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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장 14-18절.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 지난 시간에는, <어찌 죄에 더 거하리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죄에 우리 몸과 지체를 드리면, 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과 지체를 하나님께 드려서 의의 종이 되자고 합니다.
2. 오늘은 우리가 <의의 종이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4절.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sin shall not be master over you, for you are not under law but under grace.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ἁμαρτία γὰρ ὑμῶν οὐ κυριεύσει·
sin for you not will rule over
직역하면 ‘왜냐하면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에서 동사(κυριεύσει)는 미래형으로서(will rule over) 앞으로 주장하지 못할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οὐ γάρ ἐστε ὑπὸ νόμον, ἀλλὰ ὑπὸ χάριν.
not for you are under law, but under grace
직역하면 ‘왜냐하면 저희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있지 아니 하고’에서 동사(ἐστε)는 현재형으로서(you are) 부정어(οὐ:not)와 함께, 언제나 율법 아래 있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인간이 아무리 율법을 다 지켜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해도,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 죄를 안 지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이미 죄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고 성령님의 은혜 안에 있으면,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이 성령님의 능력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결심과 노력으로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안 되고, 오직 기도하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무장될 때는 죄의 세력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2. 죄가 성도를 주관치 못하리라는 말씀은 성도가 <죄의 세력과 영토>에서 벗어났음을 뜻합니다.
즉, 사탄의 왕국에서 예수님의 왕국으로 옮겨졌음을 의미합니다.
앞 절과의 문맥상으로 볼 때, 14절의 의미는 <성도의 신분과 위치는 죄가 주관치 못하는 은혜의 왕국에 와 있다. 그러므로, 죄가 절대로 성도를 주관치 못하나, 성도의 몸을 괴롭힐 수도 있다. 이것마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3. 앞의 12-13절에서 권면하신 말씀,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라.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라>는 말씀은 불신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고,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불신자들은 <죄가 주관하는 사탄의 왕국>에 있기 때문에, 결코 죄악과 싸울 수 없고, 종노릇 할 뿐입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불신자는 죄가 시키는 대로 복종할 뿐입니다.
4. 14절의 말씀은 용기와 격려를 줄 뿐만 아니라, 신앙에 균형을 잡아주는 말씀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고 용기를 줍니다.
<네가 혹 실수하고 넘어졌다 해도, 죄가 너를 주관치 못한다. 용기를 내라. 이제까지는 그러했다 하더라도, 네 신분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도전해 보아라. 너는 승리할 수 있다>고 넘어지려는 신앙에 균형을 잡아줍니다.
5. 앞의 5장 20절에서도,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한 말씀을 혹시나 오해하여, <그렇다면, 행위는 아무렇게 해도 되는구나>하고, 무율법주의로 기울어질 것을 염려해서, 6장 1절에서 <그런즉,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고 균형을 잡아주었습니다.
이번에는 <난 안 되겠구나> 하고 절망 낙심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려 하니까,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고 다시 균형을 잡아줍니다.
6. 왜 죄가 주관치 못합니까?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니라.>
(1) 법 아래 있는 사람은 정죄 아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죄성을 지니고, 생각과 행동이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2) 고린도전서 15장 56절.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율법은 정죄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율법이 없으면 정죄가 없어집니다.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므로, 정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은혜 아래 있어서, 사랑과 영생을 얻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무죄 선언하시고, 의인으로 인정하시고, 죄 사함과 영생 천국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분은 정죄가 없고, 용서와 사랑과 영생 천국의 은혜 안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의 나라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을 넘치게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15-16절.
앞에서는 죄가 지배하는 왕권을 말했는데, 여기서는 주종관계에서 죄의 종과 의의 종의 상태를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15절.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at then? Shall we sin because we are not under law but under grace? May it never be!
그런즉 어찌하리요
Τί οὖν;
what therefore?
죄를 지으리요
ἁμαρτήσωμεν
shall we sin
직역하면 ‘우리가 죄를 지으리요’란 뜻입니다.
‘죄를 지으리요’(ἁμαρτήσωμεν)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shall we sin) 단호하게 죄를 짓는 확실한 모습을 가정한 말입니다.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ὅτι οὐκ ἐσμὲν ὑπὸ νόμον, ἀλλὰ ὑπὸ χάριν;
because not we are under law, but under grace?
‘있으니’(ἐσμὲν)는 현재형으로서(we are) 언제나 은혜 아래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μὴ γένοιτο.
never may it be
동사(γένοιτο)는 부정과거 기원격 동사로서(may it be) 결코 그러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1.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정죄와 처벌 아래 있지 않고, 예수님의 구원과 사죄의 은혜 안에 이미 들어와 있으니,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죄를 짓고 자유스러운 생활을 해도 앞으로 정죄와 형벌을 받지 않느냐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가정이지만, 물론 우리가 예수 믿은 후에 죄를 짓는다고 해도, 처벌받지 않고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악된 생활의 죄책감과 가정불화와 사회적 불명예를 경험한 우리가 어찌 더 죄악 생활을 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육체의 욕심 보다 성령님의 은혜를 맛보았기 때문에, 기도하고 성령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행복하고 안전하고, 명예로운 생활을 반드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행함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에게는 의로운 삶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지금 사도 바울의 논증입니다.
