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4. 08;20
하늘이 꽤나 시끄럽다.
V자 형태로 한 무리의 기러기들이 북쪽으로 날아가며 이별의 소리를
내는 모양이다.
또 겨울이 오면 저 기러기들이 다시 이곳으로 날아올까.
잠시 후 또 다른 무리의 기러기들이 편대 형태를 만들더니 먼 하늘가로
사라진다.
문득
'♬ 기러기 울어 에는 하늘 구만리~~~
한 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도 나도 가야지♪'
박목월 시인이 작사한 '이별의 노래'가 떠오른다.
'♪나의 마음 그대에게 바치려하는 이 한 노래를 들으소서,
그대를 사랑하는~~~♬
쇼팽이 작곡한 '이별의 노래'가 사랑과 외로움, 순정을 바치려는 애절한
노래라면, 박목월 시인은 이별의 아픔을 기러기를 통하여 서정적(抒情的)
으로 풀었다.
산모퉁이를 돌자 솔바람이 얼굴을 간질이고,
가던 길 멈추고 잠시 바람소리를 듣는다.
솔가지를 뚫고 들리는 솔바람소리,
참나무를 돌아와 부딪치는 참바람소리,
신우대를 흔들며 다가오는 댓바람소리 등 나무마다 바람소리가 다 다르다.
미쳐 떨어지지 않은 갈대꽃을 흔드는 남실바람(미풍)이 분다.
이 바람이 지나가면 봄꽃을 재촉하는 건들바람(화풍 花風)이 불어오려나.
09;00
언젠가 술자리에서 친구가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마음이 모든 것을 지어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일체유심조는 화엄경의 핵심사상으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
라는 뜻이다.
한가지의 물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본다는 일수사견(一水四見),
또는 일경사심(一境四心)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수사견의 대상은 물이요,
일체유심조에서는 마음(心)을 말하니 형이상학(形而上學)의 최상위가
아닌가.
누구나 살아가면서 행복과 불행, 행운과 악운을 많이 만난다.
행복과 불행은 상황이나 환경에서 오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이다.
그 누구도 나 자신을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 할 수 없으니
행복과 불행은 마음에서 스스로 지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수개월째 시름시름 앓고 있는 아내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원인도 병명도 나오지 않는 병이라 많은 근심걱정이 쌓여가던 중,
아산병원의 주치의가 췌장과 간, 담도에 전혀 이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묘하게 의사의 말 한마디에 위축되었던 몸이 아주 미세하게 좋아지고 있다.
몸이 아픈 환자에겐 의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위력이 있다.
나 자신도 예전 '뇌종양' 선고를 받고 나락(奈落)으로 떨어졌다가 담당
주치의의 자신 있게 "고쳐주겠다"라는 말에 희망을 찾고 몸을 맡긴 경험이
있다.
수십 년 전 군대에서 몸이 아프면 의무대를 찾는다.
70년대 초반만 해도 약이 제대로 없으니 배가 아프다고 하면 의무병이
'건빵'을 갈아서 약이라 하며 먹였고,
더 심하게 아프다고 하면 배에 '아까징끼'라고 부르던 머큐럼을 발라주면
신기하게 배 아픈 게 사라지곤 했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려면 임상시험을 통해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데,
이때 절반의 환자에게는 새로운 약제를 투여하고
나머지에게는 약제성분이 없는 똑같은 모양의 위약(僞藥 가짜약)을
먹인다.
약제 성분이 없는 위약도 약을 먹었다는 자체로 어느 정도 치료 효과를
본다는데 이를 위약효과라고 한다.
약은 낫는다고 먹어야 효과가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안심 시켜주는 말 한마디는 백가지 약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약의 약리적인 효능과 의사에 대한 믿음이 치료효과에 매우 긍정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치니 일단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원효대사가 모르고 해골에 고인 물을 달게 마실 때나
해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구역질을 하였거나 원효가 간밤에 마신 물은 해골에
고인 물로 본질은 같다.
따라서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마음이 생겨나므로 모든 것이 생긴다.'라는 원효대사의 말을 되새기는 아침이다.
2021. 2. 24.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