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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엄격하게 살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엄격하게 회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할머니의 엉뚱 재치!
할머니가 밤늦게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택시들이 할머니 앞에선 서질 않는 것입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택시가 서질 않자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나하고 가만히 지켜보니 따블, 따블 하는 것입니다.
이에 할머니도 얼른 따라서 “따...따...블”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여러 대의 택시들이 한꺼번에 할머니 앞에서 멈추어서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그중에 제일 깨끗하게 보이는 택시 한 대를 골라 타고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미터기를 보니 5000원이 나온 것입니다.
할머니가 기사에게 5000원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러자 기사님께서 하시는 말씀, “아니...할머니 따따블 하셨잖아요?”
그러자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예끼! 이눔아... 늙으면 말도 못 더듬냐!”
순간적으로 재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경우에 합당하도록 지혜의 은혜를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말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피해와 아픔과 상처를 주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운 말, 아름답고 복된 말을 하면서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P4.
사회 전반에서 똑같은 죄를 저지른다 해도 누가 그 죄를 저질렀는가에 따라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폭행, 강도, 도적, 부동산 투기, 성범죄와 같은 각종 범죄는 사회 전반에서 다양한 계층에서 일어난다.
사회 전반적으로 발생하는 범죄인데, 어느 누구나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보편적인 범죄인데, 이런 범죄를 누가 저질렀는가에 따라서 비판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범죄이지만, 교회가, 목사님이, 장로님, 권사님, 신앙인들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그런 죄를 저질러도 되지만, 적어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목사님은, 장로님은, 집사님은, 권사님은 그런 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라고 자기들 나름대로 정한 기준이 있고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가.
교회는 사회 일각에서 받아야 하는 온갖 비난의 화살을 받지 않으려고 최대한으로 방역을 시행하면서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교회에서 조금의 문제만 생겨도 정부와 온갖 메스컴에서 모든 책임을 교회에 전가시키고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다.
예배 시간에 행정기관에서 검열단을 보내서 사진을 찍어서 고소 고발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막아버린다.
종종 목회자라는 사람들이 각종 범죄에 연루되기라도 하면 목사는 믿을 수 없는 사기꾼처럼, 마치 죽어 없어야 할 대상이나 되는 것처럼 취급하면서 쌍나팔을 불어댄다.
이런 시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오늘 하나님은 특별하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규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규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실까?
제사장의 삶이 목회자의 삶과 같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사장의 삶이 목회자가 담당해야 할 삶의 한 단면이라는 것은 옳다.
그러면 하나님은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어떤 삶을 요구하시는 것일까?
D4.
① 사체를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1-4절에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그의 백성 중에서 죽은 자를 만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려니와, 그의 살붙이인 그의 어머니나 그의 아버지나 그의 아들이나 그의 딸이나 그의 형제나,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인 그의 자매로 말미암아서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느니라. 제사장은 그의 백성의 어른인즉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죽은 사체는 부정한 상태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정결하게 제물을 올려드리면서 제사를 올려드려야 할 제사장은 부정한 죽은 사체를 만지면 안 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시체는 말할 것도 없고 짐승이나 곤충이 죽은 사체도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죽은 사체 자체가 부정하기 때문에 부정한 사체를 만지게 되면 부정하게 되어 정결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제물을 올려드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가족들, 부모님, 형제, 자녀들이 죽었을 때에는 예외가 된다.
그런데 출가한 딸인 경우에는 이미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관유를 부으면서 대제사장으로 위임을 받았을 경우에는 다르게 적용된다.
대제사장이신 아버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으면 곧바로 장자 제사장이 아버지의 대제사장직을 상속받고 관유를 부으면서 대제사장으로 위임하게 된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직임을 비워 들 수 없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곧바로 대제사장으로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장자 제사장이 아버지의 대제사장직을 상속받고 기름 부음을 받으면서 위임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으로 위임을 받았을 경우에는 아버지 대제사장의 장례를 직접 관장할 수 없다.
