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나타나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말하기 위해서는 기독교가 걸어온 역사적 행보를 알아야 한다.
150년 경까지 구약이라는 경전과는 성격이 다른 새로운 경전(신약)이 만들어졌다. 예수가 구름을 타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다는 기대감이 사라져갔다. 예수가 죽은 지 100여 년이나 흐르면서 예수를 생전에 보았던 사람들도 모두 죽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2세대 기독인에게는 새로운 교훈이 담긴 교리서가 필요했다. 제일 먼저 쓰여진 것이 마가복음(65~70년 경)이다. 안티옥에서 쓰여졌다고 한다. 예수의 출생 이후의 생활에는 관심이 없고, 세례를 받은 이후의 행적을 다루었다. 행적을 설명하다 보니 예수의 인간적인 측면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세례를 받았으므로 신분 세탁이 되어서 신의 아들‘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신약은 바울이 쓴 편지가 중심이고, 이때는 안티옥, 고린도,, 에베소 등의 교회가 중심이 된다. 이후 로마로, 알렉산드리아로 전교되면서 이곳이 중심 역할을 한다.)
바울이 쓴 여러 편지에서 ’성육화론‘을 말하면서 예수가 ’신‘이라고 했다., 이때의 여러 교부들이 쓴 글에도 예수의 행적을 많이 다루고(행적을 다루다 보니 인간적인 면모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신의 존재임을 말하고는 있으나 신이라는 것을 구구절절 강조하기 보다는 간략히 말한다.
특히 그리스 철학의 영향으로 ’순교자‘라는 개념이 들어온다.
(*성육화론-incarnation. -- 신은 형상이 없으므로, 인간에게 보여질 수 없다.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면 보여진다. 그래서 영적 존재가 육신으로 변하였다.)
성육화된 예수를 표현한 거창한 기독교 미술이 서양미술을 정복한다.