3. 사도는 14절에서, 위대한 원리를 말씀했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데, 여기서 <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했고, <법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1절.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라.
성도의 삶은 무율법주의(Anitinomianism)와 도덕무용론자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3. 로마서 8장 29-30절. 5대 황금고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미리 아심, ② 미리 정하심, ③ 부르심, ④ 의롭다 하심, ⑤ 영화롭게 하심.
<칭의>에서 곧바로 <영화>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칭의>와 <영화> 사이에의 <성화>의 생활이란, <영화>의 천국을 바라보고, 성령의 인도 따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가는 생활을 가리킵니다.
4.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사랑하셔서, 나 같은 죄인을 의롭다 하여 주심을 가능케 하셨는가를!
이 은혜를 참으로 알고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하여 주심에 어긋남이 없이, 의로운 삶을 살려는 간절함이 있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요한일서 3장 2-3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진정 <영화>에 대한 소망이 있는 성도마다, 이 세상에서도 <주님 모시고 살려는 욕망>을 가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 모시고 사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6절.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Do you not know that when you present yourselves to someone as slaves for obedience, you are slaves of the one whom you obey, either of sin resulting in death, or of obedience resulting in righteousness?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οὐκ οἴδατε
not have you known
동사(οἴδατε)는 완료형으로서(you have known) 이미 알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ὅτι ᾧ παριστάνετε ἑαυτοὺς δούλους εἰς ὑπακοήν,
that to whom you yield yourselves slaves for obedience
직역하면 ‘순종을 위해서 너희 자신을 누구에게 내어주든지’인데, 한글번역을 좋은 번역입니다.
‘내어주어’(παριστάνετε)는 현재형으로서(you yield) 복종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δοῦλοί ἐστε ᾧ ὑπακούετε,
slave you are to him you obey
직역하면 ‘네가 순종하는 그에게 네가 종이라는 것을’이란 뜻입니다.
‘네가 순종하는’(ὑπακούετε)은 현재형으로서(you obey) 순종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종이 되는 줄’에서 동사(ἐστε)는 현재형으로서(you are) 언제나 종이 되는 관계를 가리킵니다.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ἤτοι ἁμαρτίας εἰς θάνατον
whether (slaves) of sin into death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ἢ ὑπακοῆς εἰς δικαιοσύνην;
or (slaves) of obedience into righteousness?
1. 이제 성령님의 은혜 안에 있는 성도가 죄를 짓는 것은 성령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라서 마귀를 따라 사망의 고통에 이르고, 성령님께 순종하는 성도는 의와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 충만과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행복한 삶과 복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 16절에는 <종>이란 말이 자주 나옵니다.
당시에는 <노예제도 시대>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노예를 사고 파는 것을 항상 보았습니다.
노예는 팔려서 새 주인을 만나면, 새 생활이 시작됩니다.
전에는 우리가 마귀의 노예가 되어서, 마귀를 주인으로 섬기면, 마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종으로 사주셨습니다.
우리의 새 주인은 이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좋으신 예수님(성령님)을 모시고, 그 명령(감동)에 따라 살아갑니다.
3. 그러므로, 16절은 우리에게 두 길이 있으니, 선택하라는 뜻이 아니고, 이제는 예수님이 주인이 되셨으니,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7-18절에,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우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이제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노라>고 했습니다.
4. 조심해서 들으십시오!
15절의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요한일서 3장 8절.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1) 이 말씀을 오해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낙심하였습니다.
여기서 <죄를 짓는다>는 말은, 습관적으로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죄 가운데 살면서도, 아무런 성령님의 가책이 없고, 중생한 영혼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없는 불신자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성령의 책망이 없이 죄 속에서 사는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2) 그리스도인으로서 죄를 한 번도 짓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8절.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10절.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실수하고 넘어지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5.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 죄의 종은 사망- 순종의 종은 의(생명)
순종의 결과는 영생 천국입니다.
(2) 그런데, 잘못하면 <행위 구원론>이 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순종의 종은 의>라고 표현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즉, 영생은 순종의 댓가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3) 죄의 종은 사망이요, 순종의 종은 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죄와 사망과 마귀의 종이 아닙니다!
날마다 예수님 모시고, 말씀 순종하여,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누리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주 안에 감추인 새 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없다.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니 찬송과 기도로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누리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17-18절.
17절.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hanks be to God that though you were slaves of sin, you became obedient from the heart to that form of teaching to which you were committed,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χάρις δὲ τῷ Θεῷ
thanks (be) but to the God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ὅτι ἦτε δοῦλοι τῆς ἁμαρτίας,
that you were being slaves of the sin
직역하면 ‘너희가 계속 죄의 종이었다’는 뜻입니다.
‘종이더니’에서 동사(ἦτε)는 미완료과거로서(you were being)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죄의 종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음으로 순종하여
ὑπηκούσατε δὲ ἐκ καρδίας
you became obedient but from heart,
직역하면 ‘그러나 너희가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순종하여’(ὑπηκούσα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became obedient) 과거에 확실히 순종하게 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εἰς ὃν παρεδόθητε τύπον διδαχῆς,
to which you were handed over to form of teaching
직역하면 ‘(너희 마음에) 너희가 전달받은 교훈의 본에 (순종하므로)’란 뜻입니다.