10-12절에서 “자기의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풀지 말며 그의 옷을 찢지 말며,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지니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지게 하지 말며, 그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의 하나님의 성소를 속되게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대제사장이란 직분은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현현(顯現)하는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비록 부모, 형제, 자녀들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 주검의 시체를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대제사장은 가족으로 인하여 슬픔을 당했어도 성막, 성소에서 나오지 말고 성막에서 지내면서 조용하게 가족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마음으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기도할 뿐이다.
대제사장 자신이 직접 상주가 되어서 장례를 집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려야 할 의무와 권리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본래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들은 어떤 것들이든 훼손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수염이나 머리카락을 깎아서도 안 되고, 조금의 살이라도 상처 나지 않아야 한다.
수염이나 머리카락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상징하는 머리카락이나 수염을 깎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훼손시키는 모습이 된다.
그런가 하면 혹시나 수염이나 머리카락을 깎다가 상처를 낸다면 피를 흘리게 된다.
조금의 상처라도 생기게 되면 피를 흘리게 된다.
피를 흘리게 되면 부정하게 되어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릴 수 없다.
제사장이란 직분은 정결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온전하신 하나님께 직접 제물을 올려드리며 제사하는 직임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눈꼽 만큼의 피도, 0.0001의 피도 흘리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
눈꼽 만큼의 피라도 흘리는 즉시 부정하게 되어 제사를 올려드릴 수 없게 된다.
제사장이란 직임을 가진 사람은 사체를 만져서도 안 되고, 피를 흘려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매우 조심성을 가지고 순간순간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목회자의 삶이란 얼마나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는 삶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목회자의 삶이란 살아가는 모습 하나하나가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는 삶이기 때문에 늘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 함을 일깨워주고 계신다.
② 흠 없는 제사장으로 세우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17-24절에서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너의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 누구든지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곧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등 굽은 자나 키 못 자란 자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고환 상한 자나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와서 그의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 완벽하신 분, 정결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물을 올려드리는 제사장들도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서 완전해야 하고 완벽해야 하고 정결해야만 한다.
아버지의 제사장직을 상속받아서 그의 아들은 자연스럽게 제사장이 된다.
대제사장은 관유를 부음 받으면서 위임식을 통하여 대제사장이 되지만, 일반 제사장은 기름 부음을 받지 않고 아버지의 제사장직을 상속받아서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제사장의 아들들은 모두가 제사장이다.
그런데 제사장의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신체적인 결함을 지닌 자녀가 태어날 수 있다.
선천적으로 신체적인 결함을 지닌 자녀가 태어난다면 그 자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불미스런 사건, 사고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질병이나 교통사고, 각종 불미스러운 사고들로 인하여 원하지 않은 장애를 가지게 된다. 후천적으로 장애를 지닌 이들이 수없이 많다.
아무리 아버지의 제사장직을 상속받아서 제사장이 되더라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만약에 각종 흠이 있는 아들이라면 제사장의 직임을 상속받기는 하지만, 성막, 성전으로 나아가서 직접 하나님께 제물을 올려드릴 수 있는 제사장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성막, 성전으로 나아가서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장의 직임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어야 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흠이 있거나 결점이 있거나 불구자이거나 왼손잡이는 절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제물을 올려드리는 제사장은 될 수 없다.
아주 약간이라도 흠이 있거나 왼손잡이들은 제사장의 가정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여러 가지 물품을 만든다거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은 수행할 수 있다.
이들도 제사장이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먹는 지성물을 먹을 수 있다.
하나님은 22-24절에서 “그는 그의 하나님의 음식이 지성물이든지 성물이든지 먹을 것이나, 휘장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이는 그가 흠이 있음이니라. 이와 같이 그가 내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이와 같이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육체의 결함을 지니면 하나님의 성막, 성전으로 들어가서 제물을 올려드리면서 제사드리는 제사장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성전이나 성전에는 올라갈 수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제사장이라는 직임은 상속받아서 제사장이 된다.
