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rtment Interior 1903 세계의 유수한 박물관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건축가가 설계한 인테리어 구조물 전체를 그대로 옮겨다 전시하고 있는 곳은 비엔 나市 역사박물관의 아돌프 로스의 작품 밖에 없지 않나 생각된다. 이 박물관 3층 한 코너에 로스가 설계해서 살았던 거실 부분을 그대로 옮겨놓고 전시하고 있다는 것은 아돌프 로스의 작품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07년 12월경에 아돌프 로스는 건축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대중의 소양을 높이는 방법의 일환으로 건축 투어(Tour)를 실 시한 일이 있었다. 이것은 13개의 각기 다른 형태의 아파트와 2개의 상점을 일일이 걸어 다니면서 로스가 설명을 하였다.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로스가 제작하여 준비한 각 건물의 중요한 부분을 그린 입면도와 평면도를 들고 다니면서 설명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로스는 초기에 자신이 사용하였던 간편한 공간의 조화를 경험하였다.
물론 로스의 후기 작품에서는 한층 더 복합적인 형태로 발전하였지만, 몇 개의 의자가 벽난로 주위에 놓여져 있는 라운지는 넓 은 거실과 연결되어 있고 천장의 높이는 방의 기능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로스의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는 벽이며 그 벽의 장식 이었다.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벽의 형태는 떡갈나무나 마호가니 또는 흰 페인트를 칠한 나무로 방 전체를 장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벽 부분의 중간 이하 부분은 책장, 찬장을 설치하고 그 윗부분은 액자로 된 그림을 걸어놓는 것이 관례였다. 천장은 목재 빔을 설치하고 벽과 천장의 접합 부분은 방 둘레에 쳐 놓은 빔과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로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미국식 벽난로를 설치한 것은 비엔나에서는 로스가 처음이었다. 제일 큰 테이블은 영국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여 만든 슈미트(F.O.Schmidt)의 작품이며, 의자도 영국 모델과 같은 형태라 할 수 있다. 그 외 현재 남아있는 모든 가구는 로스가 직접 디자인한 작품이다.
테이블의 타일은 파리의 비고에서 수입했다. 아파트 디자인을 위임받은 사항은 이것을 강력히 동조하는 사람들에게만 받아들여 졌지만, 일반 속물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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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ntner Bar 1908
로스가 설계한 아메리카 바는 비엔나에 새로운 개념을 가져왔다. 미국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고객들이 스탠드나바에 서서 건축 자재와 색깔로 중후한 분위기를 만들고 가장 경제적인 실내 공간을 연출했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하여튼 로스의 가장 유명한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이다.
스카이로스 대리석으로 된 네 개의 기둥 사이로 3개의 출입구를 만들고 그 위의 장식은 미국 성조기를 상징하는 모자이크 형태 를 만든 후 ‘Kntner Bar라는 상호(商號)도 곁들어 있다. 입구를 통해서 들어가면 좁은 복도가 처음 나오는데 이 곳이 외투 등을 맡겨놓는 ’클록룸(Clock Room)이다. 이 부분은 다른 평면보다 약간 낮은 곳에 위치하여 기둥의 길이가 더 긴 것이 특징이다.
바 실내 전체의 면적은 4.45m .15m로, 대리석 기둥으로 공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2m 높이의 기둥면은 마호가니 벽판으로 장식하여 광택이 나도록 하였고 벽은 대형 유리를 붙여 실제보다 넓은 느낌을 주었다. 바 내부 공간의 입구를 따라 들어가는 벽 면은 가로변(街路邊)의 파사드와 수직으로 접합되어 있다.
벽면의 하부는 광택을 낸 패널을 일일이 붙였고, 상부(上部)는 네모나고 작은 반투명 오닉스 패널로 한 장씩 붙여 장식했다. 디자인하고 바닥은 흑색, 백색의 대리석으로 체크무늬 양식으로 배치했다. 바의 최상부 또한 마호가니였고, 의자의 커버는 꽃무 늬가 그려진 영국 카펫으로 했다. 테이블은 불투명 유리로 되어 있는데 테이블 둘레는 놋쇠로 장식했다.
