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모세의 죄와 벌
유다 광야 맞은편에 자리한 모압 평야의 느보산에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을 이끈 예언자 모세가 잠들어 있습니다. 한 무리의 노예 집단에 지나지 않던 이스라엘을 가나안 입구까지 이끌며 당당한 민족으로 성장시킨 지도자입니다. 신명 34,10은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전합니다. 그런 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요(신명 34장), 이는 마싸와 므리바에서 지은 죄 때문이었습니다(민수 27,14; 신명 32,51). 바로 탈출 17,1-7과 민수 20,2-13에 서술되는 사건입니다. 다만 민수기에는 마싸 없이 므리바만 나와 지명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어쩌면 한 장소를 칭하는 지명이 두 개여서 민수기에는 그 가운데 하나만 쓰인 것일 수 있습니다. 마싸와 므리바가 병행어로 등장하는 신명 33,8과 시편 95,8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 줍니다.
민수 20,2-13의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동체에게 마실 물이 없었다··· 백성은 모세와 시비하면서 말하였다··· ‘어쩌자고 당신들은 주님의 공동체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죽게 하시오? ··· 여기는 곡식도··· 석류도 자랄 곳이 못 되오. 마실 물도 없소.’ ···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지팡이를 집어 들고··· 저 바위더러 물을 내라고 명령하여라. ···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마시게 하여라.’ ··· 모세가 아론과 함께 공동체를 바위 앞에 불러 모은 다음,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 반항자들아, 들어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해 주랴?’ 그러고 나서 모세가···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치자,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과 시비한 므리바의 물이다.”
이 일에서 모세가 지은 죄는 흔히, 주님께서 ‘바위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가 ‘지팡이로 쳐서’ 물을 낸 데 있다고 해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바위를 두드리지 않을 거면 하느님께서 지팡이를 왜 집어 들라고 하셨을까요? 더구나 같은 사건에 대해 말하는 탈출 17,1-7에서는 모세가 지팡이로 두드려서 물을 냅니다. 여기서 모세의 죄는 지팡이로 바위를 친 것보다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해주랴?”라고 말한 데 있는 듯합니다. 곧 물을 내게 하는 힘은 하느님께 있는데 주님의 거룩함은 드러내지 않고, 마치 그 힘이 자신과 아론에게 있는 양, 백성이 모두 보는 앞에서 스스로 과시한 것입니다. 이 일로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을 바로 마주한 곳에서 잠들게 됩니다. 대신, 그의 시종으로 활동을 시작한 여호수아가 탈출 2세대와 함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실 모세가 이집트 탈출 과정에서 보인 활약상을 생각해보면, 그에게 내린 벌은 과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운명을 선고받고도 불평 한마디 없이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 모습은 신명 34,10이 언급한 모세의 위대함을 엿보여 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8월 4일(나해) 연중 제18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