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 12,1-4; 마르 5,21-43
+ 찬미 예수님
어제가 입춘이었는데, 오늘 너무나 추웠네요. 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기를 빕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히브리서는 믿음의 길을 운동 경기에 비유해서 말합니다. 앞서 11장에서 히브리서는 구약의 여러 인물들의 믿음을 열거했는데요, 오늘 12장은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다”고 말하면서 시작합니다.
수많은 성인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응원하고 있고, 우리는 마라톤을 뛰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보 성인과 내가 사랑하는 성인들이 지금 “우유 빛깔 김유정” 이런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봉을 들고, 선결제를 하고 응원하고 계시다는 것인데요, 이처럼 성인들은 과거에 모범을 남기셨을 뿐 아니라, 지금 우리를 에워싸고 응원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그다음 구절은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인데요, 여기서 ‘온갖 짐’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어둠의 행실(로마 13,12), 묵은 인간(에페 4,22), 거짓(에페 4,25), 분노와 험담(콜로 3,8), 윤리적 더러움(야고 1,21), 악행과 기만(1베드 2,1)으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것들을 짊어진 채로는 달릴 수가 없습니다.
이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요, ‘영도자’ 대신에 ‘창시자’로 번역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아르케고스’이며 ‘텔레이토테스’라고 말하는데요, 이는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아르케’와 ‘텔로스’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 믿음을 시작하신 분이시고, 우리 믿음을 완성하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사제 서품식 때 주교님께서는 서품 후보자에게 “하느님께서 그대 안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셨으니, 친히 그 일을 완성시켜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믿음’을 시작하셨고, 친히 그 ‘믿음’을 완성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믿음의 시작이며 완성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12장 2절의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인데요, 여기서 ‘기쁨’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아버지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시는 기쁨으로서, 이제 예수님의 기쁨은 우리의 기쁨이 됩니다.
히브리서는 이어서 “죄인들의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엊그제 주님 봉헌 축일 복음에서 시메온은 성모님께 “보십시오, 이 아기는 …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낙심하기 쉽지만, 히브리서는 “‘죄인들’의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하라”고 권고합니다.
제1독서는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라는 말씀으로 맺습니다. 여기서 ‘죄’는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에게 고난을 강요하는 사람들의 죄입니다. 그 죄에 맞서 싸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 죄와 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라고 히브리서는 권고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말씀은 2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과 고난과 짐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예수님께 시선을 향하라는 권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심이 드러납니다. 네 가지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는데요, (1) 마르코 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실 때, 거센 돌풍이 일자 제자들은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자, 바람이 멎고 고요해졌습니다.
(2) 이어지는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게라사에서 무덤에 살던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3) 하혈한 지 12년이 된 여인을 치유해주시고, (4) 이미 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려 주십니다.
이 네 가지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1) 죽을 위험에 처한 제자들을 구해 주시고, (2) 죽은 사람들과 함께 무덤에 살던 사람을 고쳐주시고, (3) 죽은 목숨과 다름없이 12년을 살아온 여인을 치유해주시고, (4) 이미 죽은 아이에게 생명을 도로 주심으로써 당신께서 죽음의 위협을 물리치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죽음 자체를 없애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점진적으로 드러내고 계십니다.
가장 중요한 기적은 마지막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탈리타 쿰!” 곧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여기서 ‘일어나라’라는 단어는, 나중에 천사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마르 16,6)고 선포할 때 사용한 단어와 같습니다. 소녀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신 후 부활하실 것이고 우리 모두를 부활의 삶으로 부르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본 사람은 하혈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밀쳐 댔지만, 그들에게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오로지 그 여인에게만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회당장 야이로 역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시선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찾았고, 더 깊은 절망이 찾아왔을 때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 역시 하혈하던 여인처럼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을 다시 되뇌어 봅니다.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