모든 조명의 소재(素材)는 은은한 밝기로 물체에 드리워지게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것은 일명 ‘Loos Bar라고 하는데 1985년 에 Hermann Czech가, 1989년에 Burkhardt Rukschcio가 보수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Looshaus 1909-1911
로스 하우스는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당시 비엔나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건물이다.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 츠 1세의 궁전이 이 미카엘러 광장의 로스 하우스 대각선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 건물을 보지 않기 위하여 미카엘러 광장의 출입구를 봉쇄하고 그 반대편으로 출입하였고 이 건물이 보이는 창도 두꺼운 커튼으로 막아보지 않으려고 했을 정도로 비엔나 에서 최고의 혐오대상 건물이었다.
그러다 보니 몇 차례 건축중지 명령이 내려지는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완공된 건축물이었다. 이 골드만 잘라취는 신사전용품 을 판매하는 상점으로 공모를 통해서 건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응모된 작품이 건축주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로스에게 특별히 설계를 의뢰하였다. 주상복합으로 된 건물을 건축주가 원하였으므로 처음부터 이렇게 설계되었다.
고급 손님을 위한 상점으로서의 입구는 곡면(曲面)의 쇼윈도 유리로 장식하고 대칭되는 2개의 입구는 장식도 없이 너무나 소박 하였다. 상점 내부는 4개의 기둥에 의해 9개의 분할된 판매대가 나누어져 있었다. 기둥과 천장의 접합 부분은 마호가니로 처리 하고 고가의 금은세공품은 유리케이스 안에 전시하여 조명을 은은히 비추었다.
주판매장에서 2층 계단 중간에 메자닌(Mezzanine:주요한 층과 층 사이 중간층을 이름)을 만들어 입구 바로 위는 고객 접견실 로 사용하였다. 로스 하우스는 헤렌(Herren)가와 미카엘러 광장 사이에 면해 있지만 전면은 예각(銳角)을 피해 4개의 기둥이 서 있는 평면을 강조했다.
Steiner House 1910
독일 미술사학자 볼프 테게트호프(Wolf Tegethoff:1953~)는 “건축의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기념비적인 건축물 4개를 손꼽 으라면 다음과 같다. 시카고에 있는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F. L. Wright)의 로비하우스(Robbie House), 비엔나의 아돌프 로스 의 스타이너 하우스(Steiner House), 프와시(Poissy)의 르 꼬르뷔제의 사보와 저택 (Savoy House), 그리고 브르노의 미스 반 데 로에의 투겐하트 빌라(Tugendhat Villa). 이것이 현대건축의 금자탑 과 같이 찬연히 빛나고 있다.”고 말하였다.
스타이너 하우스가 현대건축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우리가 느끼는 이상으로 엄청나다. 스타이너 하우스가 가지고 있는 ‘양 면성’이란 특성은 로스의 초기 작품 중에서 가장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 중의 하나였다. 도로에서 보이는 건물은 일반적인 건물처럼, 다락방을 제외하고는 1개 층 높이로만 되어 있다. 지붕은 금속성 철판을 씌워 반원통형으로 건축했다.
대신 도로변 반대쪽인 정원에 면한 건물은 3층의 파사드로 설계하고 플라트 형태의 지붕을 유지했다. 내부 구조는 잘 사용하지 않는 구조로 3개의 지역으로 나누었는데 1층은 현관 복도와 라운지가 겸용으로 연결되어 있고, 내부 전체의 길이는 대개 13cm 정도의 크기였다. 그리고 식탁과 음악 감상실, 의자를 몇 개 놓을 수 있는 벽난로 라운지를 갖추었다.
1층은 침실과 스타이너의 스튜디오, 2층은 여러 개의 방들이 배치되었다. 개개의 특성을 스타이너 하우스에서는 한 건물의 3층 전체를 포함하여 각자의 특성과 기능을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창문 바로 밑에는 여러 종류의 꽃화분이 놓여짐으로 창문의 미 적 분위기를 한층 높일 수 있었다. 한 건물에서 두 개 면의 파사드, 즉 도로에 접한 부분과 그 뒤쪽인 정원에 면한 두 부분이 서로 다른 것은 마치 신사의 중절모 앞 뒤 부분이 약간 달라도 시각적인 면에서 하나도 이상한 점이 없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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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술인클럽♡ 아름다운 예인인테리어 원문보기 글쓴이: 아름다운 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