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64장(구 13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본문의 중심 내용 : 35장은 엘리후의 셋째 연설로, 인간의 의와 불의가 미칠 수 없는 하나님의 초월성으로 욥이 했던 말들을 반박합니다.
[성경보기]
31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하였는가 33하나님께서 그대가 거절한다고 하여 그대의 뜻대로 속전을 치르시겠느냐 그러면 그대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그대는 아는 대로 말하라
34슬기로운 자와 내 말을 듣는 지혜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게 말하기를 35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36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37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35:1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이냐 3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 4내가 그대와 및 그대와 함께 있는 그대의 친구들에게 대답하리라 5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6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7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9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10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11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12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13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14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15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메시지]
엘리후는 욥이 그동안 햇던 말들을 끄집어 냅니다. 욥은 자기가 옳다고 계속 주장하다보니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곡 불의하신 것처럼, 그래서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의로운 것처럼 말했습니다. 욥은 내가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아간다고 한들 나에게는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의롭게 살았음에도 이렇게 고난을 당한다면 범죄하는 삶보다 나을 게 없지 않느냐”는 것이 욥의 결론입니다.
엘리후는 이런 욥의 생각에 반박합니다. 5절 이하를 보면 인생이란 기껏해야 저 하늘에 높이 떠있는 구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존재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물며 마치 자기가 착하게 살면 저 하늘보다 높이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무슨 유익이라도 줄 숭 lt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6절-8절 말씀을 보면, “(6)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7)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우리 인생이 착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그것이 하나님에게 어떤 영향이라도 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고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도 초월적인 분이라 인간의 의로움이나 악행에 구애받지 않으십니다. 알량한 의를 내세워 하나님이 내리신 고난에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욥의 죄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나 영향을 주고, 또 욥의 의로운 삶도 사람에게나 유익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하등 도움이나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학대를 받으면 부르짖으며 벗어나려고 애원합니다. 억압이 심해지면 부르짖고, 세력이 있는 자들이 억누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청하면서 울부짖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듯이 그저 본능적으로 고난이 오면 소리를 지르고 어떻게든지 고난을 피해보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0절에서 엘리후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욥 35:10)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밤중에 노래를 부르게 하시는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찾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밤같은 고난의 시간이 와도 그 속에서 노래를 주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환난과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억울한 학대 속에서 부르짖지만, 진정한 교훈과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진실히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짐승보다 낫도록 가르치시고, 공중의 새보다 지혜롭게 만드셨습니다. 그저 본능대로 반응하고 시는 것이 인간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는 것은 악인들의 교만한 자세 때문입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고통 중에 부르짖는 욥에게 대답하지 않으시는 것은 욥의 교만과 가식적인 부르짖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욥이 하나님을 주목하지 않으므로 하나님도 욥을 주목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헛된 말로 부르짖는 것을 듣지 않으시며, 전능자는 그런 기도를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십니다. 엘리후는 말합니다. 욥이 그분을 볼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미 욥의 사정이 그분께 알려졌으니 그분을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욥이 하나님이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사람의 죄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을 계속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며, 자기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기도
나에게 밤같은 고난이 온다 해도 그 고난 가운제서도 찬송하게 하시고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찾게 하옵소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민감한 저와 우리 교회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