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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
구멍을 가득 채운 뒤에 나간다는 뜻으로, 물이 흐를 때는 조금이라도 오목한 데가 있으면 우선 그곳을 가득 채우고 아래로 흘러간다는 말이다. 곧 사람의 배움의 길도 속성(速成)으로 하려 하지말고 차근차근 닦아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盈 : 찰 영(皿/4)
科 : 과목 과(禾/4)
而 : 말 이을 이(而/0)
後 : 뒤 후(彳/6)
進 : 나아갈 진(辶/8)
출전 :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이란 웅덩이를 채운 연후에 나아간다라는 뜻이다. '科(과목 과)'는 웅덩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맹자(孟子) 이루 하편(離婁下篇)에 나오는바 그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徐子曰: 仲尼亟稱於水, 曰; 水哉, 水哉. 何取於水也.
서자가 말하길, "공자께서는 물을 극히 칭송하며 말하길 '물이여, 물이여'라고 하신바 물에서 어떤 점을 취한 것인지요?"
孟子曰: 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맹자 말하길, "원천의 샘물이 솟아나 밤낮 그치지 않고 흘러가 (웅덩이를 만나면) 웅덩이를 채우고 난 연후에 전진하여, 마침내 바다에 이르는데 근본이 있는 물의 모습이 이러한바 이러한 점을 취하였을 뿐이다."
맹자는 물의 이러한 성질을 칭찬하였다. 학문 역시 미진한 부분이 있거든 쉼없이 궁구하여 차근차근히 하여야 그 내실이 있을 것이다.
꼼수와 속성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정직, 정통, 성실의 가치가 선뜻 초라해 보이고 홀대받을 수도 있으나 살다보면 언젠가 틀림없이 그 노력과 과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온다. 한편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지극한 선은 물과 같다'라고 한 바있다.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
물은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채운 후에야 흘러간다.
기본적인 일을 한 후에 다음으로 나아간다. 인간사를 물(水)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물은 자신을 낮추고 아래로 흐르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 도덕경(道德經)을 통해 알 수 있는 노자의 물에 대한 철학이다. 또한 물은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른다는 것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의 물에 대한 철학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은 인간과 너무도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기에, 다양한 철학자들의 물에 대한 비유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맹자(孟子)에도 물에 대한 철학이 나온다. 맹자의 제자였던 서자가 물에 대한 철학을 물었을 때 맹자는 물이 가진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샘이 깊은 물은 끝없이 용솟음친다(原泉混混/ 원천혼혼). '그러기에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를 수 있는 것이다(不舍晝夜/ 불사주야).' '흐르다 웅덩이에 갇히면, 그 웅덩이를 가득 채우고 다시 흐른다(盈科後進/ 영과후진).' '그리하여 사해까지 멀리 흘러 갈 수 있는 것이다(放乎四海/ 방호사해).'
참으로 의미심장한 물에 대한 철학이 아닐 수 없다. 근원이 깊은 물이 바다까지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근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물은 바다로 흘러갈 때 무리하지 않는다. 가다가 웅덩이를 만나면 그 웅덩이를 다 채우고 흘러간다. 급하다고 웅덩이를 다 채우지 않고 흘러 간다면 결국 가뭄에 그 물은 말라버리고 말 것이다.
비록 물에 대한 비유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이기도 한다. 인생을 살다가 어려움을 만나거나 힘든 상황을 맞이하면 함부로 나아가지 않고 차분하게 그 상황을 기다리고 겪어냄으로써 힘을 쌓은 다음 비로소 새로운 길로 나아 가라는 철학이다.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 '물은 흐르다 웅덩이를 만나면 반드시 채우고 난후 다시 흐른다.'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이 원전이다. 맹자는 학문도 물처럼 비약이란 있을 수 없고 단계적 성취를 거쳐 궁극의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강조했다.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한 번 쯤 되새겨볼 만한 물에 대한 철학이다. 인생을 살다가 어려움을 만나면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
공자는 물에 대해 자주 예찬하였는데, 이에 대해 맹자는 "근원이 있는 샘이 용솟음쳐 나와 밤낮을 그치지 않고 흘러 덩이를 채운 뒤에 나아가 사해에 이르니 (학문에) 근본이 있는 자가 이와 같기에 취하신 것이다(源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맹자 이루)"라며 공자가 물을 예찬한 이유를 풀었다. 즉 학문하는 자가 물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물이 흘러가다가 물길을 가로막는 구덩이[科]를 만나면 구덩이를 다 채운 후에 앞으로 흘러간다(盈科而後進)고 한 맹자의 말을 되새겨 보자. 이 문장은 물이 순리를 따라 흐르듯 학문도 이처럼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는 아무리 뛰고 싶어도 곧바로 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걸음마를 충분히 익힌 후에야 뛸 수 있게 된다. 걷지도 못하지만 뛰고 싶은 아이에겐 걸음마를 익히는 도중이 바로 구덩인 것이다. 걸음마가 능숙해져야만 즉 구덩이가 채워져야만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학문은 내가 아무리 빨리 나아가고 싶다고 해서 바로 다음 단계로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근차근 순차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무언가를 배운다. 배우다보면 늘 '구덩이[科]'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구덩이의 크기와 깊이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이의 구덩이는 얕고 작을 수 있으며, 어떤 이의 구덩이는 무척 깊고 클 수 있다. 따라서 사람마다 구덩이를 만났을 때 구덩이를 채우는 시간이 다를 수밖에 없다.
