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고, 잇고, 걷고,’‘쓰리 고‘를 실감하며 걸었던 남해 바래 길,
1985년에 발족한 <황토현문화연구소>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로 재탄생한 것은 2005년이었다. 우리나라 옛길(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과 한국의 10대 강(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등) 도보 답사와 우리나라의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길을 걷던 우리 땅 걷기 도반 35명이 삼천포 대교를 지나 남해대교까지 남해 바닷가 길을 엿새에 걸쳐 걸었던 것은 2007년이었다. 고사리 길을 처음 알았고, 상주해수욕장에서 길도 없는 노도를 가는 길을 악전고투 속에 걸었으며, 앵강만의 노을이 얼마나 사무치게 아름다운지를 알았으며. 더 중요한 것은 고스톱(Go Stop)에서 쓰는 용어인 ‘쓰리고’라는 말의 의미를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던 때가 그때였다.
그 당시만 해도 남해 바닷가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길을 찾아야 하고, 사라진 길은 찾고, 그리고 두 발로 걷는, ‘찾고, 잇고, 걷고,’ 그 쓰리고의 철학적 의미와 루쉰이 <고향>에서 말한 “길은 없었지만 사람이 걸어가면서 길이 되었다.”는 의미를 새삼스레 각인했던 것이다.
그길을 걸으며,‘보물섬’이라는 남해의 바닷가 길이 얼마나 아름답고 숨겨진 역사와 문화유산이 많은 곳인지를 깨달았다. 그 다음 해에 문화체육관광부(담당사무관 홍성운, 현재 사단법인 <길과 문화> 이사장)에서 <이야기가 있는 문화 생태 탐방로> 열 곳을 선정할 때 선정위원으로 참여하여 내가 적극적으로 추천했던 길이 남해 바닷가 길이었고, 남해에서 활동하던 문찬일, 조혜연, 서재심 도반을 알게 된 것도 그 때였다. 그 결과로 ‘남해 바래길“이 탄생하였다.
’바래‘라는 뜻은 남해 사람들의 토속어이다. 옛날 남해 어머니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미역, 고동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작업을 이르는 말이고 그 때 다니던 길이 ’바래길‘이다.
모든 것이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 때라는 것도 결국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꿈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꿈이다.
그렇다면 내가 걸어갈 남해라는 고을은 어떤 의미를 가진 지역인가?
”남해라는 고을은 바다 가운데 섬으로서, 진도, 거제와 함께 솥밭처럼 세 곳으로 나뉘어 우뚝 서 있다. 그 땅은 기름지고, 그 산들은 번성하여, 나라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지역이 왜국의 섬과 가까워서 경인년(1350)부터 왜구의 침략을 당하기 시작하여, 더러 왜구에게 붙들리거나 혹은 이사를 가서 고을의 속현인 평산과 난포는 사람이 살지 않아 쓸쓸하게 되었다.(...)
세금을 내건 곳이, 모두 풀만 무성한 사슴의 놀이터로 방치되어 버렸으며, 왜구들의 소굴이 된지 어언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남해 고을은 하늘 남쪽에 있는 훌륭한 땅이며, 넉넉한 해산물과 풍부한 토산물은 나라의 쓰임에 꼭 필요하지 않는가.
바다에는 쓸만한 수군이 있고, 성곽에는 수비용 망루와 방패막이가 있으며, 밤낮으로 경계를 펼치는 봉수가 있으니, 흉악한 적을 막아 백성을 보호하는 발판이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고려 말과 조선초기의 문신인 정이오鄭以吾가 <남해 읍성> 기문에 쓴 글로 남해라는 섬이 나라 안에 긴요한 섬이라는 것을 강변한 글인데, 남해가 조선시대에 이순신장군의 노량해전의 현장이 되었고,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지켜본 역사의 현장이 되었으니,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 아닌가?
아름다운 산 남해 금산과 걷기 좋은 길, ’남해 바래길‘이 있는 남파랑 길을 ’쓰리 고‘를 기억하며 걷고 싶지 않은가?
2024년 6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