이런 제사장들은 비록 하나님의 성막, 성전에는 올라갈 수 없지만, 제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만든다거나 제사를 준비하는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막이나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물을 올려드릴 수 있는 온전한 제사장과 같은 조건을 형성한 사람만이 목회자가 될 수 있다면, 오늘날 목회자들은 대부분 목회자의 직분을 내려놓아야 할 대상들이다.
왼쪽 다리가 불구인 한 목사도 목회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허물과 죄악을 감싸 안아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면서 목회자로, 사명자로, 직분자로 세워주셔서 미력하나마 하나님의 귀한 복음 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세워주시니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이겠는가.
그러니 원망 불평하지 말고 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복음의 사명,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③ 정결한 여인으로 아내를 취하라고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7-8절에서 “그들은 부정한 창녀나 이혼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함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그는 네 하나님의 음식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나 여호와는 거룩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은 창녀나 이혼당한 여인은 아내로 맞이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처녀이면 가장 좋은 조건이 될 수 있고, 사별한 과부는 이혼당한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
하나님은 13-15절에서 대제사장에게는 좀 더 엄격하게 혼인 조건을 제시하고 계신다.
“그는 처녀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을지니, 과부나 이혼당한 여자나 창녀 짓을 하는 더러운 여인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 중에서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자손이 그의 백성 중에서 속되게 하지 말지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대제사장은 창녀, 이혼당한 여자도 안 되지만, 사별한 여자도 안 된다.
오직 혼인한 적이 없는 온전한 처녀라야 한다.
대제사장의 아내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별하였을 경우에도 대제사장은 처녀와 혼인하도록 말씀하고 계신다.
온전하신 하나님, 정결하신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직을 수행해야 하는 제사장이기 때문에 제사장의 가정은 모든 부분에서 완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9절에서 혹시 “어떤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자신을 속되게 하면 그의 아버지를 속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라고 엄격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제사장의 가정은 모든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혹이라도 제사장의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행음하여 정결하지 못한다면 수치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자녀를 죽임으로서 제사장 가문의 명예와 정결을 회복하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하나님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범한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물에 손을 대기도 하고, 성막에서 헌신한 여인들을 성폭행하면서 간음을 행하는 죄악을 범한다.
성막에서 헌신하는 여인들은 대체적으로 제사장의 딸들이거나 레위 지파의 딸들일 가능성이 많다.
제사장의 딸들이나 레위 지파의 딸들은 평생을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을 서약하여 성막에서 봉사하고 있는데, 엘리 아들들이란 제사장들은 그 여인들을 취하면서 음행하는 죄악을 범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종종 목회자의 자녀들이 탈선하여 목회자 가정에 큰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목회자 자신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기 때문에 온갖 어려움을 당해도 그러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이겨내지만, 목회자의 자녀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게 각종 교회에서 규제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자녀들은 원하지 않는 삶을 어렵게 살아가는 것이다.
목회자의 자녀들은 자유롭지 못한 삶의 가치관 때문에 큰 혼란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종종 탈선의 길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목회자 자녀들이 탈선하는 이유를 한두 가지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교회에서 목회자들의 삶이 이중적이거나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부당하게 취급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든 가치관을 이겨내지 못하고 탈선하는 경우가 많다.
목회자의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가정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모든 성도님들은 함께 가슴 아파하면서 기도해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일반 백성들보다는 제사장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도록 요구하고 계신다.
백성들은 제사장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에 제사장들에게 좀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백성들이 제사장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B4 & L4.
제사장들의 삶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시려는 하나님은 오늘날에는 신앙인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신다.
신앙인의 삶은 사회인들의 삶과 똑같은 평범한 삶 정도만 살아도 좋은데, 온갖 범죄에 연루된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 사회인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이 가로막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회인들은 신앙인에게서 자신들과 똑같은 삶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보다 좀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회 일각에서 똑같이 발생하는 각종 범죄가 일반인들이 범죄하게 되면 ‘그래서는 안 되지. 왜 그랬어’ 하는 수준으로 끝나지만, 신앙인들이 그런 범죄에 연루되면 입에 거품을 물면서 온갖 비난의 쌍나팔을 불어대는 것이다.