구덩이 크기에 따라 채우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늘 남과 비교하게 되고, 쉽게 포기한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고. 어쩌면 구덩이를 거의 다 채우고 있는데도 자신이 가진 구덩이에 대해 잘 몰라서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자신의 구덩이가 얼마만한 크기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인 것이다.
다시 한 번 새해에 세웠던 목표를 살피고 매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자신의 구덩이 깊이와 크기를 살펴보고, 힘을 내기 바란다. 어쩌면 구덩이가 거의 채워졌을 지도 모른다.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
물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은 적잖다. 서자(徐子)라는 인물이 맹자에게 공자가 평소 물을 칭송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맹자는 공자에게 있어 물은 지혜의 상징이었다며 이렇게 대답했다. "근원이 깊은 샘물은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 흙구덩이를 채우고 난 다음에야 바다에 이른다. 지혜란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에 물을 칭송했던 것이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물의 덕성'에 관해선 노자의 가르침이 압권이다. 노자는 공자와 동시대 인물이지만 조금 앞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지만 굳세고 강한 것을 공략하는 데는 그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그 성질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莫之能勝也 以其无以易之也)"며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기고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柔之勝剛 弱之勝强)"고 강조했다.
전한 때 학자 하상공은 이렇게 설명한다. "동그란 곳에 있으면 동그래지고 네모난 곳에 있으면 네모가 되며, 막으면 멈추고 터주면 흘러간다. 그런데도 물은 산을 품고 언덕을 오를 수 있으니 철을 갈고 동을 녹이는 데 물보다 더 뛰어난 공을 이룰 것이 없다."
순응의 도리를 뜻한다. 사실 역류가 아닌 순리대로 사는 삶이란 행복의 지름길이다. 준비하고 노력은 하되, 만사 괜한 욕심만 부린다고 되는 게 아닌 것이다. 이렇듯 물은 여러 교훈을 주기에 '손자병법'에서도 "군대의 움직임을 물의 모양과 같이 하라(兵形象水)"고 권면했던 것이다. 전투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선 동일한 전술전략을 구사하지 말라는 충고다.
'물의 날'은 물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제정한 날로 매년 3월 22일이다. 유엔은 1992년 '세계 물의 날'을 제정하고, 1993년부터 이 날을 기념하면서 매년 물과 관련된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각국에서는 물을 비롯한 수자원과 관련된 각종 세미나와 포럼이 개최된다. 한국에서는 1990년부터 매년 7월 1일을 물의 날로 지켜오다가, 1995년부터 유엔이 제정한 3월 22일을 물의 날로 제정, 기념하고 있다.
물은 우리의 생명뿐 아니라 지구 생태환경의 생사를 결정짓는 요소이기에 수자원의 고마움을 알고 환경보호에 힘써야겠다. 세계적으로 물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지구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6억 명에 이른다는 보고서가 있잖은가. 물의 교훈과 수자원의 가치를 함께 되새기자.
빈틈이 없어야 이루어진다
삼국시대 때부터 내려온 구구단의 이름은 중국 관리들이 평민들이 알지 못하게 일부러 어렵게 9단부터 거꾸로 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구구단(九九段)을 어렵게 배웠다. 초등학교 때 외우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했다. 그래도 다 외우지는 못했다.
