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생활을 통한 삼위일체/삼위일체 대축일 가해
부끄럽지만 저의 사제의 삶을 다룬 “님따라 한평생”이란 CPBC(평화방송)프로그램이 지난 4월 23일자와 4월 30일자 평화방송 TV에 두차례나 방영되었다. 제가 어떻게 사제성소를 갖게 되었고 사제로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다룬 대담 프로그램이었다. 그 방송이 방영될 때 저는 미국에 있어서 직접 보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한 지인의 소개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어렸을 때 성당에서 복사를 하면서 사제성소를 갖게 되었고 아버지 계울리버 신부님의 추천으로 신학교에 편입하게 되었고, 서울 신학교에서 2년, 그리고 호주 신학교에서 3녕의 수학 끝에 지난 1983년 2월 15일 사제서품을 받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십니다.(갈라 2,20”라는 사도 바울로의 말씀과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선택하였다.”(요한 15,16)라는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살아온 삶이었다.
제게 신앙의 길을 열어주신 어머님과 가족들의 기도, 사제의 길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 계 올리버 신부님과 예언자로서 사제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신 고 지학순 다니엘 주교님, 가르쳐 주신 신학교 교수 신부님들, 사제생활을 하면서 형제애를 보여준 친구 사제들이나 교구 사제들, 그리고 본당이나 공동체에서 위로와 격려를 아껴주시지 않은 많은 신자들, 후원자, 은인들의 기도와 응원에 힘입어 43년간이란 긴 세월 사제로서 살아올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모습이었다. 성부,성자, 그리고 성령의 삼위하 한 하느님으로 계시다면 , 부모님과 가족, 신부님,주교님, 신자들의 모습은 나에게 사제인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보여준 삼위일체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한 삼위일체의 모습인 것이다.
저는 그 덕에 오늘도 부족하지만 사제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주님 안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나의 하느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14세기 요한 22세 교황 때 로마 전례력에 삼위일체 대축일이 들어와 본격적으로 교회가 이 축일을 지내게 되었는데, 우리가 무심코 성호를 그을 때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 성령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며 삼위일체인 하느님을 향해 기도드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것은 하느님이 삼위의 위격으로 존재하고 계심을 계시하신 것이다.
이 하느님은 아버지 성부와 아들 성자 그리고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 즉 삼위로 이루어진 분으로서, 본체는 하나이나 위격은 셋인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신 것이다. 아버지 성부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셨다면, 아들 예수 성자는 성부의 뜻에 따라 몸소 육신을 취하여 세상 안에 들어오시어 아버지의 나라를 선포하신 구세주가 되셨고, 제삼위이신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전해 주신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고 은총의 빛으로써 우리를 늘 바른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오늘의 요한복음 3장 16절은 삼위일체의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표현이 바로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이 마침내는 아들 예수를 세상에 내려오게 하였고 그로 하여금 사람들 안에 살면서 몸소 고통과 수난을 겪고 마침내는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게 한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었던 뜨거운 사랑과 깊은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 사랑은 각각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사제인 제 자신도 하느님께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저와 함께 계심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하느님의 그 사랑이 늘 우리를 감싸고 있음으로 행복을 느낀다.
성자를 세상에 보내주신 성부 하느님은 오늘 제1독서의 말씀처럼 자비와 은총의 신이시다. 이스라엘의 대표자 모세는 이른 아침에 홀로 새로운 돌판 두 개를 들고 시나이 산으로 올라간다. 모세는 하느님의 영광을 구름 속에서 체험하면서 자신과 백성을 위하여 용서와 자비를 간구했던 것이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탈출 34,6)라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했던 모세,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주 하느님께 간구하며 엎드렸던 모세의 모습은 우리 신앙인이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탈출 34,9)라는 모세의 간청은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간구하는 우리들의 기도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간구의 자세는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2 코린 13,13)라고 한 삼위일체의 기도 안에서 함께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평화롭게 살며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라는 사도 바오로의 권고는 우리의 신앙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누리는 사랑과 친교를 본받아 항상 기쁨과 감사 속에서 살아가라는 깨우침을 주고 있다.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2코린 13,11)
진정 우리의 신앙은 삼위일체의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이면서 서로서로 용서하고 베풀고 사랑과 친교를 나누는 삶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교회 안에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각각 자신들의 고유한 역할을 해 나가면서 하나의 교회, 보편된 교회, 거룩하고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이루어 나가고, 모든 이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결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순례하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