‘전하여 준 바’에서 동사(παρεδόθητε)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you were handed over) 과거에 너희가 전달받은 확실한 사실을 가리키고, 우리 성경은 수동태를 능동으로 번역했습니다.
1. ‘감사하리로다’는 로마 교인들이 원래 이방 죄인이었으나, 전도자가 전해준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에게 순종함으로써 은혜 생활하는 것을 보고, 바울이 감사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한다’는 것은 억지로 율법 생활을 하거나, 마지 못해서 귀신에게 끌려가는 생활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좋아서 자발적으로 따라가는 신앙생활을 가리킵니다.
2. 여기 17-18절은, 16절에서 말씀한 일반적인 원리를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시켜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누구에게 순종하느냐에 따라서 죄의 종이 되기도 하고, 의의 종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란 죄의 종 된 신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사람들입니다.
3. 사람은 누구든지 죄의 종과 의의 종 둘 중의 어느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17절에 <죄의 종>이란 말이 있고, 18절에는 <의의 종>이란 말이 있습니다.
(1) 자신이 깨닫고 있든, 깨닫지 못하고 있든, 사람은 반드시 주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길 수도 없습니다.
즉, 죄의 권세자 사탄을 주인으로 섬기든지, 의의 주관자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2) 그런데,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성도들은, 감사 감격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자랑합니다.
(3) 그러나, 사탄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주인이 마귀라는 사실을 인정도 않고, 거짓말을 합니다.
불신자에게 <당신은 마귀의 종이요>라고 하면, 펄쩍 뛰고 대듭니다.
(4) 좋은 예가 요한복음 8장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가리켜 <귀신 들렸다>고 했습니다.
(5) 마귀는 간교하여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내 종이 된다>고 말하지 않고, <네가 하나님같이 되리라>고 속였습니다.
사탄은 유혹하며 속삭입니다: <네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살아라. 네 자신의 출세와 명예를 위하여 살아라. 네 양심을 믿고 살아라. 네가 왕이다. 네가 주인이다>고 속삭입니다.
(6)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할 때, 사탄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4.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1) 로마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겨가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로마서 1장 8절.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이 본래 죄의 종이더니, 해방되어 하나님께 종이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2)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죄의 종에서 절대 해방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에스겔 37장 -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에스겔의 마른 뼈들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18절.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aving been freed from sin, you became slaves of righteousness.
죄로부터 해방되어
ἐλευθερωθέντες δὲ ἀπὸ τῆς ἁμαρτίας
having been set free but from the sin
직역하면 ‘그러나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받아’란 뜻입니다.
‘해방되어’(ἐλευθερωθέντες)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set free) 과거에 확실히 해방받은 역사적인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ἐδουλώθητε τῇ δικαιοσύνῃ.
you became slaves to the righteousness
‘종이 되었다’(ἐδουλώθητε)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you became slaves) 과거에 확실히 의의 종이 된 역사적인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순종의 종’(16절)은 신자의 생활 태도를 가리키고, ‘의의 종’(18절)은 순종의 결과를 가리키며, ‘하나님의 종’(22절)은 새로운 신분을 가리킵니다.
2.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되는 데는 세 단계를 거칩니다.
(1) 첫째는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17절.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로마서 10장 17절에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에베소서 1장 3절에도,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런데, 이 복음의 말씀을 오늘 본문 17절에서는 <교훈의 본>이라고 표현합니다.
<본>이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를 가리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한다
갈라디아서 1장 7-8절.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2) 둘째로, 복음을 들을 때, 마음으로부터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즉, 들어서 아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단계입니다.
(3) 세 번째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17절.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믿는 것은 반드시 순종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5. 사도의 직분을 받아 이방인으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로마서 16:26.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려고, 이 복음을 전한다
(4) 이상과 같은 세 단계는 지, 정, 의의 믿음입니다.
<교훈의 본>은 지적인 면이요, <마음으로>는 정적인 면이요, <순종하여>는 의지적인 면입니다.
(5) 병적으로 비뚤어진 불구자 신앙인이 있습니다.
① 지적인 면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늘 새로운 말씀만을 찾아 헤맵니다.
에스겔 33장 32절 -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려 않고, 음악감상 하듯 합니다.
② 감정에만 얽매어 끌려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박수 치면서 흥분 상태를 유지해야 되고, 더 큰 흥분을 요구합니다.
소위 <빈야드 운동>이 그랬습니다.
아우성을 치고, 뒤로 벌렁 넘어지고, 정신 나간 듯 웃고, 짐승의 소리를 냅니다.
③ 혹은 복음적 교리적인 원리에 입각하지 않고, 실천만을 강조하여, 행동주의, 도덕주의, 율법주의, 사회복음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6)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은 전인격적인 믿음입니다.
즉, 말씀과 기도와 봉사가 겸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말씀을 깨닫고, 기도하여 성령님의 능력 받고, 실천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