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이파리 남겨놓은 잎새 사이에서 노을빛 감 얼굴 내밀고 주인 오기만을 기다리며 이리저리 흔들린다. 나의 삶과 견주어 보는 듯 늦가을이 되니 애착이 간다.
산기슭에 있는 밭 끝자락에서 홍시를 따고 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홍시는 여기저기 가시덤불 속으로 떨어진다. 홍시 하나를 줍기 위해 가시덤불 깊은 곳을 헤치며 팔을 길게 뻗어야만 간신히 하나를 줍는다. 홍시를 좋아하는 막둥이 딸을 생각하며 손등에 가시 찔리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줍고 있다.
불현듯 홍시와 빨간 사과가 겹친 영상으로 떠 올라 멀미가 난다. 오래전의 버스 안에서 일이다. 할머니의 슬픈 얼굴이 회상되어 그 할머님과 손주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저려온다.
내 나이 스무 살 대학에 다닐 때의 기억이라 생각하고 있다. 버스 뒷좌석에 나는 앉았고 할머님과 손주는 버스 중간에 앉아 있었다. 할머님은 한 손엔 손주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계셨다. 거의 목적지에 도착해서 운전기사의 급정지로 일어난 일이다. 할머니의 손에 들려있던 검정 봉지를 놓치고 말았다.
일순간에 빨간 사과가 버스 바닥으로 구르고 좌석 밑으로 들어간 사과를 줍느라 무릎으로 기어가며 사과 한 알씩을 주워 담았다. 어린 손주는 멍하니 바라만 보고 서있고 할머님은 버스 바닥으로 굴러다니는 사과를 이쪽저쪽 양손으로 붙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할머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사람들 앉아 있는 좌석 밑을 일일이 확인하였다. 버스 바닥이라 그런지 몰라도 어느 한 사람 선뜻 할머님을 도와주지 않았다. 나도 뒷좌석에서 자는 척 외면하고 딴전을 피웠다. 사실 할머님처럼 무릎으로 기어서 주워 줄 용기도 없었고 사과 줍는 모습이 창피했다. 그때는 나란 존재가 기준이 되어 자신이 하는 일 이외에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 세상은 내가 계획하여 실천하기만 하면 되는 양 철없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당시 그 할머님은 다름 아닌 친구의 어머님이셨다. 내 나이 육십 먹은 모습과 그 어머님의 모습과 비교해 본다면 버스 바닥에 나뒹구는 사과를 주워서 손주에게 먹이려는 할머님의 사랑이나 내가 허름한 농부의 옷차림으로 터진 홍시 하나라도 막내딸에게 더 먹이려고 가시덤불을 헤치는 모습이나 뭐가 다를까. 세월이 흘러갈수록 내 마음속에는 그 장면이 선명하게 각인 되어 버스를 탈 때마다 부끄러운 내 모습을 어디에 숨겨야 할지 차창 밖에 멍하니 시선을 고정해 둔다. 젊은 날의 비뚤어진 양심을 스스로 꾸짖고 가슴이 아려온다. 그 어머님이 버스 바닥을 기어다니는 모습들이 오늘 내 모습이었을진대 뒤늦게 깨닫고 옷깃을 여미는데 터진 감 하나 쉰 머리에 털썩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