어둑해질 때 돌아오자 아버지가 주먹구구 셈법을 가르쳐주었다. “어떤 게 안 외워지느냐?”고 해 “7x8”이라 했다. 그날 배운 주먹구구를 다시 해보자. 왼손에 7, 오른손은 8을 각각 펼치면 펴진 손가락과 구부린 손가락이 나온다. 펴진 손가락 2와 3은 10단위로 한다. 더하면 50이다. 구부린 손가락 3과 2는 서로 곱하면 6이 나온다. 그래서 7x8=56이 된다. 잘 안 외워지던 9x7도 같은 방법으로 하면 거뜬하게 답을 구할 수 있다.
애써 구구단을 외울 필요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스칠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주먹구구 셈법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5 이하는 계산이 안 된다. 그건 암산해야 한다. 암산은 너만 알고 남은 모른다. 사람들은 모르면 믿지 않고 믿지 못하면 따르지 않는다. 구구단은 약속이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언어나 문법을 쓰지 않으면 남을 이끌 수 없을뿐더러 일이 안 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주먹구구란 말은 저렇게 생겨났다. 말씀이 끝나자 아버지는 구구단을 다 외울 때까지 학교에 열 번이고 갔다 오라고 했다. 다 외웠다고 자신하면 한 번만 갔다 와도 된다고 했다. 캄캄한 길을 더듬어가며 몇 번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에게 검사받을 때는 거침없이 외웠다.
아버지는 어린 자식이라고 해서 쉬운 말로 바꿔 말하지 않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영과후진(盈科後進)'이란 고사성어를 말씀하셨을 테지만 그때는 알아듣지 못했다. 영과후진(盈科後進)은 ‘구멍을 가득 채운 뒤에 나간다’라는 말이다. 물이 흐를 때 오목한 곳이 있으면 먼저 거기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아래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흘러가지 않는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편에 나온다. 제자 서자(徐子)가 물의 철학을 묻자 맹자는 물이 가진 의미를 자세히 설명했다. “샘이 깊은 물은 끝없이 용솟음친다. 그러기에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를 수 있다. 흐르다 웅덩이에 갇히면 그 웅덩이를 가득 채우고 다시 흐른다, 그리하여 바다까지 멀리 흘러갈 수 있는 것이다(原泉混混 不舍基夜 盈科後進 放平四海).”
그 후에도 여러 번 말씀하셨을 영과후진(盈科後進)은 고등학교 합격자 발표날 아버지가 운동장에 물 고인 웅덩이마다 지팡이로 물꼬를 터줄 때 비로소 알아들었다. 그날 아버지는 “물은 웅덩이를 가득 채우고 흘러넘쳐야 비로소 다시 흘러간다. 갈 길이 바쁘다고 웅덩이를 건너뛰고 흘러가거나 대충 절반만 채운 다음에 흘러가는 물은 없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바로 이어서 “웅덩이에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잘 봐라. 물은 웅덩이 밑바닥부터 시작해 꼭대기까지 마치 구구단을 외우듯, 옆구리에 숨겨진 데까지 빠짐없이 차곡차곡 소리도 없이 채워간다. 저게 일이 이루어지는 원리다. 일은 주먹구구 셈법처럼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일이 틀어지는 이유는 미처 채우지 못한 데에 틈이 생겼기 때문이다. 빈틈없이 해야 일은 이루어진다”라고 강조했다.
