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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는 “정신적 지도자가 부재 중”입니다. 이제껏, 한경직 목사님, 김수한 추기경, 조용기 목사님이 우리의 신앙과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셨고,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민족의 지도자들이 계셨지만, 지금은 노령인구는 많아도 또, 몇 몇 사람들은 자신이 시대의 지도자라고 나서지만, 우리의 정신적 지표가 되는 정신적 지도자는 부재 중입니다. 지금의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마약에 빠지고, 이성이 망각되고, 타인에 대한 양보나 이해보다는 자신의 의지만을 중시하는 본능에 의해서만 행하는 언행심사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염려스럽습니다. 그러한 이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정신을 바르게 이끌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목사로서 또, 나이든 사람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시대를 이끌어주며, 정신적 지표가 되는 정신적 지도자가 속히 나와서,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가는 우리나라를 이끌어 주기를 소망합니다. 노스트라다무스나 정감록의 예언들은 모두 비과학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들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자기에게 문제가 닥치면 점을 치거나 예언을 받기 위해서 돈을 아낌없이 씁니다. 그래서 요즘 대한민국에서 제일 사업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들은 점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각종 일간지를 보면 오늘의 운세가 빠짐없이 자리를 잡고 있고,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점성술도 대유행입니다. 기독교 안에도 소위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카리스마틱 지도자들이 전 세계를 다니면서 자기 스스로를 사도라고 지칭하고 이런 저런 예언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독교 안팎으로 이렇게 갖가지 예언이 난무하고 있는 이 시대에 무엇이 참된 예언이고 누가 참된 예언자인지에 대한 문제를 우리가 분명히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언자를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선지자는 히브리어로 “나비”라고 하는데 이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서 현재에 관한 일, 혹은 장래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인간에게 전달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선지자, 혹은 예언자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언자는 반드시 미래의 일만을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현재의 일을 말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사람은 예언자, 혹은 선지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모세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상에서도 세 분이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정말 대표적인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호렙산에서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해준 자입니다. 십계명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백성들에게 전해준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다른 선지자들은 환상과 꿈을 통해 말씀을 주시기도 하지만 모세는 대면하여 말씀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15절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겠다고 합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모세를 이은 선지자가 나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주의 종을 세워서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선지자는 궁극적으로, 메시야에 대한 예고입니다. 곧, 메시야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메시야이신 그리스도가 전하는 말을 듣고 실행하라는 겁니다. 그럼, 그 메시야는 누구입니까? 지금껏 여러 이단의 교주들이 자신이 메시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는 단 한 분입니다. 그 분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과 동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5절을 보시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리니”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실 것이라는 겁니다. 모세가 나이가 많아 모압 땅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요단강을 도하하지 못합니다. 모세 자신도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목이 말라 생수를 구하였을 때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치며 “내가 너희에게 물을 내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워서 주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주의 종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보내어 말씀을 전하십니다. 본문에서의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는 일차적으로 모세 사후에 하나님이 일으킬 모든 참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중간 위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전하는 선지자직을 감당했던 것처럼 참선지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전할게 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구원자로 오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전하는 선지자직을 감당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과 택한 백성 간의 중보자로 오셔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계시하므로 선지자직을 완성하실 것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축복을 누리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 불순종할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할 때쯤에는, 대부분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에게 경고도 하고 달래보기도 하셨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에게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면서 그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 결과, 북 이스라엘이 먼저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바벨론의 종살이를 했습니다. 성도된 우리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교훈을 받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너무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흥하고, 거역하면 망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것을 기억하여,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행복하고 뜻을 이루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9절을 보시면,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라고 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메시야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벌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그 표본입니다. 그들은, 주의 종인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문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국물도 없어!” 하는 식으로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으로 오용되기 쉽습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의 엄중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벌을 중병에 걸린다거나 사업이 망하는 일쯤으로 보면 안 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이방으로 끌려가 종살이를 하며, 모진 고초 속에서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없는 삶을 오히려 편하게 여기며, “행복”이라는 말로 포장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끌어낸 이유는 더 잘 먹고 더 좋은 옷 입고, 더 재미있게 살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살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받음에 있어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말씀의 양면적 기능입니다. 요 8: 51을 보시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 12: 47 - 48에서는,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축복과 심판의 절대 기준이 됩니다. 그것은,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요 12: 49 - 50에 있습니다. 보시면,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고 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기에 자의로 말씀하시는 것 또한 흠잡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같이 말씀을 하신 것은, 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예수님도 순종하며, 성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한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우리는 두말할 것 없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며, 본문의 말씀처럼, 벌을 받아 마땅한 겁니다. 하나님의 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관심 밖으로 내모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지 않고, 우리에게 인애와 긍휼을 베풀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등불없이 다니는 것과 같기에, 저주 중의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거동락하는 복된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1 - 22절을 보시면,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는 말씀을 분별하는 영적인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은 세상에서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며, 그 말이 진실한 것인지 의문이 생길 경우 그가 참 선지자인지 여부를 분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성도된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해서 모두 진실인 것처럼 믿고 맹종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겁니다. 영적으로 올바른 분별력을 가져서 그것이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가늠해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일 4: 1에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지 아니했으면서도, 자칭 하나님의 선지자로 행세하며 거짓 교훈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은 종말의 때가 가까워올수록 더욱 기승을 부린다고 합니다. 마 24: 4 - 5을 보시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고 합니다. 또, 막 13: 22을 보시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고 합니다. 종말의 때가 가까울수록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그들은 또한 이적과 기사까지 행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도록 미혹한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우리는 참 선지자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을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영적인 지혜를 통하여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아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능력을 의뢰하는 성도들로 하여금 신령한 일을 분별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영적 지혜를 갖게 하시사 모든 것을 능히 분별토록 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들의 심령에 명확히 조명해 주시는 보혜사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판단으로는 절대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분별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이단과 사설에 빠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도된 우리보다 더 지혜롭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 47: 10 - 11을 보시면,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라”고 합니다. 따라서,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는 모든 말을 분별함에 있어 자기 지혜나 세상 지혜로 할 것이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며, 성령께서 인도하심에 따라야 합니다. 참된 선지자의 말이라도 매우 더디게 이루어지면 오해받고 핍박도 받을 수 있습니다. 분명 백성들 편에서는 어떤 선지자의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정확히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의 진위 판정은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왕상 22장을 보시면, 여호사밧 왕이 400명의 선지자로부터 만장일치로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지만, 유일한 참선지자였던 미가야가 경고한 패배의 예언만이 참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 세속적 가치관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채워가기 위해, 어떤 결단과 행동을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들을 대할 때 어떤 마음으로 대하며, 그 메시지를 어떻게 분별하시겠습니까? 오직,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께 집중해야 합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의 코스는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세운 목표로 향해 가는 길도 일직선으로 뻗어있습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잡음에 신경 쓰지 말고 결승점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야 합니다. 여러분! 거짓 선지자의 말을 믿고 따라가는 자에게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언제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께서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도록 간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