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훔친 것은 물건이었지만,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은 어른의 관심과 사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Q.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는 어릴 때 친부모에게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보육시설에서 지내다가 다섯 살 때 저희 가정에 입양되었어요.
요즘 학교에서 아이가 친구들의 연필이나 지우개, 간식을 가져오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집에서도 제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가요. 그럴 때마다 선생님과 저는 아이를 앉혀 놓고 왜 그랬는지 오래 이야기하고, 친구에게 사과하게 합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또 같은 일이 생겨요.
또 하나 걱정되는 건 아이가 처음 보는 어른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안기고 따라가려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정작 친구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고, 반에서 놀림을 받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혹시 애착에 문제가 있는 건지,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A. 안녕하세요, 어머님.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아이의 행동이 어머님의 부족함이나 아이의 나쁜 성품 때문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이가 지나온 시간을 함께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 양육자와 맺는 관계, 즉 애착은 아이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의 바탕이 됩니다. 4천 명이 넘는 아이들을 다룬 80개 연구를 종합한 분석에서도, 어릴 때 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을 맺은 아이들은 친구들과 더 잘 어울렸어요. 이런 관련성은 아이가 자라 청소년기에 가까워져도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어린 시절 충분히 돌봄받지 못했다면,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울 기회가 그만큼 부족했을 수 있어요.
처음 보는 어른에게도 거리낌 없이 다가가는 모습은 특히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어린 시절 돌봄이 부족했던 아이들 가운데 낯선 사람과 아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지나치게 친근하게 구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탈억제 사회관여장애'라고 부릅니다. 흔히 애착장애라고 부르는 문제의 한 종류예요. 이 아이들을 다룬 연구 16편을 종합한 결과, 이런 아이들은 또래보다 친구 관계에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따돌림을 당하거나 다툼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정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워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은 마음은 무척 컸어요. 아이가 아무에게나 다가가면서도 친구 관계가 오래가지 않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모습이 오래 지속될수록 사회성의 어려움도 커졌다고 하니, 지금 관심을 갖고 도와주시는 것이 중요해요.
도벽에 대해서는 미국 학교에서 있었던 한 사례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학대와 방임을 겪고 여러 위탁가정을 거쳐 입양된 열 살 여자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의 간식과 학용품을 반복해서 가져갔어요. 선생님들은 그때마다 아이를 불러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사과를 시키고, 따로 불러 훈계했으며, 집에서도 부모님이 다시 그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가 살펴보니, 어른의 관심을 무척 갈망하던 이 아이에게는 그 긴 대화와 훈계 시간이 오히려 어른과 단둘이 보내는 특별한 시간이 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물건을 훔치면 조용히 돌려주게만 하고, 길게 따지거나 사과를 시키지 않으며, 부모님도 그 일을 다시 꺼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도벽이 눈에 띄게 줄었고, 1년 뒤까지도 그 상태가 유지되었어요.
물론 모든 아이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지만, 어머님 댁 상황과 닮은 점이 있어 보입니다. 아이가 물건을 가져왔을 때는 화를 내거나 길게 묻기보다 "이건 친구 거니까 돌려주자"라고 짧고 담담하게 말한 뒤 함께 돌려주세요. 그리고 그 대신 아이가 평범하게 지내는 시간에 관심을 듬뿍 주세요. 숙제를 마쳤을 때, 동생이나 친구에게 양보했을 때,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냈을 때 눈을 맞추고 칭찬하고 안아 주시는 거예요. 아이가 문제를 일으켜야 관심을 받는 게 아니라, 평소에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방법은 학교와 집에서 같은 방식으로 해야 효과가 있으니, 담임선생님과도 꼭 미리 상의해 주세요.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는 행동은 안전과도 관련되니,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정해 꾸준히 연습시켜 주세요. 친구 관계에서는 친구와 놀이하는 방법, 물건을 빌리고 돌려주는 방법처럼 작은 사회적 기술을 하나씩 알려 주시면 도움이 됩니다.
도벽이 계속되거나 친구 관계의 어려움이 커진다면 전문 상담을 받아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이런 아이들 중에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함께 있는 경우도 많아서, 애착과 주의력, 사회성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아요.
아이가 물건에 손을 대는 건 무언가를 갖고 싶어서라기보다, 마음 한구석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어머님이 그 빈자리를 꾸준한 관심으로 채워 주시면, 아이도 조금씩 사람과 안전하게 관계 맺는 법을 배워 갈 수 있을 거예요.
"훔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순간에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아이는 더 이상 훔치지 않아도 됩니다."
가정에서 해볼 수 있는 해결 방안 3가지
① 물건을 가져갔을 때는 길게 추궁하기보다 짧고 담담하게 대응해 주세요
아이가 물건을 가져간 것을 알게 되면 걱정과 실망에 "왜 그랬어?", "다시는 그러지 마"라며 오래 이야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관심이 고픈 아이에게는 이런 시간이 오히려 어른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화를 내거나 긴 훈계를 하기보다 "이건 친구 거니까 돌려주자"라고 차분하게 말하고, 물건을 돌려준 뒤에는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 주세요. 가정과 학교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선생님과 미리 의논해 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② 평범한 순간에 충분한 관심과 따뜻함을 주세요
도벽에 반응하는 관심을 줄이는 만큼, 아이가 잘 지내는 평범한 순간에는 관심을 더 많이 채워 주세요. 함께 밥을 먹을 때, 숙제를 할 때, 잠들기 전처럼 일상 속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눈을 맞추며 칭찬해 주세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방식으로 반응해 주는 예측 가능한 돌봄은 아이가 "나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도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하고, 안정적인 애착의 바탕이 됩니다.
③ 사람 사이의 '거리'와 친구 관계를 차근차근 알려 주세요
낯선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가는 아이에게는 사람마다 친한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세요. 가족, 친구, 이웃, 처음 보는 사람을 동그라미 그림으로 그려 누구에게 어디까지 다가가도 되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또 소수의 친구와 짧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자주 만들어 주고, 아이가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봐 주세요. 집중력 문제나 과잉행동이 함께 보인다면 전문가에게 평가를 받아 아이에게 맞는 도움을 함께 찾는 것이 좋습니다.
본 센터는 아동과 청소년을 비롯한 모든 연령의 상담을 진행하는 센터로 사회성 발달을 위한 집단상담, 치료놀이 및 각종 상담방식이 다양한 치료센터입니다. 또한 전문 치료사가 배치되어 고민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상담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방문하시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언제까지 아이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뜬구름 잡기식의 잔소리만 할 것인가?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의 사회성을 길러줄 수 있는 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사회성에 대해 20여 년간 상담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아이의 사회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온 이향숙 박사의 오랜경험과 노하우가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 소개 中)
*참고문헌
Davidson, C., Islam, S., Venturini, E., Lowit, A., Gillberg, C., & Minnis, H. (2024). Social competencies of children with disinhibited social engagement disorder: A systematic review. JCPP Advances, 4(3), e12226.
Groh, A. M., Fearon, R. P., Bakermans-Kranenburg, M. J., van IJzendoorn, M. H., Steele, R. D., & Roisman, G. I. (2014). The significance of attachment security for children’s social competence with peers: A meta-analytic study. Attachment & Human Development, 16(2), 103–136.
Luiselli, J. K., & Pine, J. (1999). Social control of childhood stealing in a public school: A case study. Journal of Behavior Therapy and Experimental Psychiatry, 30, 231–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