주먹구구로 세상의 일을 얕은 꾀로 점치지 말라고 강조한 아버지는 “저런 물의 이치에 맞는 언행을 가지길 바란다. 그걸 깨우쳤으면 학교 그만 다녀도 된다”고도 했다. 이치에 맞는 합리성에서 일을 성사시키는 힘이 나온다. 그런 합리성을 추구하려는 의지는 순전히 꾸준한 노력으로만 얻을 수 있다. 손주들에게 가르칠 합리성 추구 훈련은 그래서 일찍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 盈(찰 영)은 형성문자로 盁(영)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그릇 명(皿; 그릇)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夃(영)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①차다 ②가득하다 ③충만(充滿)하다, 피둥피둥하다 ④남다, 여유(餘裕)가 있다 ⑤불어나다, 증가(增加)하다 ⑥채우다,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⑦교만(驕慢)하다 ⑧이루다 ⑨예쁜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채울 충(充), 메울 전(塡), 찰 만(滿),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가득 참을 영만(盈滿), 남음과 모자람을 영축(盈縮), 둥근 달을 영월(盈月), 한 자 남짓이나 한 자 미만의 넓이 즉 협소함을 뜻함을 영척(盈尺), 충만함과 공허함을 영허(盈虛), 가득차고 성함을 영성(盈盛), 짐을 실은 화차를 영차(盈車), 물이 가득 차서 찰랑찰랑한 모양을 영영(盈盈), 가득 차서 넘침을 영일(盈溢), 이지러짐과 꽉 참 또는 모자람과 가득함을 휴영(虧盈), 지나친 욕심을 가지지 말도록 타이름을 계영(誡盈), 풍성하게 꽉 차서 그득함을 풍영(豐盈), 모두 가득 참 또는 이르지 않은 곳이 없음을 관영(貫盈), 가득 차면 기울고 넘친다는 뜻으로 만사가 다 이루어지면 도리어 화를 가져오게 될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을 영만지구(盈滿之咎), 섬에 가득히 채워서 보내 준 선물이라는 뜻으로 썩 많이 보내 준 음식이나 물건을 이르는 말을 영석지궤(盈石之饋), 한 자 남짓한 글이라는 뜻으로 매우 짧은 글을 이르는 말을 영척지서(盈尺之書),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점차 이지러진다는 말을 일월영측(日月盈昃), 달이 꽉 차서 보름달이 되고 나면 줄어들어 밤하늘에 안보이게 된다는 뜻으로 한번 흥하면 한번은 망함을 비유하는 말을 월영즉식(月盈則食), 있는가 하면 없고 없는가 하면 있다는 뜻으로 변화무쌍하여 헤아리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일허일영(一虛一盈) 등에 쓰인다.
▶️ 科(과목 과)는 ❶회의문자로 곡식(=禾)을 말(斗)로 헤아리다는 뜻이 합(合)하여 조목, 과목을 뜻한다. 科(과)는 곡식을 된다는 데서 물품을 분류하다, 조사하다의 뜻도 있다. 곡물(穀物)을 말로 되어 나눈다는 것이 본 뜻이다. 정도(程度), 품등, 과목 등을 뜻하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科자는 ‘과목’이나 ‘과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科자는 禾(벼 화)자와 斗(말 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斗자는 곡식을 담는 바가지를 그린 것으로 ‘구기’나 ‘용량의 단위’라는 뜻이 있다. 科자는 본래 벼의 ‘품종’이나 ‘등급’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니까 벼의 품질을 가늠하기 위해 바가지로 쌀을 퍼내는 모습을 표현한 글자가 科자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수확한 벼는 일정한 검사과정을 거쳐 등급이 매겨진다. 벼의 품질이나 품종을 검사해 수확한 벼의 등급을 분류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科자는 벼의 ‘품종’이나 ‘등급’을 뜻하다가 후에 ‘분류’나 ‘종류’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科(과)는 (1)일정한 표준을 세워서 가른 학문 상의 분류나 종류를 나타내는 말. 접미어로도 쓰임 (2)생물 분류학 상의 한 단위. 속(屬)의 위, 목(目)의 아래에 위치함. 속과의 사이에 아과(亞科)를 두기도 함. 접미어로도 쓰임 (3)과거(科擧) (4)중국의 연극 용어로, 무대에서의 배우의 동작 등의 뜻으로 ①과목(科目), 과정(科程) ②품등(品等) ③그루(초목을 세는 단위) ④법(法), 법률(法律), 조문(條文) ⑤죄(罪), 형벌(刑罰) ⑥과거(科擧) ⑦배우(配偶)의 동작(動作) ⑧구멍, 웅덩이 ⑨민머리 ⑩세금을 매기다 ⑪무성(茂盛)하게 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정한 목적과 방법으로 그 원리를 연구하여 하나의 체계를 세우는 학문을 과학(科學), 공부할 지식 분야를 갈라놓은 것을 과목(科目), 옛날 문무관을 뽑을 때에 보던 시험을 과거(科擧), 대학이나 병원 등에서 관의 책임자를 과장(科長), 조선시대에 문무 백관에게 그 지위에 따라 나누어주던 논밭을 과전(科田), 과거를 보던 곳을 과장(科場), 과거의 시험 제목을 과제(科題), 어떤 과목의 성적이 합격 기준에 못 미치는 일을 과락(科落), 나무람을 받을 만한 태만을 과태(科怠), 가르치는 과목을 교과(敎科), 교수 상 또는 연구 상의 편의로 구별한 학술의 과목을 학과(學科), 이를 전문으로 치료하고 연구하는 의학의 한 분과를 치과(齒科), 내장에 생기는 병을 수술 따위를 하지 아니하고 약물이나 간호로 치료하는 의학의 분과를 내과(內科), 전문 분야 별로 나누어 놓은 부문을 분과(分科), 문학 방면에 관한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의 한 분과를 문과(文科), 대학에서 공업이나 공학을 전공하는 학과를 공과(工科), 이전에 형벌을 받은 일을 전과(前科), 금옥과 같은 법률이라는 뜻으로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규칙이나 