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게... z도 모르면서...
열 받으면 가끔 뱉어내는 말이다. 물론 가끔 듣기도 하고.
헌데 우린 무얼 근거로 무식하다고/모른다고 하는 걸까.
그렇게 말하는 나나 당신은 대체 얼마나 유식하고 많이 안다고.
“벌교 가 주먹 자랑 말고, 여수 가 돈 자랑 말고, 순천 가 인물 자랑하지 마라.”
남도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잠언이다. 구전에 의하면,
힘자랑하던 왜놈이 머슴 의병장에게 맞아 죽었다고 한다.
푼돈이나 쥔 뜨내기 놈이 있는 척하다 체면을 구겼다고 한다.
잘난 척하던 외지 놈이 인재가 모이던 순천에서 망신을 당했다고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허다한 분야 중 (낭만배달부의 주 관심사인) 문학/예술 분야만 따져보자.
우선 음악.
여기저기 눈 돌릴 필요 없이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의 작품만 하더라도 BWV 1~1126 1천여 곡. 감상이고 나발이고 1.5배속으로 들어도 수백 시간이다. 노루잠으로 보채 봐도 꼬박 보름 이상 들어야 한다. 여기에 쾨헬이 정리해 놓은 모차르트의 작품 K. 1~626까지만 더해져도... '아시아의 종달새'에 이르기도 전 그냥 사망이다.
다음은 미술.
인상파에게 영향을 미친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들라크루아. 앞가슴을 훤히 드러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말고도 총 9천여 점을 남겼다. 작품 당 1분씩만 감상해도 중간에 담배 한 모금 빨면 1만 시간이다. 선 자세로 컵라면만 먹고도 꼬박 열흘이다.
하지만 이 미친 들라크루아도 저 피카소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피카소는 1만 점의 조각/도자가 등을 빼고 그림만 44,000점이 넘는다고 한다. 얼마나 걸릴지 아예 계산 불가다.
문학?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의하면 그는 매일 원고지 20장씩 쓴다고 한다. 대략 A4용지 2-3장 분량에 해당한다. (그의 말이 뻥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그렇게 40년을 써왔고, 욕심을 부려 그 모든 걸 다 출간했다면? 독자들에게 바가지 욕을 들었을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로 사랑을 받은 나태주 시인. 이번에 나온 시집 <네가 없으면 인생도 사막이다(열림원, 2021.10월)>가 벌써 33권(?)째다. 시집 한 권에 실리는 시가 60편 내외라 치면 무려 2천 편에 가까운 시를 발표했다.
영화!
다작으로 유명한 미국 영화감독 우디 앨런.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부터 <카페 소사이어티>까지 작품이 50편을 넘는다.
임권택 감독은 1960년대에만 50여 편 작품을 내놓았는데, 2011년 3월 무르팍도사 출연 발언에 의하면 자신이 찍은 영화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위키 백과 참조). 아무튼 1981년 <만다라>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작품만 해도 30편이다.
“그게 다 작품이냐?”
혹자는 그리 말할지도 모르겠다. 대충 맞는 말이다. 그러기에 전문가들이 필요한 것이고.
그러나
직접 듣지 않고, 직접 읽지 않고, 직접 보지 않고 어찌 판단할 수 있으랴.
우린 그저 (자기들만의 기준에 의해 옥석을 가리는) 전문가들에 의해 편집/각색된 정보와 지식에 세뇌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기준은 시대/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것처럼. 따라서 바닷가의 모래알 같은 알량한 ‘주워 들음’의 잣대로 남에게 삿대질을 하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첫댓글 갑자기 가심이 턱 하는 것이 어디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안나오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언제 저걸 다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