받아
모자가 굶지 않고 살아간다.
이 여인을 동네 사람들은 ‘쑥뜸어미’라 부른다.
쑥뜸어미는 이사 보따리를 푸는 둥 마는 둥 아들 손을 잡고 서당부터 찾았다.
훈장과 한참 얘기하더니 아들 맹복은 월사금을 면제받고
그 대신 한 장 터울로 훈장 허리와 무릎에 쑥뜸을 떠주기로 했다.
외아들 일곱살 맹복은 쑥뜸어미 삶의 전부다. 목숨과도 같은 아들이다.
없는 살림에도 땡빚을 내서라도 뒷바라지를 해왔다.
맹복도 영특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는 방법은 공부를 잘하는 것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맹복 아비는 열다섯에 초시를 합격하고 장원급제는 따놓은 당상이라 했는데
양갓집 딸과 혼례를 올리고 나서 시름시름 앓더니 신부에게 씨를 뿌려놓고 속절없이 요절하고 말았다.
청상과부는 유복자 맹복을 들쳐 업고 먹고살기 위해 온갖 일을 다하다가
조그만 암자의 부엌일을 하는 공양 보살로 몇년을 살면서 주지 스님에게서 인진쑥뜸을 배웠다.
유복자 맹복이 죽은 제 아비의 한을 풀게 하기 위해 주지 스님이 추천해준 화산골 훈장을 찾아간 것이다.
맹복은 훈장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다른 아이들이 아직도 천자문·동몽선습에 매달려 쩔쩔매는데 맹복은 벌써 동국보감·삼강행실도를
달달 외우고 있었다.
서당에 말썽꾸러기가 하나 있었다.
허용몽은 나이도 또래보다 많은 데다 덩치도 크고 서당에 올 때 비단 전복(戰服)을 입고 백동 칼을 찬 채
당나귀를 타고 왔다.
허용몽 할아버지 허 대감은 화산골, 아니 이 고을 최고 부자로 사또와 친했다.
훈장이 허용몽에게 당나귀를 타고 오지 말 것을 몇번이나 명했지만 무릎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막무가내다. 돼지 오줌통 축구를 할 때는 펄펄 날면서.......
허용몽이 맹복만 보면 눈에 불을 켜고 괴롭혔다.
맹복은 코피가 터지기 일쑤고 훈장이 출타하고 나면 당나귀를 목욕시키라느니
자기 가죽 신발을 닦으라느니 온갖 궂은일을 다 시켰다.
어느 날 허 대감이 서당에 찾아와 학동들이 다 보는 앞에서 발로 문을 차고 들어와
“유 훈장, 우리 용몽이가 어릴 때 무릎을 다쳐 다리가 불편하니 당나귀 타고 다니는 거 시비 걸지 마시오!”
라고 말했다.
허 대감이 휙 돌아 나가고 나자 훈장은 툇마루로 나가 곰방대를 물고 화를 삭이고 허용몽은 헛기침을 해댄다.
이튿날 난리가 났다. “훈장님, 여기 좀 나와보세요”
꼬마 학동이 소리치자 훈장이 앞장서고 서당 학동들이 우르르 몰려가니
당나귀는 펄쩍펄쩍 뛰며 산으로 올라가고 허용몽은 모심은 논에 처박혀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학동들 몇이서 바짓가랑이를 올리고 허용몽을 끄집어내니
비단 전복이 흙 범벅이 돼 똥통에 빠진 생쥐 꼴이 됐다.
허용몽은 몇몇 학동들과 함께 미쳐 날뛰는 당나귀를 잡으러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당나귀를 나무에 매어두고 흙 묻은 비단옷을 입은 채 몽둥이로 얼마나 두드려 팼는지
당나귀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다음 장날 당나귀를 내다 팔았다. 맹복이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흘렸다.
쑥뜸어미는 매일 밤 허 대감의 사랑방으로 불려 갔다.
허 대감은 궁궐에 있을 때부터 치질에 시달렸다.
그 육중한 배를 붙이고 누우면 쑥뜸어미가 엉덩이를 까고 똥구멍에 쑥뜸을 놓는다.
그런데 이 인간이 노는 손으로 쑥뜸어미 종아리를 만져댔다.
그날 밤은 쑥뜸 값으로 스무냥이나 줘서 열다섯냥을 돌려주려니
“내 치질만 낫게 해주면 이천냥이라도 줄게”라며 컴컴한 미소를 흘렸다.
이튿날 밤엔 징그러운 손이 쑥뜸어미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오늘은 백냥 줄게 으흐흐흐.”
바로 그때 “우와∼악!” 쑥뜸어미 허벅지까지 갔던 손을 갑자기 빼자 고쟁이가 찢어지고
허 대감은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가 뒤뜰 미나리 텃논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마른 인진쑥을 손으로 자꾸 비비면 솜이 된다.
이 솜 끝을 똥구멍에 쑤셔 넣고 다른 끝에 불을 붙여서 그냥 둬버리면 이런 꼴이 난다.
그날 새벽에 몰래 외양간에 들어가 당나귀 똥구멍에 인진쑥 줄을 넣고
다른 끝에 부싯돌로 불을 붙여놓은 것은 맹복이었다.
첫댓글 재밋네요
똥침보다
더 무서운폭음탄이 똥창에서 터졋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