교훈을 금과옥조(金科玉條), 과거에 급제하여 지방관에 임명되는 일을 등과외방(登科外方), 구멍을 가득 채운 뒤에 나간다는 뜻으로 물이 흐를 때는 조금이라도 오목한 데가 있으면 우선 그곳을 가득 채우고 아래로 흘러간다는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말을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일컫는 말을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일컫는 말을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이르는 말을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말을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르는 말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지나간 뒤에는 아무리 서둘러 봐도 아무 소용이 없음 또는 자기가 급해야 서둘러서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갈이천정(渴而穿井),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을 사이비(似而非),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 또는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함을 이르는 말을 경이원지(敬而遠之), 뾰족한 송곳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뜻으로 뛰어나고 훌륭한 재능이 밖으로 드러남을 이르는 말을 영탈이출(穎脫而出),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베개를 높이 하고 누웠다는 뜻으로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잠잘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고침이와(高枕而臥), 형체를 초월한 영역에 관한 과학이라는 뜻으로 철학을 일컫는 말을 형이상학(形而上學), 성인의 덕이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유능한 인재를 얻어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짐을 이르는 말을 무위이치(無爲而治) 등에 쓰인다.
▶️ 後(뒤 후/임금 후)는 ❶회의문자로 后(후)는 간자(簡字)이다. 발걸음(彳; 걷다, 자축거리다)을 조금씩(문자의 오른쪽 윗부분) 내딛으며 뒤처져(夂; 머뭇거림, 뒤져 옴) 오니 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後자는 '뒤'나 '뒤떨어지다', '뒤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後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幺(작을 요)자, 夂(뒤져서 올 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後자는 족쇄를 찬 노예가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後자를 보면 족쇄에 묶인 발과 彳자가 그려져 있었다.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으니 걸음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後자는 '뒤떨어지다'나 '뒤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後(후)는 (1)무슨 뒤, 또는 그 다음. 나중 (2)추후(追後) 등의 뜻으로 ①뒤 ②곁 ③딸림 ④아랫사람 ⑤뒤떨어지다 ⑥능력 따위가 뒤떨어지다 ⑦뒤지다 ⑧뒤서다 ⑨늦다 ⑩뒤로 미루다 ⑪뒤로 돌리다 ⑫뒤로 하다 ⑬임금 ⑭왕후(王后), 후비(后妃) ⑮신령(神靈)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먼저 선(先), 앞 전(前), 맏 곤(昆)이다. 용례로는 뒤를 이어 계속 됨을 후속(後續), 이후에 태어나는 자손들을 후손(後孫), 뒤로 물러남을 후퇴(後退), 일이 지난 뒤에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을 후회(後悔), 같은 학교를 나중에 나온 사람을 후배(後輩), 반반씩 둘로 나눈 것의 뒷부분을 후반(後半), 핏줄을 이은 먼 후손을 후예(後裔), 뒷 세상이나 뒤의 자손을 후세(後世), 뒤에서 도와줌을 후원(後援), 뒤의 시기 또는 뒤의 기간을 후기(後期), 중심의 뒤쪽 또는 전선에서 뒤로 떨어져 있는 곳을 후방(後方), 뒤지거나 뒤떨어짐 또는 그런 사람을 후진(後進), 맨 마지막을 최후(最後), 일이 끝난 뒤를 사후(事後), 일정한 때로부터 그 뒤를 이후(以後), 정오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오후(午後), 바로 뒤나 그 후 곧 즉후를 직후(直後), 그 뒤에 곧 잇따라 오는 때나 자리를 향후(向後), 앞과 뒤나 먼저와 나중을 전후(前後), 후배 중의 뛰어난 인물을 이르는 말을 후기지수(後起之秀), 젊은 후학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후진들이 선배들보다 젊고 기력이 좋아 학문을 닦음에 따라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가히 두렵다는 말을 후생가외(後生可畏), 때 늦은 한탄을 이르는 말을 후시지탄(後時之嘆),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뛰어날 때 이르는 말을 후생각고(後生角高), 내세에서의 안락을 가장 소중히 여겨 믿는 마음으로 선행을 쌓음을 이르는 말을 후생대사(後生大事),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이나 일이 잘못된 뒤라 아무리 뉘우쳐도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후회막급(後悔莫及) 등에 쓰인다.
