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일곱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七覺支]은*
열반을 증득하는 도들이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나는 이들 모두를 닦았습니다.**
참으로 나는 그분 세존을 친견하였기 때문에 §
이것은 마지막 몸뚱이입니다.
태어남의 윤회는 멸진하였고 §§
이제 다시 존재함이란 없습니다.
ye ime satta bojjhaṅgā, maggā nibbānapattiyā.
bhāvitā te mayā sabbe, yathā buddhena desitā.
diṭṭho hi me so bhagavā, antimoyaṃ samussayo.
vikkhīṇo jātisaṃsāro, natthi dāni punabbhavo.
[행장] 젠띠 장로니(PTS: Jenti theri, VRI: Jentā theri)는 웨살리에 있는 릿차위 왕족의 가문(Licchavi-rājakula)에 공주로 태어났다. 젠띠 장로니의 전생과 금생의 행장(vatthu)은 난다(아비루빠난다) 장로니(Thi2:1, {19})의 행장과 비슷하다(Abhirūpanandā-vatthu-sadisa)고 『테리가타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ThigA.27) 세존께서 {19}에서 ‘몸뚱이를 보라(passa samussayaṁ).’고 강조하셨고 장로니는 {20}에서 ‘이것은 마지막 몸뚱이(antimoyaṁ samussayo)’라고 읊은 점 등을 볼 때 세존께서는 난다 장로니에게 설하신 {19}와 {20}의 두 게송을 젠띠 장로니에게도 설하셨을 것이다.
계속해서 주석서는 “그녀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으면서 가르침이 끝나자(desanā-pariyosāne) 아라한됨을 얻었으며 자신이 증득한 특별함을 반조한 뒤(visesaṁ paccavekkitvā) 희열(pīti)에 차서 이 두 게송을 읊었다.”(ThigA.27)라고 간단하게 밝히고 있다.
* “’이들 일곱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七覺支, ye ime satta bojjhaṅga]’은 마음챙김[念], 법의 간택[擇法], 정진[精進], 희열[喜], 편안함[輕安], 삼매[定], 평온[捨]이라 불리는 것인데(sati-dhammavicara-vīriya-pīti-passaddhi-samādhi-upekkhā-saṅkhātā), ①깨달음이나(bodhiyā) 앞에서 설한(yathāvuttāya) 그런 ②법들의 조화(dhammasāmaggiyā), 또는 ③깨달은 자나(bodhissa vā) ④깨닫는 자나(bujjhanakassa) ⑤그것을 구족한 사람의(taṁsamaṅgino puggalassa) 구성요소가 되기 때문에(aṅgabhūtattā) 깨달음의 구성요소라고 이름을 얻은(bojjhaṅgāti laddhanāmā) 일곱 가지 법을 뜻한다.” (ThigA.27-28)
‘깨달음의 구성요소[覺支]’로 옮긴 bojjhaṅga는 bodhi+aṅga의 합성어이다. 주석서는 ‘bodhiyā aṅga’와 ‘bodhissa aṅga’의 두 가지로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bodhiyā는 여성명사로 쓰인 bodhi의 소유격이고 bodhissa는 남성명사로 쓰인 bodhi의 소유격이다. 전자는 깨달음이라는 추상명사이고, 후자는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PED나 BDD나 NMD 등은 모두 전자의 의미만 언급하고 있고 후자의 의미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초의 빠알리-영어 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DLP은 이 의미를 밝히고 있다. 주석서의 다른 곳에서는 후자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깨달은 사람의 구성요소라고 해서 깨달음의 구성요소이다(bujjhanakassa puggalassa aṅgāti bojjhaṅga).”(MA.i.83 등)로 나타나기도 한다. 역자는 이 둘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이를 깨달음의 구성요소(bodhiyā aṅga)와 깨달은 분의 구성요소(bodhissa aṅga)로 풀어서 옮겼다. - 『담마상가니』 §285 주해
**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 나는 이들 모두를 닦았습니다(bhāvitā te mayā sabbe, yathā Buddhena desitā).’라고 하였다. 나는 이들 37가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도 모두(sattatiṁsa bodhipakkhiyadhammā sabbep) 부처님 세존(Buddha bhagavā)께서 설하신 대로 생기게 하였고(uppāditā) 증장하게 하였습니다(vaḍḍhitā)라는 말이다.” (ThigA.28)
§ “’참으로 나는 그분 세존을 친견하였기 때문에(diṭṭho hi me so bhagavā)’라고 하였다. 여기서 ‘때문에’라는 단어는(hi-saddo) 원인을 뜻한다(hetu-attho). 법을 몸으로 가지신 분[法身, dhammakāya]이고 정등각자(Sammā-sambuddha)이신 그분 세존을 [나] 자신이 증득한 성스러운 봄(adhi-gata-ariya-dhamma-dassana)을 통해서 [나는] 친견하였다(diṭṭha).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이것은 마지막 몸뚱이입니다(antimoyaṁ samussayo).’로 연결된다. 참으로 성스러운 법을 보았기 때문에 부처님 세존들(Buddhā bhagavanto)과 다른 성자들(aññe ariyā)을 친견하였다고 한다. 단지 물질로 된 몸만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na rūpa-kāya-dassana-mattena).
그래서 『쌍윳따니까야』「왁깔리 경」(S22:87)에서 말씀하시기를, “왁깔리여, 그만하여라. 그대가 썩어 문드러질 이 몸을 봐서 무엇 하겠는가? 왁깔리여,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yo kho, vakkali, dhammaṁ passati, so maṁ passati).”(S22:87 §8)라고 하셨고, 『맛지마니까야』「뱀의 비유 경」(M22) 등에서 “비구들이여, 잘 배운(sutavā)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고… “(M22 §16, S22:1 §15)라는 등을 말씀하셨다.” (ThigA.28)
즉 여기서 세존을 친견하였다는 것은 성스러운 법을 보았다는 뜻이고 아라한이 되었다는 것이지 단지 세존의 육체적인 몸을 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의 이 몸은 마지막 몸뚱이(samussaya)여서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
§§ “’태어남의 윤회는 멸진하였고(vikkhīṇo jāti-saṁsāro)’라고 하였다. 태어남 등은 –
무더기들[蘊]과 요소들[界]과 감각장소[處]의 흐름이
끊이지 않고 전개되기 때문에 윤회라고 일컫는다.
(khadhānañca paṭipāṭi, dhatu-āyatanānañca
abbocchinnaṁ vattamānā, saṁsāroti pavuccatīti (DA.ii.496, SA.ii.97)
라고 그 특징을 설한 윤회(saṁsāra)가 특히 멸진되었다. 그래서 ‘이제 다시 존재함이란 없다(natthi dāni punabbhavo).’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래에 다시 존재함이 없기 때문에 태어남의 윤회는 멸진되었다(vikkhīṇo jātisaṁsāro). 그러므로 존재들은 모두 뿌리 뽑혔기 때문에(samūhatā) 다시 존재함이란 없다고 바꾸어 말해도 된다(āvattetvā vattabbaṁ). 혹은 태어남의 윤회가 멸진하였으니(vikkhīṅa) 그래서 ‘이제 다시 존재함이란 없다.’라고 적용해도 된다.” (ThagA.i.162-163)
- 초기불전연구원 번역,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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