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해하지 마, 별일 아니야."
"울 일 아니야. 똑바로 말해야 도와주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혹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하게 되는 말입니다.
아이가 울거나 화를 낼 때 부모는 본능적으로 긴장하고, 빠르게 그 부정적 상황을 해결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놓치는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해결하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존 가트맨(John Gottman)과 동료들은 부모가 감정 자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하는지에 따라 양육 태도를 크게 네 가지 — 감정 축소형(dismissing), 감정 억압형(disapproving), 방임형(laissez-faire), 감정코칭형(emotion coaching) — 로 구분했습니다.
1. 감정을 없애려는 부모 vs 함께 견디는 부모
아이가 아끼던 장난감이 부서졌다고 자지러지게 울 때, 두 부모는 전혀 다르게 반응합니다.
감정을 없애려는(해결하려는) 부모
"똑같은 거 다시 사줄게", "뚝 해, 뚝!"이라며 아이의 울음을 빠르게 멈추려 합니다. "이게 울 일이야?"라며 감정 자체를 평가절하하기도 하죠. 목적은 '불편한 감정의 즉각적인 소거'입니다.
함께 견디는 부모
아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 불편한 공기를 함께 견뎌줍니다. "소중한 장난감이 부서져서 정말 속상하구나"라며 아이의 흘러넘치는 감정을 안전하게 담아주는 그릇이 되어줍니다.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시절 학생회장 선거에서 떨어졌을 때, 제 부모님은 제 슬픔을 위로하기보다 손목시계를 사주겠다며 달래셨던 기억이 납니다. 자식의 상실감을 견디기 힘들어 빠르게 감정을 없애려는 방식을 구사하셨던 거지요.
감정을 없애려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부정적 감정을 "나쁜 것, 빨리 없애야 하는 것"으로 학습하기 쉽습니다. 결국 슬픔이나 분노가 찾아왔을 때 이를 억압하거나,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더 큰 불안을 겪는 정서적 고립 상태에 놓이기 쉽습니다.
반면 함께 견뎌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슬픔과 화를 안전하게 흘려보내는 법을 몸으로 익힙니다. '이 감정도 결국 지나가는구나'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자기조절력(self-regulation)의 토대를 다지게 됩니다. 감정코칭형 부모의 자녀가 또래 관계, 학업 집중력, 자기조절 능력에서 더 나은 발달 지표를 보인다는 것이 이후 여러 후속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기도 하였습니다.
2. 상담실에서 만나는 장면
(※ 아래 사례는 실제 상담 경험들을 바탕으로 안전하게 재구성한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진혁(가명)의 어머니는 상담실 문을 열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셨습니다. "아이가 숙제가 어렵다고 짜증을 내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데, 순간 제 안에서 뭔가가 툭 끊어지는 기분이었어요. '겨우 그 고작 숙제 때문에 울 일이야? 똑바로 말 안 해?!' 하고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더라고요. 돌아서면 자책감에 괴로운데, 이상하게 아이가 울면 위로해주고 싶지가 않고 짜증부터 나요. 제가 모성애가 없는 걸까요?"
어머니는 스스로를 나쁜 엄마라며 다그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매주 상담을 이어가며 마주한 어머니의 어린 시절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4남매 중 첫째였습니다. 가난하고 바빴던 부모님 밑에서 늘 동생들에게 양보해야 했고, 서러워서 눈물이라도 흘릴 때면 "너는 첫째가 왜 그렇게 유난스럽고 예민하냐", "우는 소리 시끄러우니까 뚝 그쳐"라는 핀잔만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서러움을 꾹꾹 눌러 담아 단단한 벽을 쌓고 살아남으신 분이었습니다.
진혁이가 엄마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과거의 자신이 그랫던 것처럼 사랑받지 못할 짓이었고, 서러움은 억지로 삼켜야 하는 것이 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평생을 걸쳐 겨우겨우 틀어막고 살았던 그 '불편한 감정의 둑'을, 내 아이가 너무나 쉽게 펑펑 터뜨리고 있는 겁니다.
아이가 울 때 어머니가 느낀 극심한 짜증과 분노는 사실 아이를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눈물을 보는 순간, 충분히 위로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다시 자극받은 것입니다.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가 감당할 수 없으니, 진혁이에게 "그만 울어(축소형)", "울면 혼나(억압형)"라며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견디지 못하는 건 결코 모성애가 부족하거나 부모 역할을 수행할 의지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내가 자라온 정서적 환경이 내 무의식에 각인되어 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해결사 부모에서 동반자 부모로 — 3단계
① 행동과 감정을 분리하기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장난감이 부서져 서러운 것도, 동생이 미운 것도 아이에겐 타당한 감정입니다. 다만 그 감정 때문에 물건을 던지거나 동생을 때리는 행동은 제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