▶️ 進(나아갈 진, 선사 신)은 ❶형성문자로 进(진)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隹(추; 꽁지 짧은 새, 진)의 뜻이 합(合)하여 나아가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進자는 '나아가다'나 '오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進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隹(새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隹자는 작은 새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進자의 갑골문을 보면 止(발 지)자와 隹자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彳(조금 걸을 척)자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進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進자는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나아가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후퇴 없이 앞으로만 쭉 나아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새는 앞으로만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밀고 나아간다는 뜻의 '추진(推進)'이라는 단어에 각각 隹자가 쓰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進(진, 신)은 ①나아가다 ②오르다 ③다가오다 ④힘쓰다 ⑤더하다, 그리고 ⓐ선사, 선물(膳物)(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아갈 취(就), 나아갈 진(晉), 나아갈 적(迪),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러날 퇴(退)이다. 용례로는 앞으로 나아감 또는 일을 처리해 나감을 진행(進行), 일이 진행되어 발전함을 진전(進展), 더욱 발달함이나 차차 더 좋게 되어 나아감을 진보(進步), 내쳐 들어감이나 향하여 들어감을 진입(進入), 앞으로 나아감을 진출(進出), 나아감과 물러남을 진퇴(進退), 학문에 나아가 닦음 또는 상급 학교로 나아감을 진학(進學), 진보하여 차차 더 나은 것이 됨을 진화(進化), 앞으로 나아가는 길 또는 나아갈 길을 진로(進路), 앞으로 나아가 적을 치는 것을 진격(進擊), 일의 진행 속도나 진행된 정도를 진도(進度),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일을 이룩함을 진취(進取), 등급이나 계급 또는 학급 따위가 올라감을 진급(進級), 군대가 남의 나라 영토에 진군하여 머물러 있는 일을 진주(進駐), 일을 차차 이루어 감을 진취(進就), 앞으로 나아감을 진거(進去), 밀고 나아감을 추진(推進), 재촉하여 빨리 나아가게 함을 촉진(促進), 벼슬이나 지위가 오름을 승진(昇進), 힘써 나아감이나 씩씩하게 나아감을 매진(邁進), 빠르게 진보함을 약진(躍進), 더하여 나아감 또는 나아가게 함을 증진(增進), 앞으로 나아감을 전진(前進), 여러 사람이 발맞춰 앞으로 걸어 나감을 행진(行進), 뒤지거나 뒤떨어짐 또는 그런 사람을 후진(後進), 급속히 이상을 실현하려는 일 또는 빨리 진행함을 급진(急進), 남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나섬을 자진(自進), 순서대로 차차 나아감을 점진(漸進), 낡은 것을 고치어 진보를 꾀함을 개진(改進), 정력을 다해 나아감 또는 아주 열심히 노력함을 정진(精進), 다투어 서로 앞으로 나아감을 경진(競進), 배나 비행기를 타고 나아감을 항진(航進),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곧게 나아감을 직진(直進), 뛰어난 공로에 의하여 특별히 진급함을 특진(特進),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거나 물러서지 못하다라는 뜻으로 궁지에 빠진 상태를 일컫는 말을 진퇴유곡(進退維谷),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궁지에 빠짐을 일컫는 말을 진퇴양난(進退兩難), 나아가면 그 세력이 강성해 당해 낼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진불가당(進不可當), 나아간 것은 적고 물러선 것은 많다는 뜻으로 소득은 적고 손실은 많음을 이르는 말을 진촌퇴척(進寸退尺), 더디고 더뎌서 잘 진척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지부진(遲遲不進), 한 길로 곧장 거침없이 나아감을 일컫는 말을 일로매진(一路邁進), 배우는 일에 정성을 다해 몰두함을 일컫는 말을 학업정진(學業精進), 거리낌 없이 힘차고 용감하게 나아감을 일컫는 말을 용왕매진(勇往邁進), 아무 사고가 없이 나올 자리에 나오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무고부진(無故不進), 싸움을 질질 끌지 않고 빨리 쳐들어가서 이기고 짐을 빨리 결정함을 일컫는 말을 속진속결(速進速決)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