그러면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① 날마다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관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집에만 있는 사람은 먼지도 묻지 않고 때가 생기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씻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일하지 않고 가만히 집에만 있어도 먼지도 묻고 때도 생기고 더러워진다.
물론 땀을 흘리면서 일할 때보다는 덜하기는 하겠지만, 더러워지는 것은 똑같다.
그래서 매일매일 씻어야 하고, 청소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나 영혼이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삶의 형태는 더럽고 추해질 수 있다.
아무리 깨끗하고 정결하고 고고하게 살려고 해도,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인으로 성장하고, 평생을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는 더러운 악취가 풍기게 마련이다.
우리들 주변에 보면 늘 인격과 신앙이 고결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주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인격과 신앙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들도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보여줄 때가 종종 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늘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아침에 거울을 본다고 해서 하루종일 거울을 안 보는 것이 아니다.
시시때때로 거울을 보듯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 수시로 체크하고 성찰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란 거울에 우리들의 삶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비추어보면서 자아 성찰하는 삶을 살아야만 누군가에게 비난받지 않고 인정받고 칭찬을 받으면서 신앙인답게 살아갈 수 있다.
②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거울을 바라보며 자아 성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거울을 보는 사람은 자기 모습의 적나라한 부분까지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적나라한 부분을 고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을 보는 사람은 말씀 앞에 자신의 적나라한 부분을 보게 되고, 자신의 더럽고 추악한 인격과 신앙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신앙인으로 신앙인답게 살아야 하는데, 신앙인답지 않게 살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도, 우리 교회도, 나라와 민족도 하나님 앞에서 결코 용납 받을 수 없는 죄악들 속에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버젓이 목사라고, 장로라고, 권사라고, 집사라고 하면서 은근히 우리들의 직분을 내세우면서 살아온 이중적인 삶이 너무 많다.
이제는 이런 삶에서 돌이켜서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철저하고 냉혹하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 자신을 체크하면서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회개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형태를 미련없이 버리고 돌아서는 것이다.
회개하는 삶은 지금까지 살아온 죄악 된 삶을 떠나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다.
③ 날마다 십자가에 죽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수시로 하나님 말씀이란 거울 앞에 우리들의 삶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체크 하면서 회개하는 삶을 살면서 아울러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앞에서 죽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영혼과 마음과 의지와 의식 세계가 썩어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흔히 어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썩어져서 한 알의 밀알이 되도록 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기도 한다.
썩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다.
썩으면 악취만 난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뿌려졌을 때, 그 씨앗이 죽으면 새로운 싹이 돋아나면서 새생명의 원천이 될 수 있지만, 씨앗이 썩어지면 악취만 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마태복음16:24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 15:31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자기 자신을 매일매일 죽는다고 고백한다.
매일매일 우리의 못난 인격, 신앙의 수준을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아 죽는 삶을 살아도 부족하기만 하다.
예수님을 믿고 살아온 인생이 조금씩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만큼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하는데,
나이가 하나둘 점점 더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멋있고 맛있게 익어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직분자로, 사명자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그 직분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들이 살아온 삶의 형태를 돌아보면 나 자신에게도 실망이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하고 수치스럽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못난 인격, 신앙, 가치관을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아 죽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의 일반 백성들보다 더 엄격하게 살아야 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의 삶은 일반 사회인들보다는 더 엄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적인 삶을 살아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은 사회인들보다 더 엄격해야 하고,
목회자는 평신도보다 더 엄격해야 하고,
직분자들은 일반 성도들보다 더 엄격해야 하고,
일반 성도님들은 사회인들보다 더 엄격하게 자기 자신을 향하여 채찍질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런 삶에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 풍겨나오게 된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과 의지와 뜻과 계획과 비전에 하나님께서 임마누엘로 동행하시고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님께서 전화위복의 길로 인도해 가실 것이라 확신한다.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